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그림 그리는 클래스가 너무 재미있고 색다른 경험으로 좋았어서 하노이 여행에도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페인팅 클래스를 찾아보았다. 그중에서 한 카페에서 진행하는 199동에 음료 한 잔과 원하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봤다. 아크릴 페인팅이나 UV페인팅을 해보고 싶은데 UV 페인팅 활동 사진을 보니 감각적이고 아름답다. DM을 보내서 다음날 예약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흔쾌히 가능하다고 너무 친절하게 답장이 온다.
지도를 보니 올드 쿼터에서는 약간 멀어서 그랩 바이크를 타고 가기로 한다. 그전까지 올드 쿼터를 조금 걷다가 밥을 먹고 가자. 하노이에 새벽에 도착하고 눈을 떠 호텔 문을 열고 나서자 빈티지하고 예쁜 건물들이 흥분시킨다. 조금 걸어 나가자 카페들이 즐비하고 밖에서 쭈그려 앉는 의자에서 쌀국수를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쉬는 사람들이 많다. 와 이런 분위기구나. 앤틱한 색색깔의 프랑스베트남 풍의 건물들이 이어진 골목골목을 걷는다. 그런데 약간 위험한 게 인도에는 다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어서 차로로 걸을 수밖에 없다. 발리에서 오토바이 기사가 핸드폰을 채간 이후에 가방을 인도 반대로 바꿔 메고 핸드폰 스트랩도 차고 조심성 있게 다니고 있다.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는데 핸드폰을 또 사고 싶지는 않다.
지난주에는 중국에서 매일매일 빡센 관광과 하이킹으로 열사병+냉방병+생리통+비행으로 인한 종아리 땡김으로 고생해서 아직 후유증이 남았다. 하노이 날씨는 한국하고 비슷하고 그래도 광시 지역보다는 시원했지만 30도 넘는 더위에 밖에서 3시간을 보내는 건 힘들다. 더위 먹은 것처럼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 호텔을 걸어 다닐 수 있는 올드쿼터 근처에 잡아서 여차하면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송풍으로 놓고 누워서 쉰다.
1일 3 코코넛을 하고 1일 1 껨보를 먹고 있다. 껨보는 달랏에서 먹고 너무 맛있었다. 아보카도만 먹으면 느글느글 할 수 있는데 아이스크림하고 먹으니 조화가 좋다. 지금도 껨보를 먹고 있는 중. 여기는 아보카도를 으깨지 않고 썰어서 넣어 준다. 가격은 35,000-50,000동으로 비싸봤자 25,000원인데 퀄리티가 좋다.
아, 여기 코코넛은 이상하게 엄청 달다.
“여기 코코넛에 설탕을 넣었나 봐! 너무 단데?” 내가 인도인 여자에게 말했다. 혼자 여행하는 여자들을 위한 페이스북 그룹에서 만난 내 또래의 여자인데 인도에 온난민을 돕는 인도주의 ngo에서 일한다.
“에이 말도 안 돼! 아닐걸? 설탕 넣은 거 아닐 거야. “
“그래? 너무 지나치게 달아서 당연히 설탕 넣은 줄 알았어. 이렇게 단 코코넛은 처음이야. 뭐, 천연의 단맛이면 맛있고 좋지!” 그 이후로 다른 데서도 여러 번 먹었는데 매번 되게 달다.
하노이 와서 그랩 오토바이를 처음 탔는데 신호등이 따로 없고 있어도 안 지키며 막 끼어들면서 역주행도 하고 무법천지라 좀 무섭다. 옆 차와 부딪힐 것 같다. 그랩은 10분 정도 가는데 1200원 정도이다. 싸긴 싼데 한국에서 편리한 교통과 버스비 생각하면 그리 싼 건 아닌 것 같다. 꽤 거대한 카페 건물 앞에 나를 내려주고 그랩 기사는 돈을 벌러 서둘러 또 후다닥 달려갔다.
