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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Feb 21. 2024

쿠즈군축 카페에 앉아 글 쓰고 낯선이와 대화하기

위스퀴다르, 이스탄불

지난주에는 하루 종일 흐리더니 이번주부터 화창해지기 시작했다. 주말 동안 제이넵이 사는 퀴타히야에 갔다가 이스탄불 호텔로 돌아왔다. 제이넵이 이스탄불을 올지 내가 고향을 갈지 몰랐기 때문에 호텔을 그냥 이어서 예약했었다. 작은 시골 마을인 퀴타히야 옆에는 에스키셰히르라는 조금 더 큰 도시가 있다. 주말에 돌아오는 기차가 없어서 두 밤 자고 월요일 아침 부르사행 버스를 탔다. 부르사에서는 이스탄불로 페리로 1시간 50분이 걸린다.


기침을 자꾸 해서 대중교통 탈 때 불편하다. 지난주에는 으슬으슬 춥고 감기기운이 심하더니 제이넵 집에서는 목감기가 슬슬 올라오고 이스탄불 와서는 코로나 때처럼 목이 너무 타들어가서 잠을 못 잤다. 지금은 기침이 심해서 잠을 잘 못 자고 낮에도 기침을 많이 하기 시작한다. 부르사에서 돌아온 첫날이자 이스탄불 떠나기 이틀 전인 어제는 도저히 몸이 안 좋아서 낮 1시까지 호텔 방에서 쉬었다. 아침에 잠깐 약 사러 나갔다가 돌아왔다. 클리닝 레이디는 내가 계속 방에 들어있어서 청소를 건너뛰었다. 계속되는 이동에 피곤하기도 했고 목이 너무 아팠다.


오늘 아침도 기침 때문에 더는 잠을 못 자고, 그래도 이스탄불 마지막 날이니 일찍 나가보자, 하고 Üsküdar 지역의  Kuzguncuk 동네에 왔다. 알록달록한 집들이 있는 컬러풀한 작은 동네인데 카페거리가 있다. 위스퀴다르까지 지하철을 타고 도착했는데 오자마자 배가 아프다. 밖에서 화장실 가는 걸 싫어하는데 이거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 구글맵에 toilet, 하고 쳐본다. 주변에 공중 화장실이 있다. 길을 걷는데 기침은 폐병 환자처럼 끊이지를 않고 배는 아프다. 모스크 안에 있는 무료 화장실 같은데 문도 안 잠기고 영 여기서는 해결을 못하겠어서 다시 나왔다. 조금 걷다 보니 안정을 찾아서 쿠즈군축 가는 버스를 찾아보았다. 한 6분만 버스 타고 3 정거장 가면 된다.

알록달록하고 빈티지한 집들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데 재미있다. 관광객이 거의 없다. 평일 낮이라 현지인들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조용하고 한가하다.


지난주에는 너무 추워서 히트텍을 껴입어도 비바람이 부니 너무 추웠다. 우중충하고 어둡고 우울한 이스탄불만 보다 갈 뻔했는데 햇살이 따뜻해서 너무 좋다. 제이넵 어머니가 헤어질 때 주신 다홍색에 표범무늬가 있는 스카프도 목에 두르고 다닌다.


어젯밤 톱카네에서 트램을 타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길에서 휴지 작은 걸 내밀며 사달라는 눈빛을 보내는 남성이 있었다. 4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 손을 붙잡고 있었는데 I am from Syria. 하면서 간절해 보였다. 시리아 난민들이 터키에 많이 있다더니 도시 곳곳에 앉아서 구걸하는 할머니, 폐 플라스틱병을 큰 투명비닐에 모으고 다니는 초등학생 고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심지어 에미네뉘에서는 4살 정도로 보이는 까만 패딩을 입은 뒷모습의 아이는 맥도널드에서 나온 쓰레기 봉지 앞에 앉아 감자튀김, 고기 등 먹을 수 있는 걸 분류해서 담고 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뼈를 바르고 쓰레기 더미속에서 먹을 걸 찾아내는 뒷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그래도 어디서 잠바는 줬는지 추운데 안타깝다. 누구의 잘못인가. 전 세계 어린이들이 적어도 굶지는 않으면 좋겠다. 뭐 사 먹으라고 돈을 주고 싶은데 현금이 없다. 사실 근처에 atm이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을 보았다. 전쟁이 싫다. 평화가 좋다. 그런데 또 타협은 싫다. 적절한 타협의 선이 어디까진지.

