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어 방랑기(2)

해외 대학교에서 영어로 수업 듣기

by 모네


전공 영어 수업 따라가기


외국 대학교 수업은 우리나라와 많이 달랐다.

수업에 필요한 단행본 1-2권 외에 교수님은 각 수업 전에 미리 읽고 와야 할 논문 5개 정도를 업데이트 해 놓으셔서 수업을 따라가려면 읽고 가야 했다. 수업시간에는 교수가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읽으며 생각해 온 것을 바탕으로 교수는 수업의 논의의 방향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논문에서 읽은 사례나 논리 또는 자유롭게 자기 나라의 사례나 본인의 생각을 손들고 말했다. 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너도 나도 손들고 말할 기회를 얻고자 했다. 이러한 수업에 참여하려면 당연히 나도 논문을 읽고 소화를 하고 가야 했다.


이외에도 과목마다 소논문을 한 편씩 써야 했고, 약 15분 정도 자신의 소논문을 발표하고 학우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논문 주제 선정은 교수님이 도와주었고, 팀이 조직되기도 하고 혼자 해야 하는 과목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발표를 안 좋아해 발표 수업을 피해서 수강 신청했었기에 영어로 발표하고 질문까지 받아야 하다니 어려웠고 두려웠지만 해야 했다.


교수님이 지정해 준 논문 목록에는 학계에서 저명한 석학의 이름이 많이 보였다. 원어로 전공 글을 읽는 것이 말로 듣기에는 어려울 것 같지만 석학들의 글은 쉽게 읽히면서도 논리 흐름을 잘 보여준다. 딱히 어려운 영어 단어를 쓰지 않기에 막히지 않고 읽히며, 그 논리만 따라가도 공부가 된다.


처음에는 논문을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구석구석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으려고 했고, 읽다가 모르는 사례가 나오면 일일이 다 찾아보느라 정작 큰 흐름을 놓쳤다. 막상 모든 문장을 다 읽었지만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었다. 처음 한 달 동안에는 수업에 관찰자로 앉아 있었던 것 같다. 학생이 교수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르고 교수의 말에 딴지를 걸며,

"That sounds absurd"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 너무 신기했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신기했다. 새로운 수업 문화를 구경하기 바빴고, 딱히 질문하고 싶은 것도, 대답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교수님과 학우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수업시간에 종종 교수님이 틀어주는 미국 <the Daily show>의 말은 너무 빨랐고 미국식 유머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완벽주의 버리기


점차 내 공부 방법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수업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논문을 읽을 때 크게 크게 읽기 시작했다. 굳이 중요하지 않은 작은 것에 집착하여 오래 읽지 않고 큰 흐름을 위주로 읽었다. 그리고 노트 2장 내로 '핵심'을 정리하면서 읽었다. 논문 제목과 목차를 적고, 논문에 쓰인 표현 그대로를 적으며 정리했다. 뼈대가 정리된 채로 수업을 들으니 교수님이 우리에게 읽힌 글의 논지와 유사하게 강의를 진행하며 발표를 유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의 내용. 수업시간에 쓴 거라 날림이다


교수님은 미국인, 유럽인, 파키스탄인으로 다양했고 미국인은 빨라서 어렵고 비영어권은 억양이 세서 어려웠다.

교수님 강의를 토플 공부할 때처럼 노트 테이킹 하며 핵심 단어와 요지를 적으며 들었다. 토플 지문에서 나오는 지문처럼 논리의 흐름이 정리되었다. 멍하니 있다가 수업 내용을 놓칠 수 있기에 노트 테이킹 하는 것은 나 스스로를 긴장하게 하고 수업에 집중하게 했다.

교수님 논지의 흐름을 잘 따라갈 수 있게 되니 그 질문이 논문의 어떤 부분을 논의하기 위해 물은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손들고 질문에 답할 수 있었고, 더 궁금한 것은 수업 끝나고 교수님을 붙들고 질문까지 하게 되었다.


또, 수업을 몇 번 듣다 보니 학생들이 모두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정답을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답을 내뱉고 저런 생각도 있구나를 모두가 함께 깨달으며 궁극적인 논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의미 있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에 나도 생각나는 답을 말해서 틀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냥 손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었다.





미드가 현실이 되다



내가 수학한 곳은 유럽인데, 꼭 미국에서 공부하지 않아도 외국인과의 소통 수단은 영어이기에 영어 환경으로 충분했다.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정도 타고 도착했을 뿐인데, 도착하자마자 공항에 마중 나온 버디(결연 학생을 buddy라고 불렀다)는 내게 영어로 질문을 쏟아냈다. 당황스러웠다. 실전이었다.


교환학생 오리엔테이션도 하고,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내가 수학한 학기에 미국인이 서른 명 정도 와서 많았고, 미국 호주인 외에는 독일, 북유럽인들이 영어를 제일 잘했다. 유럽은 에라스무스라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어서 북유럽, 동유럽, 남유럽, 중부 유럽 곳곳에서 왔고, 아시아인의 수는 적어서 중국인, 일본인, 대만인 정도가 5명 남짓 있었다. 내가 한국에만 있었다면 평생 이렇게 생소한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친구가 될 수 있었나 싶다. 다양한 유럽인들을 만나 익숙해진 덕에 한국에 돌아와 유럽 정치 관련 수업을 듣다가 시험 문제에 '유럽 연합 회원국 전체를 쓰시오'라는 깜짝 문제가 나왔는데, 의외로 많이 못 쓴 학생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학점을 잘 받았던 것 같다. 나는 친구들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나라 이름을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처음 사람을 사귈 때 듣는 질문은 일정 부분 정해져 있었다.

