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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y 18. 2024

차장이 업무 떠넘기면 이렇게 했다

업무를 떠넘기는 상급자들의 논리는 내가 일이 너무 많아서, 원래 막내는 그렇게 다 하는 거야, 나 때도 시키면 다 했어, 조직생활이 원래 다 그런 거다, 등이다. 그리고 주로 하기 싫은 일을 떠넘기고 폼 나는 일은 자기가 가지려고 한다. 그리고 못하겠다고 하면 요즘 친구들은 일을 너무 안하려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부서장이 아닌 상위 직급이 자신의 업무 분장에만 있는 자신의 업무를 하위 직급에게 해달라고(하라고) 하면 갑질이다. 그래서 업무 분장은 피 튀기는 싸움이라고 하는 것이다. 업무 분장 회의에서 나는 이거 못하겠다, 쟤가 해야 맞지 않냐 고성이 오가고 감정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업무 분장과 조직도에는 그 업무를 다 감당하는 것처럼, 업무 많은 것처럼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사실 아래 직급에게 다 떠넘기는 사람들이 있다. 업무를 나눠서 공식적으로 떼주기에는 자기가 이렇게 많이 열심히 일하는 걸 보여줘야 승진의 명분이 생기기 때문에 업무 분장은 꿋꿋이 갖고 있는다. 그럼 처음부터 끝까지 그 업무를 자기가 해야 하는데 말이다.


처음엔 나도 일이 많고 맨날 야근에 주말까지 나와서 일을 하는 동료들을 선의로 도와드렸다. 영수증 처리, 우체국 심부름, 행사 물품 구매 및 준비, 야근하는 저녁밥 시켜주기, 내가 출판사 직원인가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스프링제본, 자료 조사, 설문 조사, 설문 결과 분석, 공인인증서가 없다고 매번 로그인에 공인인증서가 필요한 사이트 접속해서 자료를 찾아 주기(공인인증서 깔기가 귀찮다고 한다), 엑셀로 방대한 양의 자료 입력 등 사소한 일부터 야근해서 해 줘야 하는 일까지. 이 모든 일은 우리 조직 문화 속에선 그 업무 담당자가 직접 다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호의가 계속되면 당연하게 시키고, 힘들어도 참아주면서 해주면서 불만이 생긴다. 자기가 기획한 행사와 간담회 준비를 하는데 자기는 부장도 아니면서 손하나 까딱 안 하고 어디서 혼자 들기도 어려운 무거운 책상을 가져와라, 고급 과자를 사다 달라, 물 하고 음료를 사서 자료를 다 세팅해 놔라, 피피티를 만들어달라, 프린터기에 인쇄물을 잔뜩 걸어 놓더니 이걸 다 제본해서 갖다 놔라. 그 태도는 나를 무슨 가정부 부리듯 부린다. 아니 자기 돈 주고 가정부도 이렇게 부릴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흑화 하지 않을 수 없다. 일 년을 참다 이렇게 참으며 조직생활할 순 없겠다 싶었다.


나는 업무가 너무 많아서 혼자 다 못해. 너는 야근도 안 하잖아. 야근하면서라도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 차장님, 차장님 업무는 전임자들 모두 혼자서 하던 업무고요. 부장 승진하는 자리잖아요. 승진하는 자리 왔으면 그 정도는 감당하셔야죠. 20년 차 월급 받으시잖아요. 저는 월급 조금 받아요. 3년 차인데 3년 차에 맞는 업무를 해야죠. 제 업무분장에 차장님 업무가 (부)로 쓰여있지도 않잖아요. 심지어 저는 다른 조직에서는 대부분 차장이 저 같은 대리 몇 명 두고 하는 업무를 혼자서 해요. 그럼 제 업무는 누가 도와줘요? 차장 월급 주지도 않잖아요. 그리고 제가 똑똑해서 남들 3시간 걸리는 거 효율적으로 1시간 만에 끝나고 정시퇴근하는 건데 차장님이 무슨 상관이에요. 차장님 같은 사람이 상관이면 모두가 1시간 걸릴 일 3시간씩 하면서 근무시간에 허술하게 보내고 9시까지 앉아있게요? 제 시간을 요구하지 마시고 점심시간 아껴서 저한테 시키시려는 일 하시면 되겠네요. 전 제 업무도 시한이 급하면 밥 굶거나 20분 만에 후딱 먹고 하거든요.


