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말고 ‘예’

by 모네

일주일이 참으로 느리게 지나갔고 오늘은 주말 중반이 저물어가는 토요일 밤. 침대에 누워 어느새 사람 사는 방처럼 제법 갖추어진 방을 훑어보는 중이다.


첫날 도착해서는 방에 침대 하나 있는 곳에 캐리어에서 이불을 꺼내 씌워주고 베갯속을 사러 상남시장에 갔다. 사실 롯데마트나 이마트를 가려고 했는데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을 거라고 롯데백화점이나 시장을 가보라고 동기가 알려줬다.

내방 사진을 본 Pearl Necklace(어쩌다 우리 모임 이름. 설명하려면 길다) 카톡방 언니 오빠들은 한마음이 되어 무엇 무엇을 어떻게 빨리 사서 정리하라고 알려주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다며.

웬만한 것을 쿠팡으로 주문하는 우리 엄마는 침대 옆에 적당히 놓기 좋은, 조립이 필요하지 않은 수납장과 전신 거울, 조립이 간단한 행거를 주문해서 여기 주소로 보내주었고, 사랑하는 로켓 배송과 다이소 덕분에 조금은 정리가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우리 집은(내가 우리 집 앞에 00 있다고 표현하니 동료가 벌써 우리 집이 되었냐고 했다) 4층이어서 무거운 것을 들고 오기 난감하다. 캐리어 하나 끌고 온지라 엄마가 옷가지들과 여러 가지를 두 박스나 부쳐줬는데 일하는 중에 우체국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다. 보통 여기는 경비실에 맡기는데 짐이 무거운데 집에 무거운 거 들어줄 남성이 있냐고 물었다. 없는데요. 아저씨는 안됐다며 그럼 아저씨가 문 앞에 놔줄게요.라고 했고 퇴근 후 얼른 집에 와 보니 큰 박스 두 개가 쌓여있었다. 집안으로 들이는데 혼자 들고 나르기도 힘들다. 쿠팡 아저씨도 서랍장을 힘들게 날라 줘서 미안했는데, 이걸 4층까지 두 번 나른 아저씨를 생각하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우체국 아저씨와 나눈 따스함

Pearl Necklace 방에 올렸더니 아저씨가 좋아했겠다고 이거 캡처해서 여기저기 자랑할 거라고 했다. 창원에서 느낀 정, 정말 훈훈하다.


하루는 산책길에 나섰다. 지도에는 천이 나오는 것 같은데 산책할 수 있도록 내려가는 건 아니었다. 괜찮은 산책길을 못 발견하고 동네만 둘러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옆에 걷고 있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산책할 데는 어디예요? 할머니와 발을 맞춰 걸으면 물었다. 여 죄다 산책할 데제. 저 가면 죄 공원이라. 아 네 감사합니다. 근데 저기 보이는 자전거는 그냥 타는 거예요? 그랗제. 어떻게 타는 거지. 저서 신청하면 될 탄디. 뭐 여 첨왔에예? 네 어제 이사 왔어요. 여 사는가. 여가 회사 아파튼가봅네.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회사에 출근해서 인사를 하고 동료들과 첫 식사를 했다. 아침을 안 먹고 갔더니 꼬르륵거렸다. 빨리 뭐 빵이든 뭐든 사다 놓고 아침에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식사는 근처 백반집을 갔다. 고층 건물들 속에 회사원들이 가는 밥집 같은 곳으로 여의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각자 생선 한 마리에 계란 후라이가 나왔고, 중간에는 낙지젓갈, 무생채, 열무김치, 부추무침, 어묵볶음, 콩자반이 있었다. 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이었다. 경상도에서의 첫 식사로 괜찮았다. 부장님과 동기들과 같이 앉아서 먹는데 부장님께서 식사 중에 말을 별로 안 하셔서 말을 걸어야 하나, 그냥 조용히 먹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귀차니즘이 심한 나는 역시 조용히 먹는 편을 택했다.


