<선량한 차별주의자> 독후감
‘씨발쓰지 마세요’(이하 ㅅㅂ쓰지 마세요)
개인적으로 트위터는 가장 예민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편향된 혹은 그렇지 않은) 정보가 빠르게 돌아가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트위터를 둘러본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페북으로 공유하면서도, 글을 올리지도 않는 트위터는 항상 지켜본다.
‘ㅅㅂ쓰지 마세요’는 한창, 아니 지금도 돌고 있는 밈이다. 글에 있는 여러 맥락이나 상황을 제거하고, ‘ㅅㅂ’이라는 단어 하나를 보고, 글 아래로 ㅅㅂ쓰지 마세요라는 리플을 달아둔다.
저 밈 때문에 여러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야구 경기에 져서 화가 난 팬에게 ㅅㅂ쓰지 마세요라고 했다가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고, 내용이나 맥락에 상관없이 저 밈을 사용하며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기도 한다. 저 욕설 자체가 여혐단어이니(뜻으로만 생각하면 여혐 맞다), 반대로 남자 성기를 이용한 욕설은 괜찮다고 말하다, 또 싸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책에서 나온 예시인 장애인 회의장에서 ‘결정 장애’를 썼다는 이유, 흑인 분장을 한 코미디언 경우처럼 일맥상통하기도 하다. 여기서 공통점은 누군가를 비하하며, 상처를 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단순한 비하 발언이나 욕설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나는 자존감과 자아가 굉장히 강하다. 심리 상담 시에 상담사는 상위 5% 수준이라고 했다. 와이프는 나와는 정반대다. 내가 와이프에게 욕을 하거나 비하를 하지 않더라도 와이프는 많은 부분에서 내게 상처를 받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말들이, 그녀에게는 상처가 된다.
가령 올해 곧 이사 갈 지역을 논의했을 때, 나는 그녀에게 분명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많이 줬다고 생각하는 데 그녀는 그렇지 않았고, 자신의 의견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결국에 시간, 돈 모두 부족한 상태의 치킨 게임으로 상황은 전개됐고, 내 의견은 개진됐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시원하게 합의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녀는 내게 강력한 말투 때문에 주장을 강요했다고 이사 갈 지역에 대해 평가한다.
(물론 이사오고 두 달이 지나는 시점에서부터는... 둘 다 만족한다)
단언컨대 와이프에게 욕설이나 비하를 한 적 없다. 내 주장을 이야기했고,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했을 뿐이다. 좀 강하게 말했을 수도 있다. 차라리 문제를 두고 토론하는 ‘태도’를 욕한다면 나도 100% 인정이다. 그런데 그 태도라는 거, 내가 누군가를 비하하고, 욕을 했기에 상처를 주는 일하고는 다르다. 단순한 입장 차이가 있고, 내가 원하지 않는 어떤 결론이 도출됐을 때, 기분이 나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
나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 아니 책에서 이야기한 PC를 위해서라도 기분이즘(기분에 따라 도덕적 판단을 하는 행위)에 따라 도덕을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 기분이 나쁜 건 여러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기분 때문에 도덕을 재단한다면 사회적 지위가 높고, 목소리가 크고, 예민한 사람에게 도덕적 기준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기준은 ‘어떤 방면에 예민’한지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책에서 언급한 예시였던, ‘모두를 위한 화장실’. 와이프에게 물어봤다. 찬성해? 그녀는 말했다. 화장실 몰카가 이리도 많은 세상에서, ‘나는 여자다’라고 주장하는 남자들이 화장실에 들어온다는 걸, 어떻게 찬성할 수 있나? 와이프가 느끼는 공포, 이게 단순히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의 항변일까? 한국에서 일어난 여러사건들 때문에 공포감, 조금 단어를 승화하면 포비아를 느끼는 게 아니냐, 다시 물었다. 그녀는 포비아라 불리는 게 화장실 몰카보다 괜찮다고 했다.
비슷한 예가 하나 더 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건에 대한 ‘아산 · 진천 시민들의 시위’다. 감옥에 있는 1급 공무원 사진을 시위대가 붙여뒀다고 해서 조작이 아니냐는 말이 많다. 조작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죽을지도 모를 위험한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이 겪을 공포를 단순히 ‘포비아’로 몰아가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물론 그런 포비아를 극복하려 충남도지사가 격리 병동 옆으로 갔으니 ‘포비아’라는 여론 반전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만약 마스크를 중국에 다 줘서, 국내에 마스크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국회의원이 있는 인천 연수구로 격리 병동이 갔다면, 여론 반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이 책에서 가장 공감하는 주장은 이 대목이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하는 건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차별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인정한다.
