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10) 마라케시
모로코라는 나라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도시는 마라케시이다. 대학교 때 배운 마라케시 의정서의 그 마라케시. 마라케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폴란드에서 경유를 해서 눈도 안 떠지는 미친! 강풍의 눈보라 추위를 경험할 때 입고 있던 털옷을 벗어젖혔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까지 걸어서 가는 동안 한낮의 햇빛은 기분 좋게 따사로웠고 목을 길게 위로 꺼내야지 다 볼 수 있는 길고 두꺼운 몸통의 야자수를 올려다보며 와, 여름나라에 왔구나, 하고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보이지 않지만 아주 멀리서 은밀하게 숨어서 나를 찍고 있다면 끝까지 땡긴 줌 속에 담긴 내 입가에 함박미소가 지어진 것을 볼 수 있을 테다. 열이 올라 땀이 나지는 않고 와 덥다 할 정도는 아닌 기분 좋은 후덥지근함에 약간 은은한 복숭아 빛 한 방울 섞인 크림색의 후리스 털옷을 아주 자연스럽게 벗어 허리에 묶고 입국 심사 줄을 선다.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는 복잡함을 견디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하고 인내심의 한계를 매듭 짓는 그 순간에 어디서 아프리카인이 두 명이 튀어나와 아무렇지 않게 새치기를 해 세관원 앞으로 가서 서고, 나를 포함한 외국인들은 what the fxxk? 의 제스처와 표정을 짓는데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비행으로 지치고 피곤하고 서있기도 힘든데 기다리는 내내 눈살을 찌푸릴 만큼 직사광선이 눈을 쏘고 더워져서 짜증이 나는데 에어컨을 틀어주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후덥지근해졌는데 몰지각한 새치기범들. 니네 나라가 어딘지 망해라 저주하겠다, 어느 나라인지도 모르고 남의 나라와 국민을 저주하고.
그렇게 몽골 출입국 도장이 얌전하게 나란히 찍힌 페이지에 모로코 입국 도장을 탕-하고 받고 들어왔다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오기 전 유튜브 몇 개 보니 모로코에 밤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아주 비싼 돈을 내고 택시를 타던데 낮에 도착이라 시간도 많겠다 미리 알아본 버스를 타러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너무 더워져서 안에 입은 긴팔도 걷어붙였다. 폴란드에서 나를 따뜻하게 지켜줬던 검정색 니트는 너무 두껍게 느껴진다. Dkny에서 세일할 때 산 막 입기 좋은 얄파닥한 골지니트인데 팔부분만 벨벳 소재 같은 걸로 되어있어서 막 입는 티여도 드레시한 느낌이 있어서 좋아한다. 이 니트를 예쁘다고 해준 동료와 그 말을 해준 당시 부서 회의실 공간과 공기,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버스를 타러 가는 곳이 있을 텐데 무작정 나왔더니 어딘지 모르고 헤맸다. 심지어 같이 캐리어를 끌고 있어서 그 사람도 잘 모를 텐데도 혹시나 싶어 물어 물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막상 한번 길을 익히니 별거 아닌데 버스 정류장이 좀 보기 힘든 곳에 숨어 있다. 그래도 나중에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할 때 편한 것. 길을 익히면 내 동네 마냥 지도 없이 다니는 게 편한데 익숙해져서 새로운 자극을 못 느낀다는 게 등가 교환처럼 되는 게 아쉽다. 나처럼 유럽에서 온 것 같은데 언제 갈아입었는지 캐리어를 끌고 있는데 반팔을 입고 있는 여행자들을 보니 니들이 승자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모로코의 첫인상인 풍경을 즐긴다. 버스 맨 뒷자리에 몸을 구겨 넣고 앉아서 가는데 뒤를 바라보니 설산이다. 마라케시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 아틀라스 산맥으로 둘러싸인 도시인 걸 와서 알았다. 유튜브는 중앙 광장(메디나)에서 원숭이 나오고 뱀 나오고 꽹과리 같은 거 치고 흥정하다 호구당하는 장면만 나오지 공항에서 시내를 가는 동안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정신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게 사랑스럽고 장난스런 집시 룩의 프랑스인 커플이 서 있는 몸이 내 눈앞을 가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창문 밖의 풍경을 훔쳐보는데 너무 소중하다. 나는 앞에를 보고 가는데 바로 앞에 서있던 뻣뻣한 갈색 머리와 에메랄드 눈동자를 가진 프랑스 남자는 더워서 위에 입은 긴팔 한 겹을 벗는데 옷을 너무 훌러덩 가슴 위까지 벗어서 살과 그 속의 타투와 복근이 함께 보였다. 보려고 본건 아닌데 몸이 좋다. 유럽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도 옷을 훌러덩 잘 벗는다. 평범한 한국의 대학생이라면 화장실에 가서 벗고 올 텐데 여자애들도 수업시간에 더우면 위에 옷을 훌러덩 벗었다. 나도 적응이 돼서 간단한 옷은 훌러덩 잘 벗는다. 유럽 여자애들이 수업시간에 입고 있던 옷을 훌러덩 잘 벗는 장면을 떠올리며 그때 공부하던 카펫이 깔린 고전적 유럽식 강의실이 떠올라 기분이 좋다. 유럽식이라고 해봤자 유럽엔 나라가 많아 다 다를 수 있겠지만, 아시아인인 내 머릿속엔 현대적인 우리 건물과 다른 다 고풍스러운 외국식 그런 대학교 건물이다. 그 공간에 내가 있었다는 게 나는 그 장면을 제3자로 조망해서 떠올리니까 더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그게 비디오로 구현된다면 좋을 텐데.
