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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빈티지 사원 앞 인생 바나나 케이크

치앙마이(23)

by 모네
님만해민 동네 산책


여기선 10시에 자든 2시에 잠이 들든 아침 7-8시만 되면 눈이 떠진다. 커튼을 닫고 자서 햇빛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문을 닫고 자서 이제 새소리도 희미하게 들리는데 너무나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하나 있는 남색 조깅용 반바지에 베트남에서 산 까만 티셔츠로 갈아입고 가볍게 동네 산책을 나가기로 한다. 아침에는 햇빛이 눈부시지 않고 후덥지근하지 않아 쾌적하고 차도 사람도 잘 없다. 님만해민의 기다란 길들을 따라 슬로우 조깅을 한다. 걷듯이 조금 뛰다가 걷다가 한다. 이미 매일 다니는 길이라 익숙해져서 구경하는 재미는 없지만 한가할 때 보니 이런데도 있었네, 하고 눈에 밟히는 집이 한 군데씩 있다. 아, 다음에 여기서 아보카도 스무디를 먹어봐야겠다.



집에 가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무삥 집에서 무삥과 집 근처 쏨땀 아줌마가 파는 쏨땀을 사가지고 들어가야겠다. 이 무삥 집은 아침에 열어서 점심 무렵 문을 닫는 곳인데, 저번에 엄마가 왔을 때 너무 맛있다며 두 번 간 집이다. 나는 벌써 여러 번 간 집. 굉장히 부드러운 돼지갈비 같은 꼬치 세 개와 찹쌀밥이 한 세트이다. 포장해서 집으로 오는 길에 아침을 먹고 싶은 날 가끔 와서 사는 쏨땀 아줌마네 노점으로 향한다. 내가 땅콩을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는 나중에 땅콩을 추가로 더 넣어준 게 사려 깊고 고마워서 35바트인데 40바트를 내고 5바트는 팁이라고 거슬러받지 않았는데 아줌마는 함박웃음을 보이며 나의 귀여운 팁에 고마워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 샴푸며 바디워시며 다 여기 와서 산 것들인데 이제 5분의 1 정도밖에 남지 않은 걸 보며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서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튼다. 대탈출을 예전에 재밌게 봤는데 넷플릭스에는 없어서 못 봐서 아쉽다. 삐까뚱씨 영상이 떴길래 틀면서 맛있는 아침을 즐긴다. 아우 너무 맛있다. 쏨땀 너무 그리울 거야.


4시간 밖에 안 자고 일어나 걷고 아침도 먹으니 배불러서 눕고 싶다. 요즘 계속 밤늦게 잠들기도 하고 생리 전 증후군으로 잠이 쏟아지고 핑 돈다. 나는 왜 괜히 아침에 나가서 걸었을까 후회하면서 침대로 가서 좀 눕는다. 프로포절도 제출한 상태여서 마음이 한가하다. 그렇게 잠에 취해서 중간중간 일어나야지, 하면서 시계를 보면서 또다시 잠에 빠지고 하다가 1시 반이 되었다. 다행히 오늘은 청소를 하거나 수건을 갈아주는 날이 아니다. 여기 숙소는 일요일에는 방 전체를 청소해 주고 수요일에는 새 수건을 갈아주느라 1시 이후에는 집을 비우는 게 좋다. 어떨 때는 1시 좀 넘어서 똑똑, 하고 어떨 땐 2시 넘어서 들어와도 청소가 안되어있다. 아무튼 오늘은 잠에 취해 누워있다가 똑똑, 하는 소리에 깨는 일은 없는 날이다.


유리컵 너무 예쁘지 않나요?


어제 필리핀 아줌마가 왓수안독(Wat suan dok)이라는 사원을 추천해 줬는데 인스타에 검색해 보니 다른 사원들과 다르게 하얀색으로 된 건축물이 디즈니성처럼 몽글몽글허니 예쁘고 뭐 왕실의 유해가 있는 기념물들이 모인 곳이라는 데가 따로 있는데 되게 예뻤다. 그래서 내일 할 일 없는데 가봐야겠다, 하고 말했었고 아줌마는 다른데 어디를 가본다고 했었다. 그런데 방금 메신저가 와서 보니 아줌마가 자기도 걸어서 왓수안독에 가볼까 한다고 말했고, 나는 음 그러면 이제 씻고 준비하고 나가서 간단히 점심도 먹고 3시쯤 만나자고 했다. 자기도 아직 침대에 누워있다며 그때쯤 딱 좋다고 했다. 아줌마가 어제 왓수안독 옆에 진짜 맛있는데 저렴한 로컬 케이크집이 있다고 소개해줬어서 가려고 했던 차여서 케이크집에서 바로 보기로 했다.


