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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r 28. 2018

라오스 소녀에게 피아노 가르치기

사바이디 티쳐


라오스 소녀 두 명이 매주 두 번 피아노를 배우러 왔다. 나는 매주 월, 목 두 번씩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소녀 두 명에게 한 시간씩 피아노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 현지 소녀들을 알게 된다는 기쁨에 설렜고, 그곳에서 일상이 생긴다는 것이 좋았다.


이모 집에 키보드가 두 대 있었다. 고등학교 이후로 피아노를 안 쳐서 손이 굳었고, 외웠던 곡도 생각이 별로 나지 않았다. 그래도 바이엘을 가르칠 정도는 됐다. 그래도 만 3살부터 8년 정도 꾸준히 피아노를 배웠고,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음악부장으로 피아노 반주를 하였다. 우리 고등학교는 음악실이 다른 건물에 따로 있었고 꽤 큰 원형으로 된 계단 식으로(종종 영화관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처음 봤을 땐 드라마에 나오는 고등학교 음악실과 같은 환상이 있었어서 음악부장으로 매 시간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약속한 7시가 다 되어가자 나는 현관문을 좀 열어 놓았다.잠시 뒤에 귀여운 여자 아이가 사바이디~~ 티쳐~~하면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들어왔다. 나도 "사바이디~~"하면서 인사했다.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눈은 똥그랗고 피부는 까무잡잡하였다. 어둠 속에서 봤을 때는 키가 작아서 초등학생 두 명이 온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밝은 곳으로 들어오니 얼굴이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였다. 나는 원래 남의 나이에 관심이 잘 없어서 나이를 묻는 일이 많이 없는데, 얼굴과 키가 매치가 안 되는 게 너무 이상해서 이번에는 별 인사도 나누기 전에 너희들 나이는 몇 살이냐고 물었다.


16살 로이는 15살 샬롬보다 키가 더 작았다. 둘은 몽족이라는 민족이었는데, 몽족들이 키가 작은 편이라고 했다. 로이와 샬롬은 초등학생보다도 작은 느낌이었다. 키가 작은 것이 컴플렉스라고 했다.

로이와 샬롬은 형제가 정말 많은 가난한 시골 마을의 첫째, 둘째 딸이다. 한국인이 운 좋게 발견하여 수도로 데리고 와서 케어해주고 교육도 시켜주고 있다. 덕분에 로이와 샬롬은 국제학교에 보내져서 영어도 잘했고, 이렇게 피아노도 배우고 플룻도 배우러 다녔다. 내가 피아노를 더 가르쳐주고 싶어도 바로 이어서 플룻을 배우러 가야 하기 때문에 바로 보내야 했다.  


피아노가 하나는 주방에, 하나는 거실에 있어서 둘이 동시에 쳤다. 처음에는 두 명을 동시에 어떻게 가르칠까 싶었지만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한 명을 어떻게 치는지 가르쳐주고 조금 손에 익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더 연습을 시킨 뒤에 다른 한 명에게 가서 봐 주는 식으로 했다.

아이들은 피아노를 정말 열심히 쳤다. 샬롬은 욕심이 많은 것이 눈에 보이는 친구였다. 또, 완벽주의여서 조금이라도 완벽하지 않으면 다시 치고 다시 치고를 반복했다.


한 번은 울듯한 표정으로

"티쳐 이 부분이 너무 안 돼요."

바이엘을 저리 심각하게 치는 모습에 귀여워 나는 혼자 웃음이 터졌다.

얘들아 고시 공부하니?


아이들이 영어를 잘 알아듣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서 이들과의 대화가 좋았다. 가끔 애들을 연습을 시킨 뒤 지루해진 나는 말을 걸곤 하였다.


"로이, 너는 꿈이 뭐야? 앞으로 뭐하고 싶어?"

"음.. 잘 모르겠어요."

"그럼 니가 제일 좋아하는 건 뭔데?"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요. 사람 그리는 게 너무 재밌어요. 근데 그릴 기회가 잘 없어요."

"미술은 안 배워? 미술 배우면 좋을 텐데. 그림 그리는 도구 같은 것도 하나도 없지?"

"네."


