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5)
"내일은 아들하고 같이 봐야 할 것 같아. 오전에 치료 프로그램이 끝나면 연락할게!" 나와 동갑의 인도네시아인 남사친이 왓츠앱으로 말했다.
"오 정말? 사진으로만 보던 그 귀여운 아이를 직접 볼 수 있는 거야? 나는 너무 좋아!" 하고 답장했다.
친구의 아이는 막 돌이 되기 전에 엄마가 떠나서 친구가 혼자 키우고 있고 아이는 두 살 때까지 언어나 행동의 속도가 느려서 행동, 정서? 치료를 받고 있다. 속사정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낳고 우울증에 걸린 나머지 아이와 아빠를 떠났다.
비가 거세게 오는 자카르타의 사리나 쇼핑몰 2층 카페에서 친구와 친구 아들을 기다렸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이미 오는 길에 나는 다 젖었고, 더욱 거세게 오기 시작해서 친구가 결국 내가 있는 곳으로 데리러 오기로 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쇼핑몰에서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아이는 얼마 전에 막 5살이 된, 너무 밝고 유쾌한 개구쟁이였다. 내가 상상한 5살은 쑥스러워서 말도 못 하고 부모님 다리 뒤에 숨고 말 걸어도 쉬크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먼저 내 이름을 부르며 말을 자주 건다.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워서 기본적인 소통이 잘되고 영어 쓰는 걸 좋아하고 익숙해한다. 평범한 한국의 중, 고등학생과 비교해도 영어 말하기를 굉장히 잘한다. 주말 이틀 같이 있는 동안 계속 영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
내가 코코넛을 좋아한다고 가벼운 소통을 시작하자, "Oh, do you like coconut? I like coconut, too!" 하면서 자기 혼자 말을 중얼중얼 하고(나름 영어로 자기가 유창하게 말하는데 아기의 웅얼거림을 친구와 나 둘 다 잘 못 알아듣는다) 먼저 "00(내 이름)~ do you like orange juice?" "do you like~~~" 하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너무 귀엽다. 계속 내 이름을 부르며 뭐라 뭐라 말을 거는데 주로 별로 시덥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는 아이의 질문, 감정 폭격기다. 친구는 그냥 그러려니,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아이도 별로 떼쓰거나 자기 말을 들어달라고 애원하지 않는다. 그냥 아이는 혼자서 중얼중얼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리 열심히 들어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내 이름을 서두에 던지며 하는 말에는 나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아이가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해 주는 것이다. "오, ~~~ 그렇다는 거지?" 하면 나름 영혼 없이 소통이 가능하다. 재밌다.
친구에게 듣기로는 언어와 행동이 느리고 예민해서 땅도 잘 못 밟는 등 새로운 것을 만지기를 거부하고 소통도 잘 안되고 그랬다는데 많이 치유가 되었는지 전혀 못 느꼈다. 엄청 발랄하고 귀엽다. 아이가 밥 먹는 걸 잘 챙겨주고 먹여 주고 보살피는 친구를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I am a super strong man!"이라고 말하는 아이는 상남자다. 나와의 관계에서 아이와 어른/아빠 친구가 아니라 똑같이 어른 대 어른과 같은 인간관계로 대한다. 그리고 굉장히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맹그로브 숲에 갔을 때 같이 카누를 했는데 자기가 적극적으로 젓겠다고 하고 아빠는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뒤에 앉아 그저 묵묵히 도와준다. 내가 먼저 카누에서 내리고 아이를 잡아 주려고 손을 내미려고 하자 자기가 혼자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하고, 우리가 방금 전까지 있던 강에 악어가 있는 것을 보고 내가 무섭다고 호들갑을 떨자, “00~~ 이제 괜찮아. 뭐가 무섭다고 그래.” 한다. 와, 나는 지금도 독립적이지가 못한데. 나보다 어른스러운 순간들이 많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아이가 능글맞게 "00(내 이름)~ where is my phone?" 하고 앞자리에 탄 나에게 묻는 것이다. 친구에게 얘 핸드폰도 있어? 하고 물으니, 아니 없어. 그냥 핸드폰 하고 싶어서 저러는 거야, 라고 말한다. 차 안에서 오랫동안 심심하겠네, 내 폰을 줄게, 했더니, 됐어 괜찮아, 여기선 1시간 넘게 이동하는 게 일상이고 아이는 차 타는 걸 좋아해, 라고 말했다. 나는 "내 사진 볼래?" 하고 인스타그램을 틀어주었다. 아이는 너무 재밌고 신나 하며 사진을 구경하였다. 그동안 나는 친구와 이 얘기 저 얘기 나누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대학을 졸업하면 보통 한 달 월급이 40만 원 정도라고. 한국은 많지 않냐고. 내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고 말하니, 국제적인 환경이어서 영어 쓸 일이 많다고 했다. 친구는 IT 관련 일을 하는데 상사가 싱가포르 사람이어서 영어로 말하고 보고하고 해서 영어가 일상적이라고 했다. 친구의 영어 발음은 악센트가 있어 알아듣기 아주 쉬운 발음은 아니지만 소통이 원활하고 유창하다.
