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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un 02. 2018

방비엥에서 만난 사람들


나는 방비엥 거리 곳곳에 써 있는 한글의 홍수의 놀랐다.

여행사의 여행 상품, 음식점, 마사지샵은 영어와 함께 한글을 병기해 놓았다. 영어보다도 한국어 표기가 더 크게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인 관광객이 확실히 많은 것 같다. 한국의 관광지 같은 느낌이었다.


한국 여행사가 아닌 현지 여행사에서 물놀이 프로그램을 알아보았다.


여행사마다 상품이 조금씩 달랐다.

우리는 서 너 곳을 돌아다녀본 뒤 한 여행사에서 10만낍짜리 동굴 큐빙-카약 코스와 6만낍짜리 남송 강 튜빙을 예약했다. 나름 가격 협상을 한 것인데 괜찮은 가격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예약 확인서. 아저씨 글자체가 우아해서 예뻐서 찍었다






아침 9시에 숙소 앞으로 우리와 같은 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들을 태울 트럭이 한 대 왔다.

트럭 뒤에는 서양인으로 보이는 노부부? 가 이미 타고 있었다.

할머니 같은 분이 "Oh Hi." 하며 우리가 앉도록 안쪽으로 땡겨 앉으셨다.

트럭은 우리를 태운 뒤에도 여러 곳을 들려 동행자들을 태웠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국인 부부와 동남아인 처럼 보이는 40대 후반 정도의 아저씨, 20대 초반의 태국인 커플을 태웠다.

내 친구 샤오는 비엔티엔에서 방비엥 오는 미니밴을 타기 전에 망고 주스를 사러 갔었는데 잔돈이 없어 당황하던 중 뒤에 기다리던 한국인처럼 생긴 사람들이 잔돈을 바꿔 주었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한국인 부부가 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달리는 트럭에서 보이는 시골 풍경

모든 사람을 태운 뒤 트럭은 물놀이 장소를 향해 약 30-40분가량 더 달린 것 같다.

트럭이 달리면서 흙먼지가 날려 눈을 감아야 했지만 눈을 감고 시원하게 바람을 맞는 기분이 좋았다. 풍경 또한 마음을 정화시켜 주었다.



은퇴 후 같이 여행을 하는 미국인 남사친 여사친


패디큐어가 참 예쁘네요


내 옆에는 미국인 할머니가 앉았다. 50대 후반~60대 초반 정도로 보여 할머니라고 하기는 뭐하나 할머니로 표현하겠다.


할머니가 정말 세련된 멋을 풍겨 한참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숏커트한 금색 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핑크색 나이키 쪼리를 신고 발톱에 감색을 예쁘게 발랐다. 나이 들면서도 자기관리를 열심히 해 근육이 있어 보였다. 멋있었다.


그 앞에는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할아버지? 분이 앉으셨는데, 외모와 다르게 목소리가 정말 젊게 느껴졌다. 멋있는 헐리웃 배우 같은 잘생긴 목소리로 영어를 엄청 잘했다. 눈을 감고 들으면 외모와 매치가 안되었다. 두 분 다 영어는 잘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와 같이 화려한 미국인 억양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 긴가 민가 했지만 나중에 밥을 같이 먹으면서 물어보니 미국인이었다.


동굴 큐빙을 마친 뒤 무료로 도시락을 주는데, 이 두 분이 마침 샤오와 내 앞에 앉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동양인 두 명이 서로 영어를 쓰는 게 궁금했는지 우리에게 제일 먼저,


"너네는 어디서 왔어? 영어를 쓰네."라고 물었다.


"아 저는 서울에서 왔어요."

"아 저는 중국에서 왔어요."

"중국 어디?"

"난닝이라고 Guangxi province에 있는데 광저우 근처예요."

"두 분은 어디에서 오셨어요." 내가 물었더니 샤오샤오가,

"미국인인 것 같은데."


할머니는 미국 어느 주에서 왔고, 할아버지는 또 어느 주에서 왔다고 했다.

당연히 둘이 부부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밖에도 둘은 친구라고 했다.

두 분은 파리에서 알게 되어 친구가 되었는데, 할머니가 여행 계획 한 달 전에 은퇴를 했고 마침 할아버지도 은퇴하여 여행을 하려던 차에 연락이 닿아서 동남아를 같이 여행하기로 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선 전혀 있음직하지 않은 일이었는데, 그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프로그램에 포함된 점심 도시락

내가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내 앞에 앉아 밥을 먹던 할아버지는 자기가 태국으로 오기 전에 서울을 경유했다고 말을 걸었다. 어쩌다 북핵 얘기가 나오고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하여 각각 미국인,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 얘기가 번지게 되었다. 나는 우리가 여행할 당시 트럼프가 내한 중이어서 그 얘기를 했더니, 할아버지는 여행하면서 뉴스를 안 봐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샤오는 앞의 할머니와 여행 얘기를 하고 있었다.

