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없이 일어나기에 몇 달 안 남았다는 사실을 종종 자각한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회사로 돌아가기에 서너 달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로는 돈이 아쉬워지면 중간에 돌아갈 수도 있다고 했었는데 동료들이 그러지 말라고 이왕이면 하는 김에 공부에 더 전념하고 즐기다 오라고 했다. 그렇기도 하고 지금의 삶이 너무 좋아서, 그리고 돌아가면 논문 쓸 시간이 없어 수료만 하게 될 것 같았다.
개강을 하자마자 논문 프로포절 스무 장 정도에 대한 1차 심사를 받았고 다행히 무난하게 통과했다. 평가 교수님들이 흥미롭게 봐주셨고 존중해 주며 여러 커멘트를 해 주셨다. 방학에 들어가기 전에 주제 검토를 받았을 때는 지도교수인 교수님이 약간 갸우뚱하셨다. 일반적으로 그럴 것이다 하는 생각과 학계의 논의와 다른 방향의 가설인데 아직 나의 직관을 바탕으로 한 수준이어서 논리를 채워 넣지 않아 설득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주제가 선행 연구는 부족하지만 오늘날 현상의 현실 설명력이 있고 흥미롭다고 생각했지만 교수님이 영 아니다 다른 주제를 찾아보라고 하면 또 그럴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교수님은 이런 식으로도 생각해 봐라, 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고민을 진지하게 같이 해주셨고 고맙기도 하면서 확실히 똑똑하시다, 하고 감탄했다.
어쨌든 치앙마이에서 두 달을 갈아 넣어 선행 연구를 많이 찾고 나름 치열하게 읽고 생각을 연결해나가 논리를 채웠고 마침내 교수님의 관문을 넘으며 그 과정에서 받은 작은 칭찬도 크게 기뻤다. 인스타그램에 종종 긴 글을 올리는데 나의 논문 주제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서 올린 적이 있는데, 국내외 여러 분야의 친구, 전 동료들이 공감 가는 주제고 멋진 아이디어라고 공감을 해 주었다. 한국어로 썼는데 인스타그램 자동 번역이 꽤 잘 전달해 주나 보다. 나의 동기부여에서 인정 욕구는 미미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나의 작업물에 대한 인정에는 쾌감을 느낀다.
리딩을 하는 것도 재미있고, 주제를 발견하고 연구되지 않은 간극을 메우는 것도 재미있지만 학자의 길이 나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4년 정도 과감히 투자해 유학을 하고 돌아와 모교에서 교수를 하는 상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런데 생각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해도 오로지 나의 ‘글’을 ’써내는 것‘은 무진장 어려운 일이며, 양적연구를 위해 통계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데 나는 수학적 사고에 둔한 편이다. 물론 챗 지피티가 수식과 코드를 다 알려주지만. 석사 수준에서는 여러 글을 읽은 티를 내며 인용만 잘해도 용인된다는 것이 다행이다.
대학원생으로서 4학기는 처음이고 논문 쓰는 것도 처음이니 과정마다 물어 보고 싶은데 물어볼 사람이 없는 답답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사실 매 학기 매 수업이 처음이니 이래도 되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하고 궁금할 때가 많았다. 매번 다 사소한 걸 교수님한테 물어보기가 뭐하다. 수업도 많고 지도하는 학생들도 많으시니. 그래도 다른 수업 같이 들었던 사람 중 연락처가 있는 사람에게 ‘조심스레’ 물어보기도 한다. 사내 문화를 통해 느낀 건 자기에게 뭘 물어 보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나는 누가 나에게 물어보면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기뻐서 사소한 것이라도 이것 저것 노하우를 공유해주고 도움까지 닿게 되면 그것도 기쁘던데 스스로 알아보지 성가시게 왜 물어보냐는 식인 사람들을 만나면 이해가 안간다. 그래서 내가 교육에 나가면 신입 직원들이 좋아해 주었다. 다른 선배들은 왜 알아서 찾아보지 않고 이런걸 물어봐, 내가 널 알려주는 게 의무가 아니야 바쁜데 그냥 읽어보고 알아서 좀 해, 라는 식의 태도여서 상처를 받았는데 나는 혼자 글을 읽어보는 것보다 노하우 있는 사람의 입으로 알려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는 사람이고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나의 미래는 장기로 계획된 적이 없고 매년 당장의 내년이 훅훅 바뀌는 삶을 살았다. 지금 이 나이, 이때에 내가 이 직장을 다니며 또 이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해본 일이어서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측이 안된다. 아까 잠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가서 자리에 앉아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듀얼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8시간을 앉아 일을 하는 모습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 물론 괴롭지만 매일 예쁜 옷을 커리어 우먼처럼 차려입고 나가는 것이 꽤 큰 행복이기에 흠.. 매달 이제 월급도 들어올 테고 다시 중단된 호봉을 올려야지, 하고 기운 내기로 한다. 새로운 길이 또 생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