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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ul 22. 2024

SF 영화같은 미래도시에서 4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2)

충분히 잔 것 같은데 왜 알람이 안 울리지, 멀리 핸드폰 충전기를 꽂아 놓고 자서 몇 시인지 확인하러 핸드폰을 집으러 갔다. 뭐야, 8시 50분? 몽롱한 채로 놀랐다. 뭐야! 알람이 안 울린 거야? 오늘은 비행기를 타는 날이라 오전 7시로 확인을 몇 번이나 했는데! 오늘은 kl센트럴에서 1시엔 공항에 출발하기로 마음먹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움직이려고 했다. 오토바이나 택시 말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려고 해서 여유 있게 나오고 싶었다. 아무래도 어제 비행으로 고단해서 뻗은 것 같다. 에어컨을 틀고 잤더니 몸이 찌뿌둥하다.


(원래 계획) 마시드 자렉> 센트럴 마켓, 차이나 타운> 부킷 빈탕에서 밥 먹고 벽화 거리, 시간 나면 카야잼 토스트 먹기


두 시간 늦게 일어나서 앞 두 개는 생략했다. 예전에 한 번 가본 곳이고 그래 피곤했는데 두 시간 더 자니 좋았잖아! 평소처럼 12시 1시에 안 일어난 게 어디야! 비행기 안 놓쳤잖아? 그리고 여전히 시간이 남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일어난 일, 지금부터 빨리 움직여서 화장하고 옷 입고 나가자! 머리는 어젯밤 감았으니 생략한다. 기내에 가지고 탄 가방이 그래도 2키로 정도로 꽤 무게가 나간다. 아 이놈의 아이패드 괜히 가져왔나. 공항에서 노트북 가져와서 펼쳐 놓고 있는 사람들 보면 비즈니스맨 같고 전문직 같고 멋져 보이던데 역시 나에겐 안 어울린다. 그래도 방에서 유튜브 보기엔 좋다.


짐을 호텔에 맡기면 다시 돌아와서 역까지 가는 게 번거로울까 봐 그냥 들고 가기로 했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겠다고 다가가니, 예스 마담, 하면서 방을 점검하려고 까만색 무전을 친다. 금방 수색했는지 괜찮다며 보증금 50링깃을 돌려준다. 원래 100링깃인데 카드는 안된다 하구 내가 찾은 현금 100링깃은 스트렙실 사느라 깼다. 그럼 50링깃만 달라길래 줬다. 문지기 아저씨는 가는 길에도 문을 열어 주었다. 얇은 비가 추적추적 온다. 다행히 길을 건너니 차양막 같은 튼실한 구조물이 지하철 역까지 계속 있다. 더워서 인가 우기가 있어서 그런가. 다른 지하철역에도 계속 이어져 있어서 지하철역에서 내려서도 목적지까지 거의 젖지 않고 갈 수 있었다.



부킷 빈탕역까지는 몇 정거장 안된다. 다행히 자리가 많아서 앉아서 가는데 낮의 풍경이 새롭다. 엄청 세련되고 어마무시한 고층 빌딩과 적당히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너무 기울어져 가는 판자촌이 아닌) 건물들이 조화롭게 보이면서 모노레일을 타고 건물 풍경 사이들을 지나간다. 모노레일을 타고 빌딩 숲을 지나다니니 미래도시에 온 것 같다. 도쿄 같기도 한데 인종이 확 달라지니 어두운 SF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다. 정이, 이던가 뭐였던가 재미없어서 1,2화 보다 만 그런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다. 미래인데 뭔가 망하고 암담한 미래.


가는 길에 왓츠앱을 확인했는데 자카르타에서 만나기로 한 대학 동창이 갑자기 근처 나라로 출장을 가게 돼서 못 봐서 미안하다고 장문의 글이 남겨져 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울 뻔했는데. 파견자의 삶이 궁금하기도 하고 나누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아쉽다.


