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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Dec 30. 2020

당신의 인생책이 궁금해요

나의 인생책은요

북유럽을 Book you love로 풀어내다니 센스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검색해보니 이미 대중적으로 서점, 북카페 등에서 쓰고 있던 모양인데 나는 지금 접했다). 벨보이 복장도, 포스터 색감도 예쁘다. 게다가 인생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라니!


코로나로 집에만 있어야 하는 매주 주말 중 하루, <델마와 루이스>라는 영화를 보았고 다른 이들의 감상이 궁금해서 찾아보던 중, 장항준 감독이 나오는 <씨네마운틴>이라는 팟캐스트를 알게 되었다. 감독과 배우의 일생을 재미나게 소개하면서 배우 이름을 놀리기도 하고(워셔는 어린 시절에 워셔액으로 놀림당했을 거라고ㅎㅎ) 갑자기 본인의 어린 시절 친구의 에피소드를 늘어놓다가는 처음 들어보는 80년대 CM송을 부르기도 한다.


장항준 감독의 말투와 이야기, 태도가 너무 재미있어서 혼자 저녁을 먹으면서 늘 팟캐스트를 듣는다. 그런 장항준 감독이 나온다고 하여 <북유럽>의 지난 편을 다시 보았다.


올해 읽은 책


나의 인생책은 뭘까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인생책이란 뭘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내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친 책?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인생책은 추천책 하고는 다른 것 같다. 취향과 관심도, 가치관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인생책이라 생각하는 어떤 책을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권유했을 때 내가 인생책이라고 느낀 것만큼 다른 사람은 못 느낄 수 있다. <북유럽>에 나온 도서 중에서도 아직까지는 읽어보고 싶은 책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책은 계속해서 궁금하다. 그 사람이 왜 그 책을 인생책으로 꼽았는지, 그 책과의 어떤 추억이 담겨있을지 개개인의 독특한 이야기, 또 그 책에 내가 관심이 갈지, 운 좋게 마음속으로 찾던 책을 만나게 될지.


나의 인생책들은 모두 문학이다. 그중에서도 외국소설. 대학 시절에는 깊은 사유로 이끌어주는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좋아했지만 도스토옙스키 책은 성경 다음으로 인류사의 명저라고 뽑을 수 있을 만큼 넘사벽이라 ‘인생책’에 넣기는 좀 그런 느낌이다. 두께가 많이 두꺼워 엄두가 안 나겠지만 평생에 죽기 전에 <백치>와 <악령> 같은 장편소설을 읽어보면 어떨까 싶다.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스스로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 퍽퍽한 삶에 치유를 받고 싶다면 톨스토이의 <까자끄 사람들> 같은 책도 좋다.


그래서 내가 인생책이라고 꼽고 싶은 책은

<불안의 책>,

 <1Q84>,

<사랑에 빠진 여인들>,

<면도날>이다.

 


소장하고 싶은 보라색 표지의 책 @리스본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은 감각이 예민한 화자가 일기를 쓰듯 써 내려간 치열한 감성, 그 감수성에 한 줄 한 줄 너무나 공감이 가는 책이다. 몽상가적 상상력과 묘사가 공감이 가고 독자로 하여금 여러 생각으로 확장시킨다. 인생과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이 탁월하다. 현실에 대한 염증만을 토로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섞이면서 해방감을 느낀다. 인생에 대한 애착이 없이 우울해 보이면서도 자연스레 흘러가는 인생에는 사랑스러운 애착을 보여준다. 페소아는 예민함을 천재성으로 승화시킨 작가로 서두만 읽어도 독보적인 비범함이 느껴진다. 작가는 한 세기 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이 자신의 글에 감탄하고 전율을 느낄 줄 알았을까. 읽기 아까운 책이라서 조금씩 나눠 읽었다.


리스본의 한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글을 쓰고 있는 페소아, 도라도레스 거리를 걸으며 사유하는 페소아의 감성을 느껴보려 지난해 1월에 포르투갈로 여행을 떠났다. 페소아가 가던 카페도 가보고, 불안의 책에 나오는 도라도레스 거리, 테주 강변, 서점, 페소아 박물관을 갔다. 페소아는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라는 곳에 유골이 안치되어 있을 만큼 포르투갈 국민들이 사랑하는 작가이자 리스본의 관광상품이다. 페소아가 다니던 카페는 이미 유명해져서 사진만 찍고 가는 관광객들 때문에 주문을 하지 않으면 내부사진을 찍을 수 없다. 백발의 점원 할머니는 관광객들이 들이대는 핸드폰과 카메라에 노이로제가 걸린듯해 보였다.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리스본에 살았던 작가들이 받았을 영감과 감성을 느끼고 왔다.


