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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Oct 11. 2023

몽골리안 캐시미어와 카키색 매니큐어

“센베노. 매니큐어 되나요?” 하고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네일을 받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국영백화점 근처에 네일아트 하는 곳 한 일곱 군데를 돌았다. 몽골어는 할 줄 모르지만 러시아어 알파벳으로 Маникюр(마니큐르)라고 읽히는 간판이 골목 구석구석 주위에 많이 보였다. 구글에 nail, 하고 쳤을 때보다 막상 길을 걸을 때 오히려 더 많이 보였다. 그래서 여기저기 그냥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많은데 막상 일곱 군데 정도 만에 할 수 있는 데를 만난 건, 예약을 하지 않아서, 이미 바빠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손님이 번거로워서, 네일 아트사가 없어서였다. 한국 사람이세요? 하면서 1시간 뒤에 오세요. 하고 나를 보고 한국어를 쓴 몽골 사람도 있다.


지하로 들어갈 때는 뭔가 음침하고 무서운 느낌도 들어서 순간적으로 누아르 물 같은 데서 납치당하는 상상을 했지만, 중반 정도 내려오자 기왕 내려온 거 들어가 보자, 하고 들어갔다. 대부분은 미용실 하고 같이 하는 곳이었다.


몽골 여행 마지막 날이라 현금을 다 쓰고 카드로 하려고 해서 지금 가능하다고 앉으라는 곳에서 “카드 결제 되나요?” 하고 한 번 더 영어로 물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밝은 몽골 여성이었는데 간단한 단어와 문장 소통이 가능했다. 끄덕이길래 와 이제야 하는구나, 하고 앉아서 받기로 했다. 여러 군데 돌아다니느라 땀이 날 지경이라 외투를 벗고 앉았다. 얼마인지, 할만한 색깔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일단 하겠다고 앉았다. 여자는 내 손에 뭘 발라주더니 “스크럽”이라고 말하며 화장실 가서 손을 씻고 오라며 화장실을 가리켰다.


손을 씻고 와 자리에 앉자 여러 색의 손톱 모형을 꺼내더니 고르라고 한다. 나는 가을 네일로 카키색을 생각하고 왔는데 조금 진한 청록색과 그나마 카키색에 가까운 색, 이렇게 초록 계열은 두 종류 밖에 없다. 그래 마음에 들지 않지만 카키색에 그나마 가까운 이 색으로 하자, 하고 하나를 가리켰다. 여자는 알겠다고 끄덕이더니 손톱 팻말을 집어넣고 은색의 날렵한 물체를 꺼내더니 한 손씩 손톱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굉장히 꼼꼼하게 그러나 아프지 않게 뜯어낸다.


아까부터 옆에 소파에 앉아 아이가 파마하는 것을 기다리는 몽골 아줌마와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긴 생머리 소녀가 눈에 들어온다. 몽골 아줌마는 티비 속의 게르에서 막 나온 것처럼 생겼다. 그런데 연한 카키색 야상을 입고 있고 눈썹 문신도 한 것 같이 화장도 해서 도시인 같다. 아줌마가 대뜸 “손톱 어떻게 할지 사진 찍어온 거 라도 있어요? “ 하고 한국어로 내게 묻는다. 너무나 정확한 한국 발음, 그런데 한국인은 아닌 사람의 억양에 깜짝 놀랐다. 잠시 당황해서 “엇! 네. “ 하고, ”아 입으신 색깔처럼 카키색으로 하고 싶어서 이 색깔 괜찮아요. “ 하고 계속 말했다. 아줌마의 한국어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말할 때 천천히, 그리고 알아들을 수 있게 배려하는 말하기를 하지 않고 말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한국에 가 본 적이 있으세요?” 하고 물었다. 한국어로 말을 걸었으니 계속 대화를 나누면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다.

“응. 우리 언니와 딸이 한국에 있어서 몇 번. 거기서 일하고 있어. 딸은 서울에서 대학에 다녀. “ 와, 몽골 사람들은 한국어를 왜 이리 잘해. 아줌마는 한국에는 언제 가냐, 언제 왔냐, 공항은 뭐 타고 가냐 등 질문을 하는데 애정이 담겨 있었다.