What's your name? Where are you from? What do you study? What brought you here? 정도였다.

처음엔 일상에서 영어를 쓰는 것이 어색하여 단답형으로 말했는데 계속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대답하는 것도 참고하며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흡수하여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때 써먹기도 하였다. 대화가 점점 확장되었다.


나에 대해 더 궁금한 사람들은 파생 질문을 이어갔다. 한국의 역사를 묻기도 하고, 북한에 관해서는 3명에 1명꼴로 물었으며 한국과 수도의 인구는 어느 정도 되냐고 물은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서울 인구가 얼마나 되지? 하고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제 때 얘기를 못하면 아쉽지만 집에 와서 찾아봤고, 다음에 질문받았을 때 자신 있게 대답했다.


생활 면면이 사실 미드 속의 한 장면이었다. 미드는 자막이라도 있지, 현실은 그 공간에 그 사람과 대화하는 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의 말 뜻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할 때마다 사전을 찾아가며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모국어가 아니니 다른 언어로 그 사람 말 전체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 사람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각 국의 억양과 발음이 담긴 영어를 구사하여 우리가 익힌 미국식 발음과 전혀 다른 말을 한 것일 때도 많았다. 그래서 모든 말을 캐치하려고 하기보다는 뉘앙스와 핵심을 이해하고자 했다.

처음엔 강박증적으로 한국어로 떠오른 그 단어를 영어로 표현하려고 애썼고 떠오르지 않을 땐 대화 중에 한참을 떠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곧 그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하여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더라도 다른 쉬운 영어로 표현하며 그 자리를 모면하게 되었다. 점차 나는 쉬운 말로 '소통'을 하게 되었다.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기숙사 방문을 열고 나가면 영어 포화 세례를 받아야 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학생이

Hi how are you?를 시작으로

"어디 가냐, 수업을 가냐, 지난 여행은 어땠냐, 오늘 계획은 뭐냐, 오늘 파티에 올 거냐"

를 묻기 시작하며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대화와 상황이 이루어진다. 초기에 영어가 어색할 때 무방비 상태로 기숙사 방문을 나갔다가 정신이 없었던 것을 교훈 삼아 의식적으로라도 나의 지금 상황,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영어로 생각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또는 수업시간에 만날 사람의 질문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처음엔 머릿속으로 영작을 계속했지만 나중에는 영어로 바로 떠올랐고, 나의 일상이 바로바로 쉽고 자연스럽게 영어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현지인 친구가 초대해준 자신의 공연과 뒤풀이

교환학생으로 사는 1년은 내게 한국에서 영어로 쓰지 않는 표현을 내뱉게 해주는 상황을 많이 제공하였다.


교수님과 학교 관계자, 대사관 직원 등과 메일 주고받기
빨래 기계 사용하기
전화하기
모의 국제회의 하기
은행에서 계좌 만들기
길거리의 낯선이와 대화하기
버스 타고 국경 넘기
길 묻기
물건 사기
가이드 투어 하기
한글 가르치기
집에 손님 초대하여 파티하기
게임하기
제2외국어 영화 영어 자막으로 보기
현지 중학교 가서 한국 소개하기
등등



나보다 영어 잘하는 사람의 말 카피하기



우연히 미국에서 온 교환학생인 Amy가 자신의 바이블 스터디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바이블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내가 질문했을 때 Amy가 대답하는 것, Amy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들으며 원어민의 표현의 노출되게 되었고, 그날 익히게 된 괜찮은 표현을 습득하게 되었다. 미국인들과 둘러앉아 맥주 한 잔을 하는 자리는 토플 스피킹 같은 시간이었다. 가령, 비닐봉지를 쓰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과, 점점 벽이 다가와 공간이 줄어드며 죽는 것 중에 선택하라면 무엇을 선택할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얘기하는 건전한 게임을 했다.


옆 방에는 Franka라는 독일인 여자가 살았는데 나보다 영어를 잘했다. Franka와 요리하며, 파티에 같이 가고 같이 일주일 이상 여행 중에 대화하면서 그녀가 쓰는 영어 문장을 카피하게 되었다. 한 번 만나고 마는 사람, 계속 연락하게 되는 사람 등 만나는 사람은 많아졌고, 상황과 대화가 다양해졌다. 하루 동안 대화량이 많아지니 습득하는 괜찮은 구어체도 많아졌고 내 것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써먹었다.



적극적으로 감정 표현하기



나는 한국말을 할 때도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이는 언어를 배울 때 굉장히 안 좋다고 느꼈다.

하고 싶은 말만 딱 하고 확실한 영어 표현만 딱 하는 것은 영어 실력을 향상하는 데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영어적으로 문법에도 맞고 표현할 수 있는 단어도 많고 영어를 듣고 이해하는 능력도 더 낫지만 이런 나보다 더 소통을 잘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다른 유럽인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들은 순간순간 드는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내가 속으로만 하는 감정 표현이나 생각을 바로바로 밖으로 얘기했다. 영어를 잘 못하고 틀리더라도 다양한 감정을 묘사하며 적극적으로 타인과 소통하였다. 아 저래야 영어가 늘겠구나. 그 뒤로 나도 별거 아닌 말도 입 밖으로 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귀찮아도 내 감정을 영어로 표현하려고 했고, 상대방과 나는 친구관계이기 때문에 기다려주고 이해해주므로 영어가 틀리고 느려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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