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네 Dec 11. 2023

서울대 대학원에 합격했다고 하면 보이는 반응

“꺄 저 휴직해요!” 다섯 시 반쯤 최종합격 화면을 보고 소리쳤다. 8-5 근무유형인 사람, 휴가인 사람을 제외하고 부서에 차장, 막내대리뿐이었다. 둘이 예산 때문에 대화를 나누다 똥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대학원에 합격했다고 하니, “오오! 축하해요. 뭘 그리 놀래. 난 당연히 될 줄 알았어,“ 하고 여자 차장이 말했다. 그러더니 내 자리로 다가와 합격증을 띄워 놓은 화면을 보더니 둘 다 깜짝 놀랐다. ”대학원 간다더니 지원한 데가 서울대였어?“ 하고. ”과장님 대단해요! “ 막내대리도 입틀막하며 놀라움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차장이 조심스럽게 ”과장님 대학은 어딜 나온 거야? 와, 서울대 석사는 아무나 못 가. 대단하다 정말.“ 하고 물었다.


자기는 지방에서 석사를 나왔지만 석사한 친구들 보면, 결국 서울대 교수가 된 친구는 있지만, 서울대 석사를 한 사람은 없다고 부연했다. 난 서울대만 쓰겠다고 말한 것 같은데 옆자리 과장만 주의 깊게 들었었나 보다. 똑같은 대학 또 다니기에 질려서 자대는 가기 싫었고 유학을 가고 싶었는데 서울대 정도면 그래도 문과에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니 (귀찮은) 유학 준비를 포기하고 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지원해서 서울대가 안되면 유럽으로 석사를 떠나려고 했다. 그래서 다른 대학은 생각을 아예 안 했었다. 아무튼 놀람과 동시에 차장은 부서에 사람이 비는 것이 걱정되는지 달력을 보면서 언제 휴직에 들어갈 거냐고 물으며 대책 마련을 시작한다.


다음날 나는 이사에게 메신저를 보낸다. 주변에서는 어떻게 이사님한테 메신저를 보내냐고 식겁하지만 나를 예뻐하시기도 하고 어른들은 하급직원이 먼저 다가가면 좋아한다. 이사님~~~~ 잘 지내세요? 저 좋은 소식이 있어요~~ 하면서 대학원 합격 소식을 전했다. 이사님이 휴직 최종 승인자이시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보고해서 들으시게 되는 것보다 직접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응원해 줄 걸 알았다. 이사님은 고시 출신 정부 관료인데 온화하고 대화가 잘 통하며 열심히 노력한 걸 알아주신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 기뻐하시면서 젊을 때 공부해 두면 도움이 될 거라면서 우리 ㅇㅇ과장이 너무 자랑스럽네~ 하고 칭찬해 주셨다.


친한 동료들에게만 먼저 석사 휴직 계획을 전했다. 문서로 보는 것보다 미리 알리고 싶은 사람에게만. 서울대 대학원에 합격했다고 하니 첫 반응은 다들 놀람. 와 대단하다, 공부하고 싶어 했구나, 하며 역시 우리 똑똑이 가서 인맥도 많이 쌓고 경험하라고 말한다. 인재였네 서울대도 합격하고, 하는 걸 보니 서울대 대학원 입학이 쉬운 건 아닌가 보다. 그리고 서울대는 학부가 아니라 대학원만 가도 똑똑한 사람의 범주에 끼워 주나보다. 아이비리그가 아니면 대학원은 돈만 내면 가는게 아닌가, 라고 생각했던지라 놀라는 반응이 놀라웠다. 그와 동시에 난 그 전과 지금이 똑같은 나인데 무언가 보여지는 성취의 결과물로 인재인지를 판단하는 현실도 느꼈다.


이제 벌어 놓은 돈 쓰며 가난한 학생으로 돌아가요. 그래도 방학 때 한 달 살기도 하고
아프리카도 가보고 못 만났던 외국 친구들도 만날 거예요. 너무 기대돼요!


내가 번아웃 증후군으로 쉬고 싶었던 걸 아는 사람들은 2년 동안 중간에 돈이 떨어져도 돌아오지 말라며 푹 쉬면서 공부하라고 응원해 준다. 벌써 입학 전에 2주간 여행할 비행기 표를 끊고 숙소 예약을 해뒀다. 세계 곳곳에서 만날 약속을 벌써 몇 개나 했다. 로스쿨 다니는 친구가 아이패드 프로로 대학원 과제니 모든 걸 해결했다고 추천해줘서 보니 프로에다가 매직키보드에 아이펜슬 사려면 무슨 250이나 드네, 와 무슨 장거리여행경비다. 비싸지만 공부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기대된다. 진짜 대학생 때 노트북 화면으로 논문 읽기 진짜 힘들었는데 세상이 좋아졌다. 이 얘기 들으면 대학 때 노트북도 없던 세대에서는 그것도 감사하라고 할 것 같네.


석사 따고 돌아오지 말고 민경채로 사무관이 되라는 동료도 있고(관심 없다), 관리자들은 아무래도 거기서 쌓은 인맥과 지식 경험으로 돌아와서 고생해 줬으면 한다. 1월에 출산 예정이라 산전 휴가와 육아 휴직에 들어간다고 메신저를 보낸 동기에게 나도 곧 휴직한다고 해서 대화했는데 어디에 가냐고 물어 서울대라고 하니 열심히 준비했구나! 하고 말한다. 잠깐 순간적으로 나의 능력에 대한 가치 절하의 뉘앙스인가 싶었지만 대수롭지는 않아 커멘트를 달지는 않으며 일상 대화로 이어갔다. 그냥 뭐 내가 살아온 과정과 결과로 평가를 받은 것이지 대학원 입학을 위해서 딱히 노력을 들인 건 없다. 질투하는 뉘앙스를 가진 사람은 몇명 뽑았어? 하면서 많이 뽑았네, 하고 말하기도 한다.


석사를 하게 되면 박사를 하고 싶어질 것 같은데 아직 모르겠다. 석사 논문 통과를 못할지도 모르고 졸업 전에 결혼을 할지도 모르고 다른 관심사를 발견하거나 연구에 빠져 연구원으로 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근데 나는 한 우물을 깊게 파는 연구원 체질은 아니다. 금방 질리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 직장에 다닐지도 몰랐고, 가게된 과에 관심이 생겨 대학원을 가게될 지도 몰랐다. 내가 결국에 어떤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게 될지도 기대된다. 의문을 가졌던 것, 해답이 궁금했던 것, 다른 사람의 의견이 궁금했던 것, 일하면서 지식이 짧아 아쉬웠던 것이 해소될 것 같아 기대된다. 포럼과 특강들에서 얻을 영감과 새로운 사람, 환경에 설렌다.


너무 목적을 가지고 살고 돈돈돈 거리며 살지 않아도, 그냥 마음 흐르는 대로 살아도 길은 나타난다. 내가 왔던 길은 늘 새롭다. 내가 살아온, 지향하는 컨텐츠가 좋고 스스로 자신이 있으면 알아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고, 어떤 길을 가든 그 끝이 엉망이 되지 않을 거라는, 아니 오히려 멋질 거라는 확신이 있다. 엉망이 되더라도 나의 회복 탄력성을 믿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