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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un 07. 2023

상사 빙부상까지 챙겨야 하는 거야?

죽음에도 계급이 있는가

나른한 토요일 오후. 누워서 흐느적거리다가 갑자기 단체방 알림이 뜬다. 우리 지사장 장인상 알림이다. 상을 당하면 직원 전체 문자가 오니 어차피 알 수 있는데 차장이 굳이 없던 단체방을 만들어 지사장 장인상인데 조문 갈 사람이 있냐고 물어본다. 자기랑 부장 등 몇몇은 사무실에 모여 내일 같이 조문을 갈 거라고 한다. 조문을 원한다면 알아서 조의금을 직원 단체 문자 계좌로 보내거나 직접 조문을 희망한다면 알아서 수소문해서 물어볼 텐데 단체방을 만들어 공개적으로 가야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별로다.


과장 이하 젊은 직원들은 조문을 희망하지 않았다. 차장은 머쓱했는지 부장이 직원들 의견을 물으라고 해서 단체방을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그게 더 문제 같다. 지사장이 아니고 일반 직원의 빙부상이면 의사를 묻기나 했을까. 특히 무기계약직 직원의 빙부상이었더라면? 죽음에도 계급이 있나? 누구 빙부상은 소중히 챙겨야 하고 누구 빙부상은 문자와도 바로 지워버리고. 3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지방 장례식장을 가야 하는데 모친상 부친상 또는 자녀 결혼도 아니고 상사 배우자의 부모상을 주말에 왜 왕복 6시간 차를 타고 다녀와야 하는가.


주말이 지나고 회사에서 만난 차장은 한술 더 떠 서무가 자기네들 장례식장 가는 관용차를 직접 운전하러 나왔어야 한다고 말한다. 참나. 장례식장 가고 싶은 자기네들끼리 운전해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애꿎은 막내 서무가 근무일도 아닌데 장례식장 가는 차를 운전해야 해. 부장 차장은 운전하면 안 돼?


나는 나만의 기준을 세운 것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어도 배우자 부모상이나 조부모상은 챙기지 않는다. 친부모의 죽음의 십 분의 일의 슬픔도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공감이 전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조사비를 낼 때에도 상사거나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고 무조건 내지 않는다. 나와의 관계가 얼마나 정서적으로 친밀한 지에 따라서 한다. 또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잊어버려도 아깝지 않은 마음이 드는,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 나오는 사람에게만 돈을 낸다. 지사장과 나는 만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대화도 열 마디 이상 나눠 보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직원이니까, 내가 오랫동안 모신 상사니까, 우리 지사에서 가장 어른인데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 혼자만 하고 남에게 강요하거나 당연히 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으면 좋겠다. 몇 달 전에는 우리 기관장의 빙모상이 있었는데 퇴근길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한 층에서 직원들이 우루루 타더니 나와 같은 층에서 내려온 사람들 보고 너네는 장례식장 안 가? 하면서 당연히 해야 하는 투로 물었다. 호들갑 떠는 그들에게 나는 묻고 싶었다. 옆자리 동료 빙모상도 당연히 가실 거죠? 기관장이 퇴직해도 가실 거죠?


결국 눈도장 찍으러 가는거면서 되게 무슨 상사의 가족상에 도의적인 감정을 느끼는 척, 고상한 척 하는 무리들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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