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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r 27. 2020

어장관리녀 같지만 관리는 안 해

헤밍웨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외교관 뽑을 때 어장관리녀 전형이 있어야 돼. 미국, 너랑 지금 스파게티는 먹고 있지만은 난 언제든 딴 남자랑도 먹을 수 있어. 중국, 너랑 자주 연락하고 밤에 통화도 하지만 우리는 사귀는 사이는 아니야. 이렇게 말해도 그쪽이 애가 타서 몸이 달게 만들어야 된다 말이지. 이게 외교 아니야?


편하게 말하는 자리에서 어떤 분이 위와 같이 말했다. 은근히 공감이 가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호감을 사려는 노력 없이 상대를 그저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을 뿜어내는 사람이 외교관이라면 좋을 것 같다. 강대국에 둘러 싸여 상대적 약소국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지정학적 환경에 있는 한국. 헤밍웨이 소설에 등장하는 브렛이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브렛이 한국이라면 참 재밌고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읽으면서 만난 브렛은 요즘 말로 치면 꾸안꾸인데 그 공간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사람이다. 보란 듯 있는 멋 없는 멋 다 부리고 나온 사람들 틈 속에서 털털하고 무심하게 서 있는데 금세 자신에게 한눈에 반한 사람들에 둘러 싸이는 장면을 그리면 된다. 브렛이 내뿜는 아름다움에 홀린 남자들은 하나같이 브렛에게는 뭔가가 있다, 색다르고 대단한 무언가, 그리고 우아함과 기품이 넘쳐흐른다고 말한다.


브렛은 말괄량이 같다. 주위에 남자가 항상 많은데 인간 자체(아니면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상대)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넘치는지 한 명 한 명에게 눈웃음과 은근한 가능성을 심어준다. 이것은 의도한 것이기보다는 자기도 모르게 감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브렛은 현재 이혼을 했는데 이 글의 화자인 제이크(전 남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결혼은 딱히 매력도 못 느끼는 것 같은 마이크와 하려고 한다.


“난 당신(제이크) 속이고 온갖 사람이랑 바람을 피우게 될 거야. 당신은 견디지 못할 테고.”

“내가 지옥에 보낸 남자들을 생각하면, 그 대가를 지금 다 치르고 있는 것 같아.”

“난 그(마이크)와 결혼할 거야. 일주일 동안 그 사람 생각조차 안 해놓고.”


그러면서 제이크, 마이크와 스페인 여행을 간다. 여기에는 브렛에게 한눈에 반한 로버트 콘도 함께 한다. 콘은 브렛이 자기에게 마음이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서른네 살의 브렛은 함께 온 남자들 모두를 뒤로하고 여행 중 발견한 열몇 살 어린 투우사에 사랑에 빠져 결혼하기로 한 마이크를 버린다. 이렇게 브렛이 제 멋대로 굴어도, 자기가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어도, 브렛을 둘러싼 남자들은 부르면 항상 달려오는 순애보다.


“그 작자는 브렛을 키르케라고 불러. 남자들을 돼지로 만든다고 주장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예술가들이 카페와 바에서 모여 이야기하고 사교활동을 하는 장면이 잘 그려져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나오는 헤밍웨이를 보고 그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어 시작한 책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진짜 우디 앨런이 이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영화에 반영한 것인지, 브렛을 상상하자면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가 연기한 아드리아나 캐릭터가 생각난다. 또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의 외모와 눈빛, 분위기 그 자체도 브렛과 잘 어울린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우디앨런의 새로운 영화가 기대되어 몇달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


적극적인 유혹이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도 않을 텐데 브렛이 2020년 지금 여기에 있다면 참 많은 소문에 휩싸였겠다. 브렛을 욕하며 도덕적 우위에 선 양 상상력 없는 사람들의 밥상 위 가십거리라 될 것이다. 그래도 브렛은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순간을 즐길 뿐.


나는 브렛과 같은 사람들이 사랑스럽다.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마비시켜 황홀하게 만든다. 재미없고 단조로운 세상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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