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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r 19. 2018

독특해도 괜찮아

영화 레이디 버드


차 안에서 경적 울리는 애랑 만나러 나갈 거니


파티에 같이 가기 위해 크리스틴을 데리러 온 남자애가 밖에서 빵빵 경적을 울리자 집 안에 있던 아빠가 차려입고 나갈 준비를 하던 크리스틴에게 한 말이었고, 영화를 본 뒤 가장 기억에 남았다.


딸을 아끼는 아빠의 마음이 느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빠는 딸의 결정을 존중해주었고 딸의 걱정과 고민을 함께 나누어준다. 사랑이 느껴졌다.



레이디 버드가 바라는 엄마의 모습은 우리 엄마였다


그에 반해 크리스틴 엄마의 태도는 비관적으로 느껴졌고 답답했다.


크리스틴은 뉴욕으로 대학교를 가고 싶어 하지만 엄마는 집에서 가깝고 싼 대학을 가라고 한다. 어차피 넌 그런데 합격도 못할 것이고, 버클리 나온 오빠도 취직이 안돼서 마트에서 일하는 데 좋은 대학을 나와서 뭐할 거냐며 시종일관 '니가?? 니 주제에??' 하는 태도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테러로 그곳이 위험하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남편이 실직했으니 돈 걱정이 되기도 하겠지만 좀 답답하다. 크리스틴은 장학금과 대출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곳에 가고 싶은데 엄마는 자꾸 딴지를 걸고 돈돈돈돈 한다. 결국 폭발하여 여태까지 키워준 돈이 얼마냐고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다 갚겠다고 큰 소리로 화를 내지만, 엄마는 평생 그럴 일 없을 거라 말한다.


영화를 보면서 크리스틴이 바라는 엄마의 모습에서 우리 엄마가 보였다.


우리 엄마가 영화를 보았더라면 애를 왜 저렇게 키우냐고 했을 것이다. 더 큰 물에서 놀도록 적극적으로 밀어주었을 것이고, 크리스틴의 아빠처럼 어떻게든 다시 재취업하고 대출을 받아서 딸이 가고 싶은 길에 도움이 되려 했을 것이다. 크리스틴이 뉴욕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이미 크리스틴을 키우며 면밀하게 파악한 성향, 재능을 바탕으로 갈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길을 제시해주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크리스틴 네 집은 그렇게까지 빈민이 아니다. 친구 집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집은 아니지만 적당한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엄마가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가 실직하셨지만 재취업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크리스틴이 부모에게 크게 손 벌리려는 캐릭터도 아니고 학자금 대출도 받으려 하고 아르바이트도 한다.   


 "어차피 이 가난한 형편과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넌 안돼" 라며 크리스틴의 꿈을 깎아내릴 정도로 크리스틴의 꿈이 터무니없는 것도, 비관적인 상황도 아니다.


생각해보니 자라면서 우리 엄마는 한 번도 선택을 강요해본 적도, 공부하라고 잔소리해본 적은 더더욱 없다. 청소년기에 화장, 파마, 염색을 하여도 전혀 못마땅해하지 않았다. 아이의 발전에 너무 돈돈돈돈 하지 말자는 철학으로 창의력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를 많이 가르치고 노출시켜주었다.


내가 가능한 어떤 선택지가 있고, 내가 잘할 수 있고 한번 도전해 볼 수 있는 건 무엇 무엇이 있는지를 제시해주며 그중 내가 결정한 것은 설사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티를 내거나 막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비용을 아끼고 생활력을 발휘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주었다. 그것이 어떤 큰 결과를 낳지 않았더라도, 후회하는 일이 되었더라도 비난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냥 예쁘다고 해 주면 안 돼?


옷가게에서 옷을 갈아입어보는 크리스틴에게 딴지를 거는 엄마에게 한 말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또 엄마가 생각났다.


항상 길거리에서 무슨 무슨 옷을 입은 아가씨가 옷을 참 잘 입은 것 같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니가 젤 잘 입는 거 같아."라고 끝맺었다. 그럼 나는 "그치 난 뭘 입어도 이쁘지?"라고 대답한다. 엄마의 그 말은 자신이 애들 옷을 제일 잘 입히는 엄마이다 라는 자화자찬의 표현이었어도 말이다.