나는 계획대로 바쿠테를 먹으러 간다. 부킷 빈탕에서 지도를 따라 10분 정도 걷는다. 중국 식당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희 인가 하는, 한국 블로그에도 자주 나오는 미슐랭 집이다. 줄이 길다고 하는데 아직 열 시 정도라 줄이 없다. 한 명이라고 하니 바로 안내를 해 주었다. 직원은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바쿠테 1-2인분 소자와 밥을 하나 시킨다. 마실 건 필요 없어요? 아니요 괜찮아요. 하고 음식을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다 중국인들이다. 역시나 시끄럽고 떠들썩하다. 음료는 무슨 밤부 어쩌구 쓰여있는 음료와 두유가 있던데 먹어볼 까 고민하다가 아니다, 조금 이따가 카페를 가든 다른 음료를 먹자. 아, 호텔에서 물이라도 가지고 나올 걸 그랬나. 아니야 무거웠을 거야.


환상의 맛!


먼저 뜨거운 물이 담긴 스테인리스 작은 볼에 플라스틱 작은 그릇과 수저와 젓가락을 넣어 가져다준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담가서 소독을 하는 용인 것 같아 따라 한다. 뜨거운 걸 플라스틱에 담는데, 이걸 위생적이라 해야 하나. 음식이 나왔다. 요즘 싱가폴 나오는 방송에서 바쿠테라는 것을 먹던데 내가 싱가폴을 갔을 땐 바쿠테라는 것도 모르고 못 먹어봐서 이번엔 먹어보기로 했다. 말레이시아는 싱가폴 근처라 카야잼 토스트도 그렇고 싱가폴 음식이 있다. 어느 나라가 먼저인 음식인가 확신은 없지만 대중적으로 싱가폴 음식으로 알려져 있으니 그런가 보다, 한다.


바쿠테 국물을 한 입 떠먹어 보는데 맛있다! 왜 미슐랭인지 알겠다! 멀리 미슐랭 표시가 보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고기는 굉장히 부드럽다.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 맛이다. 갈비탕보다는 진득하고 갈비탕과 갈비찜 사이인데 갈비탕에 가깝긴 하다. 한방 향이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는 데 나는 한방 향에 익숙해서이기도 하고 향이 약하다. 한식하고 비슷한 맛이 나면서 다르다! 확실히 외국 음식이다. 그런데 시도해 보고 먹기 좋은 음식! 갈빗살이 너무 부드럽고 맛있어서 두 덩어리 정도 남기고 다 먹었다. 어느 정도 먹었을 때 눈에 들어온 옆에 곁들여 있는 다진 마늘과 고추 약간을 넣었더니 맛이 또 확 달라진다.


중국인 언니에게 사진을 보내며 이게 중국 음식이냐, 말레이시아에서 잠깐 경유 중이어서 먹어보는데 너무 맛있다, 익숙한 맛이면서도 다르다! 다음 달에 만나서 중국 음식이 기대된다고 아이메시지를 보냈다. 이심을 사용 중인데 아이메시지가 잘 간다. 언니는 砂锅이라는 대중적인 중국 음식이 있다고 했다.


바쿠테 식당에서 23.20 링깃, 약 7천 원 정도를 내고 벽화 거리로 향한다. 괜찮은 가격이다. 밥을 먹고 나오니 비가 그쳐서 어느새 덥고 습해졌다. 집게핀으로 머리를 틀어 올렸다. 으, 어깨에 멘 짐이 무겁다. 배낭여행 다니는 사람들 어떻게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여행용 배낭을 좋은 걸 메면 다르려나. 벽화 거리를 갔는데 구글맵과 인스타그램 사진 속에는 더 다양한 길이 있던데 그냥 여기로 만족하고 끝내야겠다, 하고 셀카봉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 근처 주스집에 앉았다.


스몰 사이즈 망고 주스 플리즈.


