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13)
체크인을 하기까지 1시간 정도 남아서 다시 밥을 먹으러 나왔다. 구글 지도에는 분명 밥집이 있는데 문을 닫거나 밥집으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버스 터미널에서 오는 길에 보았던 밥집까지 다시 걸어가기로 한다. 가는 길에는 인도도 없어서 찻길을 따라 건너야 하고 그늘이 없어 땀이 얼굴에서 계속 흘렀다. 그래도 차들이 많지 않고 사람이 있으면 천천히 지나가서 위험하지는 않았다.
처음 도착한 곳은 쏨땀과 닭을 구워서 파는 곳인데 썩 내키는 메뉴는 아니었으나 더 걷기 싫어서 앉았다. 어린 여자 직원이 준 메뉴를 열심히 정독하고 치킨을 시키려는데 지금 치킨이 안된다고 한다. 그럼 쏨땀만 되나요? 하니 그렇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하고 일어나서 조금 더 걸어서 반대편 밥집으로 향했다. 당연히 에어컨은 없는 곳이고, 큰 천막에 그림과 메뉴가 태국어로 쓰여있어서 정독한다. 자세히 보니 영어로도 작게 같이 쓰여있다. 태국식 오믈렛, 볶음밥, 쌀국수, 커리덮밥 등 꽤 다양한 메뉴가 있다.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서 카운터로 가 천막의 볶음밥을 가리킨다. 돼지, 치킨, 해산물 중에서 해산물을 택했다. 가격은 60바트. 치앙마이 일상과 비슷한 금액이다. 2500원 정도에 식사를 해결한다.
치앙마이의 로컬 식당들은 주로 물은 손님들이 알아서 갖다 마시면 되는데, 아이스박스에서 얼음을 꺼내고 큰 정수기 생수통 같은 데서 물을 부어 마시면 된다. 너무 더워서 선풍기가 소용이 없다. 계속 땀이 흐르고 다리에는 벌써 모기를 세 방 정도 물려서 가렵다. 다리를 계속 서로 포개면서 모기를 쫓는 시늉을 한다. 볶음밥은 상당히 맛있어서 내일 돌아갈 때 또 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밥을 기다리면서 주방을 보는데 이것저것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거며 냉장고며 색감과 여러 가지의 조화가 너무 빈티지하고 시골의 멋이 있다.
다시 땀을 흘리며 호텔까지 걸어와서 체크인을 하고 방에 가방을 두고서 약간 땀을 식혔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방이 이미 시원한 상태였다. 온천을 가기 위해 입은 옷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우붓에서 2만 원인가 주고 산 형광색 수영복인데, 지금 생각하면 발리에서 너무 우리나라보다 싸다는 생각에 여러 소비를 한 것이 많은 것 같다. 시장에서 산 거라 수영복을 안 입어 보고 샀는데(아줌마가 무조건 맞을 거라고 장담을 해서), 끈으로 조절을 할 수 있어서 맞긴 하는데 끈 팬티라 좀 아슬아슬해서 공공장소에서 입기에 좀 풍기문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치앙마이에서 반바지를 같이 챙겨 올까 하다가 배낭을 메고 오니 무게를 최소화하고 싶어서 챙겨 오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아니면 차라리 반바지를 입고 올걸.
의외로 그랩 바이크가 오길래 62바트에 도착했다. 남아공 언니가 그랩 바이크를 불러도 잘 안 온다고 했는데 오네? 하고 불러서 신나게 왔다가 돌아오는 차가 없어서 큰 어려움 겪었다. 온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무리 바이크, 더 비싼 차를 설정해서 불러도 이 시골 산속에 오는 차가 없었다. 근처에 홈스테이가 있길래 가서 뭐라도 불러달라고 들어갔다가 들어가는 길에 홈스테이에서 개 두 마리가 짖으며 나에게 뛰어와서 식겁하면서 도망쳤다. 지나가는 차와 오토바이에 손을 내밀어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는데 실패했다. 결국 온천에서 만났던 현지인 모녀가 흔쾌히 타라고 해서 세 명이 한 오토바이에 꾸겨 타고 시내까지 나왔다. 셋이서 헬멧도 안 쓰고 오토바이를 타다니 지금 생각하면 위험해 보이는데, 그때는 그 산골을 탈출한 것이 너무 기뻤고, 바람을 가르며 아무도 없는 시골 산길을 달리는 것이 너무 신나고 기뻤다.