영화 속 크리스틴의 엄마를 보면서 친구 엄마가 생각났다. 친구는 여자였는데, 사관학교나 경찰대가 학비가 무료이고 나와서도 경제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며 부모에 의해 계속 그 대학을 진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내몰렸다. 결국 친구는 3수 끝에 이들 중 한 곳에 들어갔지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1년 만에 그만두고 방황을 시작했다. 부모의 케어도 부족하였고 부모와의 가치관도 달라 인연을 끊고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부모의 교육 방식은 인구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크리스틴 엄마에게 희생정신을 강요할 수 없다. 다만 도망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우리 엄마식의 교육을 받고 성장했기 때문에 그에 영향받은 가치관으로 영화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크리스틴의 엄마 같은 엄마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숨 막힐 것 같다.


여고생의 귀여운 일탈

크리스틴은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엄마도, 친구도, 학교 선생님도 이상하다고 하면서도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 준다.레이디 버드로 출마도 하고 처음 만나는 이에게도 레이디 버드라고 소개한다.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고향도, 구질구질한 집도 차도 싫고 떠나고 싶다고 믿는 것 같다.


레이디 버드라는 어감이 예쁘게 들린다. 썼을 때 글씨도 예쁜 것 같다.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레이디 버드는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나오는 무지막지하게 사고 치는 미혼모에 비하면, 아니 그에 비하지 않더라도 생각보다 말썽꾸러기가 아니다. 제도권 내의 소소한 일탈과 장난을 보일 뿐이다.


레이디 버드는 성적도 괜찮고 외모도 불량스럽지 않다. 잘 준비해서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어 한다. 치마를 줄여 입지도 않고 옷을 야하게 입지도 않는다.


수녀인 선생님의 차에 "나는 예수님과 결혼했어요"라고 핑크색으로 꾸며 장난치고, 미혼모에게 자란 선생님이 설교를 늘어놓자 선생님의 엄마가 애를 낳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지루한 얘기를 들을 일은 없었겠네요 라며 비꼬는 정도이다.


레이디 버드를 보며 나의 고교시절 소소한 일탈들이 떠올랐다. 8교시를 빠지고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와 걸려 야자시간 내내 복도의 하얀 벽을 보고 종일 서 있는 벌을 받거나, 머리를 길러 손등을 단소로 맞았다. 학교에서 단체로 놀이동산에 갔을 때 선생님이 분명 저녁 먹기 전에 집에 돌아가라고 경고했음에도 폐장시간까지 놀다 들어간 것을 걸려 다음날 친구 한 명과 교무실에 끌려가 모범이 되어야 할 학생들이 왜 친구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냐고 크게 혼났다.  


교실 칠판에 "000 교무실로"라고 써 놓아 친구들이 몇 번이나 골탕을 먹어 이제 친구들은 칠판에 쓰여있는 000 교무실로는 믿지 않게 되었다.


한 번은 각자 문제를 푸는 수학시간이었다. 여자 수학 선생님이 다가와 내가 눈썹과 아이라인을 그린다고 지적했다. 물론 청소년기에는 화장을 안 해도 그 자체로 예쁘지만 그때는 그게 안 보인다. 그 선생님도 그런 마음이었겠지만 지적하는 태도와 뉘앙스는 지금 생각해도 전혀 걱정하거나 안타까운 마음이 아니었다. 게다가 다들 문제를 푸는 조용한 시간에 큰 소리로 지적했다. 이동식 수업이라 다른 반 애들도 있었다. 그 외에도 이 선생님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은 말과 행동을 자주 했고 기분이 나빴다.


"화장한다고 공부 못 하는 거 아니잖아요."

나는 정색하며 약간 반항기 있게 말했던 것 같다.

