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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Feb 27. 2018

안녕? 부다페스트


Hey Sugar,
우리 금요일에 부다페스트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젬마, 레이레, 알리샤, 지네브라랑 가기로 했어. 이거 보는 대로 연락 줘!


클라라에게 페이스북 메세지가 왔다.2박 3일 부다페스트 여행을 같이 가자는 것이다.  같이 갈 거면 싸고 괜찮은 아파트를 예약하려고 한다고 했다.지네브라 하고는 저번에 클라라 공연에서 한 번 보고 인사를 나눈 적이 있지만 나머지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기에 살짝 망설였지만 나도 부다페스트에 언젠가는 꼭 가보려 했기에 간다고 했다.


클라라는 Sardinia출신의 이탈리아인이다. 외교사에서 자주 등장하던 격동의 그 사르데냐에서 온 친구답게 이탈리안으로서의 정체성만큼이나 사르데냐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집에는 클라라가 준 사르데냐 섬 모양의 작은 자석이 냉장고에 붙어있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클라라는 볼로냐 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었다. 다른 이탈리아인들과 달리 이탈리아 억양이 강하지 않아서 소통이 잘 되었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영어뿐 아니라 러시아어도 했다. 노래를 잘해서 이탈리아에서 싱어로서 밴드 음반을 냈고, 클라라가 재즈 공연을 하는 것을 몇 번 가서 보았다.


클라라를 비롯한 남유럽 사람들은 비교적 콧대 높다고 느껴지는 서유럽이나 미국 사람보다는 정이 훨씬 많았다. 클라라는 나보다 네다섯 살 정도 많은 언니였다. 클라라는 연령, 성별, 국적을 뛰어넘어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다. 대학원 논문 때문에 항상 바빴지만 놀 때는 신나게 놀았고 성격이 좋아 친구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개념 없고 몰지각한 유형의 유럽 여자애들하고는 선을 그었다.클라라는 또 자기 친구를 공유하는 걸 좋아했다. 클라라 덕에 서로서로 알게 된 친구가 많았고 우리는 클라라를 좋아했다. 클라라라는 깊이가 있는 사람이었고 배려할 줄 아는 닮고 싶은 언니였다.

표현이 풍부한 남유럽인 답게 나를 항상   My little princess, my darling 또는 sugar라고 불렀고 딱 봐도 얼추 20센치는 더 커 보이는 나를 귀여운 대상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봐주었다. 어린 동양 여자로서 새로운 환경을 경계하고 낯설어하던 나에게 말을 자주 걸어주고 언니처럼 걱정해주며 성숙한 조언을 해주었다.


내가 "아.. 어제 불면증으로 새벽까지 못 자서 너무 피곤해."라고 좀비 같은 행색을 하고 말하면

엄청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럼 나한테 연락을 하지!! 따뜻한 우유에 꿀이라도 타 줄 텐데. 내 방에 우유 있었는데!!

다음에 또 잠 안 오면 꼭 내 방에 노크해야 돼."라고 말했다.


나는 학부생인데 대학원 수업으로 수강신청을 잘 못해서 수업을 알아듣기에 배경지식이 짧아 버거웠다.


"괜찮아. 나도 어려워서 뭔 말인지 잘 모르겠어. 도대체 발음은 왜 저래? 근데 저 교수가 원래 실력 있는 교수인데 설명을 귀찮아서 대강하는 경향이 있어. 너만 어려운 거 아니야 걱정 마!"라고 말해주거나,

수업시간에는 필담으로 '콩고 내전'이라고 써주었다. 교수님이 샛길로 빠져 설명하고 있는 게 콩고 내전 얘기라는 것이다.  나중에 어떻게 그렇게 바로 캐치하냐고 하니 콩고 내전에 관해서 소논문을 쓴 적이 있어서 안다고 했다.

    

클라라는 고맙게도 자주 같이 공부하자고 제안했고, 내가 발표하면 별거 아닌데도 잘했다고 띄워주며 격려해주었다. 수업이 끝나면 커피를 사주었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해 마시는 사람을 클라라를 통해 처음 보았다. 나는 커피가 쓰게 느껴지고 카페인 때문인지 잠도 못 자서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이었기에, 저렇게 농축된 에스프레소 샷을 왜 마실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혼자 여행하고, 밥 먹고 시간 보내는 것에 익숙하고 심지어 더 좋아하지만, 그때는 혼자 여행하는 게 굉장히 낯설었다. 혼자 여행을 하더라도 미리 열심히 알아보고 준비해 가는 편이 아니었기에 무계획으로 그들의 여행에 무임승차했다. 미리 부다페스트에 대해 알고 가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헝가리의 수도라는 점만 알고 갔다(귀찮음에 대한 변명이다).