건물들이 크림색에 벽돌색을 살짝 섞은 색, 연한 복숭아색, 살색을 하고 있어 그런 중동 아프리카 현지인들이 사는 건물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저 멀리에는 어디에서나 설산 풍경이 따라온다. 유럽을 갈 때 지나치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눈 쌓인 히말라야 산맥 뷰도 떠오른다. 내 눈은 하트 뿅뿅이 되어 이보다 더 사랑에 빠질 수 없다. 나른하게 만드는 날씨로 폴란드에서 평생 처음 경험한 듯한 맹추위로 잔뜩 움츠렸던 온몸에 헤벌레 헤벌레 이완되고 비록 이곳이 알제는 아니지만 카뮈의 소설을 읽으며 꿈꿔왔던 북아프리카라니. 앞으로의 여정도 기대로 가득 차서 흥분의 도가니다.
제마 엘프나 광장 즉 마라케시 메디나 근처에 공항버스가 여행자들을 토해 내고 나도 그들을 따라 호기심과 함박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내렸다. 핸드폰을 켜 지도를 켜며 일단 환전을 조금 해야 해서 호텔을 가기 전 호텔 알리에서 환전을 하기로 한다. 그쪽으로 가는 길엔 나무와 그림자가 우거진 공원 같은 길이 나오는데 현지인들이 식물, 야채, 뭐 시장에서 상인들을 위해 아주 싸게 파는 싸구려 음료 같은 걸 파는 매대 뭐 그런 것들이 빼곡한 살 것은 딱히 없는 작은 골목이 펼쳐진다. 살 건 없지만 현지인들의 무슬림 복장, 표정, 얼굴, 그리고 여긴 도대체 뭘 파나 하고 구경하면서 활기 띤 골목을 걸으니 별천지처럼 이게 무슨 세상인가 싶다. 공원에서 나오니 엄청 넓은 광장이 펼쳐지는데 너무 넓고 복잡해서 눈에 다 담을 수도 없다. 어디서 뭐 악기를 연주하는 듯 큰 소리도 울려 퍼지고 사람은 바글바글 하고 온갖 종류의 생과일주스를 갈아주는 부스가 쫙 펼쳐져 있다. 더우니까 뭐라도 한 잔 마시자, 하고 다가가 오렌지 주스를 한 잔 달라고 한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 젊은 주스 아저씨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조라서 몸은 밖에 나올 수 없어 입으로만 소리쳐 호객을 해야 한다. 니하오, 곤니찌와 작렬이다. 오렌지 주스 하나 달라고 하고 가격을 보니 10, 15라고 쓰여있는데 당연히 별 말 없으면 큰걸 주겠지? 그래 더운데 비타민 씨좀 많이 마시자, 하고 큰 컵에 주더라도 그냥 받아 들었는데, 20 디르함을 받고는 잘 가라고 하는 거다. 이건 아니지. 15 아니었냐? 메뉴판에 크게 쓰여있는 숫자를 가리키며 약간은 짜증이 묻어나는 말투로 말했더니 아차차, 하는 척하며 5 디르함을 거슬러 준다. 그렇게 길 가장자리로 나와 캐리어를 한쪽에 세워두고 힘 빠진 한 손을 허리춤에 대고 오렌지 주스를 시원하게 들이킨다. 캬 시원하고 달콤하다. 쓰레기통이 없어 처분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고 다니며 환전도 하고 호텔에도 도착한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간단히 재정비하고 나온다. 해가 없어지니 약간 서늘하다. 아부다비에서 그랜드 모스크를 들어갈 때 입구에서 사 입었던 발목까지 오는 핑크색 무슬림 옷을 입고 나왔다. 옷 이름이 뭐가 있을 텐데 몰라서 무슬림 사람들이 입는 옷이라고 무슬림 옷이라고 말한다. 히잡을 쓰고 있는 여자 직원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하며 어디서 얼마 주고 샀냐고 물었다. 말이 호텔이지 허름한 여관 같았는데 그녀는 나를 꼭대기 옥상방으로 인도하였다. 체크아웃할 때 캐리어를 들고 그 좁고 가파른 옥상으로 가는 계단을 따라 힘겹게 내려왔는데 그녀는 어떻게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짐을 옮겨줬을까. 방은 넓고 작은 히터가 있지만 추워서 몸이 웅크러지며 화장실은 샤워 공간이 있지만 발디디틈 없이 좁은, 새해 전야라 너무 비싸져서 겨우 구한 저가의 방 다운 곳이었다. 팬시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감성이 있는 리야드를 나오면 공사판 같은 황토색 풍경이 펼쳐지다가 메디나가 나타나기 전까지 좁은 골목은 갖가지 두 눈 휘둥그레지는 상점과 음식점, 주얼리를 파는 가판대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눈인사를 하며, 또 아는 체를 하며 발걸음을 붙잡는 상인들의 호객이 기분 나쁘지 않다.
