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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Feb 25. 2024

경치에 홀려 헛디디면 그게 가장 큰 에피소드가 될 것

헝가리 음식, 루인펍, 빈티지샵

헝가리에 간다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건 반대편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 야경이다. 국회의사당은 야경뿐 아니라 낮에도 아름답다. 와, 이거 보러 헝가리에 올 가치가 있구나. 파리 에펠탑보다 더 가치 있는 랜드마크이다. 에펠탑은 내가 파리에 왔구나, 를 알려주긴 하지만 미적으로는 별로다. 근데 국회의사당은 정말 아름답다.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이 맞나? 하고 눈을 떼지 못하고 걷다 보면 언덕에서 발을 헛디딜 수 있다.


어부의 요새에 있는 마차시 성당도 순백의 모습 그대로다. 처음 왔을 때 웨딩 화보 찍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여기서 웨딩 화보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8시쯤 관광객들이 너무 많지는 않고 적당히 있는 어부의 요새는 한적하고 사진 찍기에 좋았다. 처음에는 유럽 여자, 그리고 한국 소년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언덕을 걸어 올라왔더니 어느새 땀이 났다. 바람은 시원하게 불고 조명에 비친 관광지들은 예쁘고 12년 반 만에 온 이곳에서 나는 감회에 젖었다. 와! 내가 여길 다시 왔어!


그런데 부다페스트는 이게 다다. 도시도 아주 작고 아담하여 이게 수도가 맞나 싶다. 전주 사람들이 말하는 전주 정도 사이즈의 여행지이다. 10여 년 전에 왔을 때는 친구들끼리 여러 명이서 같이 와서, 그리고 여름이어서 더 밝고 즐거웠다. 부다페스트는 나에게 활력 넘치는 젊음의 도시로 기억된다. 이번에 왔을 땐 그때와 다른 느낌이 든다. 이젠 지도를 보고 골목골목 다니고 걷고 하니 워킹투어를 신청해서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다니면 걸었던 도시 전체가 눈에 익는다. 친구들끼리 얘기하며 걸으며 보지 못했던 건물들의 특색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차갑고,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것 같다. 헝가리에 살고 있는 스웨덴 친구, 엄밀히 말하면 친구의 친구, 마리아가 페이스북에서 내 비디오 스토리를 보고 제발 여기는 가달라, 하는 브런치 집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얘기를 나눴는데 헝가리는 학교에서 영어를 안 배워서 외국인한테 차가운 것 같다고 했다.





헝가리 지하철은 소박하고 클래식하고 우아하다. 조금 덜덜거리고 고장 날 것 같은 느낌도. 한창 시간에 사람도 거의 없다. 같은 수도인데 복잡한 서울, 도쿄, 파리, 북경 등에 비추어 복잡성이 전혀 없다. 시내가 작아서 걸어서도 다닐 수 있다. 딱히 어디 갈 계획이 없어 매번 기계에서 싱글 티켓 450 포린트짜리를 카드로 샀다. 카드를 긁으면 직사각형의 작은 종이 한 장이 나오는데, 지하철 입구에 한 두 개 노랗게 서있는 펀칭 기계에 넣다 빼면 소리가 나면서 시간이 찍힌다. 가끔 노란색 옷을 입은 직원들이 표 검사를 한다. 굉장히 아날로그적이다.



돼지안심과 감자
파프리카 치킨

헝가리 음식이 한국인에게 잘 맞는다는데 그건 짜지 않고 향이 강하지 않으며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맛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헝가리 음식은 맛이 없다. 나름 전통 가정식이 있는 특색 있는 나라 같은데 그냥 고춧가루 빠진 맛 같다. 빨갛긴 한데 슴슴하다. 토카이 와인은 궁금해서 마셔봤는데 엄청 달다. 구글맵에 간간히 뜨는 한국인들의 후기를 보면 파프리카 치킨, 오리 요리, 헝가리식 족발, 굴라쉬를 먹는 것 같다. 굴라쉬는 먹어봐서 무슨 맛인지 아는데 굳이 먹고 싶은 맛은 아니여서 패스하고 파프리카 치킨은 먹어보고 싶었다. 식당마다 누들, 감자 혹은 덤플링이라고 하는 내가 먹은 작은 수제비 반죽 같은 걸 같이 준다. 뭐 닭은 부드럽고 소스도 먹을만하다. 근데 좀 심심하고 또 먹고 싶은 맛은 아니다. 가격도 비싸다. 한 끼에 보통 2만 5천 원 정도 줘야 한다. 돼지 안심은 퍽퍽하고 소스도 제육에서 고춧가루 빠진 아주 심심하고 애매한 맛이어서 거의 남겼다. 헝가리식이 이런 거구나,를 굳이 돈 내고 체험할 필요는 없었다.


