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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Aug 05. 2024

금발의 엘프쌤과 몽환적인 요가 클래스

우붓, 발리(2)

전날 밤 10시에 즉흥적으로 요가를 예약했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내 위치를 중심으로 yoga,를 검색했을 때 가까운 곳이었고 평과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웹사이트가 영어로 잘되어 있어 스케줄과 가격이 나왔고, 바로 카드 결제하여 예약할 수 있어서 자기 전에 해 버렸다. 1회에 165k로 15,000원 정도.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가격이지만 마사지를 대신해서 운동한다고 생각하면 주저하게 되는 가격은 아니었다. 저녁에도 요가 수업이 있었는데, 서너 줄 되어 있는 설명을 읽어보니 유연하지 않고 초심자인 내가 하기에도 그렇게 어렵고 힘들진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6시 soft evening flow라는 90분짜리 요가 수업을 예약했다.


오전에 다른 액티비티에서 만났던 호주인 고등학생 소녀가 한 젤 네일 손톱이 마음에 들었다. 약간 갈색빛이 도는 버건디 색이다. 그에 비하면 사누르에서 60k로 싸서 지나가다가 바른 내 매니큐어는 물놀이로 벗겨지고 미워졌다. 까무잡잡하고 마일드한 조그마한 발리 소녀가 열심히 내 손에 매니큐어를 발라주었지만 매니큐어는 젤네일과 다르게 금방 마르지 않는다. 소녀가 부채질을 하며 열심히 말려 주었지만 다 끝나고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잘 된 게 맞나, 하고 손으로 만져보니 바로 지문이 묻고 뭉개졌다. 으, 이래서 젤네일을 하는구나. 발리에 오기 전에는 주황색에서 감색 사이의 펄이 든 오묘한 색깔이 있으면 바르고 싶었는데 없는 색이 많았다.


우붓의 중심가를 걷다 보면 마사지 샵에서 다양한 종류의 마사지와 젤네일, 바디스크럽, 샴푸 마사지 등 온갖 것을 한 번에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입간판에 쓰여 있는 가격과 메뉴를 보고 들어 오면 또 중정이 있고 아주 큰 규모의 이국적인 동남아 가정집 같은 곳이 있다. 요가에 가기까지 2시간 정도 남아서 젤네일로 손톱 색을 바꾸기로 한다. 아, 원래 있는 손톱은 지우고 다른 색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내 손톱이 젤네일인 줄 알고 젤네일을 제거하는데 돈을 더 내야 한다고 했다.

"아니에요! 이거 그냥 매니큐어예요. 그냥 이렇게 지우면 돼요." 하고 손을 문지르며 지우는 시늉을 하자, "아 그럼, 공짜예요."라고 안내해 주는 여자가 말했다.


손이 쌔까맣게 탔다

안으로 들어가니 꽤 우아한 분위기다. 영어를 쓰는 말씨로 보아 뭐 뉴질랜드나 호주 할머니들인가, 내 옆 선베드 같은데 앉아 웃통을 벗고 등 마사지를 하고 있고, 머리에는 수건을 뒤집어쓰고 있다. 수건 사이에는 젖은 뭉터기의 은발이 보인다. "저건 뭘 받는 거예요?" 내 손을 담당해 줄 발리 아줌마에게 물었다. 아줌마는 내 손을 씻을 물을 받아 씻겨 줄 준비를 하고 있다. 저 할머니들은 샴푸, 목과 등 마사지를 받고 있다. 아줌마는 내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잽싸게 손톱이 끝나면 하겠냐고 물었다. "아;; 끝나고 요가를 가야 해서요. 뭐, 아마도 내일?" 하고 말했다. 그런데 아줌마는 영업을 하며 손톱을 하는 동안 발 마사지를 같이 받겠냐고 물었다. 가격표를 가져와서 보여 주었다. 30분에 50k, 60분에 90k였다. 발 마사지를 할 생각이 없었던 터라 그냥 30분만 하겠다고 했다. 그 정도면 젤네일도 끝나지 않나. 그랬더니 다른 아줌마가 바로 다가와 다리를 주무른다. 흠, 다른 데보다 덜 시원하다. 그냥 대충 조물조물하며 시간만 때운다. 한 아줌마는 내 손톱을 다듬고 있고, 한 아줌마는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니. 장면이 재밌어서 웃었다.


