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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ul 04. 2022

은하수가 좋은 이율 생각한 적 있나

대구 삼덕동

출장지였던 대프리카의 최고 기온은 37도였다. 동대구역까지 srt에서 에어컨을 쌀쌀하게 쐰 덕에 도시철도로 향하는 길은 참을만했다. 밥 먹으러 가는 길이랄지, 지하철 타러 걸어가는 고 잠깐잠깐 5-10분 동안 바깥공기를 쐬는 것은 참을만하다. 출장지에 가서 대구가 연고지인 직원을 만났다. 오늘 많이 더운 거죠? 했더니 이 정도는 별로 안 더운 거라고 그렇게 덥냐고 물었다. 한여름엔 이것보다 훨씬 덥다고.


예전에 같이 일했던 부장은 갈치조림을 사주었다. 뭘 먹겠냐고 하길래 오랜만에 부장님을 만나니 메뉴가 중요하겠냐고 했다. 2주 전부터 전화해서 금요일에 대구에 가니 휴가 쓰시지 말고 나랑 저녁을 먹자고 했더니 반가워했다. 근 2년 반 만에 만나서 대화를 했다. 아빠 감성으로 직원들을 대하는, 내가 좋아하는 부장이다. 오랜만에 만나니 수다스러운 앵무새처럼 지지배배 할 말을 쏟아냈다. 업무를 끝내니 4시가 되었는데 근 한 시간 동안 부장과 수다를 떨다가 갈 정도였다.


대구 사무소 직원들은 나를 환영해주었다. 부장이 소개해 준 나랑 이름이 같은 김 씨의 여자 대리는 싹싹하게 다가와 나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자기가 가진 커피 캡슐을 가져가서 얼음을 타서 주었다. 보통 오나 보다 하고 슬쩍 쳐다보고 마는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인상 깊게 남는다. 나에게 궁금한 것도 묻고, 우리 부서의 업무는 어떤지 묻고 공감하며 리액션을 해주었다. 대구에 왔는데 퇴근하고 어디 가실 거냐며, 가볼 만한 여러 곳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은 같이 일하고 싶어 진다. 부장에게 저 직원이 참 싹싹하고 밝다고 일도 잘할 것 같다고 하니 안 그래도 에이스여서 뺏기기 싫다고 했다. 하나만 봐도 열을 안다고 손님을 응대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진심 어린 태도로 대한다. 대구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다 헤어지고 나올 때는 4-5명이 엘리베이터까지 나와 인사를 해주었다. 따스함을 느꼈다. 대구에 와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캐리어를 끌고 반월당까지 지하철을 탔다. 반월당이라는 대구 여행 이후에는 잊고 있었던 이름을 다시 듣게 되다니 생소하면서도 반갑다. 반월당 지하상가를 통해 나오는 길에는 반월당 닭강정을 파는 곳이 있는데 그간판을 보니 한번 왔던 게 생각났다. 호텔로 가는 출구만 찾고, 나와서는 지도 없이 찾아갈 수 있었다. 저번에 만두를 먹었던 곳 쪽으로 가면 되겠다.

@중앙로 떡볶이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에어컨을 켰다. 열을 최소화하기 위해 청록색으로 된 커튼도 착착 소리를 내며 닫아버렸다. 캐리어를 열고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한 뼘 정도 되는 길이의 찢어진 청바지다. 추천받은 경대병원역에 있다는 돈가스집을 갈까 하다가 카페에서 읽을 책을 담은 가방을 메고 멀리 가고 싶지가 않았다.

저번에 가려고 했던 떡볶이집에 가보기로 했다. 대충 어디에 있는지 알겠어서 지도로 위치를 대충 본 뒤 방향성을 두고 감각으로 찾아갔다. 내가 사는 곳처럼 완전히 익숙한 곳이 아닌데 한번 가본 곳을 잘 찾아가면 희열이랄까 하는 기분이 남다르다.


저번에는 줄이 길고 또 기다리려고 하니 매진이 되었다고 했는데 오늘은 바로 앉아서 먹을 자리가 있었다. 납작 만두도 먹어보고 싶은데 하나하나씩 시키면 양이 많겠지, 하고 있는데 주위를 쓱 보니 떡볶이에 만두가 같이 나오는 메뉴를 다들 먹고 있었다. 메뉴판 상단을 자세히 보니 떡볶이+만두=4,500이라고 써있다. 아! 떡볶이 플러스 만두 주세요. 만두는 안에 속이 거의 들어있지 않았는데 떡볶이 소스랑 같이 먹으니 맛있다. 떡은 길쭉하고 두툼한 가래떡이다. 소스는 카레향도 약간 난다. 백종원 사대천왕에 나온 집이라고 써있다. 어느 곳에도 분점을 낸 적이 없다고도.

