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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r 05. 2024

개강 전 누리는 백수생활

한국에 돌아와 개강 전 일주일 동안 거의 집에 누워만 있다. 한 세시쯤 자고 열두 시 반쯤 일어나는 생활의 반복이다. 처음 이틀은 기침감기로부터 회복 노력을 했다. 따뜻한 차를 계속 마시고 약국에서 산 기침 약도 식간마다 털어 먹는다. 목소리를 잃은 지 이 주째. 그래도 이제는 기침이 좀 잦아들었다. 이주동안 매일 평균 만 오천보 정도 걸으니 살이 많이 빠졌다. 작년에 살이 5킬로 정도 쪘었는데 다 돌아왔다. 50킬로 대로.


여행하면서 이주동안 길어버린 손톱과 발톱을 잘라버리니 시원하다. 여행동안 두피가 상했는지 뾰루지가 많이 났다. 여행에서 헤어팩을 세 개정도 샀는데 로스만에서 산 통에 든 것은 약간 샜다. 그래 이거 먼저 쓰자. 코코넛 그림이 그려져 있고 마이크로플라스틱 쓰여있는 게 미세 플라스틱이 없다는 건가. 머리를 감고 뚜껑을 열어 헤어팩을 머리카락에 듬뿍 바른다.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 메고 나와 티비를 보며 얼마간 방치한다. 집에 있는 동안 스킨케어도 잘해준다. 여행 중 한 번도 못했던 클렌징 오일로 개운하게 세안을 하고 필링젤로 각질 제거도 하니 부드럽고 매끈매끈해졌다. 여행 중에 산 콜라겐 안티에이징 세럼, 알부틴 세럼, 아이크림, gut이라고 써져 산 나이트크림도 바르고 피부관리 하는 재미.


아이패드를 내일모레까지 안 찾으면 환불 처리 된다는 알림 문자가 오고. 오늘은 아이패드를 찾으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일어난 지 한두 시간 뒤에 추리닝을 입는다. 위아래 까만색 나이키 추리닝, 금색으로 나이키라고 쓰여있는 게 포인트다. 무릎 밑까지 오는 기다란 베이지색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금색 실크 스카프를 두른다. 머리는 안 감아서 머리끝에 샥샥 향수만 뿌린다. 움직일 때마다 깊은 우디한 페르시아 향이 코끝에 맴돈다.


강남역에 도착해서 지하철에서 내렸다. 배가 너무 아파 기둥 뒤에 가서 배를 움켜쥐고 쪼그려 앉았다. 위장이 뒤틀리는 것 같이 아프다. 조금 더 걷다가 지하상가를 걷는데 또 배가 아파 주저앉는다. 다녀온 뒤에 집에 조금 있다 보니 생리를 시작한다. 바보 같은 게 강남역이 아니라 신논현역에서 내려야 했다. 괜히 신논현까지 배를 움켜쥐고 걸어갔다. 메일로 온 큐알코드를 보여주니 친절한 남자 직원은 내가 원하는 문구로 각인된 아이패드와 아이펜슬, 스마트키보드를 가져다준다. 14일 이내에 환불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럼 각인된 거는 다시 팔기 어려운 거 아니에요? 애플에 손해 아니에요? 하는데 걸걸한 내 목소리를 잘 못 알아 들었는지 그는 나에게 손해라고 잘못 듣고 대답을 한다. 아이패드를 처음 써본다고 하니 그럼 대략적으로 알려드릴까요, 하더니 여자 직원을 연결해 준다. 꽤 무거운데 12.9인치를 사시네요, 하길래 네. 대학원 다니는 친구가 논문 읽기에 무조건 큰 걸 사라고 추천해 줘서요.