이러던 나에게 하루는 기회가 왔다. 우리는 수학이 이동식 수업으로 ABC 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꾸준히 공부를 잘하던 옆 반애가 실수로 한 번 수학을 못 봐서 B반으로 강등되었고, A반으로 옮기고 싶다는 데 혹시  B반으로 가고 싶은 학생이 있냐고 물었다. 그 여자 수학 선생님이 맡은 A반에 있었던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이 당황한 눈빛이었다. 내 주변에 앉은 아이들이 왜 굳이 낮은 반에 가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약간 크게
"B반 선생님이 훨씬 잘 가르치시잖아"라고 말했다. 그때의 나는 나름 복수라 생각했다. 사실 그 여자 선생님은 사립학교라 누가 꽂아준 것 아닌가가 의심될 정도로 심각하게 수학을 못 가르쳐 항상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복수의 기회를 잡게 되었다. 내가 칠판 닦는 그 주의 주번이었는데 나 대신 칠판을 닦아주겠다고 해준 구모군이 깜빡하고 수학 시간 전에 칠판을 닦아놓지 않은 것이다. 수학 선생님은 주번이 누구냐고 물었고 나인 것을 알자 B반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던 나를 불러오게 했다. 구모군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며 급하게 손들고 자기가 닦지 않았다고 했지만 선생님은 이때다 싶었던지 기본적인 것도 못하냐며 책임감이 없다며 A반 애들 앞에서 아주 호되게 혼냈다.

나는 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일은 가슴속에 새기고 후에 나에게 우호적인 선생님들과 개인적으로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그 선생님의 실력 없음과 이것이 우리 학생들의 발전에 저해될 것을 우리들의 여론과 함께 은근하고 은밀하게 전했다.




보는 재미


영화는 시각적으로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레이디 버드의 민트색 발톱과 연보라색 손톱 색깔은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인상 깊었던 두 색이기도 하다.
레이디 버드가 바른 다홍색 립스틱도 너무 예쁘다.

파티에서 입은 드레스들과 미국 청소년의 스타일은 촌스러운 매력이 있었다. 유럽 남자들에 비해 굉장히 촌스럽게 느껴졌던 미국에서 온 교환학생들의 패션도 떠올랐다. 얼굴은 잘 생겼는데 우악 너무 촌스러워!!! 한 적이 많았다.

레이디버드가 지나치는 샌프란시스코 작은 마을의 건물들과 분위기를 보는 재미도 있었고, 이 시골 소녀가 뉴욕에 도착해서 캐리어 두 개를 낑낑거리며 끄는 모습을 보며 유학시기 내 모습이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영화에 잠깐 나오는 남자 선생님은 너무 잘생겼다.


돈도 없고 행복하지도 않잖아요. 


행복이란 무엇일까,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가는 풀리지 않는 질문인  같다. 행복에 대한 기준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영화에서 돈이 있다고 반드시 행복한 삶은 아니라는 말에 레이디버드는 "그렇다고 아빠는 돈도 없고 행복하지도 않잖아요."라고 말한다.

친구가 얼마 전에 채팅방에 올린 
"행복을 돈으로  수는 없어요."
"그만큼 돈이 많아보지 않아서 그런  아닐까요?"
하는 짤이 생각났다.

 영화는  있는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니다라는 교훈을 주입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는  같다.

이와 함께 얼마  윤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은 대기업을 가고 싶어서 안달인  모르겠다며, 대기업을 위해 열몇 시간을 일해주느니 적은 시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좋다 라는 말을   떠오른다.


독특하면 좀 어때


레이디 버드라는 별명으로 살아도 독특하지 이상하지는 않게 느껴진다. 나중에 커서 이불킥을  수도 있겠지만.

독특하면서 멋짐과 독특하면서 이상함이 있다면 레이디 버드는 독특하면서 멋짐에 가깝게 느껴진다.

<지하 생활자의 수기>에서 
"2*2=5 2*2=4보다 멋지지 않은가"라며 도스토예프스키가 지하 생활자를 통해 제기한 것은  내용과 물음   내게 독특하면서도 멋짐으로 다가왔다.

 역시 독특하다. 직장 상사분이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다고  적이 있다. 몽상 속에 사는 사람 같기도 하다고 하셨다. 나는 흔히 독특하고 쉽게 파악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라고 한다. 남들이 쉽게   없는 말은 아무렇지 않게 툭툭 하면서도 어떤 말은 부끄러워한다. 독특한  자신이 특별한  같아 좋으면서도  튀고 싶지는 않다. 독특하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레이디 버드는 한 명 한 명 캐릭터가 입체적이다. 일상에 있음 직한 캐릭터로서 이를 분석하게 만든다기보다는 그 인물을 통해 일상의 누군가를 떠올리고 사건을 추억하게 만든다.


스토리도 깔끔하다. 사람마다 다양한 생각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왜 열광하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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