호텔 바로 옆에 한식당이 있었는데 한식당이 크네, 밖에서 메뉴를 보니 같거나 더 싼 가격이면 한식을 먹고 싶다. 그렇게 1인용 부대찌개를 시켰는데 반찬 네 가지와 함께 나왔다. 두부, 소시지, 햄, 김치, 양파 등이 들어있는데 한식의 현지화가 아니라 그냥 한식이다. 나에게도 너무 매워서 이거 외국인들은 어떻게 먹나 싶다. 근데 오랜만에 한식을 맛있게 먹었다. 만 오천원주고 느낀 모국의 맛! 감기야 가랏! 그다음 날에도 2만 보 가깝게 걷다 지친 나는 또 다른 한식당을 찾았다. 현지식 아니면 이탈리안 식당을 가는 편인데 첫날 생면 파스타 집을 갔는데 기대와 달리 맛이 그냥 그랬어서 딱히 버거를 먹고 싶지도 않았다. 이번에 먹은 건 제육볶음. 와, 이것도 엄청 맵다. 근데 맛있다! 대체 어떻게 외국 사람들이 먹지?


쇼핑몰에 자체 브랜드가 없다. 할 일이 없어 엄청 크다는 쇼핑몰에 갔는데 다리만 아프고 살 건 없다. 헝가리 스타일의 브랜드 옷이 있다면 사고 싶었는데 다 국제 브랜드뿐이다. 게다가 한국에 비해 가격혜택도 없고. 드럭스토어 마저 독일 꺼니. DM에서 산 버건디색 아이라이너와 헤어세럼은 마음에 든다.



이 사진 마음에 들어



시내 가운데 있는 루인펍은 구경할 만하다. 루인펍 crawl이라고 여러 군데 다니면서 소개해주는 에어비앤비 등에서 찾을 수 있는 체험이 있었는데, 컨디션이 괜찮다면 참여해 친구도 사귀고 얘기도 나누고 했을 텐데 기침이 너무 심해 피 토하는 느낌이어서 나는 지나가다 구경만 했다. 나이 많은 유럽인 관광객 아줌마들도 들어와서 사진을 찍는다. 막상 머무는 사람은 많지 않고 구경하고 사진 찍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음악도 조명도 인테리어 분위기도 너무 좋다.



길 곳곳에 지나가면 보이는 빈티지 샵 구경도 할 만하다. 살 건 없었지만 구경하면 정말 재미있다. 봄 여름에 입을 셔츠블라우스가 예쁜 패턴이 많다. 주얼리, 옷, 신발, 컵, 온갖 빈티지 제품들이 많다. 가게마다 디피를 어떻게 했는지 보는 재미도 있다. 잡지책에서 나온 것 마냥 키치 하게 디피해 놓은 곳들이 많다.


근교에 알록달록한 도시 센텐드레, 라벤더 도시 티허니 등을 추천받아 갈려고 했는데 이번 여행은 그냥 휴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온천도 가려고 했는데 여행 짐을 싸던 기간에도 몸이 좋지 않아 수영복을 싸지 않았다. 지금에 와선 시간도 많았는데 수영복이라도 사서 뜨끈하게 몸을 담글 걸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호텔의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30분 정도 몸을 담갔다. 마셔도 맛있는 좋은 물이니 피부에도 좋겠지.  


공항버스를 타려고 무거워진 가방을 끙끙거리고 메고 걷고 있는데 니스에서 왔다는 자신을 프렌치라고 소개하는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자기는 부다페스트에 7번째라고 했다. 이렇게 작고 재미없는 도시에 왜 자꾸 오냐고 물으니 자기는 재밌다고 한다. 이 식당 저 식당에서 브렉퍼스트를 먹고 온천도 하고, 하면서 세체니 온천 말고 자기가 발견한 온천 사진을 굳이 짐도 많으면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준다. oh, cool. 하고 말하며 나는 짐이 무거워 내 갈길을 가고 싶어 말을 끊었다. 자기 등근육 사진은 왜 보여주는 거야. 세계 아저씨 아줌마들은 어딜 가나 웃기다.


마지막 밤에 나타난 핑크빛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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