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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Sep 19. 2022

아이엠 에메랄드

제주 구좌읍

@제주 비밀의 숲

태풍이 올 거라던 제주의 햇살은 뜨겁다.

여긴 졔에쥬!><

제주도 사람들은 에어랩을 사면 돈이 아까울 것 같다. 집 밖에 나오자마자 바람 한 방에 다 풀려버릴걸. 끈적이는 화장도 하면 안 좋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다 달라붙어서는 기분 나쁘게 안 떨어진다.


제주공항엔 제주리 식탁, 제주애월카츠인가 하는 식당들이 생겼나 보다. 제주도는 18년도 여름에 오고 처음인데 그땐 못 본 것 같다. 가는 길까지 제주 음식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과, 일상에서 익숙하지 않은 지명이 담긴 상호명이 낯설게 다가왔다. 돌랑돌랑상점이라는 귀여운 어감의 카페에서 땅콩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일행을 기다렸다. 일반 우유 아이스크림에 땅콩크림과 간 땅콩, 갈지 않은 땅콩 몇 개가 올려져 있었는데 고소하다.


의자만 있는 곳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니 바로 눈앞에 4살, 7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과 아빠가 앉았다. 4살짜리 꼬마 여자아이는 하늘색 꽃무늬 캐드키드슨 배낭을 자기 거라고 잘 간수하며 의자에 앉았다. 예전에 런던에서 산 캐드키드슨 카드지갑 디자인이어서 반가웠다. 혼자 의자를 등반하면서 기어 올라가는 게 귀엽다. 음료와 아이스크림이 나왔다는 진동벨이 울리자 아빠는 주문대로 가고 두 남매는 걸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뭐에 홀린 눈빛으로 당연히 아빠를 쫓아간다. 좀 가서 잘 앉아있어, 하고 아빠는 애들을 챙기면서도 단호하게 얘기한다. 귀찮다는 투보다는 사람들 많은 데서 폐 끼치지 않도록 아이들을 잘 통제하려는 모습으로 보여 보기 좋았다. 꼬마는 또 의자에 등반을 하며 앉았고, 자기 가방도 잘 있는지 곁에 두며 확인했다.


내가 정면으로 보이는 방향이 아이들 뷰이기도 했지만여자 꼬마 아이가 귀여워서 움직임을 지켜보게 되었다. 얇은 머리카락이 묶인 요란한 색의 대형 꽃무늬 머리핀을 한 꼬마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를 향해 히, 하고 미소 지으며 “앙뇽하떼여” 하고 인사했다. 꼬마의 아빠가 꼬마의 이름을 부르며 뭐해, 하고 제지하려 했다. 꼬마는 오옴마, 하고 말했다. “엄마는 저기 있잖아.” 하고 내또래로 보이는 젊은 아빠가 말했다. 나에게 정신 팔리다 손에 든 아이스크림이 팔에 줄줄 흐르던 꼬마에게, 나는 꼬마의 아빠에게 괜찮다는 인상을 주려고 꼬마에게 어어, 흘러! 하고 말했다. 꼬마는 아빠가 닦으러 와줄 때까지 계속 히히, 하면서 귀엽게 웃었다. 꼬마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안녕, 나는 에메랄드야

제주의 동쪽은 한가하다. 북적이는 애월, 중문, 서귀포와 같은 서남쪽보다 덜 관광지스럽고 사람이 적다. 주말인데도 차가 없다. 작은 하얀색 레이 한대가 홀로 가로수길을 달린다. 레이는 기름도 적게 먹고 주차도 편하다. 작고 귀여운 거에 비해 창문의 시야는 시원해 숲길을 달리다 보면 영화가 펼쳐지는 것 같이 몰입된다. 운전을 해봐야 하는데 운전면허를 딴 뒤에 한 번도 운전을 해보지 않아 차를 빌리면서도 운전자로 등록을 안했다. 운전은 필요성도 못 느끼고 자신이 없다. 차를 산다면 하얀색 볼보 SUV를 사고 싶다. 과연 그럴 일이 있을까?