이미 여기까지 오는 길에 속옷까지 젖을 정도로 땀이 주룩주룩 났다. 송골송골 맺히는 수준이 아니라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미 앞머리는 땀에 갈 곳을 잃었다. 휴지를 뽑아 이마를 닦았다. 국내 여행에 와서 브라를 빤 적이 처음이다. 카페에 가기 전 소품샵 세네 곳을 구경하였다. “유튜브 보면 대구 소품샵 투어만 하는 사람도 있대요!” 하고 대구 직원들에게 말했더니 처음 들어본다며 의아해했다. 그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이어서 대수롭지 않거나 현지인들은 굳이 검색해서 동네를 찾지 않고 언제든 갈 수 있으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크록스 지비츠를 사기 위해 소품샵 몇 군데를 들렸다. 저번 여행에서 안 가본 곳도 있었다. 다른 데서 지비츠를 사면 비싼데 여기는 개당 1,500-1,800원이면 살 수 있다.


지난번에 분위기가 좋았어서 대구에 오면 북성로에 가보려 했는데 나와 이름이 같은 대리가 추천해준 경대병원역 근처 삼덕동에 있는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그래도 호텔에서 걸어서 15분이 안 걸렸다. 지하철을 타기는 아까운 거리다. 아까보다는 해질 시간이 되어 약간 바람이 불어서 시원했다. 아까 길을 걷다 너무 더워서 소품샵에서 금색 집게핀을 샀다. 대프리카에서는 필수품이다. 대프리카에서는 헤어, 메이크업이 무용지물이다. 땀범벅이 되어도 정말로 예쁘게 무너지는 메이크업 기술이 필요하다.


카페는 간판이 없다. 카페가 있을 위치가 아닌데 주택 같은 건물이 나오더니 불은 켜져 있는데 식당인지 뭔지 영업장인지 알기 어렵다. 영업 중이라는 빨간색 바 하나만 나와있다.

계단 쪽으로 다가가보니
켜진 불이 느낌있다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데 다른 주택 개조 카페와 차별화된 뻔하지 않은 느낌을 준다. 주택으로 되어있는 가정집 방문 열듯이 여는 문을 열고 들어가, 이 문이 입구 맞는 거지? 속으로 생각하며 두리번두리번거리며 들어가면 주문을 하는 곳에 남성 직원이 한 명 서있다. 페퍼민트 레몬 하나 주세요. 따뜻하게 드릴까요 차갑게 드릴까요? 아, 아이스로 주세요. 내 말씨가 외지인 같은지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진동벨을 받아 들고 1층을 구경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나무 바닥으로 된 계단 소리가 좋았다. 옛날 나무 바닥처럼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아니고 새로 만든 바닥 같지만, 관리가 잘된 2층으로 된 대사관저 나무 바닥 같다. 사당역에 있는 벨기에 구 공관이었던 층고 높은 미술관에서 쓸법한 계단 바닥.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나서 좋다.

2층에 올라오는 순간 매료되는 어두운 색감의 벽과 발랄한 오리
여럿이 의자를 가져가 자유롭게 앉으면 예술적인 공간이 되어버릴듯
막 칠한 것 같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완성도 있는 공간
한칸만 옆으로 가면 달라지는 공간. 널찍하고 시원하다
8시가 되자 어둠이 깔려 조명이 켜진다
이 색깔들은 조명을 활용해 건너편 벽에 비춰진다.
이렇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널찍한 테이블에 앉기로 했다. 천장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나와 땀을 식혔다. 조명이 쏘아 밝아지는 자리에 책을 두고 읽는다. 손님은 나뿐이다. 제임스 조이스 단편과 노트, 만년필을 꺼냈다. 차분하게 책이 읽힌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산란한 마음도 욕망과 욕심도 없다. 자줏빛 잉크, 갈색 모습과 같은 색감이 떠오르는 단어에 매료된다. 읊조리듯 몽환적인 음악이 이어진다.


은하수가 좋은 이율 생각한 적 있나

이렇게 푸.. 우.. 욱~ 빠져버렸나 봐~~~ 너~~ 에게

으으음

푸우우우욱.. 아아아아아..


음료와 함께 찹쌀떡이 같이 나왔다. 한입에 넣고 입속에서 말랑말랑 좌우로 옮긴다. 두리번거리다 왼쪽 편을 바라봤는데 야외 조명이 켜졌다. 단편 두 개를 읽고 나니 어느새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손님은 나뿐이다. 평일이라 해도 금요일 저녁인데 이렇게 손님이 없나. 새로운 도시에서 일하면 매일 감각적인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일이 재미있을 것 같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는 호텔로 향하는 방향성을 둔 뒤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보기도 하고 돌아 돌아 걷다가 들어갔다.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로 방향을 틀었는데 골목 입구부터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가게마다 신나는 음악소리가 짱짱했다. 열지 않은 클럽과 야외에 앉을 수 있는 맥주집, 문을 모두 열어 놓은 와인집을 들여다보면 사람이 가득했다. 신나는 비트의 음악과 소화기를 터뜨린 듯 연기가 무겁게 내려앉고 내 발걸음도 마음도 괜히 활기차 졌다. 흥분과 열기가 잠깐 확 올랐다. 나도 같이 놀고 싶었다. 그런 기분이 드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넌 술도 안 먹잖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순간, 출장 가면 술을 안 먹는데 왜 피곤하냐는 동료의 이 말이 떠올랐다.


대구에 살면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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