“몽골 사람들은 원래 말을 다 잘 타요? 어제 말 타는데 막 어린애들도 말 잘 타던데 너무 멋있었어요. 신기해요. 말 타는 거 너무 재밌어서 몽골 또 오고 싶어요. “

“응. 나도 잘 타. 우리는 다 잘 타. 나도 어릴 때부터 말을 탔어. 우리는 방학에 시골에 가서 말도 타고 게르도 다 있어.” 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와, 우리가 길에서 만나는, 이렇게 일반인 같은 청바지에 잠바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초원에 가면 돌변해서 막 말 몰고 돌아다니는 거야? 하고 생각했다. 히어로물에서 일반 사람들 속에 섞여 생활하다가 갑자기 변신하고 각성해서 초능력자가 되는 것 같이 대단해 보인다. 이 생각을 한 번 하자, 식당에서고 공항에서고 몽골 사람들만 보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또 양고기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양고기가 정말 맛있어요. 한국에선 비싼데 여기는 싸고 맛있어요.라고 말하니 아줌마는 그래? 한국이 비싸? 하고 말하며 안 추워? 우린 겨울에 추워서 양고기를 먹어. 추울 땐 양고기가 좋아, 하고 말했다.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니 옆에 앉은 소녀는 호기심을 가진 미소로 쳐다보았다.

나는 손톱을 그래도 2주나 기르고 간 건데도 여자는 too short, do you want long? 하고 웃으며 말했다. 여자는 인조 손톱을 길게 붙였다. 저렇게 길게 붙이고도 다른 손톱을 잘 다듬네. 미용실 손님인 다섯 살 정도 돼 보이는 몽골 여자 어린이가 여자에게 다가와 칭얼거렸다. 여자는 자기는 두 살 된 딸이 있다고 말했다. 와, 정말요? 너무 어려 보여서 결혼했는지 몰랐어요! 친구들도 다 애가 있어요? 일반적이에요? 하고 물으니 자기는 스물네 살이고 일반적이라고 Normal, 을 강조해서 말했다. ”얘는 한국에 가고 싶어 해. “ 하고 야상 잠바 아줌마가 거들었다. ”oh welcome to korea!” 하고 내가 말했더니 수줍어하며 “my dream”이라고 말했다.


초록색이 손에 조금씩 칠해지기 시작하며 점점 짙어지자 의외로 마음에 든다. 손톱에 구현되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예쁘다. 생각했던 연한 카키는 아니고 톤 다운된 청록색 느낌인데 확실히 쨍하지 않고 톤 다운된 느낌이 좋았다. 한국에 돌아가서 가을 무드를 연출할 수 있는 색. 네일아트를 해 주는 여자는 시종일관 밝은 사람이다. 밝고 긍정적인 사람. 손을 아주 꼼꼼히 봐주고 마지막엔 로션으로 마사지도 해 주고 끝낸다. 와 마음에 든다! 다 끝내고 가려고 옷을 입고 얼마냐고 물었다. “포티 싸우전.” 4만 투그릭이다. 16,000원 조금 안 되는 돈. 와 싸고 좋다! 카드를 내려고 하니 여자는 뭐라 뭐라 하더니 손을 저으며 따라오라고 하면서 문을 열고 나간다. “잘 가~~” 하고 몽골 아줌마가 인사한다. 어! 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고 엉겁결에 나간다.


여자는 옆 건물에 가려고 한다. 뭐지, 카드기가 없다고 다른 집에 가서 긁는 건가? 하고 따라 가는데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CU다. 응? 뭐지? 했더니 그는 ATM을 가리킨다. 아, 나는 신용카드 밖에 없어서 안되는데. 카드기가 있다는 줄 알았네. 나는 여자에게 나는 신용카드라 안되고 국영백화점을 가리키며 한국 돈이 있으니 투그릭으로 바꿔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가방을 벗어 맡기고 갔다 오겠다는 행동을 취했다. 그러자 여자는 아아~~ 하고 사양하며 손을 저었고 다녀오라고 동작을 했다. 처음 보는 나를 믿어주는 게 감동이었다. 내가 갔다가 마음이 바뀌거나 귀찮거나 해서 다시 안 올 수도 있을 텐데. 그 마음이 고마워서 백화점 4층인가를 얼른 올라가서 첫날 환전했던 곳에 가서 2만원만 바꿨다. 조그만 구역에서 환전을 하는 아줌마는 5만 투그릭 하고 얼마를 바꿔주었다.  

만 투그릭 짜리 네 장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혹시나 이곳을 까먹을까 봐 간판을 한 번 더 기억하고 출발해서 길은 외웠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요. 여기요. 고마워요.” 하고 여자에게 4만 투그릭을 건넸다. 여자는 괜찮다고 잘 가라고 미소 지었다.

