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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y 08. 2021

앨리스는 이상하지 않아 나라가 이상한 거지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알 수 없는 것들로 쌓인 꼭대기에서 큰 변기에 앉아 계속 똥을 싸고 있었다. 큰 변기 가득 똥을 쌌다. 평소 아는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다가와 내가 똥을 싸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 변기 안을 들여다보았다. 창피해서 가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내뜻대로 안됐다. 아, 꿈이면 좋겠다. 괴로웠다. 왜 꿈에서는 내 마음대로 안되는지. 혼돈의 시간을 지나 잠에서 깼다.


어릴 때 500원 주고 먹던 컵볶이를 추억하게 하는 떡볶이 사진이 떴다. 떡볶이가 땡겨 사진을 계속 찾아보았다. 길고 쫀뜩해보이는, 집에서 해 먹는 떡볶이와는 다른 색깔과 맛! 동네 떡볶이를 먹고 싶어! 일어나자마자 오늘은 떡볶이를 먹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짜잔

고등학교 때 8교시, 야자 1교시를 튀고(줄여서 팔튀, 야튀라고 하던) 먹으러 가던 떡볶이 집에 갔다. 우리 학교의 위치는 조금 외져서 지하철 역까지 20-30분 걸어 나와야 했다. 걸어가는 길은 길쭉한 삼각형 모양으로 잎이 자라는 나무들이 시원하게 쭉쭉 뻗어있었다. 가끔은 쓰레빠를 신고 걸어 나왔다. 딱 달라붙는 교복을 입은 소녀들은 햇살을 받으며 거리를 걸었다. 소박하게도 떡볶이만 먹고 돌아왔다. 500원씩 모아서 떡볶이를 사 먹었다. 행복했다. 10시에는 엄마가 데리러 오기 때문에 어차피 학교로 돌아와야 한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가 튀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때리지는 않으셨고 한 시간 동안 흰 벽을 보고 서있으라는 벌을 주셨기 때문에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남학생들은 때리셨다.


분식집을 막상 다시 찾아갔을 , 옛날의 인테리어가 생각이   그때의 감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msg 맛이 너무 심하게 느껴지고 맛은 그닥 없었다. 그때는  그리 맛있게 먹었는지, 주인이 바뀐 건지.  컵볶이 !  맛이 그리웠다.



경영평가를 담당하는 부서에 새로 배치되었다. 3월 중순부터 이 새로운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한 세 달은 지난 느낌이었다. 다른 부서에 있었을 때는 우리 회사의 경영평가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A냐 B냐에 따라 받는 성과금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이 정도 관심뿐이었다. 들어보니 뭐 크게 달라지지도 않아서, 그러려니 했다. 그냥 뭐 때 되면 기사로 어느 어느 기관 A, B, C, D.. 하고 뚝딱 나오는 점수겠거니, 했다. 막상 경영평가 담당 부서에 와서 보니 경영평가를 준비하는 주무 부서뿐 아니라 작년 한 해 동안 우리 기관의 실적보고서를 작성하고 평가위원인 교수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하는 각 부서원들의 노고를 알게 되었다.


내가 맡은 일은 화상으로 진행되는 실사를 진행하는 일, 각종 행정 작업과 경영평가 책임자인 팀장님의 일을 분담하는 일. 처음이라 노하우가 없어 그때그때 익혀야 했다. 경영평가를 위해 기한 내에 제출하는 자료도 많고 사전에 준비해야 하는 일, 그리고 챙겨야 할 각종 행정사항이 이토록 많은 지 미처 몰랐다. 무거운 책자를 나르고, 실사장 테이블 및 화상 장비를 세팅하고, 하다못해 방문객들이 마실 생수도 장을 봐다 놔야하고.. 막노동처럼 힘쓰는 일도 많다. 실사를 참관하는 국민 참관단도 두 분 계시는데, 이 분들에게 연락하고 안내하고, 여러 동의서를 받고, 참관 후기를 받아서 기재부에 제출하고, 10만 원씩 위촉 수당을 제공하기 위한 결의서를 또 올려야 하고... '공기업 경영평가에 국민 참관단 두 명이 참관한다.' 이 한 문장일 뿐인데.


화상 실사를 진행하는 기관으로 선정되면 화상 장비를 갖추지 못한 다른 공기업/공공기관이 방문하여 2-3시간 동안 실사를 받으러 온다. 경영평가를 받으러 열댓 명의 답변자들이 양복을 입고 우리 기관을 방문한다. 그러면 또 사전 방역 계획을 수립해서 방역 업체도 불러야 하고, 이 사람들이 간 다음에 방역 조치도 해야 한다. 건물 방역을 담당하는 부서에 협조를 요청하여야 하고, 이 분들이 머물다 갈 대기실에 프린터기나 노트북을 설치해달라고 관련 부서에 문서를 보내야 한다. 이 기관이 방문하기 이틀 전에는 우리에게 방문자 명단과 차량 번호를 보내준다. 그러면 미리 주차 공간도 확보해야 하고, 경비실과 안내데스크에도 공유를 해야하며, 전 직원에게 주차 협조 메일을 보낸다. 이 분들이 방문하면 그 시간에 맞춰 안전 관리 부서에서는 체온 측정 및 여러 사인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이 분들이 사용할 화상회의 장비를 사전에 테스트해서 음량과 화질 등 테스트를 한 뒤, 이 분들이 평가를 받는 동안 같이 상주하며 발생할 수 있는 기술적 오류에 대응을 해야 한다.


