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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연하남과의 두근두근 로맨스

치앙마이(25)

by 모네

Moment's Notice Jazz Club이라는 라이브 바에서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11시쯤이었는데 집까지 걸어가기에는 멀기도 하고 밤이어서 바이크를 불렀다. 그랩이나 볼트 바이크는 밤에도 잘 잡혀서 좋다. 넓은 도로에는 차가 없이 한가했고 바이크가 어느 쪽에서 올려나, 하고 그랩 앱에서 바이크의 실시간 위치를 보면서 길가로 나갔다. 바이크를 부르면 폭우가 와서 길이 잠길 정도의 상황이 아니면 보통 1-2분 내에 왔고 오늘도 그랬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 기분 좋은 날씨의 밤.


바이크가 도착했고 나는 헬멧을 달라고 했다. 헬멧을 안장에 두고 일어나기 귀찮아서 먼저 요청하지 않으면 헬멧을 꺼내줄 생각이 없는 운전자들이 많지만 나는 안전을 위해 꼭 헬멧을 요청한다. 그들도 평가와 팁에 예민할 터라 있는데 안 준 사람은 없다. 그는 앞 바구니에 들어있는 헬멧을 꺼내 주었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선한 눈웃음으로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나도 그의 눈을 보게 된 것이다. 운전자는 두툼한 헬멧을 쓰고 있어 눈과 코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도 귀엽고 잘생겨 보였다.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차가 거의 없는 밤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고 그는 운전을 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where are you from?”을 시작으로 서로의 이름을 묻고 우리는 간단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는 헬멧을 쓰고 있어서 잘 들리지 않아서 크고 분명하게 대답을 해야 했다. 치앙마이에는 얼마나 있냐, 언제까지 있냐, 여기 가는 곳이 너의 집이냐, 혼자 여행하냐, 태국 음식 어떤 걸 좋아하냐 등을 물었다. 저번에 치앙마이대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귀여운 그랩 운전자가 바이크 운전을 하며 뒤에 탄 나에게 말을 걸었었는데, 내가 학생이냐고 물으니 여기 치앙마이대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는 학생인데 저녁에 아르바이트로 가끔 한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학생이냐고 물었는데 아니라고 했다. 그 치앙마이 공대생은 호감이 가득해 보였고 나에 대해 묻고 대화를 했지만 도착해서 연락처를 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현지인 친구를 사귄 것 같아 내가 먼저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소년의 가슴에 불을 질러 뭐 하겠노, 하며 그냥 말았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집 앞에 도착하자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더니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있냐고 물었다. 응, 알려줄까? 했더니 팔로우하고 싶다고 했다. 중고등학생 소년 소녀처럼 순수한 미소 가득한 재미있는 시작이었다. 단순히 관광객과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은 현지인이 아니라 남자 여자 간의 설렘과 함박웃음이 있었다.


방에 도착해서 씻고 충전 중인 핸드폰을 터치했는데 인스타그램 메시지 알림이 떠있다. 그일 것이라고 직감하고 기분이 좋아서 앱을 켰다. 그는 만나서 반가웠다고 내일은 뭐 하냐고 물었다. 마음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상남자 같은 태도가 좋았다. 내일 만나자고 하려나 뭐 하는지는 왜 묻지, 하고 나도 답을 보냈다.


- 음, 뭐 공부? 아침에 요가를 갈 수도 있고 특별한 계획은 없어.

- 나도 공부할 거 있는데 내일 카페에 같이 갈래?

하면서 그는 우리 집 근처 걸어서 2-3분 거리의 카페의 구글 지도 링크를 보내주었다.

- 오! 여기 가보려고 저장했던 곳인데.

- 응 여기 나도 좋아하는 곳이야. 아주 괜찮아.

- 응 내일 괜찮아. 그럼 내일 일어나서 보고 연락할게.

- 근데 너 오늘 옷이 너무 예뻤어. (부끄러워하는 이모티콘) 내가 내일 언제 만날지 연락할게.

- 응 운전 중에 위험하게 메시지 보내지 마!

- 운전 중 아니야. 손님 기다리는 중.


그는 미리 카페에 가있었고 아침 아홉 시 반쯤 자기가 카페에 와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연락이 없길래 오후에 보자고 하고 요가를 갈까 하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차였다.

- 아! 그럼 빨리 얘기하지. 나 이제 씻고 준비해야 하는데. 그럼 한 30분 뒤에 나갈게.

- 응 나도 할 거 있어서 천천히 와.


내게 가볼만한 곳 알려주는 중


카페에 도착하니 어제 헬멧 사이로 눈과 코만 보이던 그랩 바이크 잠바를 입고 있던 남자가 까만색 티셔츠에 루즈한 핏의 청바지, 그리고 여름 나라인데도 가을 겨울용 소재의 볼드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아 젠지 감성인가. 어제는 몰랐는데 키가 굉장히 훤칠하고 체격이 건장해서 멋있다고 생각했다. 피부는 초콜릿 색인데 운동을 해서 그런지 근육이 탄탄하고 건강하다. 얼굴은 되게 귀엽고 머리는 스타일리시한 투블럭 컷의 까만 곱슬머리다. 쌍꺼풀지고 긴 속눈썹의 호기심 가득한 눈과 이무진을 닮은 코와 분위기를 가졌다. 주문한 음료를 가지고 3층에 올라가니 아침이라 손님이 그밖에 없고 창가에는 노트북 하기에 좋은 은색의 테이블 자리들이 많았다.