치앙다오를 소개해 준 남아공 언니가 극찬을 한 곳이 바로 치앙다오 온천인데, 야외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데 그 분위기가 엄청나다. 커다란 나무들이 초록초록하게 우거진 숲 속은 시원하고, 온천을 하고 있으면 갑자기 버팔로가 나타난다. 몸을 담글 수 있는 온천 통이 여러 개 있고 온도가 다 달랐다. 손을 잠깐 넣어보고 앗 뜨거, 하면서 다니니까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어떤 아저씨가 제일 덜 뜨거운 통을 알려주었다. 손을 담가 보니 들어갈 만해서 다리를 넣어 보니 뜨듯했다. 다리를 좀 담그다가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길래 나도 옷을 벗어 한쪽에 두고 몸을 푹 담갔다. 중간에 옷을 벗어 둔 곳을 잠깐 가보니 개미들이 기어 다녀 와악, 하고 으아 나는 자연을 좋아하진 않아, 했다.
옆 통에 들어 있는 여자분과 눈인사를 했다. 20대 초반인 줄 알았는데 나랑 나이가 비슷한 현지 교사였다. 이 날이 공휴일이어서 놀러 왔다고 했다. 자기는 원래 고향이 빠이인데 치앙다오에서도 더 들어간 어떤 마을의 교사였다. 왜 치앙마이 학교를 다니지 여기서 있냐고 물으니 공교사여서 나라가 정한 데서 일할 수 있다고 했고 자리가 나야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도 비슷해서 이해가 갔다. "빠이를 가보고 싶었는데 가는 길이 너무 구불구불해서 멀미가 나서 못 갔어."라고 말하니 조금 더 모험을 해도 괜찮다면 자기가 주말마다 빠이 고향집에 가는데 오토바이 뒤에 타는 게 괜찮으면 나를 데리러 올 테니 같이 가자고 했다. 흠, 미니밴을 타고 가는 것보다 멀미가 덜 날 것 같긴 한데 3시간 동안 오토바이 뒤에 탈 수 있을까? 아무튼 그 친구와 인스타그램 친구가 되어 연락을 하긴 하는데 빠이에 갈 시간이 날지는 모르겠다.
같은 통에 들어 있는 어린이는 서양인의 외모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태국인이라 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10살 소녀였는데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서양인 외모라서 주변에 서양인 외모의 어른이 없어서 혼자 왔니? 하고 물으니 저 옆에 통에 들어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자기 엄마라고 했다. 영어를 잘해서 "국제 학교에 다니니? 어떻게 영어를 그렇게 잘해?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잘해?" 하고 물었더니 자기는 태국어를 써서 현지 학교를 다니고 자기 리조트에 손님들이 오는데 영어를 쓰니까 잘하게 되었다고 했다. 소녀는 한국 영상을 자주 봤다며 언젠가 일본과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한국인인 나를 반겨주었다. 치앙다오에서 더 들어가는 어느 마을에 산다고 했는데 기회가 되면 놀러 오라고 하며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소녀는 내가 열아홉 살 정도로 생각했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예전에 어떤 영상에서 유치원 생들한테 어른이 나도 여섯 살이야, 하고 편견 없이 진짜 여섯 살 친구로 받아들이고 반말하고 친구처럼 대하는 걸 봤는데, 어린이들의 눈에는 서른 살이든 열아홉 살이든 감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소녀는 영어도 잘하고 태국사람이니 한국에 장학금을 받고 교환학생이나 대학교 입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중에 한국 학교에 지원해 보라고 했다. 소녀의 일상을 물었고, 들으면서 내가 한국 초딩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에 간다고 하니 소녀가 왜 그렇게 사냐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약간 심심한 듯도 하게 자유롭게 보내는 것이 어린이들의 정서에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현지인들은 온천에서 뜨겁게 몸을 지진 뒤에 강물에 온몸을 담가 시원하게 즐기던데, 나는 온천은 너무 뜨겁고 강물은 차가워서 그렇게 못했다. 사우나와 온천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여기 오면 하루 종일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날 후기를 들려주니, 다음에 치앙마이에 간다면 차를 렌트를 해서 자기가 운전을 하고 이곳저곳 다니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다음에 오면 꼭 별을 보고 싶어.
소녀 가족과 언젠가 또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먼저 나와 차가 없을 건 생각을 못하고 너무 잘 즐겼다, 하고 후련한 마음으로 차를 부르기 전에 근처 오두막 카페에서 수박주스를 하나 시켰다. 40바트. 얼음을 적게 넣고, 설탕을 넣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너무 달달하고 맛있어서 아저씨에게 엄지를 치켜 보여주었다. 후루루룩 몇 모금만에 다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