다녀간 기관들 중에는 장소를 제공해주어 감사하다고, 우리 직원들이 주차 안내부터 너무나 친절하다며 거듭 감사를 표하는 곳이 있는 반면, 오로지 자기 기관이 시험을 잘 받기 급급해 쓰레기도 그냥 두고 가는 예의없는 곳도 있다. 싸온 간식을 자기들끼리만 먹는데가 있고 기술 지원으로 상주하고 있는 나에게도 초콜릿을 나눠주는 기관이 있다. 나는 챙겨주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한다. 다른 공공기관 직원들은 어떨까?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떤 태도로 대화를 나누고 실사를 받을 때는 어떤 논리를 세워 답변을 할까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평가위원들에게 혼이 나는 걸 보기도 하고 칭찬 받는 걸 보기도 한다. 여러 공부가 된다.


다른 기관이 실사를 받는 몇 시간 동안 실사장에 몸이 묶여 있다 보면 원래 그 시간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 각 부서에서 이런저런 것을 요청해 놓은 것을 내가 빠르게 대응해주지 못해 원성을 듣는다. 컴퓨터를 싸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떡하라구, 내가 노는 것도 아니고 우리 회사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건데 나한테 왜 이래, 하고 원망스러워진다. 시간이 없어 제출해야 하는 것도 기한 내에 내기 급급해져 꼼꼼히 보지도 못해 실수를 발견한다. 새로운 부서에 와서 경영평가 관련 업무가 끝나게 된 4월 말까지는 정수기에 물 뜨러 갈 시간도,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었다. 하루에 평균 4시간 초과근무는 기본이었고(한달에 받는 초과근무비의 상한은 6시간이다^^;), 아침 대신 두유를 먹으려고 집에서 가져왔는데, 빨대를 뜯다가 그대로 점심시간 때까지 한입도 마시지 못한 날도 있다. 그래도 나는 큰 책임을 지는 일은 없는 막내 대리여서 업무 강도가 높지는 않았다. 나를 제외한 다른 부서원들은 거의 새벽까지 일을 하다가 갔다.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었다. 업무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회사 횡단보도 건너편 뼈만 남았던 넝쿨이 어느덧 푸르러졌다. 담쟁이가 이렇게 풍성했던가. 햇살은 따뜻해졌고, 멀리 보이는 산도 초록이 풍성해졌다.


책도 사고 넷플릭스도 보고 쇼핑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되찾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체를 가진 애나 본드라는 미국 문구류 회사의 대표가 그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도 샀다. 그림만 봐도 힐링이 되고 행복해진다. 내 자리에 꽃도 사다가 꽂고, 예쁜 화병도 샀다. <종이의 집>을 파트 4까지 몰아봤다. 종이의 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서로를 나이로비, 리스본, 헬싱키, 도쿄 등 도시명으로 부르는데, 나는 어느 이름을 갖고 싶은지 생각하며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다.


친언니 같은 중국인 언니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보안 문제로 중국 앱은 다 지우라는 글을 본 뒤 중국인과의 소통을 위한 위챗도 과감하게 지워버렸다. 그래서 중국인 언니와의 소통도 오랫동안 끊겼다. 예전에 알아 둔 메일로 길게 편지를 썼다. 그리웠다. 나의 생각과 일상을 보냈다. 아이폰을 쓰던 게 기억이 나서 아이메시지로 보내라고 내 핸드폰 번호도 보내주었다. 중국인 언니에게 답장이 왔다. 행복했다. 너는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니까, 새로운 부서에 가서도 절대 기죽지 말고 너답게 잘하라고. 아이메시지가 왔다. 채팅앱 없이도 실시간 공유가 가능하니 너무 좋다.


8살 많은 중국인 언니는 베이징에 작은 집을 샀다고 했다. 물론 25년 동안 갚아야 하지만. 작년에 박사를 끝냈고, 베이징 근처 자기 연고지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곧 지금 다니는 국영회사를 그만두고 대학강사로 이직하게 될 것 같다고. 언제든 놀러 오라고 했다. 우리는 막상 지도상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코로나만 끝나면 가서 며칠 쉬다 오고 싶다. 언니의 일상 장소도 구경하고 바닷가도 가고, 예쁜 카페도 가고! 언니는 항상 내 편이다. 나를 예뻐해 주고 인정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이다. 대화를 하면 힐링이 된다.


톈진을 검색하였다. 다음 여행지는 톈진이다! 서울에서 두 시간도 안 걸리잖아! 사진을 보니 이국적이다. 톈진에서 기차로 두 시간이면 바닷가에 있는 언니네 고향에 갈 수 있다. 바닷가에는 만리장성이 시작된다. 코로나와 비자 발급의 번거로움만 이기면 된다. 두근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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