마른 수국길을 지나가니 제 계절에 이 길을 지나가면 정말 예쁠 것 같다. 수국이 피는 계절에 제주도에 꼭 오고 싶다. 창문을 열고 달리면 시골 냄새 같지 않은 시골 냄새, 풀냄새 같지 않은 풀냄새가 들어온다. 뻔한 냄새가 아닌데 쨍하면서도 은은한 게 정말 좋다. 여러 냄새가 조화로운 향수 같다.


9월이라 물이 차가워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수영복을 챙겨 오지 않았는데 낮에는 덥다. 괌에 다녀온 뒤로 스노클링에 빠져서 다음 여름에는 꼭 스노클링을 하고 싶다. 괌에서 하려고 했다가 못한 패들보드도 타야지. 제주도 여행 중에는 승마체험을 하고 싶었는데, 하려고 하던 시간에 비도 오고 막상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게 되었다. 긴 청바지도 챙겨 왔는데.


괌에서 산 마이클 코어스 청바지는 일자 핏이다. 사면서도 나팔바지면 더 예쁠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일자 핏은 처음 입어보는데 나름 톰보이 같은 느낌이 좋다. 양갈래 머리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 골반 라인이 없이 남자처럼 일자로 떨어지는 바지라 미국 시골에서 온 소녀룩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신발도 괌에서 산 미국 신발! ‘대리님은 말괄량이 삐삐 같아.’ 하는 나의 일상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영화 <놉>에 나오는 흑인 여동생의 이름은 에메랄드다. 길고 탄탄하게 마른 몸에는 아무거나 걸쳐도 모델 같다. 에메랄드라는 이름은 반짝반짝하고 고귀하면서도 특색 있는 아름다움이 느껴져 마음에 들었다. 캐나다의 에메랄드 빛 호수가 생각나 아주 깨끗하고 맑고 우아한 느낌이 든다. 놉에서 받은 영감으로 글을 쓸까 하고 제목만 아이엠 에메랄드라고 저장을 해두다 시간이 지나서 영화는 사진이 하늘로 흩날리는 잔상만 남아 기억이 안나고 제주의 에메랄드색 동쪽 바다를 보니 이 제목도 좋은 것 같다.


들판도 예쁘고 숲도 예쁘다. 길쭉한 편백나무 숲도 좋다. 옷을 맞춰 입고 와서 가족사진, 커플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다. 제주에서 웨딩촬영까진 아니지만 가볍게 놀러 와서 가지고 있는 원피스에 면사포만 가져와서 찍으면 예쁜 사진이 될 것 같다.

@카페동백

구좌읍에 왔으니 당근케이크를 파는 예쁜 카페에 가고 싶었는데 오늘 문을 닫았다. 밖에는 부슬부슬 비가 기분 좋게 온다. 우산을 쓰고 싶지 않은, 사선으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비. 마침 읽고 있는 단편도 <비>라는 서머싯 몸의 단편이다. 대안으로 치즈케이크에 인도 허브차를 마신다. 치즈케이크는 거의 치즈로 이루어져 있는데, 느끼하지 않고 맛이 정말 좋다. 헛간 같은 곳이 신의 한수인 콩밭? 뷰가 예쁘다. 요즘에는 바다뷰보다 들판뷰 카페가 좋다.


따뜻하고 은은한 제주. 제주에 살며 예쁜 카페와 맛집을 다니며 살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 주말마다 오름도 오르고 스킨스쿠버, 승마도 배우면 일상이 재미있을 것 같다. 혼자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지금은 바다를 바라보며 제주 돌담 라떼를 마시고 있다. 9천 원이나 하다니, 비싸다. 다시 뚜벅이의 일정으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차를 빌려 가기 힘든 곳을 다니는 것도 좋지만 역시나 버스 노선을 검색하며 낯선 길을 찾아가는 여행이 조금 더 매력적이다.


한낮의 남쪽 바다는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주말의 동쪽 바다보다 은은하게 파도가 친다. 바람이 불어 가방에서 집게핀을 꺼낸다. 다시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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