"너희 방비엥 다음에는 어디 가려고?" 할머니가 물었다.

"아 저희는 내일 루앙프라방에 가요." 샤오가 말했다.

"오~ 루앙프라방 정말 아름다워. 우리가 여기 오기 전에 치앙마이도 갔었는데, 나는 치앙마이랑 루앙프라방이 제일 아름다웠던 것 같아. 다시 생각해도 환상적이야 정말.  정말 정말 강추야!! 거기서 이 친구가 안 한다고 해서 나 혼자 쿠킹 클래스에 등록해서 했는데, 정말 최고였어."

할머니는 자신의 여행을 떠올리며 다시금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모든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여행기를 쏟아냈다.  


그러면서 이제 자신들은 여행을 마치고 각자 어느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는데, 앞으로 스물몇 시간을 비행기 탈 생각에 고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미국 00 에어라인은 한국 비행기에 비해 너무 별로라고 하며, 올 때 한국 비행기를 탔는데, 음식과 서비스가 최고였다고 말했다.  



캐나다로 망명한 라오스인 아저씨


코끼리 동굴 안 불상


동굴 큐빙 후 카약을 하러 이동하며 걷는 중에 라오스인 아저씨와 같이 걷게 되었다.

굵은 금 목걸이를 하고 외모와 복장이 중국인스러웠다. 이 아저씨는 태국에서 온 젊은 커플과 함께 동굴 큐빙 전 들르는 코끼리 동굴 안에 있는 불상에다 대고 절을 하였다. 불상에 대한 엄청난 존중과 열심을 다했다.


"어디에서 왔어요?" 내가 물었다.

"나는 캐나다에서 왔어."

"아 캐나다요? 원래는 어느 나라 출신인데요?"

"나는 라오야"

"아 아시아인처럼 생겨서 라오스인 인 줄 알았어요. 라오인데 캐나다로 이민 같은 걸 가신 건가요?"

"응 라오스가 공산화되고 우리 아버지가 박해를 당해서 온 가족이 캐나다로 망명을 갔어."



라오스는 사회주의 불교 국가이다. 비엔티엔에 있는 라오스 국립 박물관에 가보면 '공산 혁명을 성공하여 미 제국주의를 함께 몰아낸 자신들의 형제의 나라 베트남'과 자신들의 업적을 치하하는 자료들로 가득하다. 전시 전체에 '제국주의'로 표현된 미국, 프랑스에 대한 반감과 적대감이 일관되게 흐르며 이들을 몰아낸 자신들의 위대한 역사를 전한다.


입구에 있는 박물관 관계자인 라오스 아저씨가 영어를 잘 하는 김에 여러 가지를 물었다. 박물관은 내가 살고 있었던 곳에서도 전기 자전거로 10-15분을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이고, 시내에서는 아마 툭툭을 타고도 만 원이상 나올 법한 거리였다. 그래서인지 관광객이 정말 없었고, 그 아저씨는 얼마 안 되는 관광객들 중 한 명인 나를 열심히 도와주려고 했다.  

"저 앞에 서있는 거대한 동상은 누구인가요?"라고 물었더니, 자신의 지폐에 나오는 사람이라고 했다. '위대한 수령 동지'로 모시는 듯한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김일성 정도의 느낌인 것 같다.

장난스러운 마음이 들어 그 아저씨에게

"여러분의 나라 체제에 만족하시나요?"라고 물었더니

"허허.. 대답할 수 없군요."라고 말했다.


불교가 아닌 종교 집회는 엄격히 감시되며 포교는 금지된다. 일정 수 이상의 한국인 무리는 관광객처럼 보이지만 선교 활동을 하는 것인지는 아닌지를 의심당한다.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것으로 밝혀지면 취업 면접에서 탈락하고, 뽑히더라도 회사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한다.

또 일정 수 이상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경계한다. 그래서인지 대학 내 각종 동아리와 스터디 그룹이 전혀 없어서 놀랐다. 체제를 위협하는 민주주의와 기독교 등을 전파할까 봐 미국인과 같은 외국인 교사의 채용을 엄격히 제한한다고 한다.  