여독과 감기기운으로 입학식은 못 갔다. 간다고 메일 보냈었는데 그냥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알고 보니 내 지도교수님이 된 교수님은 밝고 친절해 보인다. 지도교수 신청은 따로 안 하고 그냥 학과에서 해주는 배정을 받았는데 교수님 이력을 보니 내 관심사에 전문가시다. 서울대 교수가 내 지도교수가 되다니. 새삼 기분이 특별해진 기분이다. 간단한 내 소개와 교수님이 지도교수님이 된 것이 운명 같다고 메일을 보냈다. 학교 메일로 단체 메일이 엄청 온다. 뭐 도서관 알림, 여러 포럼 세미나, 버디 모집, 보건소 예약 안내, 노트북 아이패드 대여 안내 등. 하버드대 교수 강의, 뭐 통일 세미나 참여자 모집 등 듣고 싶은 특강도 많은데 하필 내가 학교 안 가는 날이다.


일주일 동안 누워서 유튜브와 넷플릭스만 봤다. 글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이 그냥 틀어놓고 멍하게 누워 쉰다. 회사를 안나가게 되고 일주일은 꿈에도 계속 회사 꿈을 꾸고 쓸데없이 걱정에 사로잡혔다. 내가 회사 안 나가는 게 맞나, 하고 어색하고 이상했는데 여행에서 돌아와서 쉬는 일주일은 내가 회사원인 걸 완전히 까먹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면서 늦잠 자고 하루종일 널브러져 있는 나를 보고 넌 이제 백수냐,라고 말했다. 다음 주부턴 공부할 거야.


로기완을 봤고 살인자이응난감을 몰아봤다. 송중기 때문에 보게 되는 탈북자의 삶의 영화로 송중기는 영향력 있는 남다른 배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여행 중에 이만 얼마치 시켜서 맛없다고 남기는 음식들이 유럽에서 떠도는 난민 누군가는 간절한 끼니이다. 애초에 양이 적은 사람은 양을 덜어서 난민에게 전달을 할 수 없을까. 기부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말이다. 그러면 상하거나 비위생적인 것 등이 문제가 되겠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멈춘다. 살인자ㅇ난감의 노빈이라고 나오는 배우의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손석구는 역시나 너무 멋있다. 섬세한 표정, 행동은 엄청나게 끌려 집중해서 보게 하는 힘이 있다. 터키에서 알게 된 영어 선생님인 세다라는 친구에게 터키 시리즈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중에서 페라 팰리스라는 시리즈를 보는 중이다. 기자가 오래된 이스탄불 호텔에 갔다가 1919년으로 돌아가는 내용인데, 의복을 보는 재미가 엄청나다. 나도 저렇게 입고 꾸미고 싶다.


일주일째 누워서 영상만 보니 이제 책을 읽고 싶어 진다. 초반에 읽다 만 무라카미하루키의 댄스댄스댄스를 편다. 무라카미하루키는 마음의 위로와 치유가 필요할 때 읽으면 좋다. 주인공이 삿포로에 갔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고 할 일이 없어 길거리를 배회하고 백화점 쇼핑으로 시간을 때우고 별 생각이 안 드는 장면에서 내가 부다페스트에서 느꼈던 것이 생각이 난다. 할 게 없어 시간 때우려고 westend에 갔다가 살 건 없고 다리만 아팠다.


낮 네시쯤 치과에 갔다. 교정 정기 검진이 있다. 다시 추리닝을 입고 잠바를 입었다. 운동 삼아 걸어가는데 몸이 가볍고 걷는 게 좋다. 걷다 보니 어느덧 땀이 난다. 이년 간 연봉+학비 생활비 등 기회비용도 크지만 2년 후 돌아갈 평생 직장이 있다는 게 마음의 안정감이 크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계속 줄어들 것 같지만. 2021년은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인데, 그중에 재교정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일년 간 재교정을 했었는데 마스크 쓰는 코로나 기간이어서 다행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누구야, 하고 부르면서 인사를 했다. 10년 전에 볼 땐 20대 중반이었는데 이젠 아기 엄마여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인데 거리낌 없이 누구야, 하고 부르는데 왠지 모르게 반갑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어린이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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