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1)
“인신매매와 마약이 걸릴 경우 법정 최고형을 받을 수 있으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쿠알라룸푸르에 다다르자 비행기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뭔가 순간적으로 무섭기도 했다. 그 전도연 나온 영화 중에 마약 운반하다 걸려서 이름 모를 섬의 감옥에 갇힌 장면이 떠올랐다. 내 가방에 아부다비에서 산 위장약하고 제조한 목감기약이 있는데 마약으로 오해하진 않겠지, 잘못하다 이상한데 끌려가는 거 아니야? 하는 상상을 하다가.
말레이시아는 두 번째 와본다. 저번에 왔을 때는 어땠더라, 그때도 생경했는데 지금도 새로운 기분이다.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심사를 하러 가는 길에는 웰컴 드링크도 준다. 허리까지 오는 테이블 두 개에 두 가지 맛의 음료가 작은 종이컵에 담겨있는데, 나는 핑크리치맛 음료를 집어 한입에 마셨다. 달달한 주스맛. 말레이시아 공항 전자도착카드를 해야 한다고 인터넷에 쓰여있어서 미리 해오고 핸드폰 화면도 준비했는데 검사도 안 한다.
비행기가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시간이 여유 있었다. 시내에 도착하면 저녁 7시쯤 될 줄 알았는데 6시 반이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구글맵에서 보니 쇼핑몰이나 웬만한 곳은 다 10시까지다. 공항 가기 전 내일 1시까지 짧은 시간 가고 싶은 곳을 가야 한다. 공항철도가 다니는 KL Sentral 근처 호텔을 잡았다. 만 원대부터 3만 원대 사이 저가 호텔이 대부분이다. 너무 좁은 곳은 힘들어서 3만 원에 조금 넓은 곳을 골랐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방에는 드라이기와 전압 변환기가 없었는데 로비에서 빌려줬다. 나는 고정된, 머리에서 쏟아지는 샤워기를 싫어하는데 그게 단점이었다. 그래도 뭐 하룻밤 자는 거니까. 신기한 건 호텔 문을 여는 일만 하는 아저씨가 있다. 인건비가 나오나.
알라룸푸르(1
말레이시아 경유 여행 동안 하고 싶은 것.
- 신발 쇼핑
- 바쿠테 먹기
- 인도요리 먹기
- 관광지 사진 찍기
- 부킷빈탕 벽화거리
- 카야잼 토스트 먹기, 카야잼 사기
- 필통/키링 사기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하고 싶은 건 역시나 인도 요리를 먹는 것이다. 한국에서 구글지도를 보며 인도요리집을 표시해 두었다. 근처에 리틀 인디아가 있어서 그런지 원래 그런 건지 인도 요릿집이 되게 많다. 나는 치킨 마크니를 좋아하는데, 버터 치킨을 시키면 비슷한 맛이 난다. 같은 요리인 건가.
Nu sentral이라는 중저가 쇼핑몰 같은 것이 기차역에 붙어있다. 누 센트럴을 통해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몇 층에서 나가야 하는지 몰라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길을 찾았다. 멀리 스미글이 보여 들렸는데 어린이 브랜드지만 좀 유치하고 아기자기한 필통을 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컸다. 아니면 미술관 같은델 가서 사야지. 누 센트럴에서 나오자마자 에어컨이 아닌 뜨듯한 바람이 확 느껴지면서 횡단보도 없는, 차가 다니는 길을 무단 횡단해야 하는 환경에 바로 놓이게 되었다. 아, 여긴 운전을 오른쪽 자리에서 하는구나. 에스컬레이터도 한국하고 반대로 되어있어서 습관적으로 오른쪽으로 타다가 역주행한 적이 두 번 정도 있다. 큰일 날 뻔. 아주 오랜만에 오토바이가 무더기로 다가오는 무단횡단해야 하는 도시에 떨어졌다.
그래 차분하게 건너보자.
센트럴에서 내려 걸어서 5분 정도 내에 인도요리집이 있었다. Gem 어쩌구 하는 인도 식당. 식당 밖에 메뉴판이 있길래 한 번 보다가 어차피 가려고 온 거니 들어갔다. 에어컨 바람이 엄청 세서 잠시 벗었던 검은색 가디건을 다시 챙겨서 입었다. 동남아에 오면 인도식당을 가는 게 리추얼처럼 되어버렸다. 한국보다 반값에 먹을 수 있고 맛도 분위기도 더 현지 느낌이 난다.
인도인처럼 생긴 까무잡잡한 직원들이 있고 실내는 꽤 고급스럽다. 한산하다. 버터치킨과 버터난, 음료는 라임주스를 시켰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음료가 먼저 나왔는데 처음엔 몰랐는데 커리랑 같이 먹다 보니 고수향 같은 게 끝맛에 난다. 나는 고수를 못 먹는다. 나중엔 목이 마르니 숨을 참고 마시니 좀 나았다. 버터치킨에는 약간 질긴 치킨이 들어있었지만 커리가 환상적으로 맛있어서 괜찮았다. 아주 약간만 매콤하면서 크리미 하고 달달하면서 아주 조금 새콤한, 그러면서도 한국에서는 못 맡아본 향이 조금 난다. 맛이 레이어드 된 굉장히 풍부한 맛! 너무 맛있어서 난을 찢어서 양손으로 흡입하다 보니 아 똥 닦는 손으로 먹고 있던가. 손님이 나랑 뒷자리 남자 한 명뿐이라 인도인 세 명이 주목하는 느낌이다. 너무 양손에 묻히고 먹나, 하면서 스스로 재밌어하며 식사를 끝마쳤다. 커리가 꽤 남아서 밥이나 난을 더 추가할까, 하다가 적당히 배부르고 다음 장소로 이동도 해야 하니 그만 먹었다. 너무 너무 맛있게 먹었다. 가격은 12,000원 정도. 1인분이 한국의 반값이지만 엄청 싸진 않은게 마지막에 메뉴판보다 세금에 서비스 차지가 붙었다. 시계를 보면서 쫓기는 여행은 싫은데 저녁에 도착했으니 어쩔 수 없다.
