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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Feb 22. 2018

스웨덴 룬드는 꼭 가보세요

룬드에서 살고 싶다


룬드는 중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야 꼭 한 번 가봐!





나에게 룬드로 당일치기 여행을 추천해 준 마티나는 40대 초반의 스웨덴 주부이며 간호사이다. 그의 남편 아그네는 우체국에서 일하는데, 당시 육아휴직 중이었다. 스웨덴은 남자도 의무적으로 육아 휴직을 해야 하며, 아그네가 비올라를 돌보므로 마티나는 다시 복직하여 일하고 있었다. 이 부부는 30년 장기 대출로 집과 차가 있었다. 집과 차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마티나 부부가 새로 이사한 집은 2층으로 된 전형적인 스웨덴 식의 주택이었고, 목조로 된 별장 느낌이었다. 내부 인테리어도 스웨덴식이었는데, 이는 우리가 매체에서 접하는 북유럽 스타일이라고 하는 인테리어라며 스톡홀름, 예테보리의 현대적인 아파트에 있는 인테리어를 따라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이 부부와 알게 되면서 문화 충격을 많이 받았다. 스웨덴은 한국과는 아주 달랐고, 나에게는 문화충격인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일상처럼 이야기하기에 나는 속으로 화들짝 놀랐지만 나도 담담하게 대응한 적이 많았다. 딸 둘을 키우고 있는 이 화목하고 정다운 부부와의 이야기는 앞으로 더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룬드라는 이름의 도시는 마티나를 통해 처음 들어보았다. 도시라기보다는 작은 마을 같다.

룬드는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러워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유럽의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자연과 건물들의 조화가 아름다우면서도 한적하다.

  


룬드에서 살고 싶다.
나중에 여기로 대학원을 올까?




나보다 한 살 어린 일본인 친구 아꼬와 함께 룬드에 가기로 했다. 우리는 왕복 600kr라는 싼 값에 기차표를 샀다고 좋아했다. 스웨덴은 교통비가 비쌌다. 기차도 비싸고 버스도 비싸다. 몇 정거장 안 갈 버스도 한 번 탈 때 20크로나씩 내니. 몇 년이 지난 지금 내가 서울로 가는 좌석버스를 타는 것보다 비싸다.


600 크로나면 당시 환율은 170원이 넘었으니 10만 원이 넘는다. 지금 스웨덴 환율을 검색해보니 133원으로 정말 많이 싸졌다. 기차로 두 시간 안 되는 거리에 10만 원이라니. 서울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칭다오랑 비슷한 가격이라니! 돈을 벌기 시작해서 그런지 지금 생각해보면 비싸게 느껴진다.

대신 기차는 KTX를 생각하면 될 정도로 편리하고 깨끗하다.


룬드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보다는 코펜하겐에서 훨씬 가깝다. 한 시간 정도. 코펜하겐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스웨덴의 말뫼와 룬드를 여행하면 좋겠다.




룬드 기차역에 도착해서 우리는 지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그냥 걷기만 해도 아름다운 도시였기도 하지만 사실 이 때는 구글 지도를 보며 편리하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요즘과는 달랐다.

우리나라도 스마트폰이  도입되던 때였고, 유럽에는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일단 기차역 주변의 관광 안내소에 가서 지도를 얻고 직원이 설명해주는 곳을 동그라미 쳐서 걸었다. 낯선 곳에 도착하면 도시의 정보를 얻기 위해 일단 - 기억에 주로 초록색으로 되어 있는- i  팻말을 찾기 바빴다.

스마트폰이 주는 편리함보다 아날로그적인 행복감이 더 컸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분위기를 즐기며, 좀 더 다른 시대로 들어온 느낌에 젖을 수 있다. 길거리의 사람, 버스나 트램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목소리를 나눌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룬드는 작은 곳이었고 관광 안내소도 눈에 띄지 않았을뿐더러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골목골목 사이를 빨리 걷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얼른 시내 속으로 들어가 걷기 시작했다. 산책하기 좋은 거리였다. 낮은 건물들의 톤 바랜 색감들이 예뻤고 11월의 담쟁이덩굴과 조화로웠다.


가을에 여행해서 그런지 몰라도 나에게 '룬드'하면 가을과 어울리는 느낌이고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해 이제 가을이구나 싶을 때면 항상 룬드가 생각난다.

 



걷다가 나온 룬드 성당은 룬드의 랜드마크이다. 중세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유럽여행을 하면 그 성당이 그 성당으로 느껴져 점점 별 감흥이 사라지지지만, 어둡고 검은 색감의 외관이 위엄 있으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검은색, 흰색의 수채화 물감을 사용해서 조화롭게 음영을 주어가며 그린 것 같다. 계속 보아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색감이 아름답고 웅장하다.

내부는 다른 성당과 특이점이 보이지 않아 평범했고, 지하로 내려가면 구경할 수 있는 Crypt가 있는데 어딘지 싸한 느낌이 들면서도 둘러보는게 흥미롭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좀 더 시내 중심가로 가보기로 했고, 중심가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며 활기를 띠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즈음의 런던 중심가 분위기도 났다. 길거리에 사람이 좀 더 많아졌다. 빨간 모자와 옷을 입고 모여 캐럴송을 연습하는 거리의 합창단도 있었고, 소박한 플리마켓도 열렸으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캠페인 활동가들도 있었다.