메디나로 나오니 뻥 뚫리면서 시야가 넓어진다. 어딜 봐야 할지 모르고 시끄럽고 사람 많고 온통 정신이 없어 무슨 서커스가 열리는 난리통 같다. 그렇게 지나가는 데 누가 snake! 하고 내 발 앞을 가리키다가 이내 깜짝 놀라 기절 초풍하던 나를 재미있어하며 장난이었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돌아선다. 너무너무 화가 났다. 내가 뱀을 얼마나 싫어하고 무서워하는데. 그렇게 마라케시에서 6박을 하는 동안 매일매일 메디나 거리를 지나가면서 코브라를 꺼내놓은 아저씨들을 봐야 했고, 흐린 눈으로 지나가기 바빴다. 원숭이, 새, 고슴도치, 토끼 등 온갖 종류의 동물을 갖고 나온 상인들을 보면 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인가, 온갖 소란에 정신이 없으면서도 내가 언제 이런 환경 속에 와 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흥분 상태가 된다. 그렇게 어디 자기 아프리카 어디에서 왔다는 아프리카인이 자신은 어려운 환경에도 열심히 사는 청년이니 비즈니스를 도와달라고 티셔츠를 가져와 보여주는데, 그중 한 티셔츠가 마음에 들어서 사려고 보니 너무 크다. 나도 학생이라고 어필해서 50 디르함에 깎아서 그래 8천 원 정도면 사주자, 하고 그는 배낭에서 내가 원하는 디자인과 색깔의 사이즈를 찾는데 계속 큰 것만 나온다. 분명 라지라 쓰여있는데 얘는 자꾸 이게 나한테 맞다고 어떻게든 팔려고 하는데 도저히 커서 살 수가 없다. 아무리 기부 차원의 성격으로 사준다 해도 그래도 입을 수 있는 걸로 사야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사회생활 눈웃음을 짓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모로코에 오면 손에 헤나를 하고 싶었던 터였는데 아줌마들이 목욕탕 의자 같은데 앉아 헤나를 해주는 코너를 지나가게 된다. 첫 집에서 역시나 무슬림 옷을 입은 푸근한 체형의 아줌마가 정말 밝은 표정을 하고 다가오며 헤나 예시 책자를 펼친다. 혹시나 해서 얼마냐고 물어보니 옆에 같이 있던 아줌마가 250을 달라고 한다. 으악 25유로면 17 곱하면 4만 원이 넘는 거야? 이건 아무리 첫날 내가 호구라지만 도저히 비싸서 안 되겠다, 하고 sorry 하고 지나가려는데 아줌마가 나를 달래며 간단한 디자인은 더 싸다고 일단 보고 가라며 너는 내가 특별히 150에 해주겠다고 앉으라고 한다. 기술이 대단하다. 알고 보니 나에게 밝은 미소로 다가온 아줌마는 농인이었다. 그런데 그 따뜻한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갈 수가 없었다. 여성이고 장애인으로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 텐데 이렇게 나와서 생활력 있게 일하는데 사회적 약자의 가정 경제에 기여하자, 하고 가격을 조금 더 깎아서 어차피 하려고 했으니 하자, 하고 마음먹었다. 내가 학생이라 돈이 없고 오늘 첫날이라 시세를 모른다, 너무 비싸면 굳이 안 하고 싶다, 여러 가지 고도의 심리전의 핑퐁을 주고받다가 아줌마가 학생이고 너는 예쁘고 사랑스러우니 특별히 이 복잡하고 큰 디자인을 90에 해주겠다고 대신 아주 예쁘게 색깔도 믹스해서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책자를 건네면서 이렇게 복잡한 무늬는 850 정도 하는데 싸게 하는 거라고 말했다. 850? 15만 원 돈에 누가 길거리에서 이걸 해. 황당하고 어이없었지만 그냥 속아주기로 했다. 90이면 16000원 정도. 15분 정도하고 내기에는 엄청나게 비싼 시급이지만 저 농인 아줌마에게도 떨어지는 게 있겠지, 하고 첫날인데 호구당해보자! 하고 손을 내밀었다. 보통 전기요금 1000-1500바트 건물에서 300바트대 나온 짠순이 치고 엄청난 소비다.
그런데 하고 보니 너무 아름답다. 기분이 좋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nice henna 하면서 칭찬해 준다. 어떤 아저씨는 여자들이 결혼식 같은 특별한 날에 하는 거라는 설명도 해준다. 사진 찍어도 느낌 있게 나와서 좋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흐릿해졌지만 여행하는 내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