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시골감성 미쳤다

치앙마이(12)

by 모네

현대미술관 구경을 같이 한 남아공 언니는 치앙마이에 2년째 살고 있어서 나에게 여러 근교 여행지와 혼자서 가는 방법을 알려 주었는데, 그중에 치앙다오는 언니가 가장 애정하는 곳이기도 하고 나도 꼭 가보고 싶은 풍경을 가진 곳이었다. 이제 한국에 돌아갈 날도 2주 정도밖에 안 남아서 묵혀둔 도장 깨기를 하나씩 하고 있는데, 그중에 최근에 한 건 치앙다오 1박 2일 여행과 쿠킹클래스, 코끼리 보호소, 아트클래스 등이다.


언니가 알려준 대로 치앙다오는 창푸악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49바트면 갈 수 있는 곳인데 에어컨 버스는 20바트 정도 더 비싸서 천 원 차이라도 아끼는 나는 당연히 선풍기 버스를 택했다. 더워 봤자 얼마나 덥겠어, 하면서 탔는데 창문을 다 열고 달리니 되게 시원하다. 바람이 너무 날려서 눈이 시리고 머리가 이대팔 가르마를 넘어 1:9가 되어버리며, 올 때는 미처 다 마르지 않은 채 배낭에 구겨 넣은 티셔츠 빨래를 창문틀에 널어놓았더니 다 말랐다.



버스에 탔는데 아날로그 예술 감성 터진다. 와 이게 아트지 미술관 갈 필요 있나, 하고 혼자 속으로 엄청 감탄하면서. 양철의 천장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과 조화롭지 않은 저마다의 알록달록한 색색깔, 작동은 하는지 의문인 오래된 LG 티비와 고물처럼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천장에 달린 선풍기. 그리고 좌석마다 안전벨트는 성가신 양 다 의자 아래로 둘둘 말려있어 안전은 포기해야 하는 점이 코웃음이 났다. 안전관리자인 우리 동료가 보면 까무러칠 듯. 안전과 위생은 잠깐 넣어 두세요.


버스에 처음 타는 내가 어디에 앉아야 할지 두리번거리니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번호를 묻더니 자기 옆자리라고 해서 앉았다. 안쪽자리 숨 막혀서 미리 표를 살 때 태국어로 창가자리 달라고 화면을 보여줬는데 번역이 잘못되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던데 다행이었다. “고마워요.” 하고 “여기 사람이에요? 나는 한국인이에요.” 하고 묻지도 않았는데 한국인임을 말했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 외국인들이 더 이상 나를 먼저 좋아하고 나를 통해 한국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한국을 좋아한 뒤 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인 커밍아웃 먼저 하기! 그녀는 팡이라는 종점이 고향이어서 간다고 했다.


치앙다오 버스터미널과 근처 시장


1시간 반 걸려 도착한 치앙다오역. 아름다운 뭉게구름과 빨래가 바싹 마를 것 같은 뜨거운 햇빛과 야자수 나무, 그리고 앞에서 사진 찍으면 예쁠 것 같은 주황색 버스가 맞이한다. 구글맵에 번화가라고 나온 거리는 시장이었다. 오늘 화요시장이 열린다고 하는데 그건가. 천막 아래 음식, 과일, 아주 싸게 파는 빈티지 옷 등을 판다. 와, 분위기가 무슨 아프리카 감성이다. 유튜브 같은 데서 본 아프리카 시장 풍경 같아. 저 시장 뒤에 보이는 게 치앙다오에서 유명한 그 산인가. 맞았다. 오늘은 구름에 가려 안 보이는 것 같은데 나는 구름 뿌옇게 둘러싸인 산 뷰가 예뻐 보인다.


숙소를 어디로 예약할 까 고민하다가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호텔을 예약했다. 별을 보려면 조금 더 안쪽의 한적한 곳으로 가야 하나 싶었는데 그래도 접근성이 좋은 곳이 좋다. 오토바이를 렌트해서 다니는 사람들은 편리하겠다. 결국 오늘은 날이 흐려서 별이 한국에서 밤산책 할 때보다도 안보였다. 별에 관심 많은 지인이 오늘 유성우가 보이는 날이라고 해서 별의 도시라는 치앙다오를 왔는데 유성우는커녕 별도 안 보인다. 챗지피티가 새벽 3-4시경 보면 될 것 같다고 해서 알람도 맞춰서 일어나서 나가봤는데 더 흐려지고 천둥번개만 번쩍이면서 친다. 무서워라. 아쉽다. 다음엔 별을 보러 올 수 있을까?