-Heyyyyy

반가워하며 수줍음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는 서로를 향해 인사했다. 그는 아이패드로 무언갈 보고 있었고 나도 아이패드와 노트, 펜을 꺼내 논문을 읽을 채비를 했다. 그는 간단한 영어만 할 수 있어서 자기 핸드폰에 태국어로 중얼중얼 속삭이며 번역된 결과를 나에게 보여주는 식으로 우리는 소통을 했다. 주식 투자를 위해 챗지피티와 함께 공부하던 중이었다.


그는 운동선수를 하다가 부상을 입어서 심판 시험을 준비했고 지금은 심판을 하는데 일이 없을 때는 그랩 알바를 한다고 했다. 밤에는 파티가 끝난 외국인 손님들이 많아서 돈을 벌기 좋고 팁도 많이 준다고 했다. 그가 팁을 받은 목록을 보여주는데 바이크 비용보다 팁을 더 많이 준 사람들도 있다. 거의 모든 손님들이 팁을 주고 팁 수익은 다 자기가 가질 수 있어서 꽤 짭짤하다길래, “악. 나만 너에게 팁을 안 준거야?” 하고 말했더니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는 미래에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돈을 모아 조금씩 투자를 한다고 했다. 나중에 나이를 알게 되었는데 나보다 11살이 어렸고, 나는 그 나이 때 저만큼 돈이 없었는데(오히려 학자금 대출로 마이너스 상태) 한국에 비해 엄청나게 저임금 국가에서도 저렇게 성실하게 돈을 모으고 불린 게 대단하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아주 어릴 때 이혼하시고 할머니와 살면서 누구도 자기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해 준 사람이 없어서 10대 때부터 일을 해야 했다고 지금도 스스로 벌지 않으면 삶을 이어나갈 수 없다고 해서 안쓰럽고 동정심이 들었다.


낯선 사람이 다가온 것이어서 신종 데이트 사기인가 하는 의심을 거두진 않았던 것이 미안하게 그는 시종일관 나에게 순수한 관심과 걱정과 애정을 보여주었다. 내가 학생이고 자기 또래라고 생각해서 내가 돈을 아껴 쓰는 모습을 보고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경제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내가 200바트 밖에 안 남았다고 하자 현금이 200바트 밖에 안 남았고 주말이 지나서 atm에서 인출을 하려 해서 돈이 없다는 뜻이었는데 전재산이 200바트 남았다는 줄 알고 괜찮냐고 한국엔 돌아갈 수 있냐고 크게 걱정해 주었다. 카페에 있다가 밥 먹을 시간이 되어서 밥을 먹으러 가는데 음료와 디저트까지 자기가 주문하더니 400바트 되는 금액을 자기가 계산을 하였다.


근처 미슐랭 식당에서 카오소이를 먹었는데 물값도 따로 내야 하고 다른 곳보다 가격이 좀 있는 곳이었다. 저번에 여기에 왔을 때 나는 물 안 마시고 참았는데 그는 물을 두 개나 시켰다. 그가 시켜준 판단 코코넛 디저트는 고소하고 맛있었다. 빨대가 하나였는데 추가로 요청하지 않고 그는 내 빨대를 이용해서 데이트하는 기분이 났다. 이 가격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내가 흔쾌히 낼 수 있는 금액이어서 내가 계산하겠다고 500바트를 내밀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500바트는 그가 몇 시간을 폭우에도 그랩 알바를 해서 하루에 버는 꽤 큰돈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남자답게? 나를 데리고 가 이것저것 시키고서 계산을 못하게 하고 자기 카드를 꺼내 계산했다. 귀여웠다.


그렇게 183의 외모가 멋있는 열한 살 차이가 나는 순박한 연하남은 메시지로 매일 틈틈이 자기 사진도 보내주고 안부를 자주 물어주었다. 늘 나를 진심으로 귀여워했다. 나도 그가 너무 귀여웠다. 언어가 더 잘 통했다면, 한쪽이 다른 한쪽의 삶으로 들어와 경제활동을 해서 살 수 있는 여건이었다면 어땠을까. 서로의 나이, 직업, 경제력을 알기 전에 이끌렸고 나는 그가 고졸이고 나보다 연봉이 한참 낮고 한참 어리지만 매력 있는 남자로 느껴졌다. 나를 좋아하는 눈빛과 설렘이 진솔하게 그대로 느껴져서 받아주게 된 것 같다.


나는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명백히 유통기한이 있는 사이였고 현실적으로 우리의 미래는 없어서 슬펐지만 그는 내내 밝고 긍정적이었다. 그냥 너무 홀로 고군분투하며 사는 그가 안타깝고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외로운 아이를 상상하면 안쓰럽다. 큰누나?의 감수성으로 그에 대한 마음은 측은지심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나의 우려와 측은지심과 달리 그는 혼자지만 내면이 너무 건강해서 안심이 된다. 그가 현재의 젊음을 더 즐기고 행복하면 좋겠고 미래에 건강하고 안정을 주는 가정을 꾸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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