아줌마가 내 빨간색 매니큐어를 지워주고 손톱을 기구를 이용해 갈고 자르고 있는데 새끼손톱을 너무 바짝 다듬는가 싶더니 결국 아프고 피가 났다. 아줌마는 미안해했지만 괜찮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따끔따끔하고 아팠다. 손톱을 다듬어 주는데 가장자리가 무디지 않고 날카롭고 제멋대로다. 좀 너덜너덜하다. 결국 실례이긴 하지만 손톱깎이를 달라고 해서 내가 좀 다듬었다. 하, 숙련 노동이 아닌 것 같아 여기! 그래도 이왕 들어왔으니 어쩌겠어. 여기도 역시나 내가 머릿속에 그리던 색은 없어서, 즉흥적으로 쨍한 하늘색을 골랐다. 그래 만원 정도니까 쌀 때 못해볼 만한 색깔을 해보자! 아줌마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해주려고 노력했다. 아줌마 둘은 마사지를 하는 중간에 발마사지를 진짜로 30분만 할 거냐고 젤 네일 끝날 때까지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아, 이거 30분 정도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요?" 했더니,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주물주물하는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아, 뭐 아줌마들도 착하고 3천 얼마만 더 내면 되니까 지역 경제에 기여도 할 겸 그냥 한다고 했다.



새끼손톱이 좀 아프지만 새로운 색깔로 매끈매끈하게 완성이 돼서 기분이 좋다(내가 해본 젤네일 중에 제일 깨끗하게 오래가는 중). 한 30분 정도 남았다. 요가 스튜디오까지 걸어서 10분 내로 갈 수 있으니 시간이 딱 맞네. 가는 길에 열대과일로 수제잼을 파는 곳이 있어 멈춰 선다. 무슨 구아바, 레몬, 망고, 파파야, 딸기 등 종류가 엄청 많다. low sugar라고 써 있어서 뭔가 건강할 것 같기도 하고 패키지가 너무 예쁘다. 병에 든 잼들로 가득한 벽면을 보니 너무 예뻐 사진을 찍었다. 음, 짐을 얼마 못 부치니까 무게가 부담스럽다. 그래도 제일 작은 걸 사볼까. 젊은 여자가 먹어 보겠냐고 묻는다. "음, 그럼 망고 먹어 볼게요!" 그는 냉장고에서 식용 망고 잼들을 꺼낸다. 망고, 망고 진저, 망고 시나몬 맛 등이 있다. 그냥 망고 보다 나는 시나몬을 좋아하니까 유니크하게 망고 시나몬 맛으로 샀다. 무게만 더 되면 파파야잼도 먹어보고 샀을 텐데! 첫날 사누르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파파야 생과일주스를 마셨는데 너무 맛있던 기억에.


Radiantly Alive Ubud이라는 요가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발리에서 요가를 한다면 이런 탁 트인 뷰에서 이런 요가를! 하고 상상했던 그런 곳이었다. 우연히 만난 한국 여자분들이 우붓에서 yoga barn이라는 곳이 유명하다고 추천해 줬는데 그곳은 걸어가기엔 조금 멀어서 못 갔는데, 이곳이 너무 좋아서 우붓을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에 한번 더 했다. 스튜디오는 약간 외진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1층에는 오픈되어 있는 넓은 공간의 카페에 테이블과 의자가 많이 있었는데, 앉아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와, 생각했던 것보다 공간이 되게 넓다. 프런트에 앉아 있는 직원들은 활달하고 소통이 잘 되었다. 처음 와서 당황해하는 나에게 몇 시 수업에 오셨냐고 먼저 물어본다. "아, 6시 수업을 온라인으로 예약했어요."라고 말하니 slow evening flow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수업 이름은 기억이 안 났었다. 저기 대나무 방에서 수업이 있을 건데 아직 준비 중이어서 잠깐만 저기 소파에 앉아 계시라고 했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 한 명 정도 앉아 있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아직 15분 정도 남았다.


