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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Apr 26. 2018

다사다난한 블라디보스톡 여행의 시작

유령 숙소라니.

블라디보스톡 원웨이.

영화 베를린에서 하정우가 마지막 장면에서 외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톡 One way!"의 그 블라디보스톡을 가게 되었다.


러시아에 가보고 싶었으나 모스크바나 뻬쩨르부르크는 너무 멀고 긴 휴가를 낼 수 없던 차에 2시간에 닿는 유럽, 북한 위에 있는 미지의 곳, 아시아 지역에 사는 서양인들에 대한 환상으로 다가온 블라디보스톡에 갔다. 러시아 항공기로 가면 북한 상공을 지나 더 빨리 도착한다는 것과 루스키 섬 근방에 북한 섬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는 것은 말로만 들어도 신기한 일이다.


일의 특성상 휴가를 아무 때나 낼 수 없는 나는 20만 원대에도 다녀오는 블라디보스톡을 내 스케줄에 꾸역꾸역 맞추어 7월 말 여름 성수기 한가운데에서 80만 원대에 다녀왔지만 충분히 그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친구는 자유롭게 휴가를 낼 수 있는 상황이지만 고맙게도 내 스케줄에 맞춰 같이 다녀왔다.


나는 대학교 때 제2외국어가 러시아어여서(대학 졸업하고 거의 까먹었지만, 가기 전에 급하게 복습을 하였다) 간단한 회화나 생각이 안 나면 미리 찾아보고 외웠다가 대화가 가능했고, 친구도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가 러시아어여서 러시아어 알파벳은 당연히 읽을 수 있고, 간단한 문장이나 단어도 들으면 아는 정도였다. 우리는 여행을 적극적으로 미리 준비하는 타입은 아니어서 간단한 정보, 숙소 예약만 하고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로 해결해야 하는 여러 상황에 봉착하였는데, 비행기에서 쏟아져 내린 한국인들은 어떻게 자유여행을 했나 싶었다. 블라디보스톡 여행이 붐이라 블로그에 자세한 정보가 있고, 구글 지도를 잘 활용하면 여행이 쉬울 것도 같지만 간판도 다 러시아어이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으면 잘 알기 어려운 데다 택시 앱을 이용해서 택시를 불러도 택시 기사는 러시아어만 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을 여행하는 것을 싫어하거나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자유 여행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곳이다.



유령 숙소 덕에 만난 사람들


우리는 부킹 닷컴에서 적절한 가격의 한 숙소를 예약했다. 버스를 타고 근처에 내려 걷는데, 이상하게도 너무 많이 걷고 자갈이 가득한 산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무거운 캐리어를 이끌고 산 중턱에 가서 해당 주소를 찾아봤지만 그 이름의 숙소는 없었고 일반 가정집만 간간히 있었다. 여름이었지만 선선했던 날씨였음에도 땀을 흘리며 그 주소의 집에 초인종을 눌러보았다.


띵동.

"Здравствуйте(안녕하세요), 여기 00 아닌가요? 주소에서 계속 여기라고 말하는데(영어)."

귀여워 보이는 10대 후반~20대 초반 소년들이 갑작스러운 동양 여자들의 방문에 신기하고 수줍어하며 내가 보여주는 핸드폰 속 러시아어 주소를 봐주었다. 그들은 영어를 쓰는 게 어색하다는 듯이 그러나 영어로 표현하고 싶어 하며


"아, 이 주소는 저기 아래인데. 돌아서 내려가세요."

"아 감사합니다. Bye"

"Bye Bye" "Bye Bye!!"

그 주소로 갔는데도 없던데 휴. 원하는 답변을 듣지는 못하였지만 소년들이 너도나도 바이 바이를 한 번 해보려는 것은 귀여웠다.

숙소를 못 찾는 우리를 도와준 군인이라는 러시아인

소년들이 가리킨 곳으로 또 캐리어를 끌고 내려갔다. 비탈길이었다. 그곳에 가니 20대 중 후반의 한 남성이 있어 그에게 물어보았다. 예약한 호텔이 없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워 빨리 숙소를 찾아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핸드폰을 보여주고 이 호텔을 아느냐고 물었지만 이 호텔은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없어진 유령 호텔이었지만 버젓이 예약 사이트에 올랐던 것이다.


그 남자에게 이 근처에도 숙소가 없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 집 옆으로 가서 문을 두들겼다. 살집이 있지만 뚱뚱하지는 않은, 머리는 집게 같은 것으로 틀어 올린 금발머리의 속눈썹이 풍성한 아주머니가 나왔다. 남자를 통해서 오늘 머무를 숙소가 있는지 물어봐달라고 했다. 남자와 영어가 잘 통하길래 물었더니 뉴질랜드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남자는 숙소 아주머니와 계속 러시아어로 길게 얘기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이런 일이 없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러시아인들이 눈앞에서 실제로 저렇게 러시아어로 얘기하는 것을 보니 흥미로웠다.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이러한 순간은 앞으로 자주 나온다). 그 숙소 아줌마는 아마 방금 전 방이 마지막으로 나갔다고 한 것 같았다.


