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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un 14. 2024

공공조직은 왜 ‘변화’가 힘들까

나는 공공조직에 들어와 일하면서 실무자들은 대개 수동적이고 방어적이라고 느꼈다. 공공조직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성향이 이런 것 같기도 하다. 뭐 요즘 2030은 낡은 관행을 싫어하고 변화를 추구하고 이렇다 하는데 오히려 조직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직급인 ‘실무자’들인 이들은 변화를 추진하기 싫어한다. 여기서 말하는 건 일반적인, 평균적인 사람들 이야기이고 혁신을 추구하고 추진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도 소수지만 어느 직급을 막론하고 존재하는게 분명한 점은 고무적이다.


나는 조직을 위해 발전하고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나 대안을 자주, 많이 제시하는 편이다. 심지어 내가 제기할 때는 설렁설렁 넘어가고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한 두 달 뒤 우리 기관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이 똑같은 질의를 해서 털리기도 했다. 나의 친한 동료는 메신저를 보내면서 000 의원이 000(나)에 빙의한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던(내가 작업한 건 아니었다) 재밌던 에피소드가 있다. 우리 기관장과 그 부서장, 부서원은 아찔 했겠지만.


소극행정의 전문가로 칭하고 싶을 만큼 개선 의견에 방어적이고 안 하려 하는 건 왜일까? 일단 이들은 답변은 해야 하니 자기들은 이미 잘하고 있고,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으며, 이미 사무관 등등이 새벽에도 주말에도 전화해서 미치겠고 바빠죽겠다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사람의 성향도 있겠지만 자기 업무에 자신감과 장악력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내 업무 소화도 힘든데 다른 걸 추가로 할 여력이 없는 것도 크다. 구조적으로 주요 부서에 너무 많은 일이 몰리는 것도 원인이 되어 그래, 바빠서 거기까지는 못하겠다고 해도, 해보지도 않고 그냥 하기 싫은 게 너무 느껴진다. 외부인의 시선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 보인다. 공공기관 행정직들은 철밥통이고 세금 받고 그거밖에 못하냐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조직을 위해 한 차원만 더 노력하면 개선될 수 있고, 국민을 위한 일이고 동료들이 조금 더 편하기를 바라며 기꺼이 하는 사람들이 소수지만 있고 동료로서 보면 빛이 난다.


예를 들면 지사에서 기업 고객을 상대하다 보면, 매년 자주 하는 실수에 따라 벌금식으로 몇 천만 원, 많게는 억대로 추징을 하는 경우가 있다. 고의로 실수한 게 아닐 때는 항의도 많이 하고 사전에 좀 실수하지 않게 안내를 해줬으면 하는 요청들이 있다. 관련 부서에 기업이 내는 돈이 한두 푼도 아닌데 이러이러한 식으로 매뉴얼을 만들든 자주 하는 실수는 3분 내 동영상을 만들든 홈페이지에 빨갛고 크게 강조 표시를 하든 해줬으면 좋겠다고 개선 의견을 내면 자기들은 이미 잘하고 있고 예외 조항 등은 법규정에 이미 쓰여있는데 자기들이 제대로 안 읽어보고 잘못한 걸 어쩌란 말이냐는 식이다. 그들이 안내 책자에 써놨다는 것도 무슨 보험 약관처럼 맨 아래에 깨알 같은 글씨로 되어 있어서 직원인 나도 간신히 찾았다. 울화통이 터진다. 아무리 우리가 잘못을 한 것에 대해 돈을 걷는 기관이라 해도 예방 가능한 건 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오히려 개선 의견을 내는 나를 모함하고 비난한다. 쟤는 매사에 비판적이고 문제제기를 해, 하고 비아냥 거리거나 그만 좀 들쑤시라고 한다. 승진 안 할 거야? 하고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그럼 나는 더 세게 나간다. 조직을 위해 비판적인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승진을 해야 할 사람을 못하게 하는 그런 곳이라면 저는 이 조직에 더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이런 조직을 위해 더 이상 기여하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드러났을 때 우리 기관에 타격이 굉장히 클, 명백히 사회적 이슈가 될 문제 해결에 움직일 생각이 없는 부서에게는 결국 사내 ㅇㅇㅇ제도가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것을 국회의원이 지적하기 전에 다시 기획하고 정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나는 맹랑하게 보일 내 이미지보다 공정한 제도 운영이 더 중요하다. 내가 국회의원실이나 언론에 닿을 연이 많다는 걸 아는 차장님은 들어주는 시늉을 하긴 하지만 다른 부서로 서로 떠넘기기 바쁘다. 그래도 좀 개선하려 하고 의지가 있던 한 젊은 차장님은 계속 전화로 저번에 제안한 이런 의견은 지금 이런 단계로 기획해서 운영하려고 준비 중이다, 하고 경과를 알려준다. 고견을 편견 없이 잘 들어주고 바꿔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이런 분들에게는 차장님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왜 고속 승진한 분인지 알 것 같다고 멋지다고 칭찬을 드렸다.


물론 바꾸자고 하는 걸 ‘내 뜻대로‘ 바꾸자고 제안한 적은 전혀 없다.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고 이러이러한 영향이 있으며 개선을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했을 때 이러이러한 효과도 기대된다, 어떻게 기획하고 추가적인 의견을 모아 추진할지는 담당자님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종종 비판에 거품을 물고 도전으로 받아들여 공격적으로 나오고 나에게 인신공격으로 되갚는 사람들은 봐주지 않는다. 나는 바로 부서장 혹은 국장, 기관장에게 메일을 보낸다.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어 이러이러한 추진이 필요한 것 같다고. 이들은 나의 의견을 환영한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럼 실무자는 엿 먹는 꼴이 된다. 000(=나)이 하던 소리를 자기 상관이 시키는 것이다. 보통 성격 아닌 것 같은 특이한 000이 자기 상관에게 자기에 대해 무슨 소리를 했을지 겁나는 것이다. 웃기고 통쾌하다.


내가 느낀 건, 오히려 임원, 부서장급 이상 간부들은 변화를 환영하고 추진하기를 원한다. 좋은 경영평가를 받기 위해서도 뭔가 새로운 것을 추진하는 변화는 중요하고 경영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도, 자신들의 커리어를 위해서도 임팩트 있는 새로운 뭔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실무자들은 새로운 걸 싫어한다. 그렇게 우리 조직의 낡은 문화는 욕하면서 낡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무언가 해보자고 제안하면 하기 싫어한다. 블라인드 같은 것에 이런 걸 굳이 왜 하냐, 하고 도배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물론, 기획이 구려서 그 추진 방향이 잘못되거나 성가신 일만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평균적인 공조직 사람들은 추가적인 무언가, 생각해야 하는 무언가를 싫어하고 그냥 딱 자기가 인계받은, 주어진 업무만 딱하고 나 이외의 사람들이 바꿔주길 바란다.


기관장들의 짧은 임기도 조직의 변화를 어렵게 하는 요소이다. 부임해서 새로운 일을 추진하고자 하지만 짧은 임기로 금방 동력을 잃고 변화가 지속되지 못한다. 그리고 또 금방 새로운 기관장이 와서 다른 방향성을 추구하기도 한다.


공공기관들이 ncs까지 보면서 비판적 사고를 측정하고 창의적이고 다양한 관점으로 사고하는 사람을 인재상으로 뽑으면서도 막상 이런 사람들이 내는 의견을 억압하고 비난한다면 공공조직의 발전은 없다. 이런 사람들은 조직을 이탈하게 되고 평균적인 사람들로만 채워져, 소위 집단사고(group think)로 똘똘 뭉쳐 조직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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