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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Sep 11. 2023

부산에서 크리미한 굴랴쉬(Гуляш)

부산역에서 길을 건너면 있는 차이나타운에는 러시아 식당과 상점이 많다. 부산에서 살거나 부산을 자주 가는 경남 사람들도 내가 부산역에 러시아 식당이 많다고 하면 잘 모른다. 저번에 스모크그릴이라는 식당에 갔었는데 이번엔 카페 나타라는 곳에 가봤다. 9월인데도 햇살이 뜨거워 선글라스가 필요할 만큼 눈이 따갑다. 카페 나타는 2층에 있는데 을지로 감성 카페처럼 계단을 올라가면 회색의 딱딱한 사무실문이 닫혀있다. 블로그를 보니 닫힌 느낌이지만 열고 들어가면 된다고 해서 동그란 회색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테이블마다 빨간색 촌스러운 의자들이 가득하고 손님이 아무도 없다. 내가 들어가자 몽골인처럼 생긴 까만 머리의 어린 여직원이 맞이한다. 나에게는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있는 메뉴판을 가져다주고, 잠시 뒤에 들어온 서양인 외모의 남자는 러시아어로 주문을 하더니 자리에 앉는다. 메뉴판을 넘기는데 메뉴가 정말 많다. 만두도 있고 국수도 있고 양갈비도 있고 각종 고기 요리가 많다. 요즘 계속 위장이 아파서 고기를 그닥 먹고 싶지 않은데 딱히 대안이 없다. 그렇다고 러시아 식당에 와서 샐러드만 먹고 가긴 싫다. 끄바쓰를 마셔보고 싶은데 끄바스는 없고 캄포트가 있어 주문한다. 굴랴쉬를 주문하려고 하니 밥이나 마카로니 중에 고르라고 한다. 아, 밥이요!

헝가리에서 먹었던 토마토 김치찌개 느낌의 굴라쉬가 아니다. 첫 입을 먹었을 때  와 진짜 맛있다, 하게 된다. 이국적이고 생소한 음식을 먹었을 때 어, 이게 의외로 내 입맛에 잘 맞네, 하고 조금 더 후한 점수를 주게 되는 그 느낌. 부드러운 크림맛이 강하면서 아주 고소-하고 달달하면서 아주 아주 약간 새콤해서 지루하지 않다. 소고기의 양이 많아서 많이 남겼다. 어쨌든 매우 새로운 맛이다.


헝가리 굴라쉬보다 러시아식 굴랴쉬가 더 맛있다. 크리미하고 찐득해서 이것대로 매력이 있다. 지루할 때쯤 양배추와 당근 샐러드를 집어 먹는다. 샐러드가 정말 맛있다. 양배추 샐러드는 독일식의 신맛은 아니고 아주 약간 신맛이 도는 피클정도고, 당근 김치는 고춧가루를 뿌렸는지 아주 약간 매콤하면서 당근인데 굉장히 맛있게 잘 먹힌다. 양배추 피클을 먹으며 교환학생 때 옆방에 살던 독일인 언니가 해준 아주 시큼한 독일식 양배추 샐러드 맛이 생각났다. 셔도 너무 시지만 개운하고 맛있다. 나랑 생일이 하루차이라 생일파티도 같이 했지. 라플랜드 북극 여행도 같이 했는데 잘 지내려나. 보낸 시간에 비해 그렇게 그리운 친구는 아니다.

캄포트 주스는 색깔이 나타내듯 베리류인 것 같은데 새콤한 맛은 없고 단맛이 강해서 뭔지 정확히 모르겠다. 미각과 후각이 발달하지 않아서 섬세한 표현이 어려운 점이 아쉽다.


아직도 위장이 좀 울렁거리게 아파서 많이 못 먹고 남겼다. “계산해 주세요.” 하고 다가가니 평소에는 러시아어를 쓰는 중앙아시아 외모의 여자 직원이 유창하지만 아주 약간 외국인 티가 나는 발음으로 “만원입니다.” 하고 카드를 받아 계산을 해준다.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서서 나가려 하니 “또 오세요.” 한다. “네!” 하고 대답하고 서울의 낡은 건물의 두꺼운 사무실 철문 같은 회색문을 열고 나온다. 다음에는 블린이나 쌈싸나 양갈비를 먹어봐야지. 아, 부산에 갈 때마다 다른 식당들을 모두 가볼까. 우크라이나 식당도 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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