쿠즈쿤즉을 정처 없이 걷는데 한 골목에 천막을 치고 죽 늘어선 거리에 핸드메이드를 팔고 있다. 할머니, 아줌마들이 각자 자기가 만든 걸 꺼내고 팔고 있다. 뭐 뜨개질한 것부터 주얼리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중에 한 할머니가 팔고 있는 목걸이 매대로 가는데 예쁜 것들이 많다. 하나씩 목에 대보는데, Handmade, 하고 영어로 말한다. 내가 How much? 하니 two hundred fifty, 하고 말한다. 간단한 숫자 영어를 하는 할머니다. 거울이 없어서 핸드폰 셀카로 이것저것 대보는데 옆 테이블의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긴 머리를 집게핀으로 위로 틀어 올린 카멜 코트의 아줌마가 거울을 구해다 준다. 250이라니 만원 정도니 생각보다 싸다. 목에 착 맞는 목걸이를 찾고 있었는데 검은색의 시크한 목걸이가 눈에 들어온다. 아, 현금이 없는데. 두명이나 달라붙어 있고 이것저것 봤는데 안 사긴 그래서 ATM 가서 현금을 뽑아오겠다고 번역기로 말했다. 그랬더니 뭘 사고 싶냐고 따로 챙겨주겠다고 봉투에 넣어 보관한다. 내가 산 것 마음에 든다. 셔츠에 하면 예쁠 듯 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바닷가 쪽으로 가는데 버스정류장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결국 어차피 비상금도 필요했으니 500 리라 정도 찾는다. 체크카드 결제보다 수수료가 비싸서 현금은 웬만하면 안 썼는데 또 버스카드 충전에 카드가 안 되는 곳도 있고 길에서 뭘 사 먹으려면 또 필요할 때가 종종 있다. 약속은 빨리 지키는 걸 좋아해서 얼른 할머니한테 가서 200리라를 주고 목걸이를 찾아왔다.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미술사를 공부하는 독일인 친구가 너무 예쁘다며 하트를 보냈다. 항상 아름다운 것, 예쁜 것의 사진에 서로 좋아요를 누르곤 한다. 거리의 아름다움, 빛과 그림자, 아름다운 것을 스토리에 올리며 내가 좋아한 포인트를 잘 공감해 준다.


글을 쓰고 있는데 내가 기침을 계속 너무 심하게 하니 혼자씩 앉는 테이블 옆자리에 앉은 백발의 아저씨가 괜찮냐고 묻는다. 얼굴이 하얗고 터키인 같지는 않게 생겼다. 아, 감기에 걸려서요. 하고 혹시 코로나 등으로 의심할까 봐 말했다. 감기 역시 전염성일 테지만. 눈치가 보여 나가야 하나 싶어 시킨 차를 몇 모금 마시며 진정해보려 했는데 기침이 안 멈춘다. 하던 노트북을 멈추고 아저씨는 백팩에서 가루에 타먹는 타이로 핫인가 하는 약을 주더니 따뜻한 물에 타먹으라고 한다. 나도 가방에 사서 급하게 약국에서 산 약 한 알을 먹자, 타미플루 알약으로 된 것도 주더니 가지라고 한다.


잠깐 좀 진정되었는데,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말을 붙인다. 홀리데이냐 이스탄불만 온 거냐 무슨 일 하냐 묻는데 영어도 이런저런 얘기도 잘 통한다. 한참 물어본 것에 대해 대답을 하다가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이냐 물었다. 자기는 쿠즈군죽 주변에 살고 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데 요가 강사이기도 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카르마 얘기를 하고 뭐 마스터 얘기를 하면서 자기가 마스터한테 배움을 받는다고 하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젊은 남자다. 왜 이리 젊냐고 물어보니 이 사람은 우주에 온 우리와는 달리 어나더 레벨인 마스터라고 한다. 그래서 그건 종교나 물으니 자기네들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며, 경험하지 않은 모든 종교들의 믿음은 유치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근데 자기들은 영생을 얻는다고 믿는다고 말하며, 또 인생이 원처럼 순환한다고 말한다. 이 종교 저 종교 짬뽕된 거 같은데 들어주다 보니 벌써 2시가 가까워졌다. 시계를 보며 아, 난 가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아저씬지 모르고 타미플루 주고 대화 나눌때 인스타그램 친구 하고 싶다 해서 친구가 되었는데 한 6시쯤 이직 쿠즈쿤즉에 있으면 자기가 집에서 버섯크림요리 하고 있는데 먹고 가라고 했다. 그리고 9시 이후에 자기 일 끝나면 탁심에서 댄스파티하는데 오라고 했다. )


위스퀴다르로 버스를 타고 돌아와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에미네뉘까지 가는 페리가 보인다. 2시행인데 아직 15분 남았다. 아, 페리가 싸긴 한데(내일 공항 갈 차비를 적당히 남겨둬야 하는데 애매하게 더 충전하긴 싫어서) 더 오래 걸리고 에미네뉘에서도 호텔까지 걸어야 하니, 그래 한정거장인 지하철을 타자(결과적으로 내가 착각한건데 지하철도 가격이 같다). 지하철은 한정거장인데 바다를 건너는 거리인데 바다 밑을 뚫은 건가, 인간은 참 똑똑하다. 배도 아팠으니 호텔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시르케지역에 도착했는데 아까 온 출구가 어딘지 모르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었는데. 엘리베이터가 하나 보이긴 하는데 영 아까랑 다른 느낌이다. 역시나 나와보니 낯선 곳. 지도를 켠다. 아 그래도 가깝네.


호텔로 돌아와 화장실을 가려고 하는데 방청소가 안되어있다. 오늘은 해줬으면 좋겠는데. 볼일을 시원하게 보고 나왔는데 옆방에 흑인 청소레이디가 청소 중이다. 아, 익스큐스미, 저 10분 뒤에 나가는데 청소해 주실 수 있나요? 하고 말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 하고 말했다. 30대 같은데 차분해 보인다. 아까 그 테라플루같은 약은 따뜻한 물에 타먹는데 레몬 맛이 나면서 약간 씁쓸한데 다행히 먹을 만 하다.


이스탄불 지리에 익숙해지니 지도 없이 다닐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그만큼 낯섦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 새로운 곳으로 이동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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