그 사이 애기가 뭘 하고 있나 봤더니 내가 자주 봐서 돋보기에 뜨는 푸바오를 보고 있다. "This is panda!"하고 아이가 말한다. 또 친구와 얘기를 하다가 뭘 하나 봤더니 랜덤으로 뜨는 사진에 좋아요를 계속 누르고 있다. 악, 뭐 하는 거야!! 잠깐 당황했지만 뭐 좋아요 누를 수도 있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는 아이들과 24시간 함께 하는 아기 엄마들이 겪는 돌발 상황이 무엇일지 아주 약간은 공감이 되며 일단 그대로 두었다. 그러다 한참뒤에 뭐 하나 봤더니, 인스타 스토리에 내 사진을 올리려고 하나씩 누르고 있는데 65장을 업로드하기 직전인 것이다!!! 으악, 이건 안돼!!!!! 하고 핸드폰을 가져와서 뺐었다. 자기가 뭘 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당황한 모습에 장난꾸러기 웃음이 터진 아이. 아 어제 내가 와코루 속옷 입어보면서 엄마한테도 살 거냐고 속옷 차림의 사진도 있었는데, 뭐 하는지 살펴보길 잘했..어.. 휴.
여기서는 뭐 이모, 이런 호칭을 쓰지 않고 바로 이름을 부르면서 지냈더니 아이와 내가 친구 같고, 굳이 내가 엄마가 된다기보다 그냥 아빠와 같이 한 지붕 아래 사는, 어른으로서 보살펴 주는 사람 정도의 관계면 아이가 있는 남자와 결혼해서도 같이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아기도 조카도 없고 주변에 아기라고는 옆자리 과장님의 얘기를 접하며 어깨너머로 귀여워한 것이 다이다. 유치원생과 이렇게 길게 하루를 그것도 이틀씩이나 보낸 적이 없어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모 내지는 애기 엄마의 간접 체험을 했다. 이렇게 한 번도 떼도 쓰지 않고 밥도 잘 먹고 혼자 잘 노는 아이라면 애기가 있는 남자와 결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나를 자기가 새로 사귄 친구로서 좋아해 주고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능력이 되면 입양을 하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친구도 최근에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 여자도 친구가 아이가 있다는 걸 알지만 일단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 그냥 연애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한국친구에게 말했더니 남의 자식 키우는 게 쉬운 줄 아냐, 우리 남편 새어머니도 자기 자식이 아니어서 그런지 진짜 내 가족처럼 소통이 안되더라, 하면서 결혼은 현실임을 일깨워 주었다.
"이 아이가 나중에 커서 다시 보면 나와의 추억을 기억 못 하겠지? 커서 보면 또 새로운 마음이 들 것 같아! 얘는 영어도 잘하고 관심이 많고 독립적이니 국제적인 아이로 키워봐! 본인이 원하면 유럽의 대학교를 가도 좋을 것 같다. 학비도 싸거나 북유럽 같은 데는 공짜구. 아니면 한국으로 보내! 우리 수업에도 인도네시아 여학생이 있는데 한국어도 잘하고 똑똑해. 한국 시스템을 배우러 왔대. 가끔 인도네시아 학생을 위한 장학금도 본 것 같아. 아니면 아이가 커서 배낭여행으로 한국에 오라고 해! 내가 그때 서울에 있으면 아이를 잘 봐주고 케어해 줄게!" 하고 말했더니 안 그래도 외국 유학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고 돈도 모으고 있다고 했다며, 유럽 대학원 학비가 무료라는 말에 관심을 보였다.
이튿날, 우리가 헤어지는 마지막 날 맹그로브 숲을 산책하는데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와! 처음으로 내 손을 잡았다! 너무 귀여웠고 행복감을 느꼈다. 마음을 열고 우리가 정말 친구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는 아이가 아빠랑 손을 잡고 걷다가 옆에 있는 내 손도 잡았다. 셋이 손을 잡고 걷는 게 아이가 행복해 보여서 측은했다. 엄마 아빠와 손을 잡고 걷는 또래 친구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웠을까. 아무리 할머니가 있고 고모가 있고 가정부 이모가 있더라도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그 공백이 클 것 같다. 자기 사촌들이 자기 엄마와 아빠에게 매달려 놀고 있는 걸 보면서 소외감을 느낄 것 같다. 아무리 사촌들하고 놀아도 자기는 그 가족은 아니라는 벽을 느낄 것 같다. 그래서 저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혼자 노는 게 익숙해진 걸까. 모래사장에서 모래 놀이를 하면서도 어른들에게 같이 놀아달라고 떼쓰지 않고 혼자 기찻길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생각나 측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