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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Apr 24. 2024

후쿠오카에서 1800원에 즐기는 문화생활


후쿠오카에 가서 제일 잘한 일이라 하면 후쿠오카시 미술관에 간 것이다. 오호리공원 스타벅스에서 말차롤케잌에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다가 지도를 켰다. 엇! 여기 바로 옆에 미술관이 있잖아? 보나 마나 비싸겠지, 하고 입장료를 보는데 충격적인 가격이다. 200엔이라니! 겨울에 이스탄불, 아부다비, 부다페스트에서 모두 미술관에 다녀왔는데 입장료가 모두 2만 원 내외였어서 여기도 당연히 비쌀 줄 알았다. 너무 비싸면 굳이 안 가려고 했는데 200엔이라니 동전 두 개를 얼른 가지고 후다닥 갔다.



호수를 끼고 넓은 트랙코스를 따라 5분 정도 걸어 미술관에 도착했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조각상이 서있는데 컬러풀하고 경쾌하다. 미술관은 한적하고 넓은 오호리 공원과 잘 어울리는 위치에 있다.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도 있다. 처음에 한국에서 전시를 봤을 때 점이 너무 징그러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작년에 도쿄에 갔을 땐 쇼핑 거리에서 루이비통을 지나가다 봤던 안경쓴 일본 아줌마의 점점으로 이루어진 예술품.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어떤 여자가 노란색 호박을 껴안고 있고 그의 남자 파트너는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전시를 둘러보고 2층으로 나오면 야외에 있는 조각상들은 연못과 푸르른 나무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서있다.


미술관 건물에 들어가는 데 사람이 정말 없다. 동전 두 알을 들고 하얀색 마스크를 낀 일본 아줌마가 앉아있는 구석의 소박한 부스 같은 데로 가서 표를 사고 싶다고 말한다. 그곳은 불교 전시의 입구였다. 표를 사자마자 등을 돌려 상설 전시가 있는 쪽을 두리번거리며 향하니 아줌마는 여기는 안 보고 가냐는 뉘앙스로 손가락을 가리켜 뭐라고 웃으며 말한다. “아, 이런 불교 조각품들 보는 건 지루할 것 같아서요.” 하고 웃으며 말한 뒤 2층으로 향한다. 헝가리국립미술관에서도 원시, 뭐 이콘 같은 종교적 조각품? 들은 패스 하였다. 별로 감흥이 없고 다리만 아프다.




전시관에는 1950-60년대 일본 작가들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나같이 창의적이고 강렬한 색감의 작품들이 많아 인상적이다. 그 시대의 우리나라는 한창 전후 나라를 재건하며 살던 시기겠다. 전시 입구에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쓰여 있어 새로 생긴 아이폰 일기를 켜서 메모한다.


Fujino kazutomo 선인장 가시

여자 누워있고 갈비뼈 사리로 여러 사람

평온한 듯 누워있음


메모 앱은 영감을 이어서 적어 놓으면 날짜가 최신 날짜로 덮어 씌워져서 별로였는데 새로 생긴 일기는 나중에 그날 내용을 추가해도 날짜 변동이 없다. 순간의 단상을 적어 놓기에 괜찮아 보인다. 일기라는 이름답게 한번 더 페이스로그인이 되면서 들어가진다. 가끔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애인이 호기심이라는 순수해 보이는 이유로 열려 있는 핸드폰을 이리저리 탐구할 것 같을 때를 대비해 날것의 솔직한 감정을 적어 놓기에 심리적인 안정장치가 될 수 있겠다.


쨍한 연두색 배경에 입체적이고 커다랗고 뾰족한 선인장 그림에 매료되었다. 작가 이름을 보니 Fujino kazutomo. 이어서 나오는 그의 그림들은 발길을 계속 붙잡았다.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의 갈비뼈 속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하나의 세계가 있다. 여러 사람이 들어있다. 내 안에도 저렇게 사람이 많은데. 나의 사람들은 내 갈비뼈부터 다리까지 그 속에 세계를 짓고 살고 있다. 재미있다. 침대 밖으로 쏟아지는 얼굴은 어쩜 저리도 편안하게 잠이 든 모습인지. 조금 나른한 표정이어도 좋을 것 같은데 아주 잠이 들었는지 중립적이다. 전시 공간에는 하늘색 셔츠를 입은 금발의 남자 외국인하고 나 밖에 없다. 이동할 때마다 마주친다.


커다란 자주색 네모와 베이지색 하단의 네모로 이루어진 로스코의 작품도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주 약간은 쨍한데 딥한 자두색 자주. 내가 좋아하는 색감이 구현된 미술을 보면 희열이 느껴진다. 너무 좋다. 조금 더 걸으니 마침 또 자주, 보라, 터키색 돌로 가득한 커다란 그림이 보이는데 배경색은 내가 좋아하는 오렌지, 마호가니색 톤이어서 색감 조합 구경을 한다. 샤갈, 달리, 호안미로 등 익히 알려진 작품들도 십여 개 되는 것 같다. 호안미로는 바르셀로나에서 처음 알게된 작가다. 호안미로 미술관에 갔었다.


사람 없는 전시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의자에 앉아있는 직원들을 마주친다. 지나치게 감시하는 예리한 눈빛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지루하다는, 대수롭지 않다는 눈빛으로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 난 후자를 좋아한다. 내가 뭘 망가트리거나 난동을 피울 것도 아니지만 전자의 눈빛은 무언가 불편하다. 오늘 전시 구경에서는 다 편안한 눈빛의 일본 사람들만 있었다. 구경을 왔냐는 존재의 식의 인식에 그치는, 그러나 직업으로서 임무를 망각하지는 않는.



설치 미술을 보는데 위 사진과 같이 총을 쏘는데 벚꽃이 가득 튀어나온 작품을 지나쳤다. 무언가 의미 있으면서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을 쏘는데 꽃이 만개한다. 쏟아져 나온 꽃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 전시 한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일본적인 옷을 갖춰 입은 사람과 쏟아지는 꽃이 사쿠라라는 점은 일본 작가로서 주는 메시지이고 보는 사람은 일본과 결부시켜 받아들이게 한다. 단순하게는 나는 일본에 있는 미술관에 있는 일본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다. 어떤 의도로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일부러 찾아 읽지 않았다. 작품 그 자체로서 멋졌고 굳이 해석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 순간에 번뜩, 하고 여러 이미지와 생각으로 이어진 그 순간이 좋다. 막연하지만 내 머릿속 어딘가에 들어있다가 언젠가 융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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