소파 앞에 요가 복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걸 구경한다. 소파 앞에는 신발을 넣어 두는 곳이 있는데, 저기에 나도 신발을 둬야 하나? 두리번두리번 하면서 넓은 소파에 한 5분 앉아 있다가 까무잡잡하고 활달한 표정의 젊은 남자 현지인 직원이 다가오더니 6시 수업이냐며 대나무 방은 이쪽이니 가면 된다고 알려 주었다. 내가 신발을 벗고 신발장에 넣어 두려고 하자, 대나무 방 앞에 신발 놓는 곳이 있으니 그곳에 넣으면 된다고 하였다. 아, 그렇구나. 처음 오는 장소에서 뚝딱거리는 나.


몇 걸음 걸어 대나무 방 앞으로 갔다. 신발 놓는 곳이 있고, 엄청나게 커다라서 두 팔로 안을 수도 없는 사이즈의 정수기 생수통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너무 큰 공간에 매트가 잔뜩 깔려 있고 대나무 숲 뷰가 보인다. 아, 이래서 대나무 방이구나! 내가 안에 들어가서 처음온 사람의 눈으로 두리번거리니 한 활달한 금발의 남자 백인이 가방은 여기에 두고, 아마 블록 두 개 정도 가지고 자리에 가면 될 거라고 알려 주었다. 이 사람이 선생님인가? "아 이거 두 개요?" 하고 되물으니, "아 저도 학생이에요. 아마 선생님이 잘 알려주실 거예요. 선생님 정말 정말 좋거든요.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해서, "아, 고마워요!"라고 말했고, 그 사람은 수업이 끝나서 나가는 전 수업의 학생이어서 정리를 하고 나가는 길이었다.    


블록 두 개를 가지고 와서 너무 앞자리는 아니고 앞에서 두 번째쯤 하는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아 저기 서있는 분이 선생님이신가 보다. 장발의 금발 머리를 위로 틀어 올린 키가 엄청 큰 백인 남자가 수업을 기다리며 핸드폰을 보며 서있다. 내 앞줄 가운데에는 까만색 탑에 레깅스를 입고 누워 있는 까만 머리의 백인 여자가 누워 있다. 점점 사람들이 차기 시작한다. 전 세계에서 온 외국인 여행자들이(정확히 말하면 백인들이 90% 이상이지만) 내 주위에 앉아 있다. 남자들도 몇 명 있다. 이 수업이 한 번이 아니라 몇 번 참여한 듯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도 꽤 있다. 장기 여행자나 노마드일까. 긴 머리를 한 백인 중년, 노년기 여성들도 있다. 멋있다. 우붓이 한적해서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듣기는 했다. 나도 한 달 이상 살기를 한다면 여기 우붓에 있고 싶다. 시내 가운데는 너무 북적거려서 오토바이와 차가 가득하지만 근교의 자연이 아름답고 오토바이 타고 10분만 나가도 계단식 논뷰가 있으며 서쪽 해안에 비해 식당 물가도 그리 비싸지 않다. 와룽 같은 현지식하는 식당에서는 고기류와 밥, 음료를 시키면 6천 원 내로 먹을 수 있다.