관광만 하고 돌아가는 관광객들에게는 여행하는 동안에 딱히 제약이 없어 그저 물가 싸고 음식도 맛있는 배낭여행의 성지처럼 자유로운 곳으로 느껴지지만 그곳에 있는 주민들의 삶은 매우 열악하다. 우리 기준에는 물가가 싸 보이지만(사실 태국 베트남에 비해 싼 것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평균 $150 정도의 월급을 받는 이들이 생활하기에 상당히 비싼 물가이다. 평균적으로 다 같이 저임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구조이며 교육을 받아도 평생 가난을 타개하기 힘들다. 연줄이 없으면 취업이 어려우며 빈부격차가 심하다.



동굴 큐빙과 카약에 대한 평



동굴 큐빙 코스는 어느 여행사의 어느 프로그램에나 끼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인데 절대적으로 비추이다. 방비엥을 다녀온 사람 중에 동굴 큐빙에 호의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못 봤다.  좁은 동굴을 튜브를 타고 끈을 잡고 이동하는 것인데 힘들기만 하고 재미도 없다. 전지훈련 온 줄 알았다. 껌껌해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젊은 우리에게도 힘들었고,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더 버거워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 중 장년층이 단체로 많이 찾는 것 같다.

반바지와 신발이 없어 현지에서 3-4천원에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디자인과 질이 별로였다. 왼쪽은 현지 가이드


카약 역시 엄청 팔 아프고 힘들다.

한 팀이 제 시간 내에 일정 장소에 도달해야 끝나는 것이어서 뒤쳐지면 안 되었다. 내 인생에 카누, 카약과 같은 배젓기는 세 번째인데, 네덜란드에서 카누 할 때의 악몽이 재현되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좁은 Canal(운하)에서 카누를 했는데, 강 폭이 좁아서 계속 벽에 부딪히거나 방향 조절이 쉽지 않았고 여자 둘이 타기에 힘들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여성 두 명인 우리 배에  현지 가이드가 타 주어서 수월했으나, 그 사람만 젓게 하기에 너무 힘들 것 같아 열심히 저었더니 며칠 동안 팔이 얼얼하였다. 강 폭은 넓어서 부딪힐 걱정은 없었지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서둘러 쉼 없이 따라가야 했다.

게다가 내 친구가 운동신경이 심각하게 없어서 자기는 노를 아예 못 젓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나 혼자 열심히 저어야 했다.


스웨덴에서의 카누잉


한편, 스웨덴에서 카누를 할 때는 편안했다. 일정 시간 내에 어느 곳에 열심히 저어 당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넓고 잔잔한 호수에서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아무 방향이나 저어 가는 것이었다. 배 안에서 누워있기도 하고 널찍한 바위에 잠시 쉬어 햇살을 받으며 누워있다가 가도 되었다.  


카약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이다.






튜빙 하며 남송 강 따라 내려가기


우리는 그냥 강에서 튜브를 타고 누워 떠내려가는 것을 하고 싶어서 이 프로그램을 찾아 헤맸다.


동굴 큐빙-카약을 끝낸 뒤 숙소에 돌아와 잠시 쉰 후 3시쯤 튜빙을 떠나는 트럭에 몸을 실었다.

우리 두 명 외에 20대 유럽인 4명과 비슷한 또래의 영어를 잘 하는 현지인 남성 가이드 이렇게 7명이 한 조가 되었다.

트럭을 타고 또 30분 넘게 달려 도착한 강가에서 거대한 검은색 튜브가 하나씩 주어졌다.


튜브를 타고 강물에 몸을 맡기면 자연스럽게 떠내려 갔다. 가끔 손을 이용하여 방향을 조절할 수 있었다.


튜브에 누워서 하늘도 보고, 싱그러운 자연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떠내려갔다. 마음이 차분해졌고 이런 여유가 너무 좋았다. 같이 떠내려가던 일행과 대화를 할 기회가 많았다.



프랑스, 독일 청년들과 함께


남자 3명에 여자 1명이었는데, 프랑스인 2명에 독일인 2명이었다.

트럭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샤오는 그들이 프랑스인인 것 같다고 했고 나는 독일인인 것 같다고 했는데 둘 다 있었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1년 정도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다른 일을 구하기 전에 4개월 동안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을 그만두고 여행 중인 점에서는 나와 같았다. 그나저나 4개월이나 여행하는 걸 보면 돈을 많이 모았냐고 했더니 돌아가서 취직해서 갚아야 한다고 했다.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일대를 오래 여행하면서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가 자유를 즐기는 그들이 부러웠고,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한 뒤 금방 또 일을 구해 돈을 벌면 되는 것 아니냐는 여유로운 생각도, 이와 같은 생각이 이상한 것도 실현 못할 이상도 아닌 분위기 속에 사는 것이 부러웠다. 이에 동참하는 친구들과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만나고 헤어지며 여행하는 것도 좋아 보였다.     