리스본의 한 서점 외국어 문학 코너에서 만난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빠지게 된 첫 책은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소설이다. 기사단장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다. 이후 <1Q84>, <노르웨이의 숲>,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색채가 없는 다자키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태엽 감는 새 연대기>, <스푸트니크의 연인>, 그리고 신작 <일인칭 단수>까지. 휴, 숨차다. 돌이켜보니 18~19년에는 거의 하루키 소설에 빠져있었다. 하루키 소설의 주요한 장치인 '우물'이 나오면 와 이 소설에도 우물이 또 나오네, 하고 가슴 묘사에 대한 집착, 10대 여자의 등장 등 작가의 스타일을 알게 된다.


하루키 소설을 읽을 때는 글을 쓸 때 나의 문체에도 영향을 받는다. 단조로우면서도 영상을 찍듯이 나의 일상과 생각 그 자체가 빛나도록, 그렇게 쓰게 된다. 거리를 거닐 때, 다른 사람을 구경할 때 관찰하는 관점과 감성에 영향을 받는다.


하루키 소설은 문장이 화려하다거나 써놓고 싶은 문장이 가득하지는 않다. 흡입력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두꺼운 책이어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며칠 내에 금방 읽는다. 그 중 특히 아까워서 빠르게 읽기 싫은 책은 <1Q84>였다. 견고하게 짜 놓은 세계관과 상상력이 놀랍다. 빠져든다. 주인공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지, 어떤 음식을 차려먹는지 일상이 세세하게 드러나 있어 글로 된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 장소와 분위기가 바로 상상이 되어 독자 머릿속에 그려진다. 내가 아오마메가 된 듯 도쿄 도심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데 오래도록 진한 여운을 준다. 이 책을 읽으면 도쿄에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혼자 도쿄의 한적한 주택가 거리, 지하철, 세탁소, 놀이터, 서점 등을 둘러보며 감성을 느끼고 싶다.


<사랑에 빠진 여인들>과 금색 만년필 틴케이스


을유문화사의 2020년 리커버판이 예뻐 보여 그중 관심이 가는 책을 찾아서 샀다. <사랑에 빠진 여인들>이라는 두꺼운 책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할 때는 이렇게 두꺼운 줄 몰랐다. 너무 두꺼워 시작할 엄두가 안나 다른 책들에 밀려 방치되어 있다가 읽기 시작한 뒤로, D.H. 로렌스라는 작가를 이제야 알게 된 게 아쉬웠다. <무지개>라는 작품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주인공인 두 자매 어슐라와 구드룬의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이 어떻게 사랑을 하여 가족이 이어졌는지가 너무 재미있고 공감가게 풀어져 있어 <무지개>라는 책도 좋았다. 물론 무지개를 안 읽고도 이 책 자체로 독자적이다.


<사랑에 빠진 여인들> 역시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의 감정이 정말 잘 묘사되어있다.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이렇게 문장으로 표현하지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을 하며 읽게 된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가득하다. 자연과 풍경, 그 분위기의 묘사를 읽으면 너무 황홀하다.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늘의 색감 변화의 묘사를 읽고 있으면 단어의 조합과 문장뿐 아니라 글씨 자체가 정말 아름답게 느껴진다. 한글로 번역된 것임에도 말이다. 그 관찰력과 표현이 따라 할 수도 없게 천재적이어서 그 재능이 부럽기도 하고 이 작가가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후대에 남긴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엔티엔 최고의 랜드마크 빠뚜싸이 공원에서 <면도날>  @라오스


서머싯 몸의 <면도날>은 영문과인 대학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으로 역시 서머싯 몸 작품들에 입문하게 된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들도 읽는 서머싯 몸. 얼마 전 읽은 <하드보일드..> 소설 속 주인공 남자는 면도날을 세 번이나 읽었다고 말했다. 이 책은 내가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라오스로 떠날 때 가지고 간 유일한 책이다.


<달과 6펜스>와 같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우리 사회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인생 루트와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거부하고 자기 콘텐츠를 가지고 자기만의 길을 걷는 인생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추구해왔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며 위로가 되는 책이었고 나의 삶과 지향점에 스스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래서 내 인생책이다.


어제 읽은 한 칼럼에서도 말하지 않았는가. 사실 우리 사회는 멍청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는 사람보다 똑똑하고 게으르게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남들에게는 짜인 틀대로 움직이지 않고 비협조적으로, 또는 다소 게으르게 보일지라도 창의성을 발휘하며 똑똑한, 동료와 커피 한 잔 하며 나누는 잡담 속에서 영감을 받는 게으른 것이라면 게으른 사람 말이다. 이런 사람이 많은 문화에서 창발적이고 First mover가 되는, 파급력이 크며 우리 사회에 크게 기여하는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다수의 '전형적인' 스탠다드형 인간들이여, 이해 안가는 비주류 인간들을 가만 좀 나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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