시간이 되었는지 선생님은 자신의 요가매트 정중앙에 앉는다. 작은 스프링으로 된 수첩을 꺼내 놓고 보면서 한다. 수첩은 뭐가 적혀 있는 걸까. 관찰하다 보니 수업의 순서가 적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일단 정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시작한다.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손으로 쇄골 뼈를 둥글둥글 만지고, 목을 만지고 골반뼈를 만지고 몸을 구석구석 내 손으로 풀며 이완시키는 시간을 갖는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선생님은 영어가 원어민인 사람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회사에 다닐 때 회사와 집 근처에서 요가 다닐 때 빈야사, 하사, 아쉬탕가, 테라피 요가를 해봤는데 이 수업은 그때 배웠던 요가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 보니 능숙한 사람들도 있지만 나처럼 뚝딱이면서도 선생님의 안내를 잘 따르면서 따라 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선생님을 보면 얼굴이 아주 작은 파란 눈의 백인이고 금발의 머리를 묶었는데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엘프 같다. 키가 엄청 크고 체격이 좋다. 너무 스키니 하지 않고 너무 근육쟁이이지 않은 적당히 마른 팔은 둥글둥글 근육이 있고 팔부터 다리까지 온몸에 짙은 초록색 문신이 있다. 커다란 부다 그림도 있다. 요가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불교적인 것에 심취하게 되는 것일까. 키가 190 정도 되려나 더 크려나, 스칸디나비안 또는 네덜란드 남자 같다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왠지 맞추고 싶다. take a deep, deep breath라고 할 때마다 deep의 d를 z에 가깝게 발음하는 게 특이하다. 계속 맴돈다. 즵 브레스~~~ 목소리 톤은 중간 정도에 느릿느릿 굉장히 나른하고 몽롱하게 말한다. 이 순간에 굉장히 몰두해서 행위예술을 하는 사람 같다. 정신적인 면에 심취한 듯 연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전문적인 사람의 아우라를 풍긴다. 눈을 감았다 뜨거나 정신을 차려보면 점점 어두워져 가는 대나무 숲과 이 공간은 굉장히 몽롱하고 나른한 공간이다.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이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어느새 어둠이 내린 이 공간은 새소리와 배경 음악 소리, 천장 위의 선풍기가 도는 소리가 들린다.


두번째 빈야사 수업 장소


영어로 진행되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도 Inhale(들이쉬세요), Exhale(내 쉬세요)만 잘 알아들으면 된다. 마지막 날은 빈야사 수업을 들었는데 빈야사 요가를 해본 적 있는 사람은 수월하게 따라 할 수 있다. 다만 빈야사 수업이 너무 빡세서 도대체 저 선생님은 수첩을 언제 닫는 거지, 아 땀이 너무 나고 힘들다 대체 언제 끝나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너무 운동이 되긴 하는데 너무 힘들다. 마지막엔 시원하고 보람이 있었지만. 아, 그 빈야사 수업은 굉장히 여성스러운 말투와 태도를 가진 남자 백인 강사였는데, 이 선생님은 영어 원어민이다. 처음에는 선풍기도 안 틀어주고 아, 더워 죽겠는데 언제 끝나, 싶을 때 선풍기를 틀어 줬다. 처음부터 틀면 더위를 못 버텨서 그런가. 끝나는 20분 전쯤에도 선풍기를 껐다. 어느 순간 어지러워서 중단하고 잠깐 쉬면서 했더니 좀 나았다.


slow evening flow 수업은 빈야사 수업처럼 계속 반복되는 동작으로 숨쉴틈 없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몸을 이완해 가면서 푸는 동작이어서 너무 좋다. 선생님의 나긋나긋 센슈얼한 목소리처럼 수업도 따라갈 수 있게 천천히, 그러면서도 자극이 느껴지게 진행이 된다. 이 수업의 특징으로는 독수리가 날개 치듯 어깨를 우아하게 뒤로 젖히는 동작을 자세를 변형하면서 반복한다. 처음에는 무릎 꿇고 앉아서 하다가 반쯤 몸을 숙인 다음에 하다가, 한쪽 다리를 내밀고 몸을 꺾은 뒤에 하는 등 어깨를 뒤로 젖히며 휘두르는 동작을 계속한다. 수업 말미에 가서는 한국에서부터 계속 뭉치고 아프고 라운드 숄더가 되어 딱딱해진 어깨가 다 풀렸다. 너무너무 신기했다. 여기 와서 마사지도 여러 번 받았는데도 안 풀리던 어깨가 이 수업 90분으로 씻은 듯이 풀리는 것이다. 너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은 수업 끝나고 어떤 피드백이나 자기와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다가와 얘기해도 좋다고 해서 치유된 나의 어깨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한국에 돌아와 이 요가와 비슷한 것이 있는지 유튜브로 찾아보는데, 부분 부분 비슷한 것은 있는데 90분 전체 프로그램이 이것과 비슷한 요가 강의는 못 찾아서 너무 아쉽다.


요가 정보: Radiantly alive

가장 좋았던 우붓의 마사지 샵 정보: Leni relaxing massage(Deep tissue massage를 했는데 너무 시원했다. 가격은 13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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