힙한 음악과 넓은 공간이 있는 카페였다. 이런 데를 어떻게들 알고 찾아 오지? 영어가 유창한 베트남 소녀가 안내 팻말 앞으로 데려가더니 어떤 클래스에 참여하고 싶냐고 물었다. 내가 7시에 예약을 했다고 하면서 메시지 대화를 보여주는데 잘 모르는 눈치다. 아, 내가 대화한 사람이 이 사람이 아니구나. UV 페인팅은 7시 이후에 시작하니 내가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음료를 마시며 기다리라고 했다. 베트남 여자들 세 명이 아크릴 페인팅으로 파란 배경에 해파리를 그리고 있었다. 오늘의 예시 그림은 해파리인가 보다. 나는 카운터에 가서 음료를 하나 골랐다. hygee all day, everyday라는 문구가 좋았다.
7시 조금 넘자 베트남 소녀는 UV 페인팅을 위한 세팅을 한다. 불을 끄고 LED조명 같은 파란색 불을 켠다. 다른 예시 그림을 보는데 너무 멋지다. 베트남 소녀는 오늘 내 수업의 선생님이다. 영어를 굉장히 잘해서 물어보니 외고 같은 걸 나왔다. 하노이에 있는 아트 스쿨 대학생이다. 와 만나서 반가워요! 수업에 선생님과 나 둘 뿐이라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베트남은 아직 학기 중이며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소녀는 어머니를 따라 여러 나라를 가봤고 일본도 가봤다. 베트남 월급에 외국 여행을 안 가본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하고 물어봤는데 아니었다. 부잣집 딸인가.
소녀는 먼저 물감을 짜줬다. 조명 아래에 형광색으로 빛나는 핑크, 연두, 노랑, 하늘, 보라색을 조금씩 짜주고 검은색 물감을 짜주며 하늘색이나 보라를 조금 섞어 바탕색으로 칠하라고 안내해 준다.
“오, 아크릴 물감이라고 쓰여있는데 어떻게 된 물감이에요? 이런 것 처음 봐요!” 하고 신기해서 물었다. 소녀는 아크릴 물감에 UV 파우더가 섞인 물감이라고 설명했다. 소녀 말대로 보라색을 약간 섞어 배경을 까맣게 칠했다. 소녀는 다른 테이블에 해파리를 그리고 있는 여자들을 봐주러 왔다 갔다 한다. 다가오길래 다 칠했다고 말을 하니 말려 주겠다고 드라이기 같은 것을 꺼내 윙- 하고 말려준다. “와, 그냥 그렇게 잠깐 해도 말라요?” 신기하다. 이제는 자유롭게 여러 색깔을 바르고 그리고 하라고 한다.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예시로 잠깐 보여주면 안 돼요?” 하니 소녀는 제일 큰 붓에 핑크색 물감 묻혀 가운데를 물 흐르듯이 그리고 붓을 튀기기도 하며 마음대로 하면 된다고, 혹시나 수강생이 마음에 들지 않아할까 봐 터치하는 게 부담스럽지만 살짝만 보여주겠다고 했다. 나도 처음이라 조심조심 그리다가 나중엔 과감하게 이 색 저 색 칠하고 별도 그리고 입술도 그리고 꽃도 그린다. 눈물 떨어지듯 연두색으로 표현한다. 소녀가 물감이 더 필요하면 자기를 불러달라고 하며 다른 볼일을 보고 나는 테이블에 혼자 남아 자유롭게 그림을 그린다. 막 아무렇게나 흩뿌리는데 기분이 좋고 너무 재미있다. 대강 마무리 한 다음에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핑크를 더 써보라고 한다.
소녀는 내 사진을 찍어도 되냐며 찍고 나도 내 핸드폰으로 몇 장 찍어달라고 했다. “이만해도 되겠어요. “ 오른쪽 맨 밑에 내 낙관도 쓰고 마무리했다. 소녀는 글리터를 하겠냐고 해서 해달라고 하니 그림 전체에 뿌려준다. 움직일 때마다 반짝반짝 빛난다. 현지인과 대화도 나누고 여러 카페, 맛집 추천도 받았다. 전시에 관심이 있냐면서 인스타그램을 막 찾더니 괜찮은 팝업 전시가 있으니 가라고 주소도 알려 준다. 그리고 그림을 황토색 도톰한 종이로 싸서 호치키스도 찍어 준다. 와, 집에다가 잘 전시해 놔야지.
하노이에서 일주일이나? 내가 하노이 간다고 하면 모두가 하는 반응이지만 그냥 쉬엄쉬엄 일상처럼 지내고 맛있는 걸 먹고 로컬을 만나서 대화하고 여행자들을 관찰하는 그 자체가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