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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r 22. 2018

프라하의 봄


프라하는 내게 특별한 곳이다.


프라하는 여행으로는 네다섯 번, 볼 일 때문에 간 것까지는 한 열 번 정도 되는 것 같다.


덕분에 나는 프라하에  때마다 크게 숨을   내쉬며 고향에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이미 길을  알고 있어 지도 없이 길을 다니니 안전함을 느낀다. 여유 있게 나에게 "Ahoj 아호이" 하는 것도 받아준다.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려고 버스나 트램을 타면 나오는 방송의 억양에 "그래 이거지!" 한다.  유명한 까를교는  분만에  지나간다. 다른 이들에게는 관광지겠지만 나에게는 그냥 빨리 걸어서 지나가야 되는 다리에 불과했다.


드라마에서, 예능에서 프라하가 나올 때면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또, 시간이 지나 나는 다른 곳에 있어도 그곳은 그대로구나, 내가 죽어도 그곳은 영원하겠지라는 이상한 생각의 늪으로 또 빠져든다.


오늘 오랜만에 프라하 사진을 꺼내보았다.  일이 계속 쌓여서 숨이 막혔고, 두세 시간 안 움직이고 바짝 집중해서 일 하나를 끝낸 뒤 부활절 관련해서 무언가 스쳐지난 글에 부활절 기간에 갔던 프라하가 떠올랐다.


까를교는 사색하는 곳이 아니다. 사진찍는 곳이다
관광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것보다 훨씬 붐빈다
프라하에 핀 벚꽃

부활절 기간이 한창이던 4월 프라하를 갔다. 맞춰서 간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알게 된 용인외대 여학생이 프라하에서 어학연수 중이라고 해서 그를 만나러 하루 놀러 갔었다. 그 여학생은 나와 동갑이었다. 우리는 말을 편하게 했지만 묘하게 불편한 사이였다. 그쪽에서 나를 더 어렵고 불편하게 느끼는 것 같아 나도 조심스러웠다.


그는 프라하 곳곳을 안내했다. 자기가 가고 싶었지만 못 가고 있었던 곳도 같이 갔다. 프라하는 겨울에 한 번 와본 적이 있어서 따뜻한 프라하는 처음이었다.

유명한 구 시가지에는 부활절로 축제가 한창이었다. 벚꽃도 폈고, 빨간 가디건 하나에 짧은 치마를 입고 봄을 즐기며 걷기 좋았다.

그는 Mucha Museum에도 데려갔다. 체코의 유명한 화가라고 했다. 어디서 본 듯한 그림이 많아 아 이 사람이구나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류의 그림은 아니었다. 국제학생증이 있어 할인을 받아서 좋았다.

Hello,Easter!
부활절을 기념해서 상점이 열렸다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이 많았다

부활절 기간에 동유럽 국가 사람들은 계란 두 개를 부딪혀서 먼저 깨지는 사람이 지는 게임을 한다.

행사가 있어 다양한 차가 달리는 것을 보았다.
아기자기 귀엽
봄볕의 프라하





한 번은 6월쯤에 중국인 언니와 영문학을 공부 중인 체코인과 프라하에서 만났다. 중국인 언니는 베이징에서 대학원을 다니다가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1년 왔고, 중동을 공부하고 있었다. 지금도 베이징에서 일하면서 이집트 정치에 관한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유럽에는 중동과 테러리즘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고 수업도 다양한데 한국에는 주로 미국, 중국 정치와 간간히 유럽 정치 관련 수업밖에 없는 것 같아 아쉽다. 한국에도 중동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같이 여행한 체코인인 바보라를 알게 된 것도 이 언니를 통해서이다. 바보라는 중국어에도 관심이 많아 중국으로 썸머스쿨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이후에도 바보라는 중국어를 계속 공부하였고 나름 3년 이상 중국어를 배웠지만 필요성을 못 느껴 방치 해 퇴화된 나는 바보라의 중국어를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바보라는 중국어를 잘한다. 지금은 남자 친구와 함께 중국 각지를 여행하나 보다.

바보라는 가끔 심각한 우울에 빠져있는 서울의 나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쓰곤한다.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말로라도 고민이 있다면 자기에게 털어놓으라고 한다. 고맙다.


