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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r 12. 2018

라오스에서 미니밴 도난을 조심하세요


방비엥이라는 꽃보다 청춘으로 핫해진 곳을 가기로 했다. 라오스에서 한 달을 있게 되었다고 하니 라오스와 가까운 중국 지역에 사는 중국인 친구 샤오가 놀러 왔다. 국립도서관에서 일하는 고위 공무원인(부러운) 동갑친구 샤오는 휴가를 내서 나와 함께 일주일 동안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을 탐험해 보기로 했다. 어떻게 그렇게 일주일씩 쉽게 휴가를 내서 오냐고 눈치 보이지 않냐고 했더니 자기네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라고 했다.


라오스 여행이 붐이어서 그런지 한국 블로그와 한인 여행사가 잘 되어 있어 한국 젊은이들은 현지의 한인 여행사를 이용하거나 나이 드신 분들은 패키지로도 많이 온다. 나는 외국인 친구와 함께였기에 영어가 통하는 현지 여행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였다. 이 때문에 한국인들이 넘쳐나는 방비엥에서도 주로 서양인들과 팀이 되어 움직였다.


방비엥에 가기 위한 미니밴을 예약할 때는 비엔티안 여행자의 거리에 많은 여행사들이 있는데, 일일이 들어가서 가격과 여러 조건들을 검토해본 뒤 한 군데를 정해서 예약했다.



라오스 인에게 눈뜨고 코베이다


라오스에서 도시 간 이동시 타는 미니밴


방비엥까지는 예약한 미니밴을 타고 갔다.

미니밴은 비엔티엔에서 각 숙소를 돌며 예약한 손님을 실었고, 방비엥으로 떠나기 전 여러 밴들이 주차되어 있는 곳에 잠깐 멈추었다. 샤오와 나를 비롯해 남유럽에서 온 젊은이들(서양사람들은 나이 가늠이 안된다)과 이십 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한국인 남자 두 명 등 두 자리 빼고 미니밴이 꽉 찼다.  좀 싼 조건이어서 그런지 아침 9시에 모여 방비엥에는 거의 3시가 다 되어 도착하였다. 이는 가는 도중 기사가 중간중간 빈자리에 현지인을 실었다 내려주기를 반복했고 휴게소에서 40분을 쉬다 가는 등 본인이 볼일을 보면서 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3시가 다 되어 지쳐서 도착했지만 어쨌든 도착했으니 그냥 순응하고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숙소에 와 보니 100달러가 없어진 것이다!!


먼저 말할 것이, 나는 물건을 정말 잘 챙기는 사람이다. 여태까지 살면서 무언가를 잃어버렸던 일을 손에 꼽을 만한 일도 없다. 무거운 것을 싫어하여 평소에도, 여행을 할 때에도 가방은 항상 최소한으로 가지고 다닌다. 출퇴근 길 가방에도 항상 손바닥만 한 가방에 딱 립스틱 한 개, 납작한 거울 하나, 카드지갑 하나, 출입증, 이어폰만 가지고 다닌다. 현금을 쓸 때는 지갑에 얼마짜리 지폐가 몇 장 남았는지까지 기억하며 여행을 가기 전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챙겨갈지 다이어리에 쓴 다음에 지워가면서 짐을 챙긴다.


처음에 나는 내가 비엔티엔 집에 놓고 온 줄 알았다.

'아 왜 바보같이 그걸 놓고 온 거야. 근데 분명히 챙겼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며 여행 내내 나 자신을 계속 자책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랐다. 그렇다고 라오스 사람들을 의심하기에 그들은 너무 순수해 보였다.


방비엥과 루앙프라방 숙소비도 내야 되는데 내가 가진 건 5만 원 남짓의 라오스 낍이었다.


그래도 샤오가

"괜찮아 나 4백 달러 정도 있어. 그리고 부족하면 내가 가져온 위안화 환전해서 쓰면 돼." 라고 하며 자기가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도 가방을 뒤적뒤적하더니 가방 다른 곳에 분산해서 두었던 위안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위안화는 라오스에서 안 쓰니까 지갑에서 빼서 캐리어 여기에 분명히 뒀는데!!!! 왜 없지?" 하며 샤오가 온 캐리어를 뒤졌지만 위안화는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우리가 생각해보니 비엔티안에서 라오스 기사가 굳이 사람도 다 탔는데 주차장으로 가더니 대기를 시키며 갑자기 차를 옮겨 타라고 했었다. 짐은 미니밴 위에 실었는데, 그 짐을 직접 내려서 옮기려 하니 우리 기사와 다른 기사들이 달라붙어 자기들이 내리겠다며 다른 차에 타서 있으라 했다. 그때는 직접 옮겨주겠다고 하니 고마운 마음이었다. 짐은 이상하리만큼 한참을 옮겼고 한참 동안 출발하지 않아서 다들 의문을 제기하고 왜 안 가냐고 했지만 기사는 자꾸 기다리라고 했다. 게다가 샤오는 트렁크에 비밀번호를 채우지 않았고, 나도 크로스 형태의 배낭으로 잠금장치가 없었기에 무방비상태였다.


우리는 돈이 없어진 걸 확인하기 전까지 그 가방을 한 번도 연 적이 없기에 미니밴 기사가 가져간 것으로 생각한다. 검색해보니 나 말고도 방비엥에서 소액이 없어진 사례가 꽤 있는 것 같았다. 신고하거나 대처하기는 애매하고 내 기억을 의심할 정도의 적은 금액(그래도 라오스에서는 큰돈)만 가져가는 것 같다.