나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다.

여럿이 가면 좋은 점은 늦은 밤에도 주변을 산책하기에 무섭지 않고, 다른 젊은이들과 어울리기 쉬우며 더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거였다.

다만, 나는 새로운 도시를 여행할 때면 샵들을 일일이 다 들어가 패션을 구경하며 반나절에서 하루를 보내곤 했는데 이번엔 여럿이 간 데다 일정이 짧았기에 아쉽지만 그 샵들을 스쳐 지나가야 했다.


지네브라가 예약한 아파트는 방이 세 개였고, 각 방에 침대가 있었다. 가격도 하루에 1인 2만 원 대 정도로 저렴하였다. 방은 넓고 높았고, 방마다 테이블도 있었다. 내부는 깔끔하고 예뻤고 테라스도 있었다. 창문을 열면 바로 깔끔한 거리가 펼쳐졌고 쇼핑 거리가 보였다.

지네브라는 로마에서 온 이탈리안이다. 부를 때는 간단히 진이라고 불렀다. 지네브라는 만나고 헤어질 때 인사하면 볼 뽀뽀를 무지막지하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나머지 처음 보는 세 명은 스페니쉬였다. 특히 젬마와 지네브라는 헤비 스모커였다. 클라라도 담배를 피웠지만 그 둘은 유난히 담배를 자주 폈다.


밤에 도착하여 씻고 쉬면서 창문을 열고 그들은 담배를 피우고, 나는 창문 밑 골목을 넋 놓고 보았다.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하고 하늘도 올려다보고, 멀리 야경을 보았으며 부다페스트만의 공기를 맡아보았다.


이탈리안과 스페니쉬는 각자 자기 말을 해도 거의 알아듣는다고 했다. 그들끼리 대화할 때 자기네 나라 말을 할 때면 소외감을 느꼈다. 이는 언어를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친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오히려 친한 사이였다면 여유를 가지며 소외감보다는 오히려 대화를 쉬는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첫날은 버스를 타고 저녁에 도착했으므로 아파트 숙소 주인을 만나 숙소에 들어가서 짐을 놓고, 밤거리를 걸으며 야경을 본 게 전부이다. 부다페스트에 처음 와서 느낀 것은 깨끗하고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건물도 길거리도 깨끗하고 깔끔한 느낌이었다.   



카메라에 잘 안 담겨서 포기했지만, 부다페스트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걷다 보면 위와 같은 젊음의 광장? 같은 곳이 나오고(사실 이름들을 잘 모른다), 맥주를 마시며 음악이 나오고 춤을 출 수 있게 되어있다.

우리는 맥주를 한 잔씩 마시며 춤을 추다 들어가기로 했다.



조금 더 밝았을 때 본 이 광장?의 모습이다. 길거리에서 풍선을 하나씩 나누어주었고, 패션쇼가 열렸다.

다양한 국적의 젊은이들이 많았고 활기를 띄었다. 내게 부다페스트는 젊음의 도시였고, 스타일리쉬한 곳으로 기억된다.

실제로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시를 여행할 때 사람도 기분 좋을 정도로 북적였고, 꽤 넓은 도나우 강으로 나누어져 도시의 규모가 제법 규모가 커 보였는데, 마치 강북과 강남으로 나누어진 서울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발전 가능성과 잠재력이 높게 느껴졌다. 물가도 싸서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


여행 후 돌아와서 헝가리인 친구 피터에게

"부다페스트 정말 좋더라! 가능성이 높은 도시 같아! 헝가리인으로서 자랑스럽겠어!"

라고 하니 너무 고마워하면서 부다페스트에 오면 언제든지 자기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푹 자고 일어나 다음 날 본격적으로 부다페스트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반나절 동안 부다와 페스트 지역을 설명해주는 가이드를 따라서 이용하기로 했다. 지네브라가 알아온 가이드 투어 하는 장소로 시간 맞추어 가니 헝가리안 여자 가이드가 있었다. 영어로 설명해주었고, 우리 말고도 여러 여행객들과 섞여 스무 명 좀 안 되는 그룹이 되어 반나절 동안 걸으며, 쉬며 여행을 하였다. 무료를 표방했지만 여행이 끝나고 팁을 모아서 주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설명은 친절하고 영어도 알아듣기 쉬운 억양이었다. 소통하는 가이드였다. 역사, 문화도 다양하게 설명해주었는데 역시나 다 잊어버렸다.