샤오는 튜브 타는 것도 어려워했다. 혼자 저 멀리서 한참동안 오지 않았다. 물이 흐르니까 멈추어 기다릴 수도 없고 먼발치에서 잘 오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가야 했다. 나중에는 가이드가 튜브에 발을 걸어서 끌고 내려왔다. 나중에 만나서 물어보니 샤오는 자기가 팔이 짧아서 손이 물에 닿지 않아 젓지 않아 따라잡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한편, 그룹 속에 있던 나는 그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그들은 내가 지근거리에 있으니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도 영어로 얘기하는 배려심을 보여주었다.


"아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를 동남아에서 보내게 됐어. 더운 나라에서의 크리스마스라니. 처음이야" 한 프랑스인 남자가 말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어느 나라에 가는데? 난 안타깝게도 그전에 돌아가서 크리스마스는 못 보내는데. 너네 나라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창이겠네."


튜빙을 하는 중간중간 쉬어가는 곳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맥주도 팔고 음악도 나왔다. 유럽인들과 함께 있으니 다시 유럽 교환학생에 온 것 같았다. 대학생 친구들과 파티를 하며 수다를 떨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아 즐거웠다.


우리는 대학 때 뭘 공부했고 무슨 일을 했으며,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를 나누었고, 샤오와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물어보아 알려주었다. 나의 유럽에서의 생활을 나누기도 하고 그들의 아시아 여행기도 들었다. 그들은 한국의 경제, 사회, 복지 상황은 어떤지도 물었다.


한 명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한국 남성들이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하는 현실을 언급하며 이에 대해 듣고 싶어 했고, 분단국가라 돈과 인력이 많이 들겠다고 걱정했다.

내가 전쟁 억지를 위한 군사비가 복지 예산과 맞먹을 것 같고(정확히는 모르지만), 학교에서 대사 특강을 들었을 때 우리나라의 외교 예산 및 인력이 거의 북한 리스크에 크게 좌우된다고 들었다고 하니 꽤 충격을 받은 반응을 보였다.


튜빙이 끝난 뒤 그들은 맥주를 마시며 편을 나누어 게임을 하자고 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우리는 배도 고팠고 아침부터 물놀이를 한 터에 피곤해서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아쉽지만 우리는 루앙프라방에서 우연히라도 보게 되면 보자고 하고 헤어졌다.


우리가 타고 돌아갈 트럭에는 다른 물놀이 팀들이 타고 있었다.

다 백인들이었다. 내 눈에는 동유럽인처럼 보이는, 금발머리를 땋고 연한 핑크색 옷을 입은 6-7살쯤 되어 보이는 귀엽게 생긴 여자 꼬마와 그의 남동생이 부모님과 함께 타고 있었다. 트럭 한가운데 쌓여있는 검은색 튜브 위에 앉아 꼬물꼬물한 손으로 부모님의 다리나 팔을 잡은 채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해 흙길을 달리는 트럭이 꿀렁댈 때마다 몸을 통통 튀기는 것이 너무 귀여웠다.  


내 바로 앞에는 유럽에서 온 것 같은 예쁘장한 백인 여자 두 명이 앉아 있었고, 트럭의 각 끝에는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앉아 위험을 즐기는 영국 억양의 좀 더 어려 보이는 남자애들 두 명이 앉았다. 이 중 한 명은 페트병에 채운 술을 들고 있었고, 스피커를 들고 있던 다른 한 명은 음악을 크게 틀었다. 여자 두 명도 그들이 튼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남자 둘은 약간 취한 채로 트럭 발판에 떨어질 듯이 서서 다른 차에 장난으로 겁주었고, 재밌다고 깔깔댔다.



어휴 철없다.

나는 눈을 돌려 날이 점점 어둑어둑해지려 하는 시골길의 풍경을 넋을 놓고 보기 시작했다.

 

와 정말 좋다.

 

복잡한 서울의 일상에서 내가 갈망하던 것들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덜컹 거리는 흙길을 달리는 트럭 속에서

풍경을 보며 깔리는 음악,

눈을 잠깐 안쪽으로 돌리면 달리는 트럭 안에서 미친 듯이 흥겨워 보이는 저들.


지나가는 다른 트럭 속에도 섞여 있는 여러 인종을 보며, 유럽에서 같이 파티를 하며 놀고 웃고 즐기던 대학생 때를 회상하였다. 그때로 돌아온 것 같았다.

여러 시공간이 오버랩되어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들었다.


한참을 생각에 빠진 뒤 정신을 차려 보니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교환학생을 마치고 자기 나라로 돌아온 사람들이 (가끔은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로)  공통적으로 보이는 향수병 아닌 향수병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약간은 해소되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물놀이 후 노곤한데도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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