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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y 07. 2020

코로나는 당신의 마음속에 어떠한 흔적을 남겼나요

카뮈 <페스트>

아침밥을 먹으며 문득 본 식탁 위 꽃병에 꽂혀있는 색색의 카네이션이 향기롭다. 특히 짙은 자주색에서 향이 진하게 난다. 들숨으로 깊게 빨아들이는데 기분이 좋다.


모든 것을 잊을 수는 없으며, 적어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페스트는 흔적을 남길 거라고 생각한다.
-카뮈, <페스트> 문학동네


어제 읽은 오피니언 란에서 그러더라, 재난이 독서를 부른다고. 집-회사-산책 정도가 일상이 되어버린 나 역시 읽고 싶던 책을 몇 권 주문했다.

1. 균형 있는 시각을 갖는데 도움이 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2. 친한 언니가 예전에 추천해 준, 머리에 그려지는 묘사로 가득한 <설국>

3. 무라카미 하루키 글을 좋아해서 그가 좋아한 헤밍웨이 글을 읽고 싶어서 읽었는데, 그의 단편도 궁금해져서 <여자 없는 남자들>

4. 한국 소설을 거의 안 읽는데 요즘 젊은 작가들의 감성은 어떤지 궁금해서 산 <2020년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브런치 글보다 약간 더 다듬어진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다.

5. 소련이 붕괴하게 된 데 크게 공헌? 한,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고르바초프의 자서전 <선택>

6. 마지막으로 최근에 완독한 <페스트>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집었을까. 다른 사람은 어떤 문장에 공감을 하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재난상황에서 시민들이 읽기를 통해 불안을 극복하고 책을 통해 공감하며 희망을 복원할 에너지를 얻는다는 칼럼의 내용이 좋았다. 책을 한 권 읽고 나서 수준 높은 서평을 쓸 역량은 안돼서 아쉽지만 안타깝진 않다. 이 책을 읽은 전과 나는 다르다. 새로운 생각과 감성이 덧붙여진다. 나와 일상, 주위를 돌아보게 되고 새로운 생각과 영감을 받는다. 그 자체로 괜찮다.



‘인간의 온기로부터 차단된 채’ 도시가 폐쇄되어 유배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된 소설 페스트 속 주민들.

페스트 때문에 무역이 죽어버리고, 식량보급이 제한되고, 휘발유 배급제가 이루어지고, 가게들은 문을 닫는다. 상품은 매진되고 가게 앞에는 손님들의 긴 줄이 이어진다. 어제는 동료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관광업에 종사하는 지인이 계속 무급휴직 상태이며 코로나가 끝나도 구조조정이 될 걱정을 하고 있다며 안타깝다는 말을 하였다. 소설에서도 페스트 때문에 관광산업이 파탄 지경이었는데,라고 생각했다. 경제활동이 중단되고 실업자가 엄청나게 생긴다. 공공분야 일용직으로 사람이 몰린다. 코로나로 인한 요즘처럼.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준격리 상태가 되면 도시는 침묵에 빠진다. 소비는 위축되고 이에 따라 피해 보는 업군이 생긴다. 그 피해가 명백하게 예측되는 업종도, 겪다 보니 피해가 발생되는 업종도 있다. 실직하거나 폐업하여 가계가 위축된다. 우리 가정은 갑자기 실직하고 소상공인 대출 길도 지연되어 얼굴이 하얘진 채로 새벽 배송 일을 시작한 어느 가장에게 60만 원을 기부했고, 온 가족이 취약한 업종에서 일을 하기에 그 타격으로 일을 쉬고 있는 어느 가정에는 장도 봐주고 밥도 사주며 작게나마 돕고 있다.



페스트는 시민들의 감정에도 영향을 끼친다.

질병은 얼핏 보면 포위된 자로서 느끼는 연대의식을 시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전통적 군집 관계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저마다 고독에 잠기게 했다.

사람들은 페스트의 질서 속에 들어 가 있었다. 우리 도시에서는 이제 그 누구도 고양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단조로운 감정만 느꼈다. “이제 끝날 때도 됐는데”하고 시민들은 되뇌었다.

페스트가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나눌 힘을, 심지어 우정을 나눌 힘조차 앗아갔다.


페스트는 시민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고독하게 만들었다. 나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불신감을 가지고 이웃을 대하고, 죽음에 무감각하면서도 또 자신의 목숨, 나의 미래는 불안하게 만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행동반경에 제한이 생기니 갑갑하고 단조롭다. 다들 나처럼 집에 틀어박혀 답답해 발악하다가 산책을 나왔는지 산책로는 봄을 즐기는 시민들로 빼곡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지된 긴 연휴기간 동안 곳곳에는 조금씩 활기가 생겼다. 나의 경우 코로나로 인한 무기력증, 우울증, 두려움은 거의 없는 편이다. 운전면허 도로주행을 다시 시작해야 되는데 운전이 무서워 가능한 미루고 싶던 차라 코로나가 고맙기도 하다.


집의 문턱에서 기울어가는 햇빛을 받으며 온 힘을 다해 서로를 껴안은 채 황홀하게 마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바라던 것을 얻었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속한 것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리외는 적어도 가끔은 인간만으로, 보잘것없지만 엄청난 인간의 사랑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기쁨의 보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페스트 가운데서도 사랑, 우정, 인간애는 빛난다. 코로나가 퍼지는 와중에도 마찬가지다. 니가 너무 좋아. 니가 나를 안 좋아해도 좋고, 좋아해 줘도 좋고, 튕겨도 좋고, 니가 나는 결혼 상대자로는 아니라고 고문해도 좋고, 너의 외양, 말과 생각, 행동 모두 너무 아름다워서 좋아. 너를 사랑하다니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야. 나는 평생 로또를 못 맞을 것 같아. 이상형을 만났어. 너를 왜 사랑하는지 너는 이해를 못할지라도 나는 좋아. 너의 우울증 치료사가 될 거야. 너를 평생 돌봐주고 싶고 사랑하고 싶어. 너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거야. 그러니까 죽지만 마, 라고 어떤 남자가 내게 사랑을 고백했다. 누군가를 깊이 있게 사랑하고 있는 그가 문득 부러웠다. 그래서 부럽다고 말했다. “나 부럽지? 나도 내가 너무 부러워 헤헤.” 사랑에 빠진 남자가 말했다.  


모두에게 힘든 시기이지만 그 남자는 자기를 이기적이라 해도 좋다고 말했다. 나를 알게 되어, 나를 사랑하고 있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어 자기에게는 평생에 가장 행복한 해로 기억될 거라고. 현재는 행복하며, 미래는 기대로 가득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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