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살고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아서 취업을 한 이곳이 편해서 계속 다녔다. 그러다 원래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취업을 한 것이어서, 일하면서도 갈급함이 있어 대학원에 가게 되었고 2년이 흘러 어느덧 복직을 하게 된다.
다 까먹어서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던 일은 의외로 하루 만에 금방 생각이 났다. 머리보다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새로운 부서원과 부서장과의 인간 관계도 뭐, 어렵지 않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자기 할 일을 하면 되니까. 그런데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어둡고 행복하지가 않아 보인다. 삶에 쩌들어 겨우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처럼 일상에 기쁨과 즐거움이 없어 보인다. 가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돈 벌러 나온 사람들 같다. 계속 다니는 나의 미래 모습이 저렇겠구나 미래가 어둡다.
그러는 나의 삶도 행복하지가 않다. 매일매일 자신과 싸운다.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 일이 널럴해서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집에 가도 월급은 나온다는 점은 좋다. 크게 일에서 스트레스가 없고 한가하다. 그런데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 무려 출퇴근 포함 12시간을 이곳을 위해 쓰는데 너무 따분하고 재미가 없다. 자유롭게 졸릴 때 자고 일어나다가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니 몸은 피곤하기만 하다. 자꾸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디지털 노마드로 살만한 전문성은 없다. 퇴근 후 내 시간은 2-3시간 밖에 안 나는 내 삶의 거의 전부인 일터에서 나는 행복을 못 느끼고 있다. 인생은 짧고 한번뿐인데 앞으로 20-30년을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민을 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법을 이리저리 브레인 스토밍 하던 시간을 보내면서 대학원 동료들의 눈은 반짝거렸고 재미있는 양질의 대화를 나눴었다. 현재와 미래를 다각도로 생각해 보고 내가 생각해 보지 못한 지점도 나누며 그 생각에 감탄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대화들이었다. 미래지향적인 생각과 대화가 좋았다. 그런데 나의 현재는 누가 다 정해준 법 규칙을 따라서 기계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다.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할 일이 없고 기계적으로 전화를 받고 모니터와 업무처리규칙을 바라보고 있다.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양한 목소리들과 통화를 하며 사람의 온기를 나누는 것은 의미 있고 보람이 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게 본질적인 갈급함을 해소시켜 주지는 못한다.
논문을 쓰는 동안 아주 높은 자유도가 주어져 이래도 되나 싶던 연구자의 삶을 잠깐 체험해 보았는데 가지 않은 길이 주는 막막함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기는 하지만 따분한 현재 보다는 행복했다.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고 주제에 맞는 논리를 착착 끼워 넣고 흥미로운 논문을 발견하는 희열이 너무 크다. 그런데 또 이게 완전한 일이 되고 일상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주변에서는 박사를 해 보라고 권유하지만 그와 동시에 박사를 한 사람들은 너무나 외로운 싸움이라고들 말한다.
미국 박사는 GRE도 해야 하고 준비하는 게 귀찮은데 유럽 박사는 영어 점수만 다시 따고 그냥 지금 단계에서 준비하기 편해 보여서 조금 알아보고 있는데 그저 해외 생활이 잘 맞고 외국인과의 연애가 잘 맞고 현재의 일과 라이프스타일에 만족이 안돼서 도피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휴 이 나이에 진로 고민을 하고 있을 줄 몰랐는데. 어쩌면 평생 진로고민을 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매일 따분한 일상을 지키는 회사원들이 새삼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