그런데 또 한 대목이 더 있다.
‘성찰이 없다면 무의식적으로 차별에 가담한다’.
여기서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면 차별하지 않는 성찰의 범위는?
야구팬이 말한 ‘ㅅㅂ쓰지 마세요’는 누군가에게 비하를 주려는 의도가 아니다. 순전히 자기 분노를 풀기 위한 욕이다. 욕조차 하지 못한다면 쌓인 분노가 어떻게 풀릴 수 있을까?
반대로 장애인 전당대회에서 ‘결정 장애’를 언급했고 부적절하다고 평가한 사건은 나도 동감한다. 그렇다면 성찰의 범위가 되는 기준을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성찰’의 범위, 당사자성으로 한정하면 되지 않을까? 욕을 하든, 집단을 구분 짓는 농담을 하든 ‘당사자성’만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가령 세상을 떠난 신해철은 아내와 성관계를 위해 ‘교복’을 들고 다닌다고 방송에서 말한 적이 있다. 이 문제를 두고 공론화를 시키면 ‘로리타 신해철’이 될 수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간호사들이 간호복 포르노에 대해 성적 대상화를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신해철 경우를 생각했을 때, 두 사람 사이에서 합의가 됐고, 그 때문에 금슬이 좋아진다면 이는 신해철과 와이프 사이의 프라이버시다.
어두운 욕망이고 대상화일지언정 관계를 좋게 만드는 요소라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화가 난 야구팬을 건드리면 안 된다. 이건 내 어린 시절이 ‘롯데 자이언츠’로 가득했기 때문에 확증 할 수 있다(지금은 야구든 농구든 국내는 안 본다. 프로스포츠는 역시 천조국, USA다).
화가 난 야구팬은 욕이라도 해서 풀면 좋았건만, 그런 야구팬에게 그저 PC한 도덕적 기준을 들이대며 ‘ㅅㅂ쓰지 마세요’?. 공론장에라도 ㅅㅂ써서 화가 풀리면 다행이다. 꼴리건(꼴찌 롯데 + 훌리건)이 되어 90년대처럼 선수단 트럭을 엎어버리는 것보다는 ㅅㅂ쓰고 분노를 푸는 게 더 낫다. 그게 여혐 단어라 문제가 된다면 남자 성기를 이용한 욕을 하는 게 낫다. 여튼 욕이 필요하다.
물론 현 대통령도 신문 사설로 글을 썼듯이 스포츠에 과도하게 감정 이입을 하는 것보다는 공동체 문제를 결정짓는 정치에 관심을 두는 게 좋다는 말은 100% 동감이다. 만약 정치가 재미없으면 나처럼 한국이 아니라 천조국 프로스포츠에 관심을 둬도 좋다. 적어도 한국 선수가 없으면 과도한 몰입도 상처도 없다. 내가 롯데에 관심을 끊은 이유는 99년 플레이오프 이후 쓰러진 임수혁 선수에 대한 롯데 프런트 때문이다. 실은 롯데 프런트를 보며 분노를 넘어 상처를 받았다.
독후감을 끝내며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일간 베스트 폐쇄 청원이 신문고에 올라왔을 때 내가 아는 모두에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제도와 사회 시스템으로의 도덕적 올바름, 혹은 책 제목처럼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는 건 찬성이다. 그러나 개인의 사상에까지 PC가 마치 도덕적 기준인양 모든 글에 ‘ㅅㅂ쓰지 마세요’를 달아대는 건 반대다.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라는 책에 눈에 띄는 구절이 있다.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는 날, 구글에서 ‘니그로’ 검색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거다.
사람 본성은 도덕적 올바름을 추구할지언정, 더럽고, 기괴하고, 특이하다. 더럽고 기괴하고 특이한 본성마저도 PC와 같은 도덕적 기준을 내세우며 사상을 강요하는 건 옳지 않다. 아니,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지 않다. PC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공적인 자리에서 욕설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건 지금의 도덕적 기준으로도 충분하다. 결국 공적인 자리에서 ㅅㅂ을 쓰지 않는 성찰만 있으면 된다.
관리 인력이 느슨한 밤, 담배 피울 곳이 없는 삼성동 코엑스 입구에 담배꽁초가 더 많다. 아침 시간 엄청나게 솟은 고층 빌딩, 마천루 앞에 쓰레기는 그 어느 곳보다도 많다.
올바른 사회, PC의 도덕이 있더라도, 욕을 하고 화를 풀고, 기괴함을 표현할 ‘똥통’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일간 베스트가 폐쇄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내가 일베를 하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