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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감 Jan 21. 2019

냉면, 냉면, 냉면 2탄 - 강원도 이외

<Brave Yi의 찾아가는 영화관 뒷 이야기 - 맛>


  찾아가는 영화관은 전국의 영화관이 없거나, 문화 소외지역에 찾아가 영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좋은 취지에 더 좋은 건 무료로 국가에서 서비스하는 행사입니다. 

  찾가영 2년. 13만km가 넘게 돌아다니며 먹고, 보고, 느낀 여러 가지 점을 공유하려 Brave Yi의 찾아가는 영화관 뒷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아, 제 이름이 ‘이용감’이라 Brave Yi입니다.      


  지난 번 글에 이어 2탄. 이제는 강원도 이외 지역이다. 강원도와 강원도 이외 지역으로 나눈 건 ‘도토리 냉면’이 쵝오!!라고 소리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소개 할 냉면은 3곳. 두 곳은 강추, 나머지 한 곳은 특이해서 소개하는 곳. 지역적으로는 대전, 진주, 인천이다. 앞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평양냉면 이외 괜찮고, 맛있고, 특이한 냉면들이다. 


  1. 대전 유천동_평산면옥_물냉면

   평산면옥이 기억에 남는 이유 중 하나는 오지게 길었던 대기 시간과 배를 째라는 식으로 배짱을 부린 식당 영업시간 때문이다. 처음으로 대기 시간. 생활의 달인 출연 이후 두 달이 지났고, 토요일 오후에 방문했다. 정확하게 2시간 30분을 기다려서 음식을 영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영업시간. 작년 10월에 점심을 먹으러 가게를 찾았다. 문이 잠겨 있었다. 차에서 내려 영업시간을 확인해봤다. 유천동 평산면옥은 4월 ~ 9월, 11:00 ~ 15:00까지만 영업한단다. 내가 알기로 전국에서 가장 장사 시간이 짧은 식당 중 하나다. 고작 5개월, 영업을 할 때도 4시간. 

   고단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음식을 만날 수 있었다. 아니, 음식을 설명하기에 앞서 언급해야 할 게 있다. 냉면이 나오기 전 따뜻한 육수를 줬다. 이것부터 예술이다. 뽀얗다. 정말 맛있게 잘 하는 곰탕집 국물 색깔이다. 맛은 깊다. 깊고 뽀얀 국물이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 심장을 거쳐 흘러 흘러 대장에 안착했다. 나처럼 떵쟁이. 아니다 말이 저급하니 품격 있게 ‘대장 트러블’이라고 하겠다. 따뜻한 온 육수는 나처럼 대장 트러블이 만연한 사람에게 지치고 피폐한 대장을 위로하는 느낌이다. 추운 겨울 짭조름하고 따뜻한 분식집 앞 오뎅 국물처럼 계속 들이켜고 싶은 데 안 된다. 리필 불가라고 한다. 


숭늉처럼 생긴 이 온육수... 한 번 맛 보면 계속 후루룩 하고 싶다. 


  깊고 비린내가 없는 데 이처럼 속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라니. 나중에 따로 조사를 해보니 육수를 우려내는 데도 시간을 20시간 이상 들이는 데, 영업이 끝나면 무조건 다 버리고 새로 육수를 낸단다. 

  자 이제 입가심은 했다. 드디어 냉면이 나왔다. 일단 냉면 육수를 들이켰다. 뒈박이다. 따뜻한 육수를 마시며 느낀 대장의 건강함이 차가운 냉면 육수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보통은 차가운 국물을 들이키며 몸보신을 느낄 수 있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차가운 음식이 보양식이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있던가? 그런데 평산면옥 물냉면은 차가운 보양국물이다. 적어도 내 대장은 그렇게 느꼈다.


여긴 정말 육수 맛이 장난 아니다. 가운데 사진은 곱배기로 시킨 것. 곱곱배기도 가능하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특히 육수든 냉면 국물이든 말이다. 함께 점심을 먹은 직장 동료가 음식을 많이 먹는 편이 아니다. 특히 국물을 다 마시는 경우는 결코 없다고 한다. 근데 그런 사람이 그릇 밑단을 다 비울 정도로 냉면 육수를 들이켰다. 정말 냉면을 다 먹고 난 뒤 물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남은 건 내가 빼버린 오이 정도. 아, 저는 오이를 먹지 않습니다. 