지도를 살펴보다가 엉클판 타이푸드라는 저번에 갔던 미얀마 식당 옆에 있는, 지도에 저장해 둔 곳을 가보기로 한다. 한국에 가기 전에 내가 태국 와서 꽂힌 캐슈넛치킨을 더 먹고 가려고 하는데 여기도 이 메뉴가 있다. 캐슈넛치킨에 꽂혀서 저번에 쿠킹클래스에서도 캐슈넛치킨을 만들었다. 태국식 고추장 같은 칠리페스토를 넣어서 만드는 것이었는데 감칠맛이 너무 좋아서 결국 한국에 가져가려고 하나 사 두었다. 종류가 여러 개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괜찮아 보이는 걸 샀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캐슈넛치킨이 덮밥형식으로 된 메뉴가 나왔는데 60바트로 저렴한 그냥 가성비 맛이어서 아쉽다. 소스가 매콤하지는 않고 부드러운 케찹 정도의 느낌이었고 프라이드치킨이 아니라 삶은 닭 식감이라서 자극성이 떨어졌다. 그런데 같이 나온 무국 같은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 후루루룩 계속 마셨다. 한국인 입맛에 익숙한 맛.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있던 식당이어서 목 뒤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머리를 고무줄로 하나로 묶었고 20분 정도 걸어서 왓수안독으로 가는 길을 지도로 한번 쓱 본 뒤 여정에 올랐다. 저번에 여기 치앙마이대예술센터에 올 때는 멀다고 생각해서 그랩 바이크를 불러서 왔는데 이제 보니 걸어서 올 법한 거리이다. 필리핀 아줌마는 더운 이곳에서도 하루에 만 오천, 2만보씩은 걷는 게 대단하다. 이 정도 거리는 구경삼아 걸어도 되는 거리인데 땀이 나는 게 싫어서 너무나 당연히 매번 바이크를 불러서 다녔다. 나는 낮에 공부한다고 백팩에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무겁게 넣고 다녀서 걸어서 먼 거리를 걸을 생각을 못하기도 했다. 한 10분 정도 남았는데 아줌마에게 거의 다 왔다고 연락이 왔다. “아, 10분 정도 더 남았어요! 카페에서 만나요. “ 하고 답장을 보냈다.




근처에 와서 지도를 보며 걷다가 아줌마가 알려준 케이크 집에 도착했다. 아줌마가 밝은 미소로 맞아 주었다. 아줌마는 오렌지 케이크와 코코넛 케이크를 먹어봤는데 맛있었다고 했다. 자기는 오렌지 케이크를 시키겠다고 했다. 오렌지 케이크? 이상할 것 같은데, 했는데 상큼하니 맛있었다. 나는 초콜릿 케이크를 시켰는데 마침 막 만들어져 뜨끈뜨끈한 게 나왔다. 많이 달지 않고 건강한 맛인데 촉촉하고 부드럽다. “오, 그 옷은 어디서 산거예요? 색감이 예뻐요. 보라색!” 하고 아줌마가 입은 티셔츠를 보면서 내가 물었다. 오른쪽에는 태국 국기와 THAILAND, 하고 대문자로 쓰여있고 등에는 번호가 쓰여있는 운동복이다. 축구 유니폼인지 어떤 유니폼인지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줌마는 배구를 주기적으로 하러 가는데 스태디움에서 50바트에 샀고 정품이라고 했다. 나도 한국에 와서 운동할 때 입으면 쿨할 것 같아서 한국에 가기 전에 이런 걸 보면 하나 사가기로 마음먹었다. 나중에 나이트 바자를 돌아다니다가 진홍색이 들어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발견했는데 250바트를 불러서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한국돈이면 만원 정도지만 아줌마는 50바트에 샀다고 해서 파는 사람에게 내 친구는 50바트에 샀다는데요? 했더니 에잇, 하고 난색을 표하며 그 가격은 말도 안된다고 했다. 그럼 내가 100바트에 달라고 하니까 그러면 나는 스페셜 프라이스로 180바트에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협상 끝에 160바트에 샀는데 이것도 비싼 것 같다.