계산을 하며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길래 코리아, 하면 다들 좋아한다.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고 하니 놀라며 더 좋아했다. 식당이나 매장에서 결제할 때 항상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는데 먼저 한국인이냐 물을 때도 있고, 내가 한국이라 하면 코레아? 하면서 모두가 좋아한다. 한국 드라마, 음악 때문에 더 우호적이겠지만, 한국은 어느 나라도 침략하고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다는 점도 거부감이 없겠다. 요즘에 여행하며 느낀 것은 아시아에서는 한국이야 말로 모두가 우호적인 문화 강국이요, 매력적인 나라이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나왔다. 건너편에 약국이 보여서 오렌지맛 스트렙실을 하나 샀다. 로컬 감성 가득한 약간 먼지 쌓이고 물건이 제멋대로 있는, 허름한 약국이다. 현지인들의 일상을 구경하기에 좋다. 3만 원 정도 공항에서 인출해서 현금이 있다. 처음으로 현금을 꺼내며 쓰니 다양한 색감의 지폐로 거스름돈을 준다. 작고 가벼운 금색 동전도 있다. 6알 들이 1500원 정도로 베트남 보단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국보다 훨씬 싸다. 요즘 목감기를 달고 사는 나에겐 스트렙실이 필수다.
남은 저녁 시간을 활용해 초록색 모노레일을 타고 트윈타워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 거기에 수리아 Klcc몰이 있는데 인도네시아 신발 빈치와 노즈가 있어서 보려고 간다. 인도네시아 신발은 가성비 좋아서 혹시나 건질만한 예쁘고 편한 게 있나 가보려고 했다. 카드가 없어도 현금으로 편도티켓을 살 수 있다. 나라마다 도시에 도착해 처음으로 표를 사면서 기계를 맞닥뜨릴 때 재미있다. Klcc는 bukit nanas에서 내려서 걸어가면 된다고 지도가 알려주었다. 부킷 나나스를 클릭하고 현금 1링깃짜리를 세장 넣으니 파란색 코인 같은 게 나오고 거스름돈이 나왔다. 일로 가는 게 맞나? 하고 두리번거리다 직원이 있길래 부킷 나나스? 하고 물으니 위로 올라가는 게 맞다고 한다.
모노레일을 기다리는데 간판에 작은 도마뱀이 기어 다닌다. 연두색 라인과 어울린다. 예전에 방비엥에서 도마뱀이 많았는데, 하고 생각했다. 모노레일을 기다리는데 너무 덥다. 두리번거리니 히잡을 쓰지 않은 여자 한 명이 서있는 곳을 보니 머리 위로 크고 까만색 선풍기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고 있다. 아, 선풍기가 있구나! 나도 다른 쪽 선풍기에 가서 선다. 갑자기 현실을 깨닫고는 설렌다. 한국에서 몇 시간 뒤에 날아온 곳에 이렇게 이국적인 더위와 습함과 어두운 풍경, 선풍기와 연두색 지상철, 그리고 까무잡잡한 이국적인 사람들.
모노레일에서 내려서 Klcc 트윈타워로 향하는 길로 걸어가다 갑자기 만난 트윈타워는 정말 너무 예뻐서 감탄이 나왔다. 야경으로 뿜어내는 조명과 자체의 색감이 너무 아름답다. 다른 건물에 비친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도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한번 와봤지만 또 와보길 너무 잘했다. 진정한 랜드마크이고 가볼 가치가 큰 곳이라고 느꼈다. Klcc 앞에는 전문 사진가들이 잔뜩 있었다. 예시 사진을 보여주며 유혹하지만 나에겐 셀카봉이 있다, 하고 건물로 이어지는 곳을 향했다. 쇼핑몰을 압축적으로 시간을 활용해 빠르게 둘러봤는데 막상 살 건 없었고 쇼핑몰 2층이던가, 예전에 나와서 분수를 보던 기억을 떠올리며 찾아갔다. 셀카봉을 이용해 사진을 찍어봤는데 흔들려서 초점이 나가고 심령사진 같은 사진이 가득 쌓였다. 그래도 트윈타워는 초점 맞게 예쁘게 나왔네, 하고 어떻게든 같이 찍겠다는 의지도 웃겨서 혼자 웃었다.
혼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옆에 말레이시아인처럼 보이고 20대 같은 남성이 활달하게 다가오더니 자기가 백만 팔로워가 있다고 보여주며 같이 동영상을 찍자고 말했다. 아, 난 틱톡을 안 해서 별로 안 내킨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사진이라도 찍자고 말했다. 왠지 이런데 얼굴 팔리면 딥페이크 영상으로 어딘가에 내가 떠돌고 있을 것 같아서 거절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음악에 맞춰 형형색색의 조명을 비춘 분수쇼가 펼쳐졌다. 야자수 나무와 압도적인 고층 빌딩들,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무더위 속에서 어울려 분주하고 열띤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간에 쫓길 것 같았던 오늘 저녁이 여유롭게 마무리 되었다. 오랜만의 이국적인분위기와 기분, 끈끈하게 더운 무더위가 기분이 좋다. 아, 근데 덥긴 되게 덥다. 되어버렸다. 한국보다 반값에 먹을 수 있고 맛도 분위기도 더 (1))d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