내가 이 연차에 이런 것까지 해야 해? 그리고 부탁하기 전에 알아서 좀 도와주면 안 되나? 같은 부서면 서로 서로 도와야지.


-> 옆 부서 차장님은 직접 물 사고 영수증 처리하고 화상회의 시스템 직접 배워서 자기가 하고 카트 끌고 회의장 세팅 하시거든요? 그래서 저렇게 직원들이 존경하고 도와달라고 안 해도 도와주잖아요.


전 도와달라는 말이 젤 무서운 말인 것 같아요.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도와달라는 말도 잘 못해요. 그런데 상급자는 쉽게 하죠. 도와달라고 하면 불만이 있어도 말 못 하고 해줘야 하는데 자기들은 이런 것 좀 해줄 수 있지 않나? 하는데 이미 감정적으로 당연히 이런 허드렛일은 아랫사람이 해야지, 하고 하녀 대하듯 저러면 누가 해주고 싶어요.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부장도 아니면서 시키지 않으면 좋겠어요. 업무 지시는 부장님을 통해서만 공식적으로 이루어지면 좋겠고요. 그리고 저희들도 허드렛일 힘들어요. 자기 일은 자기가 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업무를 (정), (부)로 나누어서 제 업무에 추가하고 싶거든 제 업무 중 차장 업무를 빼주세요. 대리에 맞는 업무를 주세요. 저도 이렇게 책임과 부담 큰 업무 하는 거 스트레스 너무 심하고 차라리 선임자 (부) 역할하면서 직급에 맞는 업무 하고 싶어요. 그리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행동하세요.


저 직원은 맨날 야근하고 좀 불쌍하고 안쓰러운데 일 좀 나눠서 도와주면 안 되겠어? 그 점이 참 아쉽다.


-> 동정심이 들면 동정심 드는 사람이 도와주세요. 전 저 사람 하나도 안 불쌍한데 왜 측은지심을 강요하세요. 이런 것도 직장 내 괴롭힘인 것 같아요. 저도 저 업무 해봐서 아는데 지금 제 업무보다 한~참 적은 수준이고요. 자기가 머리 안 돌아가서 제시간에 끝낼 일 쥐고 오래 앉아있는 사람을 왜 제가 도와줘야 해요? 효율성 있게 빨리빨리 하는 요령 알려줘도 저러고 있는 걸. 오히려 같은 직급에 연차인데 저는 왜 이렇게 업무량도 업무 난이도도 저 사람보다 많은지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사람이 일이 많고 고생이 많다 하시니 그럼 당장 업무 분장 바꿔도 좋아요. 저 업무하면 하루에 4시간 시간제 근무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거든요. 업무 안되는 사람 앉힌 사람이 책임져야지 왜 제가 뒤집어써요. 그렇게 불쌍하면 차장님이 좀 도와주시면 되겠네요.


흑화하여 상급자, 부장에게도 그리고 부서회의에서 모두에게 할 말 다 하게 되었고, 모함하고 깎아내리려는 사람이나 부서에게 늘 복수를 하는 나를 보며 한 직원이 크루엘라 봤냐며, 크루엘라 같다고 했다. 심지어 나에게 당하는 차장이 불쌍하게 보인다고. 난 일 안하려는 차장들한테 대놓고 말한다. 조직이 차장 역할 하라고 승진시켜줬으면 제역할을 하고 생각을 하라고, 못하겠으면 월급 반납하시라고. 말은 하면서 살아야 속이 시원하다. 참고 살다가 병걸린다. 나는 스트레스로 한쪽 귀가 안들리는게 악화되어 몇달을 대학병원을 전전했다. 아, 경증 청각장애인이 되겠구나 싶었다.


나처럼 차라리 할말하고 조직에 남아 기여하는 사람이있는 반면 오랫동안 드러운꼴 당하다가 결국 이직하는 유능한 젊은 직원들이 훨씬 많다. 부서장은 다행히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 지 알아주는 사람이었고, 나한테 일 적다고 야근 안 하냐고 눈치 주는 상급자들보다 나를 먼저 승진시켜 주었다. 제 시간에 주어진 일을 끝내는 건 지향해야 하는 것이고, 그 퀄리티도 우수해서 성과도 잘 내는 직원들을 야근 안한다고 억압해서 되냐며 오히려 키워주고 인센티브를 줘야한다고 내 편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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