분수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 모습 한가롭고 여유있어 보인다.
가이드가 추천해준 부다페스트 중앙시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리 입맛에 잘 맞는 굴라쉬



점심을 먹고 나서는 가이드가 알려 준 길을 따라 우리끼리 다리를 건너 페스트 지역으로 향했다.

 

관광객이 많았다.


드디어 페쉬트 지역에 도착!!

위에서 내려다 본 부다지역 모습. 너무 좋았다.
저 멀리 보이는 예쁜 성당!!


아름답고 독특한 이 성당에 가까워질수록 두근두근거렸다.지금 찾아보니 이름이 마차시 성당이라고 한다. 하얀 외관도, 뾰족한 주황색 이외에 부분 부분도 너무 예뻤다. 이 곳에서 결혼식도 할 수 있다고 들은 것 같다.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뒤에 보이는 국회의사당

잠시 후 나타난 이 몽글몽글 귀여운 곳!!!

어부의 요새이다.

웨딩화보를 찍는 커플이 있었다.

이렇게 몽글몽글한 건축양식을 처음 봐서 신기하고 새로웠다. 뻔하지 않은 동유럽 여행이 주는 독특함.

 

시간을 보내고 내려가려는 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머리부터 홀딱 젖었다. 급한 대로 가방에 있는 손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물을 잔뜩 먹은 손수건은 짜서 목에 대충 묶었다. 우리는 많이 젖었고 미끄러우니 내려갈 때는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부다 지역으로 내려와 우리는 쇼핑거리를 지나 먹을 것을 좀 산 뒤 숙소에서 파스타를 해 먹기로 했다.

쇼핑거리를 한창 지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몇몇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처음엔 나한테 하는 말인 줄 모르고 다른 친구들에게 무언가 물어보는 줄 알고 잠깐 딴 데를 보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현지 온라인 패션지였고, 내 사진을 찍고 싶다는 거였다.  

"나.. 나요? 나를 왜..."

그들은 사진을 몇 장 찍더니 내가 입은 옷과 가방, 신발의 정보를 적어갔다.


별 다를 것 없이 대충 편하게 입은 것이어서 더 당황스럽고 민망했다. 게다가 물에 빠진 생쥐꼴이어서 급하게 머리를 묶고 있었지만 여전히 기름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찍히고 싶지 않은 상태였고, 사진을 다시 봐도 이게 왜 오를 룩이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아시아인을 찍어갔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하고,

봐온 장으로 이탈리안인 지네브라가 파스타를 한 가득해서 나누어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 본 파스타 중 가장 맛있었다. 양파, 애호박, 요리용 크림, 모짜렐라 치즈로 간단하게 만든 것이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집에서 이렇게 간단하게 해서 먹거나 재료를 달리해서 먹는다 했다. 모짜렐라는 두부같이 몽글몽글한 것을 사다가 짤라서 구석구석 뿌리면 쩍~쩍~ 늘어난다. 신세계였다. 정말 정말 맛있었다. 이후에 한국에 와서도 재료를 사다가 이 맛을 흉내 내서 먹고 있다.    

밥을 먹고 우리는 저녁에 또 나갔다. 그 젊음의 광장? 에서 패션쇼를 본 뒤 그 주변 공원에 둘러앉아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레이레의 스페인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정말 대단한 우연이었다! 스페인 친구 둘이 부다페스트에서 한 날 한 시에 마주치다니. 레이레 친구는 헝가리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했고, 현지인이 알려 준 핫한 곳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따라가기로 했다. 걸어서 꽤 되는 곳이었다.

그곳은 핫한 곳이었고, 핫한 헝가리안들도 많았다.  

그렇게 우리는 새벽까지 놀았다.

공허한 마음을 다스리려 잠을 좀 잔 뒤 일어나니 클라라가 모닝커피를 타 주었다. 이탈리안들은 눈뜨자마자 커피를 찾는가 보다. 오늘은 부다페스트를 떠나는 날. 짐을 챙겨 세체니 온천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다음 날 날씨도 따뜻하고 세체니 온천물도 적당히 따뜻하고 좋았다. 온천까지 도심에서 지하철로 얼마 걸리지 않았고, 가격도 2만 원 정도로 적당하였던 것 같다.


아름답고 독특한 건축물들과 친구들과의 추억. 그리고 세체니 온천까지. 마지막까지 꽉 찬 여행이었다.


누군가 유럽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면 항상 부다페스트를 꼭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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