이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에 무지하고 무관심한 편인 것 같다. 국제정치 수업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ICJ 의 권고적 의견을 정리하며 발표했던 나인데도 말이다. 사실 좀 여러모로 어려운 이슈이다. 최근 알 자지라 기사를 통해 스물다섯 살의 스웨덴 활동가가 스웨덴에서 팔레스타인까지 5000km를 걷기 시작했음을 알게 되었다. 3주 동안 팔레스타인을 여행하면서 그때 받은 충격과 인권 실태를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면서 학업과 일도 중단하고 팔레스타인 깃발을 메고 걸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 젊은이의 행보가 신기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왠지 사람도 많고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관광객 같지는 않아 보이고, 영어도 들리고 스웨덴어도 들렸는데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아꼬와 나는 파스타를 주문했다. 가격도 만 오천 원 정도로 나쁘지 않았고, 넙적한 파스타 면도 쫄깃하고 소스도 너무 맛있었다.







아꼬하고는 여러 번 여행을 같이 하였는데 상대를 참 편하게 해주는 친구이다. 나의 시그니처라면 붉은 입술과 히피를 지향하는 꼬불꼬불한 머리라면, 아꼬의 시그니처는 오렌지색 뺨이다. 아꼬는 항상 오렌지색 블러셔를 과장되게 발랐는데 아꼬에게 잘 어울리고 사랑스러웠다.


아꼬는 장을 보다가 처음 만났다. 귀엽고 친절하고 상냥해 보였고, 첫인상에도 일본인 같아 보였다. 다른 일본인과 다르게 왠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느낌이 들었고, 장을 보면서 이것저것 서로 대화를 주고받다가 아꼬가 우리 아래층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요리도 해서 나누어 먹었고, 아꼬가 자신의 스웨덴어 교양 수업 선생님이 말이 너무 빠르고 불친절하다며, 선생님이 좀 더 차근차근 상냥하게 가르쳐주는 우리 수업으로 넘어오면서 수업도 같이 듣게 되어 더욱 친해졌다.


아꼬는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꽤 정확한 문장을 구사했다. 아꼬와 이야기할 때면 말도 좀 더 느려지고 쉬운 단어를 쓰다 보니 대화의 범주도 넓지 않고 영어가 점점 퇴화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아꼬하고의 정서적 친밀도는 꽤 높았기에 나의 심리와 감정에 관한 깊은 대화를 했다.

 다른 한국인이나 외국인 친구들에게 터놓지 않는 이야기를 아꼬에게는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꼬 역시 다른 사람에게는 터놓지 않는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해주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항상 아꼬를 생각하면 애틋하고 걱정되고 보고 싶다.


스웨덴어 수업의 할머니 선생님은 스웨덴어 발음으로 아꼬를 자꾸 아꾸라고 불렀고, 나는 그 발음이 너무 귀여워 나도 아꾸라고 불렀다. 아꼬는 내가 소녀시대 같다며 나를 자꾸 "소려쉬대 00!"이라 불렀다. 편지의 첫머리에도 항상 "Dear, SNSD 00!!!" 하고 시작했다. 나이는 소녀시대 나이긴 하다. 아꼬는 내가 가끔씩 나도 모르게 쓰는 한국어를 잘 흡수해 따라 했고 한국을 알고 싶어 했다. 한류를 통해 한국을 사랑하게 된 다른 외국 소녀들과 달리 아꼬는 먼저 한국인들을 좋아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알게 된 한국음식, 한국문화, 한국을 사랑해주었다.   


이후 일본 여행을 계획하던 중 오사카를 선택한 것은 아꼬가 살고 있는 도시임이 꽤 크게 작용했다. 혼자 오사카를 갔을 때도 아꼬를 만났고 그 이듬해 가족과 함께 간사이 지방을 여행했을 때도 오사카를 들려 가족과 다 함께 아꼬를 만났다. 엄마는 사진 속에서 봤던 아꼬를 알아봤고, 아꼬도 얘기로만 들었던 우리 가족을 보게 되어 반가워했다.


룬드대학교 건물들


룬드 대학교는 유명한 학교이다.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들 중 하나이기도 하고, 웁살라대학교와 함께 꽤 경쟁력 있는 명문대이다. 위 사진은 룬드 곳곳에 흩어져 있는 건물들과 그 내부이다. 건물들은 정말 아름답고 우아했으며 푸르른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핀란드 라플랜드를 여행할 때 만났던 싱가폴에서 온 비슷한 나이 또래의 두 명의 여대생들은 룬드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했었다고 해서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룬드를 아는 사람을 만난 것이 반가워 그들에게 내가 룬드에서 느꼈던 분위기와 그곳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느꼈다는 이야기를 토해내듯 얘기했다. 그들이 룬드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에 너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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