두 번째 식사는 같은 부서 젊은 사람들과 무기계약직 분들이랑 같이 7명이서 먹었다. 보쌈정식이었는데 보쌈과 김치부터 해서 간장게장, 땅콩조림, 양배추쌈, 새우요리, 고구마튀김, 샐러드 등 각종 한상차림이 나왔는데 다 맛이 있었고, 너무 푸짐하게 나와 남긴 것이 아까웠다. 특히 나 빼고 다 경상도 출신이라 내 말씨가 도드라진 느낌이었다. 모두들 노래를 하는 것처럼 굵은 웨이브의 억양으로 말했다. 쾌활한 느낌이다. 어떻게 저렇게 글자마다 억양이 있지 신기하다.


나는 신기하거나 괜찮은 사투리가 있으면 기억해두고 적어두는 편인데,

시그럽다(맞춤법 검사를 누르니 시다라고 바뀐다) 뭔가 어감이 예뻐서 카페 이름으로 응용해도 이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특히 이 중에 예로 끝나는 말이 귀엽게 느껴졌다. 식당에 가거나 백화점에 가거서 직원인 어른들과 대화할 때 요 대신 예라고 일상적으로 나오는 게 신기하면서도 재밌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맞지예, 그라예, 아니라예, 알겠에예 등 어른들이 이 말을 쓸 때마다 귀엽다.


특히 대구에서 온 남자 동기는 괜찮습니다를 괘안심더라고 자주 말하는데 어떻게 괘안심더가 일상적으로 나오는지 내 생활권에서는 못 듣던 말이라 정말 새로운 언어권에 온 실감이 나고 새롭다. 괘안심더라니. 내 기준에서는 이상하고 유별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내 소리가 유별날 것이다. 대화중에 갑자기 이렇게 밥 먹는데 서울말을 듣다니. 자기들도 사투리 억양이 약해 서울말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내 말씨를 들으니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저래기는 정말 유추가 불가능했고 처음 들어봤다. 나에게 동기가 저래기 좀 드릴까예 라고 말했는데. 네? 저래기요? 알고 보니 고기에 싸 먹는 양파절임이었다. 저래기는 정말로 처음 듣는 말이고 유추가 불가능해서 신기해서 적어두었다.


-지 싶다는 전 직장에서 대구 출신 상사분이 자주 써서 기억하는데, 여기 사람들도 쓰는 것 같다. 나는 보통 00 하면 되는 것 같다. 00인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데 상사는 00 하면 되지 싶다. 00지 싶다.라고 해서 뇌리에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창원 가로수길

오늘은 교보문고에서 책을 두 권 사서 가로수길 카페에 가서 읽었다. 회사와 방에 와이파이가 안돼서 오랜만의 와이파이로 평소 못 본 것을 좀 보느라 책을 별로 못 읽었는데, 그래도 바람 쐬고 좋았다. 가로수길에 가는 길도 나무와 멀리 보이는 산과 하늘이 조화로웠다. 책 한 권은 어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터 한트케라는 처음 들어보는 독일 작가의 책이고 교보문고에 진열되어 있는 여러 책 중 <어느 작가의 오후>라는 책의 감성이 좋아 보여 샀다. 한 권은 다른 브런치 작가 분 글을 읽다가 읽고 싶었던 하루키 책을 샀다. 사실 아직도 읽지 않은 <노르웨이의 숲>을 사고 싶었지만 약간 두께감이 있어 가로수길까지 무거울 것 같았다.


가로수길에서 들어간 카페는 알고 보니 마카롱 맛집인 것 같다. 하얀 뚜껑으로 이루어진 마카롱으로 맛이 여러 종류 있었는데 마카롱만 사서 가는 사람이 많았다. 평소 마카롱을 2-3년에 한 번 먹는 수준이지만 왠지 먹어보고 싶어 하나 주문했다. 초코하임 맛이라고 쓰여있어서 골랐는데 정말 정말 맛있었다.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내 창원에 오면 꼭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다. 초코하임 속에 들어있는 맛을 마카롱에 잘 녹여 느낌 있게 만들었다. 이름도 초코하임이라니. 다음에는 죠리퐁 맛도 먹어보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비연고지에 발령받은 자의 희로애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