몽골식 밀크티라고 먹어보고 싶어 시켰는데 곰국맛. 입맛에 맞는다!
손톱 색 마음에 들어

국영백화점에 있는 카페베네에서 한숨 돌리고 공항 가기 전 두 시간 남은 시간을 활용해 울란바토르 백화점에 가려고 일어났다. 울란바토르 백화점은 도보 5분 정도로 이번에는 안 갔던 길로 걸었다. 가는 길에는 보세 의류 샾이 몇 개 있다. 한 군데 들어가서 보니 내가 나랑톨시장에서 샀던 가죽코트 종류가 더 많다. 만져보니 부드럽고 양가죽 같다. 내가 산 것보다 더 가벼운 것 같은데 여긴 얼만가, 하고 가격표를 본다.


내가 몽골에 오기 전에 사고 싶은 1순위는 카멜색 코트였다. 겨울에 데일리로 입을 카멜색 코트가 없어서 캐시미어로 사야지, 하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몽골에 와서 고비 캐시미어, 국영백화점 여러 캐시미어 매장, 샹그릴라몰, evseg, 고비 캐시미어 팩토리 같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곳도 찾아가서 봤는데 카멜색은 없었다. 있어도 색이 베이지에 가까워서 내가 찾는 색이 아니다. 검은색, 회색, 핑크색은 디자인도 다양하고 이쁜 게 진짜 많은데 왜 카멜이 이렇게 없는지 모르겠다. 몽골리안 캐시미어는 듣던 대로 부드럽고 입었을 때 가볍고 느낌이 좋다. 코트가 무거우면 어깨 아프고 안 좋아서 싫어한다. 검은색이랑 회색 코트가 있어서 안 샀는데 다음에 몽골 오면 하나 사가고 싶다.

울란바토르 백화점에 오니 국영백화점과 달리 여성복 브랜드 종류가 많다. 캐시미어뿐 아니라 캐주얼, 정장류 등 일상복으로 예쁜 매장이 많다. 아방가르드하고 특이한 옷들도 많아서 시간만 많으면 더 구경하고 살 걸 아쉽다. 맨 위층으로 가면 가죽 신발 브랜드도 많다. 이탈리아 가죽 신발 브랜드도 있고, 시장보다 예쁜 디자인에 세련된 가죽부츠가 정말 많다. 이미 가죽부츠가 종류별로 있어서 정말 독특하고 예쁜 게 있으면 사려고 했는데 사지는 않았다. 다음에 가면 울란바토르 백화점을 더 샅샅이 구경해야지.


여성복 매장 중에 코트 파는 곳들이 몇 군데 있었다. 울 코트도 있고 캐시미어 30~50퍼센트 정도 든 코트들이 있었다. 카멜색 코트가 꽤 있어서 둘러봤는데 50 이하여서 더 둘러보다가 디자인이 예쁘고 옷 속에 부착된 것을 보니 캐시미어 80에 레이온이 들어있다고 써있는 카멜색 코트가 여러 개 있는 곳이 있었다. 디자인이 가죽이 섞여있는 것부터 꽤 다양하게 예쁜 게 많았다. 그중에서도 카키색 코트를 입었을 때 정말 멋스럽고 우아하게 흘렀는데 사이즈가 34 짜리 뿐이라 조금 작아 아쉬웠다. 괜찮은 카멜 코트는 사이즈가 40이라 약간 크고, 끈으로 묶는 적당히 기본 디자인에 색깔이 딱 원하던 카멜색인 코트를 입어봤다. 38로 딱 예쁘게 맞는 사이즈여서 마음에 들었다. 가격도 무려 23만원으로 캐시미어 80인데 굉장히 저렴하다.


“이게 몽골리안 캐시미어인가요?” 하고 물어보니 영어를 잘 못하는 여자 직원이 “투르크” 하고 말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인가 그런 걸 말하는 건가? 싶었는데 터키를 말하는 거였다. 아 마음에 드는 코트를 발견했는데 터키 캐시미어라니. 그래도 한국보다 훨씬 싸고 마음에 드니 사자, 하고 샀다. 터키 캐시미어는 80프로나 들었다고 하는데도 몽골 캐시미어에 비해 훨씬 뻣뻣하고 부드러움이 덜하다. 몽골에서 터키 캐시미어를 사다니. 다시 생각해도 황당하다. 그래도 싸게 샀으니 툭툭 걸쳐서 막 입어보자.

몽골리안 캐시미어 집업 후드. 굉장히 부드럽고 따뜻하다
요새 읽는 책. 너무 재밌다
추석 전에 문학동네에서 보내준 책. 몽골 갔다와서 다 읽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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