10링깃이다. 길이 바로 보이는 야외에 앉아서 기다린다. 잠시 뒤 달고 맛있는 노란색 망고 주스가 나왔다. 짐도 내려놓고 더위에 걷다가 힘든 걸 좀 가시게 하자, 하고 잠시 쉰다. 백인 남녀 두 명이 다가오더니 주스를 주문하려고 근처에 서 있다가, 내가 4명 자리에 가방을 놓고 앉아 있었던 터라 가까이 다가오길래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줄 알고 가방을 집어서 옮기려고 했다. 그런데 여자는 내가 순간적으로 소매치기 등 위험으로부터 가방을 지키려는 조심스러운 행위를 한 줄 알고 Oh, Excuse me, 한다. 아, 나도 그러려고 하던 게 아닌데. 말하려 했지만 귀찮고 그들도 자리를 떴다.



시간이 남아서 mrt를 타고 센트럴 마켓이라도 갈까, 근처 쇼핑몰에서 못다 한 신발 쇼핑을 더할까, 고민하다가 이동이 귀찮아 근처에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파빌리온을 향해 가는 길에 페런하이트라는 몰에 들어갔다가 파빌리온으로 이어져 있다. 파빌리온은 너무 큰데 지도가 없었다. 여기서도 빈치 매장을 가려고 했는데 찾다가 포기하고. 오르락 내리락 만 하고 뭐 산건 없다. 짐만 무겁고 힘들다. 그냥 다시 mrt로 돌아가 기차역에 가자. 센트럴 역에 마지막 남은 과제인 카야잼 토스트를 파는지 봤는데 잘 못 찾겠다. 그냥 공항 가서 먹자, 하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가는 길에 야자수 숲을 보니 역시나 이국적이다. 공항철도는 쾌적하고 빠르고 좋다. 왕복 25,000원은 좀 비싸지만.


공항에서 카야토스트를 마지막으로 먹고 가기로 했다. 말레이시아 공항에 별게 다 있다고 하던데 앉을자리도 부족하고 보안을 통과해서 안에 들어왔는데 카페도 몇 개 없다. 카야잼 토스트는커녕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공항에서 카야잼을 사가려고 했는데 안 보인다. 나갔다 와야 하나. 공항이 너무 심심하고 할 게 없어서 나오긴 나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카야잼 토스트는 있을 것 같아서 카페 두 군데를 갔는데 안 보여서 에어라인 데스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서 카야 토스트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라벤더 색 히잡을 쓴 여성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무슨 클럽이라고 써져 있는 곳을 가리키면서 확인해 보라고 했다. 이런 질문에도 친절하다. “그럼 혹시 저 쪽으로 더 걸어가면 카페 같은 게 더 있나요?” 하고 어깨에 멘 가방이 무거워 더 걷기 싫어서 물었다. 어떤 카페명을 대더니 하나 있다고 했다.


결국 그 여성이 가리킨 카페 겸 식당 앞에 놓인 메뉴판 속에 카야버터 토스트가 있었고, 19.7링깃에 따뜻한 카모마일차를 같이 주문했다. 공항인데 음료와 토스트를 다해서 6천 원이면 되게 싼 편이다. 와이파이도 되길래 이어폰을 꺼내 블루투스를 연결하고 유튜브를 하나 보면서 음식을 기다렸다. 카야잼을 발라서 나오는 게 아니라 구워진 빵과 버터, 하얀색 자기 그릇에 카야잼이 덜어져 나왔다. 카야잼만 발라 먹을 때보다 확실히 버터를 바르니 더 맛있다.


아직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말레이시아 항공은 다른 데와 다르게 1시간 전에 탑승이어서 조금 일찍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공항은 앉을자리가 심각하게 너무 없어서 진짜 앉을자리가 없고 승객들이 계속 서서 기다린다. 그래도 짐을 놓고 등을 기대서 기다리는데 40분 정도 연착이 되었다. 와, 하루 종일 이동만 하고 피곤하다. 그렇게 빈자리 없이 꽉 찬 비행기를 타고(기내식은 너무 맛있었다) 자카르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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