  면도 맛있다. 잘 만든 면이다. 실은 육수 하나 때문에 잘 만든 면이 묻히는 느낌이다. 작년 NBA 파이널로 비유하면, 금강불괴 르브론 때문에 굉장히 좋은 활약을 펼쳤음에도 보스턴 신인들이 파이널에 올라가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뭐, 르브론 비교과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골든 스테이트와 휴스턴으로 비교해도 무방).

   심지어 한 달 뒤, 무주영화제 참석 때문에 내려 온 회사 직원들과 찾았을 때는 ‘비빔냉면’이 더 이상 안 된단다. 양념장이 다 떨어졌다고. 비빔냉면을 먹기 위해서는 이제 내년 4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다.

   내년 4월이 되면, 꼭!! 비빔냉면을 먹어야지. 출장 스케줄 표를 보니 10월 이전에 대전 출장이 없다. 아쉽지만 올해는 두 번 밖에 먹지 못했다.      

   ps. 아이러니하게도 찾아가는 영화관 2년이 넘게 일하면서 대전하면 떠오르는 랜드마크인 ‘성심당’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런고로 내게 대전의 랜드마크는 평산면옥이다.      



  2. 진주_하연옥 본점_진주냉면

   탁한 갈색 국물 위 동동이 떠 있는 기름방울. ‘기름’을 어떻게 상상하느냐에 따라 식욕이 떨어질 수도,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자. 탁한 갈색 소고기와 해산물로 만든 육수 위 기름방울 속은 반투명이다. 기름방울 테두리는 소고기 기름으로 적셔져 옅은 주황색을 내뿜는다. 무엇이 떠오를까? 곰탕이나 설렁탕이 비슷한 색깔일 수도 있지만 아니다. 이건, 냉면이다. 

   이래저래 신문 기사를 찾아보니 남한에서 냉면으로 유명한 동네가 진주라고 한다. 진주냉면을 가장 간단하게 정의하면 고기 육수에 소고기 육전이 고명으로 올라간 냉면이다.

   대구 외곽에 있는 00 육전냉면에 간 적이 있다. 진주냉면을 먹기 이전까지만 해도 그 집이 진주냉면을 흉내 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육전이 고명으로 올라간 냉면이라 나름 유명했지만 다 먹지 못했다. 한 번 본 영화와 한 번 입에 가져다 댄 음식은 끝을 봐야 한다는 게 내 이념이기는 하지만 그 때는 저 말을 지키지 못했다. 육전 때문에 냉면 육수에 배긴 기름방울은 느끼했고, 면은 거칠었다. 마치 기름이 떡칠이 된 포마드 머리의 늙은 서양 남자가 욕을 하는 모습을 본 기분이었다. 

   하연옥 본점에 들어가 영접한 진주냉면의 첫 인상은 대구에 있는 육전냉면과 비슷한 외양 때문에 음식을 다 먹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촌스런 느끼함이 함께 느껴졌다. 그래도 <미워도 다시 한 번>에서 볼 법한 놋쇠 그릇과 정갈한 차림새가 맘에 들어 냉면을 비비고 육수를 들이켰다.


60년대 후반에 볼 법한 정갈한 놋쇠 그릇. 아, 참고로 저건 비빔이다. 저 분 비빔시키고 후회했다. 물냉면이 진짜다... 


   끈적끈적한 기름으로 빗어 넘긴 포마드 머릿결 뒤에 묻은 비듬이 듬성듬성 눈에 띄고, 말끝마다 Fu**을 외쳐대던, 대구에서 이미지를 구긴 육전 냉면은 사라졌다. 진주냉면을 먹자마자 내 눈에는 포마드 머리가 잘 어울리게 곱게 늙은 알렉 볼드윈이 떠올랐다. 이건, 진짜 배기다. 