그렇게 아줌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노릇노릇하고 달달한 냄새가 나서 우리 둘이 동시에 막 베이킹한 것을 가지고 나온 젊은 태국 여성을 바라보았다. 아줌마가 그게 뭐냐고 물으니 태국 여성은 바나나 케이크라고 말했다. “와 진짜 맛있겠다!” 하고 나는 말했고, 아줌마도 “이건 하나에 얼마예요?” 하고 물었더니 “15” 하고 그녀가 대답했다. ”15? 50이 아니고요???? “ 하고 아줌마가 되물었다. ”와, 하나에 15바트라고? 어떻게 이렇게 쌀 수가. 우리 하나 시켜서 나눠 먹을래요? 배부르긴 한데 먹어보고 싶어요. “ 하고 내가 아줌마에게 말했다. 우리 둘 다 케이크 두 개를 먹고 배불러서 더 이상 못 먹겠다고 하던 차였다. 그렇게 바나나 파운드인지 케이크인지 막 만들어진 그것을 한입씩 먹는데 너무 감탄했다. ”와, 너무 맛있어요. 진짜 식감이 촉촉하고 부드러운데 인공적인 단맛이 아니고 건강한 맛인데 너무 부드럽고 고소해요!!!! “ 하고 말했다. 아줌마도 너무 맛있다며 숙소의 사람들과 나눠 먹어야겠다고 바로 3개 더 포장해 달라고 주문했다. 내가 치앙마이에서 먹었던 음식들 중 제일 맛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지. 다음날 다다음날 나는 계속 바나나 케이크에 꽂혀서 다른 베이커리나 카페에 가봤지만 파는 곳이 잘 없고, 갔는데 이미 다 팔렸다. 15바트는 진짜 너무 싸다. 아마 님만해민 중심가 카페에서 70-80바트에 팔아도 외국인 손님들은 싸다고 사먹을듯.



그렇게 환상적인 바나나 케이크를 흡족하게 먹고서 아줌마와 왓수안독으로 향한다. 입구부터 몽글몽글한 하얀색 성문 같은 게 감탄을 자아낸다. 와 너무 예뻐요. 아줌마는 낮에 시간이 나면 절에 자주 가고 스님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 같은 데 자주 참여해서 불교에 대해 잘 안다. 지나가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스님이 스마트폰을 하는 걸 보고 내가 재밌다고 하자 스님들과 왓츠앱 단체방도 있다고 했다. 스님들이 프로그램 운영을 하느라 단체방을 만드는 데 거기서 태풍이 몰려온다는 정보 같은 것도 받았다고 하며 보여주었다. 아무튼 아줌마는 이곳에 와본 적이 있고 사진도 찍어서 자기는 사진을 안 찍어도 된다고 나는 처음 와봤으니 사진을 많이 찍으라며 투어 가이드가 되어 나를 사진 스팟마다 데리고 가서 사진을 열정적으로 찍어주었다. 사람이 없어서 한가하고 날씨도 선선해서 기분이 좋다.


특히 묘지처럼 되어 있는 곳도 들어가서 여행자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데, 그때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아줌마가 여기는 성수기 되면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사진 찍기 힘든 곳이라며 지금이 기회이니 사진을 많이 찍어가야 한다고 했다. 저마다 크기가 다른 하얀색 묘석 같은 것에 세월의 흔적인지 다른 것에 의한 것인지 까무잡잡하게 빈티지한 흔적들이 너무 예뻤다. 이 종교인이 아니지만 왠지 이 종교인 곳에서 성스러운 곳인 것 같아 몸가짐이 조심스럽고 어색했는데 아줌마가 기대는 포즈도 취하고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 보라며 권유했다. 그렇게 동영상도 열심히 찍어주시고 길 안내도 해주는 완벽한 투어가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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