이들과 프라하를 하루 동안 여행할 때는 시내 중심가에서 아주 조금 벗어나 공원을 찾았다. 중국인 언니가 가고 싶다고 한 곳이었다. 녹음이 좋았다. 사람도 적고 여유로웠다. 우리는 사진도 찍고 휴식을 취했다.

춤추는 건물은 유명하지만 별건 없다
바츨라프 광장

바츨라프 광장 근처 벤치에 앉아 쉬면서 지나가는 사람의 패션을 구경하였다. 너무 재미있었다.


엉덩이를 약간 덮을 듯한 길이의 하얀색에, 검은 줄이 가슴부터 시작하는 긴 티에 레깅스만 입고 가죽 가방에 갈색 단화를 매치한 여자는 짧은 금발을 묶고 있었는데 멋스러웠다.

또 한 여자는 커리어 우먼처럼 검은 셔츠에 베이지색 무릎까지 오는 펜슬 스커트를 입고 밤색 웨이브 진 머리를 휘날렸고 십 센티는 넘어 보이는 인디핑크색 구두가 인상적이었다.

 

몸이 좋은 남자 무리가 지나가기도 했는데 반팔 반바지에 쪼리를 신고 파란색 모자를 뒤로 눌렀었을 뿐인데도 멋이 있었다.

 

어떤 한 40대 중반쯤 보이는 빨간 숏커트의 중년의 여자는 몸에 적당히 감기는 블랙 미니드레스를 입고 멀리서도 보이는 금색 팔찌가 포인트가 되는 것 같았으며 스타킹은 약간 살이 비치는 검은색으로 덜 답답해 보였다. 선글라스도, 신발도 검은색이었는데 머리가 빨개서인지 장례식 룩처럼 보이지 않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 중 한 명은 발목까지 오는 적당히 여유 있는 검은색 슬랙스를 입고 위에는 검은 나시 위에 시원한 소재의 흰색 니트가 어깨에 반쯤 흘러내린 채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던 여자였다. 편하면서도 스타일리쉬해 보였다.

다른 한 여자는 바퀴가 얇고 큰 자전거를 끌고 있었는데, 약간 밝은 갈색의 머리를 땋아서 묶었고, 흰색 끈나시에 무릎까지 오는 퍼지는 형태의 하늘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목에는 청록색과 자두색으로 이루어진 무거워 보이지만 포인트가 되어주는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 모여있었고 짙은 갈색 가방을 자전거 손잡이에 메고 걷고 있었다. 발목까지 오는 흰색 샌들보다 약간 높은 길이의 검은색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따라 하고 싶진 않지만 발랄해 보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패션을 구경했다.


이 근처는 간단히 쇼핑하기가 좋다. H&M 같은 저가 브랜드들이 많다. Newyorker도 있고 Promod도 있다. 프로모드는 여성스러운 옷과 소품이 많아서 이곳에서 제일 많이 산 것 같다. 한국에 와서 입어도 소화할 만한 옷이 많다. 세일할 때 많이 샀다.




프라하의 길거리 상점은 사고 싶은 것들로 가득하다. 유로존이 아니어서 유럽치고 가격도 괜찮다.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목걸이, 나도 하나 만들었다.
사고싶은 그림들이 가득했다.


프라하를 제일 처음 가본 건 겨울이었다. 돌바닥이며 빨간 지붕이며, 앤틱한 골목골목이며 그 첫인상을 잊을 수 없다. 구 시가지로 향하는 길에 서서히 드러나는 구 시가지의 모습! 관광엽서나 사진에서 자주 보는 그 교회와 건축물들 속에 둘러싸여 내가 진짜 여길 와 보게 되다니! 하였다.


처음 가보게 된 프라하에서는 그룹 투어를 했다.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걷다가 자유시간에는 그룹별로 시간을 보냈다. 물론 가이드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도 지금도 그냥 그 장면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게 더 좋다. 작품을 볼 때도 그 작품의 아름다움 자체에 빠지는 게 행복하지 작가의 연원부터 배경까지 구구절절 듣고 암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가끔 드라마에서 청담동 아줌마들이 미술관에 몰려가 야수파가 어쩌고 포스트모던이 어쩌고 상식만 주르륵 늘어놓으며 누가 더 많은 미술사를 알고 있는지가 자기네들 사이에서 엄청난 교양의 척도가 되는 장면을 떠올리면 정말 한심하고 무식해 보인다. 문학적인 표현으로 구역질난다.