   소고기와 해산물을 짜내어 나온 육수는 말끔했고, 육전에서 흘러나온 기름들은 말끔한 육수 위 감칠맛을 더해줬다. 마치 배추김치에 양념을 저민 뒤 마지막에 뽁 하고 떨어뜨리는 멸치 액젓처럼 말이다. 거기다 더해 국물 이곳저곳을 뗏목처럼 부유하는 새하얀 배는 청명감을 준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 세 가지에 정갈한 놋쇠그릇이 더해지니 시각, 후각, 촉각 모두가 만족한다. 

   아직 하연옥 진주냉면과 더불어 진주냉면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박군자 냉면은 가보지 못했다. 다음에 가면 두 가지 맛을 비교해봐야지.      


본격 식욕 증진을 위한 사진. 야밤에 쓰면서 배고프다... ㅠㅠ


  3. 인천_사곶냉면_백령도식 냉면

   올해(2018년)는 동쪽으로 울릉도(아쉽게도 기상 상황 때문에 독도에 들어가지 못했다), 남쪽으로 제주도까지 찾아가는 영화관이 돌아다녔다. 마지막 남은 건 서해. 연평도 종합복지관에서 연락이 오길 기다리고 있는 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으로 인천에 있는 백령도식 냉면인 사곶냉면을 소개한다. 

   백령도 냉면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인천에서 야외 행사를 하다 00 복지관장님과 이런저런 먹는 이야기를 하다, 복지관장님이 자신이 먹었던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백령도에서 먹은 백령도 냉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신기했다. 백령도와 냉면이라니. 이래저래 검색을 해보니 복지관장님이 말한 백령도 안 냉면집은 유명하진 않았고(이런 맛집이 진국이다), 인천에 사곶냉면이라는 가게에서 백령도식 냉면을 한다는 정보를 획득했다. 

   다음날 바로 가게로 찾아들어갔다.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구체적으로 적겠지만 맛도 아주 빼어날 정도는 아니다. 위에 언급한 평창, 속초, 대전, 진주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말이다. 근데 백령도식 냉면은 특이하다. 가장 특이한 점은 냉면에 까나리 액젓이다. 


까나리 액젓과 매뉴판을 찍은 줄 알았는데 깜빡함. 여튼 독특하다. 저건 완성 전 단계.


   까나리 액젓. 우리 엄마가 가장 좋아한 TV 프로그램인 1박 2일을 통해 알려진 음식. 까나리가 왜 들어가는지 당장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냉면집 이곳저곳에는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주는 안내 벽보가 있었다. 1. 양념 다대기를 넣는다, 2. 계란노른자를 육수에 으깬다, 3. 까나리 액젓으로 간을 본다, 4. 식초와 겨자를 넣는다. 


까나리 액젓을 넣고 난 다음 완성된 백령도 냉면. 나쁘지 않다, 괜찮다. 다른 곳에 비해 딸리지만...


  처음에 다른 양념 없이 냉면을 한 젓가락 먹었다. 아마도 돼지 사골을 우린 것으로 추정되는 육수와 메밀 함량이 높은지 점성이 있는 면이 느껴졌다. 실은 돼지 사골 특유의 고기 냄새가 조금 났다. 그래서 안내 벽보를 따라 가르쳐주는 데로 했다. 사골 냄새는 사라졌다. 돼지 사골 특유의 냄새와 더불어 달달한 식감도 까나리 액젓이 풍덩 들어가자 수그러들었다. 까나리 액젓이 들어가며 냉면이 완성됐다.      

  총평은 괜찮았다. 까나리 액젓이 들어가는 냉면을 소개하려 넣다보니, 다른 냉면집에 비해서는 능력치는 떨어지지만. 마치, 만화 <드래곤볼>의 사이어인들 속 크리링같은 존재라고 할까?      


  다시 한 번 강추하지만... 평창 유명식당 도토리 냉면(도토리 냉면!!!), 대전 평산면옥과 속초 함흥면옥, 진주 냉면은 정말 강추. 

  인천 백령도식 냉면은, 내가 백령도에서 진짜배기 백령도 냉면을 먹은 뒤 판단하고 싶다. 

  이상으로 다섯 군데의 냉면집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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