@the view hotel

호텔까지 가는 길은 황토색 감성이 있는 길이다. 인도가 따로 없고 그늘하나 없는 한 줄짜리 기다란 길을 따라 걷느라 팔다리가 온통 익는다. 선글라스를 가져올 걸 너무 후회되었다. 나시를 입을 걸 팔이 안 예쁘게 타겠어. 점심 식사할 곳이 있나, 하고 가는 길에 메뉴들을 보는데 딱히 끌리는 데가 없다. 더워서 식욕을 잃은 것 같기도 하다. 햇살이 쨍쨍하니 시골 감성 뷰가 더 명확하게 보여서 신이 나서 사진을 찍었다. 이미 익숙해진 치앙마이와 다른 뷰여서 여행온 기분이 든다. 커다란 개가 한 마리 다가오길래 차도 반대편으로 얼른 건너갔다.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지도를 보고 찾아가 어느덧 호텔 근처에 가는데 보라색 꽃들이 심어져 있어 너무 예쁘다. 그리고 호텔을 둘러싸고 시골 논뷰가 저 끝까지 펼쳐져 있어 연한 하늘색과 싱그러운 여름의 연두색 논과 근처에 심은 꽃들의 조화가 예뻤다. 땡땡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뷰다. 호텔에 도착하니 배낭을 멨던 등과 이마는 땀범벅이 되었다. 물을 벌컥 마셨다. 로비에 오니 너무 시원해서 천국 같다.


산 뷰가 보이는 방으로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내가 예약한 방에서는 보이지 않고 200바트를 더 내야 한다고 했다. 8-9천 원 정도면 그런 인스타 감성의 방을 볼 수 있다면 썩 괜찮은가, 하고 8초 정도 고민하다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선풍기 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에서도 땀 뻘뻘 흘리며 걸어왔는데, 하고 금방 포기가 되었다. 태국인 남자 직원도 고민하다 포기하는 나에게 내가 예약한 방도 괜찮고 오늘은 흐려서 선셋 등 산이 잘 안보이기도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12시 반에 방이 청소되면 얼리 체크인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럼 밥을 먹고 와야겠다!


오히려 좋았던 건 수영장 바로 앞 방이어서 수영장 가기가 좋았다. 밤에 아무도 없길래 혼자 수영을 하고 사진도 찍었다. 낮에는 사람이 많아서 수영하기에 버글버글하고 태닝베드도 다 미리 자리를 맡아 두었다. 오랜만에 보는 유럽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밤에 왜 아무도 야외 수영을 안 하는지 알겠다. 선베드에 누워 음악을 들으려고 이어폰까지 가져왔는데 잠깐 눕자마자 모기가 사방팔방에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너무 가렵고 따가워서 물에 들어갔다가, 결국 그냥 철수하고 말았다.


오늘 하루 종일 햇빛을 쐬면서 걷고 에어컨을 쐬고 하다 보니 몸이 적응이 안 됐는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는데 방에서 한 30분을 씨름하다가 그랩으로 혹시 타이레놀을 주문할 서 있나, 하고 찾았다. 당연히 없지. 혹시 직원에게 비상약이 있을 것 같아서 “머리가 너무 아픈데 혹시 타이레놀 같은 것 있나요? “ 하고 물으니 허겁지겁 구급상자통에서 타이레놀을 꺼낸다. 얼른 대처해 주는 태도가 너무 고마웠다. 그 한 통에 잔뜩 들은 빨간색 통을 꺼내주길래 ”(염치없지만) 두 알을 주실 수 있나요? “ 하고 두 알을 먹었다. 저번에 방콕에서 사 온 이 통에 든 타이레놀이 너무 약해서 하나로는 효과가 없었던 기억이 났다. 이제 타이레놀을 든든하게? 먹었으니 괜찮아질 거야. 태국 사람들은 너무 친절해.


