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연고지에 발령받은 자의 희로애락

by 모네



‘경남지사 근무를 명함.’

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왜 하필 나일까. 게다가 주말을 껴서 3일 만에 출근을 하라고 한다.


우리 경남지사가 어디에 있는 건지 급하게 찾기 시작한다. 창... 창원? 창원이 어디지. 지도를 연다. 부산 근처네. 대학교 때 창원에서 올라온 친구가 있었는데 참 멀리서 왔구나.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인사과장에게 문자를 보내서 담당자 연락처를 얻어야지. 연락처 목록에서 000 과장을 치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금방 답장이 온다.


무연고지라 죄송하다며 경남지사 담당자 연락처를 준다. 담당자 번호를 클릭해서 저장한다는 게 그만 전화를 눌러버렸다. 얼른 끄고 문자를 치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경남지사에 새로 부임하게 된 000이라고 합니다. 관사 사용을 할 수 있는지, 가능하면 주말에 이사를 하고 싶은데 가능한지 연락을...’

이라고 치는데 남성에게서 전화가 온다. 거세지 않은 사투리의 중저음. 다행히 여자 관사에 빈 방이 하나 있어서 사용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말을 들었다. 낡은 아파트이지만 회사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고 방 세 개에 이미 두 명의 직원이 입주한 상태였다. 거기라도 너무 감사하죠!!! 퇴근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자 이제 관사가 해결되었으니, 일요일에 내려갈 ktx 예매하자. 으악 일요일에 내려가는 자리가 13시 45 분거 이외에 모두 매진이다. 빨리해야 한다. 근데 창원역과 창원 중앙역 중에 어디를 해야 되는가. 얼굴은 모르지만 경남지사에 함께 발령받은, 창원 연고지인 동기에게 회사에서 어디가 가깝냐고 물었더니 창원 중앙역에서 택시 타면 금방이라고 했다. 그렇게 ktx 예매를 후다닥 하고 나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집에 와이파이가 고장 나서 얼마 남지 않은 데이터로 힘겹게.


제공되는 아파트의 방에는 침대 하나 달랑 있다고 하니 이불과 베개를 가져가야 한다. 이불을 넣으니 캐리어 한쪽 면이 꽉 찬다. 울고 싶다. 정장 한 벌과 잠옷, 속옷, 화장품, 세면도구, 충전기, 업무노트, 책 한 권만 겨우 싼 뒤 나머지는 엄마에게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여러가지들이 겨우 정리되니 갑작스런 변화와 처지에 원망하며 분해서 마구 울었다. 서울 수도권에 꼭 있어야 하는 사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한 인사배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나니 서러웠다. 그렇게 특정 대상 없이 처지에 분노하다 퇴사하지 않는 한 현실을 바꿀 수는 없고 이러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진정한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무연고지로 발령 나니 승진 점수라도 쌓아야지, 하며 자기 위안을 하기 시작한다(승진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창원 출신 동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거기 백화점은 있나요? 동기는 지방이라도 있을 건 다 있다고 했다. 네이버 지도를 켰다. 영화관을 검색했다. 와 네 곳이나 나와. 서점을 검색했다. 와, 교보문고다! 와, 롯데백화점에 롯데마트, 이마트 가까이 다 있다. 웬만한 수도권 작은 도시보다 훨씬 나은 수준을 넘어 서울 같은 느낌이다. 창원=잘 못 들어본 곳=지방=시골이라는 첫 이미지를 완벽히 부순 곳이다. 경남도청, 시청이 있고 그 근처에는 경찰청을 비롯하여 각종 공공기관의 경남지사가 쫘르륵 있었다. 그 중에 우리 회사도 하나이다. 언니는 영화관 하고 서점 있으면 된 거 아니야? 대학동기가 말했다. 응 그러네, 다행이다.


달리는 ktx 안에서

그렇게 수도권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오늘은 서울역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ktx에 올라탔다. ktx도 앱으로 예약하면 인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걸 처음 안 나는 검사하면 보여주려고 티켓 인쇄본을 주머니에서 꺼냈지만 아무도 검사하지 않았다. 천안아산역-대전-동대구-밀양을 거치는 동안 옆자리의 사람은 한 번 바뀌었고, 두 번째 사람은 해군 옷을 입은 앳된 남성으로 해군사관학교 학생인 듯싶었다. 예전에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한 친구가 진해에 학교가 있다고 한 게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창원 중앙역에서 해군 옷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햇살 가득한 창원의 첫인상

창원 중앙역에 도착하여 캐리어를 내렸다. 내리자마자 눈이 부셔 한쪽 눈을 찡끗 감았다. 햇살이 너무 따뜻해 옷을 벗었다. 여기 덥다. 엄마에게 도착 문자를 보내니 따뜻한 남쪽나라라 더운 것이라 했다. 캐리어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들어서자마자 엘리베이터 가득 여행자 냄새가 확 났다.


택시를 타러 가는데 택시 타는 줄만 100명이 넘어 보였다. 순서를 기다려서 줄줄이 오는 택시를 탔다. 택시들에 경남 번호판이 달려있었다. 저는 창원 처음 와요. 기사 아저씨에게 말했다. 촌사람이네. 아저씨가 말했다. 그리고 저 사람들 뭐하러 줄 서냐고 카카오 택시 부르지. 오 여기 카카오 택시 돼요?

도로를 달리며 본 창원은 강남 느낌 같기도 하고 분당 느낌 같기도 했다. 도청에서 시청 가는 그 원형 도로는 바르셀로나가 생각나기도 했다. 창원 엄청 좋네요. 아저씨는 계획도시라 좋은 거라며 여러 설명을 해주셨는데 사투리는 한 번에 완벽하게 알아듣기는 어려웠다. 여기 계속 있으면 사투리가 전염될까 싶었는데 나의 무미건조한 억양의 서울말은 너무나 강력해서 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저씨, 여기서 부산 가는 건 얼마 정도 해요? 아저씨는 45분 정도 걸리고 4천 원 정도 든다고 했다. 우와!! 그렇게 싸요? 저 부산 가서 밀면 먹을 거예요!라고 하니 또다시 어디 촌에서 왔냐고 촌사람이냐고 했다. 난 너무나 도시 여자인데 그 말을 들으니 재미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라서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는데 아저씨가 직접 나와 짐을 내려주셨다. 첫 창원 사람인데 이미지가 좋아야 한다며 고생하이소, 인사하였다.


허름한 아파트에 도착하여 약속한 장소에서 열쇠를 받아 방에 들어왔다. 열쇠를 한참 돌려도 문이 뻑뻑해서 문이 안 열렸다. 여러모로 에어비앤비 집에 들어온 것 같았다. 이제 또 시작이다.


분노하고 진정하고 정신 승리하고 휘몰아쳐 여기까지 왔다. 정신없지만 곧 적응해 나가리. 곧 가로수길이라는 데도 가보고 선배, 동기들과 같이 다니며 이 지역을 더 알아가겠지. 미술 원데이 클래스에도 관심 있고 체육활동, 혹은 독서모임도 관심 있다. 택시기사 아저씨와의 대화가 재밌었던 것을 보아 지역민들과 더 대화하고 호흡하고 싶다. 주말이면 마산의 예술촌에도 가보고 부산에 있는 친구도 만나러 가야지. 날 잡아 경남지역 동기들을 모아야지. 앞으로는 창원 라이프 스토리를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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