로이는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내가 작은 선물을 주거나 음식을 주어도 항상 욕심 많은 샬롬에게 먼저 양보하였다. 얼굴도 너무 예쁘고 귀여웠고, 성격도 침착하며 항상 감사해할 줄 아는 소녀였다. 그런데 로이는 형편 때문에 부모님과도 떨어져 지내고 다니던 학교도 사정 상 당분간 다니지 않고 있는 마당에 미술까지 배우는 건 굉장한 사치였다. 영어도 같은 또래의 한국 아이들보다도 굉장히 잘하는 데 더 발전시켜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을 할 줄 아는 봉사팀이 다녀가거나 미술 도구 후원을 받게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춤추는 사람이에요? 발레 해요?" 샬롬이 대뜸 물었다. 내가 만날 때마다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키가 크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이렇게 물었다.

"아니~ 전혀!"

"그럼 춤을 잘 추지도 않아요?? 선생님은 꼭 춤추는 사람 같아요"

"응..."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아이들의 눈은 신기할 때가 있다.


"얘들아 미안한데, 내가 5일 동안 여행을 할 것 같아서 다음 주에는 피아노 못 칠 것 같아!"

"와 선생님 어디로 여행 가세요?"

"방비엥 하고 루앙프라방! 너네도 가봤니?"

"오!!!!! 아 안가 봤는데 들어봤어요. 저도 꼭 가보고 싶어요."

"응 나도 티비에서 자주 봤는데, 엄청 아름답더라! 한국에서는 티비쇼에서 방비엥이 나왔는데,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 너희도 나중에 가봐"

"맞아요. 네 저는 아마도.. 대학생이 되면 갈 수 있겠죠?"




하루는 김밥을 쌌다. 한국인에게 자란 로이와 샬롬은 김밥을 알고 있었고, 한 줄 잘라서 주니 너무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이 뿌듯했다. 내가 태국을 갔다가 7시에 겨우 맞춰 돌아와 밥을 못 먹어서 배고파하니 자기들 때문에 밥도 못 먹었냐며 너무 미안해하는 모습이 더 미안할 때도 있었다.


사실 시골에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면 저 아이들은 시집을 가게 될 나이이기도 하다. 라오스 시골은 14,15살만 되어도 시집을 보낸다고 한다. 저개발 국가에서 소녀들의 조혼은 흔한 일이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과 남아시아지역에서 심하다. 어린애가 어린애를 낳는다. 여아는 거의 교육을 받지 않는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아가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여아의 가치는 결혼을 시키면 받을 지참금으로 매겨진다고 한다.

그래서 국제개발단체가 하는 일이 이러한 지역사회에 들어가서 주민들에게 여아의 교육 필요성을 교육시키고, 소녀들의 생리대 및 학비를 후원하는 것이다. 소녀들의 생리와 교육이 무슨 상관이 있냐 하면, 학교에는 화장실 시설도 잘 안되어 있고 생리대가 없는 소녀들은 생리기간에 학교를 나가지 않게 된다. 생리대가 있으면 수업에 빠지지 않고 나가며, 학비를 후원해주면 부모가 그간 딸의 교육을 등한시해서 밀린 학비를 갚고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아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장래에 아이를 낳아 더 교육을 잘 받는 아이로 키워낸다는 것은 상식으로도 당연할뿐더러 연구로도 잘 밝혀진 바이기에 소녀들의 교육을 후원하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다.


이토록 귀여운 로이와 샬롬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시골에서 시집에나 보내져 애를 낳았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물론 교육을 받고 일을 하고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고 있는 현대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아도 여기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 곪아 있는 문제들이 많은 걸 보면 이것이 바른 방향인가 싶기도 할 때가 있다. 결혼도, 아이를 낳는 것도 과거에 비해 심각하게 늦어지고 있는 것이 과연 자연의 순리인 걸까 싶은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 자체로 나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데, 괜히 도와준답시고 끼어들어 그들의 삶의 방식을 헤집어 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이는 잠깐 스쳐가는 생각일 뿐 내 마음의 중심은 역시나 모든 아동은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서울로 돌아오던 날 로이 샬롬에게 편지를 써주고 왔다. 혹시나 가져가면 선물로 줄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지난여름 휴가로 갔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 온 엽서를 가지고 갔었는데, 로이 샬롬이 영어를 알아들으니 이들에게 편지를 써주기로 했다.


'너희들을 만나게 되었다니 정말 영광스러웠어. 너희들은 정말 사랑스럽고 예뻐! 언제나 긍정적이고 항상 감사하는 너희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지금처럼 항상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고, 너희들의 앞으로의 미래가 너무 기대된다.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한국에 올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네!'


로이와 샬롬은 항상 헤어질 때 "Thank you, Teacher! God bless you!"라고 헤어졌다.


로이, 샬롬 God bl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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