주차장에서 밴을 갈아탈 때 가져간 건지 휴게소에서 쉬어갈 때 가져간 것인지 모르겠지만 가는 동안 돈 쓸일 없으니 가방에 둬야지 위에 실으니 더 안전한 것 아닌가 하고 아무 의심 없이 돈을 짐 싣는 칸에 둔 내가 잘못이다.


설마 그걸 가져갈 줄은 몰랐다.






한인 네트워크의 힘을 느끼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라오스는 신용카드가 안되기에 카드는 아예 가져가지도 않았다. 다행히 루앙프라방에서 돌아갈 비행기표는 미리 냈고, 비엔티엔에 도착하면 집까지 택시비도 8달러 정도 할 텐데. 그 돈은 남겨놓고 써야 하고. 숙소비는 급한 대로 샤오에게 50달러 빌렸고. 루앙프라방 야시장에서 아기자기한 작은 가방과 기념품들을 잔뜩 기대했는데 못 사게 생겼잖아? 울고 싶었다. 게다가 이틀 뒤는 생일이었기에(평소 생일을 잘 챙기지 않지만 그냥 심리적으로) 괜히 더 짜증이 났다.


샤오는 일단 자기가 빌려주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샤오에게 빌리면 또 갚을 일이 걱정이었다. 한국에서 송금할 거 생각하면 또 번거롭고 다음 달에 중국 갈 일이 있는데 현지 중국은행 가서 무통장입금을 해도 되나? 아니야 나는 연휴에 가잖아? 은행 문을 안 열거야.


샤오도 나에게 빌려주면 동료와 친구들 선물을 사기에 넉넉하지 않았고, 부족하면 자기가 유니온페이 되는 곳에서 돈을 좀 뽑으면 된다고 했지만 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는 건 또 미안했다. 루앙프라방 가는 미니밴에서 만난 한국인들에게 부탁을 해야 되나 한인 여행사에 가서 입금해줄 테니 달러나 라오스화로 줄 수 있냐고 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엄마와는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중 엄마가 아는 교인 중에 루앙프라방에서 교사를 하는 분을 아는 분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건너 건너 한국 인 선생님과 연락이 되었다.


'제가 지금 수업이 있어서 4시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루앙프라방 도서관이 있으니 거기서 봐요^^'


정말 가뭄에 단비 같은 메시지였다. 메시지가 왔을 때는 우리가 루앙프라방에 1시쯤 도착하여 숙소를 찾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을 때이다. 루앙프라방 숙소 직원은 내가 올려다봐야 될 정도로 키도 굉장히 크고 스윗한 중국 남자였는데 먹을 데나 루앙프라방에 대해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내 핸드폰을 가져가서는 구글맵을 켜더니 일일이 저장해주면서,


"여기는 현지식 아침 먹기 좋은 곳이고, 여기는 양식으로 괜찮고, 여기 찍어준 앞집은 돼지 앞다리살 덮밥이 맛있어. 마사지를 하고 싶으면 여기가 가격 대비 괜찮고, 여기는 푸시산 입구야. 5시쯤 사람도 몰리고 잘못하면 해질 수도 있어서 좀 전에 가서 일몰을 보면 좋아." 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아무튼 이 스윗한 중국 남자가 알려준 곳에서 아직까지도 돈 걱정을 하며 밥을 먹고 있는데 선생님에게 메시지가 온 것이다. 갑자기 힘이 확 나면서 당이 충전되는 것 같았다. 생기가 돌았다. 샤오에게 빌린 50달러를 바로 갚았다. 빚진 기분에서 해방되는 느낌이 왠지 모르게 상쾌했다. 밥을 먹고 여유 있게 루앙프라방 도서관으로 향했다.



중국에서 도서관에서 일하는 친구는 여행하면 항상 도서관에서 사진을 찍어서 모은다며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한 20분쯤 먼저 도착해서 도서관 내부를 구경하였다. 시원해서 앉아서 숨을 좀 돌렸다. 내부는 아늑했다. 기부를 하면 라오스 아이들에게 책이나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머그컵이 좀 조악하고 디자인이 예쁘지도 않은데 비쌌지만 구매하면 기부가 된다고 했다. 루앙프라방은 관광객이 많은 곳이므로 관광객에게 홍보하여 기부금을 받고 지역개발과 아동복지에 활용하는 것이 괜찮아 보였다. 우리나라도 코이카가 루앙프라방으로 봉사단을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에서 선생님이나 지역개발사업 스탭으로 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도착했다. 우리 엄마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성분이셨다. 00 씨 맞냐고 하더니 쿨하게 지갑을 열고 얼마가 필요하냐고 하셨다.


"100불? 120불? 120불 정도만 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거 가지고 돼요? 정말 아껴서 잘 다니는 청년인가 보네. 또 부족할 수 있으니 더 빌려도 돼요 필요한 만큼 충분히! 한 150불? 이 정도는 있어야 할 텐데 여기 야시장 쇼핑도 하고!"


그래 모자란 것보단 넉넉히 빌리자! 하고

"아 그럼 150불 빌려주세요!!!"하니 너무 흔쾌히 지갑 속에서 150달러를 꺼내서 주셨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무슨 일을 하시고 어떻게 여기서 사시는 건지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바쁜 가운데 잠시 짬을 내서 만난 듯 급해 보이셨다. 그분은 정말 딱 돈만 빌려주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너무 감사했다. 이렇게 외지에서 낯선 사람에게 돈을 빌리고, 이 낯선 땅에 사는 한국인에게. 아 세상엔 참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인생이 있구나를 다시금 느끼며. 당시엔 초조하고 걱정 많은 여행이었지만 생각해보면 극적이고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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