허망한 우리는 급한 대로 숙소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 우리가 가진 액수에 적절한 곳을 30분 넘게 찾았고, 위치와 가격이 괜찮았던 아파트 한 곳을 예약하였다. 이제 그곳까지 가는 것이 문제였다. 이 돌길을 다시 내려가야 하는가.

나는 그 도움을 주었던 남자가 들어간 집을 다시 두들겨 이 주소로 택시를 불러줄 수 있냐고 부탁하였다.


한 숨 돌렸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비로소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에게 페이스톡을 걸어 러시아에서 닥친 첫 고난을 전했더니 뒤에 보이는 항구 배경이 부산이나 포항 같다고 한국 아니냐고 했다. 실제로 여행 내내 우리나라와 비슷한 곳에 있어서 그런지 자연환경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멀리 차와 함께 여성이 비탈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멀리서 그 여성이 러시아어로,

"00 호텔 어디 있는지 알아요?"라고 물었고

나는 멀리서 우리가 예약한 그 호텔을 묻는 것인 줄 알고, "호텔 없어요. 호텔 없어요!"라고 계속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또 그 옆의 차는 우리가 예약한 택시용 자가용인 줄 알고

"TAXI?"라고 물었다.

계속 택시냐고 반복한 내가 답답했는지 그 여성은

"택시가 아니라 우리 차야!!"라고 짜증을 냈다.


그 차에서 그 여성의 일행인 남성이 내렸다. 난 왜 그 차가 택시인 줄 꽂혔는지 모르겠다. 아마 택시가 올 때기도 했고 택시이기를 바랬나보다. 친구는 그 장면이 너무 웃겼다고 했다. 지금 쓰면서도 웃기다.

그 러시아인 부부? 는 그 옆집 아줌마 숙소의 마지막 손님이었던 것 같다.



아파트 계단. 바랜 장미 색깔이 느낌있었다.
빈티지한 느낌
발코니
숙소 바로 앞 느낌있던 장소
숙소 주변의 공원

그렇게 택시에서 내린 우리는 방만 보고 새로 예약한 아파트에 도착했다. 호텔이 아니었기에 어떻게 들어가라는 건지 건물을 요리보고 저리보고 돌아도 예약한 시간에 도착했는 데 우리를 안내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예약 확인 메일에 있던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내 보기로 했다. 아이메시지가 갔다. 떠듬떠듬 러시아어를 떠올리며 문자를 보냈다.


-Мы заказали вашей квартирой и мы сейчас перед здесь ('우리는 예약한 사람이고 지금 밑에 도착했다'를 의도했다)

그랬더니,

-Я еду к вам. Подождите немного. 10 минут(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10분 정도요)

라고 답장이 왔다. 오!! 내 말이 통하다니


그러더니 한 4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작은 차를 타고 왔다. 여성 분이 내려서 방을 안내해 주었다.

무자비하게도 그분은 영어를 못 알아 들었다. 그분의 러시아어 폭격 사이에서 그래도 핵심 내용은 알아들어 다행이었다.

이들은 바닷가에서 수영하고 있다가 우리한테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것이라 했다. 숙소비와 보증금을 내고 방과 수건, 이불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아줌마는 같이 수영하러 갈려면 같이 가도 된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못 먹고 돌아다녀 너무 배가 고팠던 우리는 숙소 근처에 추천하는 음식점이 있냐고 물었다. 아줌마는 뭐라 뭐라 장황하게 말씀하셨지만 널린 게 식당이니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으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대로변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숙소는 실제로 보니 허름했으나 갖출 것은 다 갖추었고 나름 발코니도 있었다. 한여름인데 선풍기가 없던 것이 단점이었으나 날씨가 선선해서 다행이었고, 모기도 없었다. 실제 사람들이 사는 곳에 살아보는 것 같아서 좋았고, 허름하지만 빈티지한 느낌도 들고 현장르포의 한 장면 같기도 해서 느낌 있었다.


새로 예약한 곳에서 짐을 놓고 숨을 고르며 시계를 보니 8시쯤이었다. 여름이라 밖은 아직 5-6시 마냥 밝았다. 첫날의 일은 '이런 게 자유 여행의 묘미 아니겠어?'라고 한 줄로 정리되기에는 겪고 싶지 않은 고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북쪽의 신비로운 러시아 땅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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