그랩 바이크를 불러서 저장해 둔 카페까지 찍으니 50바트가 나온다. 검색해 보니 치앙다오는 교통이 불편하고 보통 성태우를 부르면 150바트라고 해서 이것도 감지덕지다. 도이루앙이 보이는 캄파나 카페로 향한다. 그랩 아저씨는 그랩에 등록된 번호가 아닌 오토바이였고, 헬멧을 달라고 하니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지, 하고 뒤에 매달려 따라가는데 내가 생각한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간다. 아니 이거 날도 점점 어두워지는데 어디 으슥한 데로 끌려가서 장기매매 당하는 거 아니야. 계속 의심하면서 가다가 “캄파나 가는 거 맞아요? “ 하고 물으니 맞다고 ”캅. “ 하는 짧은 대답이 왔다. 당연히 맞다고 하겠지. 하는 생각과 아저씨의 캅. 하는 목소리가 의심스럽지가 않아서 의심을 거두고 풍경을 보기 시작했다. 와, 여기 멈춰서 사진 찍고 싶어. 카페보다 여기가 예쁜데? 하는 멋진 도이루앙뷰 포인트들이 많다.


@khampanna cafe


혼자서 마음 졸이며 우여곡절 끝에? 카페에 도착했다. 영어가 유창한 주인아저씨가 맞이해 주었다. 선셋을 보려고 6시 넘어서 가니 식사 주문 시간이 끝나간다고 해서 얼른 주문했다.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캐슈넛치킨. 캐슈넛치킨볶음에 태국식 고추장이 들어가는데 맛있어서 가끔 먹는다. ”넌 고추장을 좋아해. 고추장 넣어서 해준 음식을 항상 맛있다고 하더라:“라고 엄마가 말해서 알게 된 식성. 쿠킹클래스에서 알게 된 태국식 고추장쨈? 칠리페스토를 한국 갈 때 하나 사가야겠다. 알려진 관광지 카페인데도 식사와 음료가 비싸지 않았다. 그냥 치앙마이 일반 식당, 카페 가격. 망고 스무디를 시켰는데 ”와, 여태까지 태국에서 먹은 망고스무디 중 젤 맛있어요! “ 하고 아저씨에게 말했다. ”우리는 생망고를 쓰는데 얼음 적게 넣어달라 해서 또 망고 남은 것도 더 넣어서 그런 거 같아요. “라고아저씨가 밝은 미소로 말했다. 얼음 가득 넣고 망고는 달지도 않은 거 쬐끔 넣는 데가 많았어서 너무 맛있고 행복한 한입한입이었다.


스페인어를 쓰는 청소년 남매 가족이 최고의 뷰를 가진 곳이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오늘 선셋을 볼 수 있을까요?” 하고 아저씨에게 물었는데 “어제는 꽤 아름다운 선셋을 볼 수 있었는데 오늘날이 흐려서 보기 어려울 것 같네요.” 하고 말했다. 아저씨는 다른 손님에게도 있고 싶을 때까지 있다 가라고 편안하게 해 주었고, 혹시 숙소가 어디냐고 돌아가는 차가 걱정되면 자기 부부가 시내에 7시쯤 나가는데 무료로 같이 나가도 된다고 했다. 7시는 너무 촉박해서 더 있다 가겠다고 하니 자기 형도 8시쯤 돌아갈 텐데 치마 입었는데 스쿠터 타는 거 괜찮으면 얻어 타도 된다고 했다. 친절하기도 하셔라.


도이루앙 가까이에는 오두막 같은 게 설치되어 있어서 누워서 뷰를 볼 수 있었다. 아저씨는 와서 조명도 켜주고 선풍기도 틀어주었다. 온갖 벌레들 우는 소리와 살랑 부는 바람을 즐기며 해가 져가는 풍경을 본다. 선셋을 보지 못해 아쉽지만 구름 가득한 산 풍경도 괜찮다. 와서 논문 읽으려고 태블릿도 가져왔는데 결국 못 읽었다. 괜히 무겁게 가져왔네. 옆 오두막에 중국인 남자 두 명 말고는 혼자여서 이 공간을 충분히 즐겼다. 조금씩 시원한 기운이 들더니 논밭에 비가 축축이 내리기 시작했다. 빗소리와 벌레 우는 소리가 조화롭다. 여기 한없이 누워있고 싶다.


7시 반쯤 그랩 바이크를 불렀는데 이 밤중에 산골에 올까 싶은데 아까 그 아저씨가 잡혔다. 장기매매는 무슨! 너무 고마운 존재야. “또 봐서 반가워요.” 알아들을지 모르지만 반가움을 표시했다. 어느새 비는 가느다랗게 그쳐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이크를 타는 게 너무 좋다. 이 시골길을 달리는 사람이라곤 우리뿐이다. 이제 머리도 안 아프다. 기분이 너무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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