 우리 그룹에는 커피광인 미국 친구가 있어 스타벅스에서 추위를 녹이다가 유대인 지구를 둘러보기로 했다. 시나노그에서는 사진 찍는 것이 금지됐었던 것 같다. 사진이 한 장도 없다.

나는 여행지에서 스타벅스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고 스타벅스 커피에 열광하지도 않는다. 타지에서까지 스타벅스의 뻔한 메뉴를 마시고 싶지 않고 현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의 카페에 가서 그 지역만의 메뉴나 맛을 느끼고 싶다.


친구들과 돌바닥에서

학교에서 단체로 관광 온 우리는 미국에서 온 교환학생들이 많았고, 루마니아, 헝가리, 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 왔다. 나는 유일한 한국인이자 아시아인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성 비투스 대성당을 구경하고 근위병의 교대를 기다리느라 사람이 밀집했다. 나도 까치발을 들며 언제 시작하나 목을 빼고 보고 있는데, 옆에서 한국인 무리의 4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들이 나를 계속 쳐다보다 결국 말을 걸었다. 몇 달만에 한국어를 입 밖에 내보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서양인 무리 속에 있는 내가 신기했나 보다. 학생인 것 같은 데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학생이라고 공부하러 왔다고 하니 학문이 아닌 예술계로 생각했다고 했다. 나를 너무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유럽으로 유학 온 학생들 중에 음악이나 작곡을 공부하러 온 사람들이 많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한국에서 학업을 그만두고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하던 분야와 전혀 무관한 음악을 배우러 유학 간 사람들이 있다.  


그 아저씨들은 체코의 작은 도시에서 주재원으로 있다고 했다. 내가 한국사람을 만난 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했더니 측은해하면서 신라면이 하나 있다고 주었다. 그러면서 만난 것도 인연이니 사진을 한 장 같이 찍자고 했다. 아저씨들과 사진을 한 장 찍어 드렸다.

 

모자쓴 가이드
아름다웠던 골목골목





혼자서 다른 일 때문에 프라하에 갔을 때는 일 처리 생각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서 아름다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스마트폰 지도가 없어 주소와 지도를 들고 물어물어 찾아가야 했고, 간단한 길도 많이 걷게 되어 식은땀을 잔뜩 흘렸다. 사진 찍을 여유는 더더욱 없었기에 사진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래도 발걸음 중 만나게 되는 처음 보는 장소와 아름다운 골목 사진이 남아있었다. 볼일을 다 보고 땀을 식히고 여유가 생겼었나 보다.


높은 지대의 프라하성에서 걸어서 내려오는 코스에는 정말 아기자기한 골목이 많이 나온다. 갈 때마다 새로운 예쁜 장소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스톡홀름 감라스탄이 떠오르는 골목의 사진
노란색의 건물이 예쁘다


그러나 나는 프라하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다. 예쁘고 아기자기하긴 하지만 관광도시화되어 있어 지나치게 상업화된 관광지 같아서 별로다. 이미 관광객이 너무 많아 진짜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기 쉬운 곳이 아니다.

 

체코인의 투박함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구소련 지배로 공산주의를 겪은 부모세대로부터 영향을 받은 내 또래의 자녀세대에게서 거리감과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들은 부끄러움이 많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다. 물론 사람마다 크게 다르긴 할 것이다. 이는 체코인과 폴란드인 같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으로 너무 미묘해서 설명이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자유를 누렸던 다른 유럽인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다른 유럽 친구들도 동유럽 사람들을 묘사할 때 쓰는 말에 공감한 적이 많다(나는 설명을 시원하게 못하는 편이다)


흠 이것으로 어떤 감정인지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폴란드 친구의 말로는 공산주의 시기 옆 집의 수상한 행동도 보고 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이웃도 믿을 수 없었고 학급 내 친구들에게도 함부로 얘기를 털어놓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가까운 이웃도 옆 짝꿍도 믿을 수 없다니. 이것이 체화되면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허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낯선 이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경계 어린 눈빛과 여유 없는 표정은 외지인으로서, 관광객으로서 다른 유럽지역을 여행해봤을 때 마주한 유럽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이들 중에서도 외국 문화를 자주 접하고 외국에서 살아 본 사람들은 좀 괜찮다. 그렇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전형적인 체코인들은 자주 만나 시간을 보내 경계가 누그러지고 친해지더라도 무언가 영혼의 친밀함은 느끼기가 정말 정말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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