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마지막 겨울방학, 여행 준비 일상

by 모네

석사과정의 마지막 학기,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 석사 논문도 약간 더 보완해서 심사 교수님들께 최종 승인 요청을 드렸다. 종강 모임에 참석하러 캠퍼스로 향했다. 오늘이 마지막일까, 마지막 시험날에도 오늘이 학위수여식 전 마지막일까, 하고 계속 마지막을 되뇌었다. 듣고 싶은 포럼이 남아서 아직 마지막은 아니다. 0도의 차가운 날씨에 쑥색의 부츠를 신은 양말이 계속 벗겨져 내려간다. 서늘한 공기 속에 흩어지는 여러 웅얼거리는 소음들과 이미 익숙해져서 단조로운 학교 가는 길. 여기가 그동안 지나다닌 길이구나, 하고 마지막 감성을 계속 느끼려고 노력한다. 기분이 다운된다. 휴직을 하기 전에 회사를 마지막으로 나가는 날에도 퇴사를 하는 듯 아쉬운 느낌이 들었고, 코로나 이후로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을 떠난 작년 터키 여행에서 친구와 헤어지면서도 아쉬움을, 치앙마이 두 달 살기 후 이 공간에 다시 또 와서 이렇게 길게 느끼다 갈 수 있을까, 하고 머문 자리를 떠날 때는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이제 직장인이 되어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사이들이 거의 동료들이다. 휴직기간에도 거의 가끔 동료들만 만난 듯하다. ‘친구=동갑, 오래 안 사이’ 개념에서 떠난 지 오래되었듯, 내편이 되어주고 가끔씩 나를 생각해 주고 걱정해 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친구가 된 것 같다. 친한 동료가 아기를 낳아서 휴직 중인데 만나진 못하고 갑자기 영상 통화가 왔다. 광어처럼 침대와 한 몸이 된 채 부은 눈만 꿈뻑꿈뻑거리고 있었는데, 아기의 동글동글하고 커다란 눈과 무해한 표정을 보니 갑자기 생기를 얻게 되었다. 아기를 대할 줄 모르는 나는 어머, 귀엽다, 예쁘다, 만 어색하게 반복했다. 매일 늦잠을 자고 나가기 귀찮아서 햇빛을 제대로 못 봐서 기운이 안 좋은데 말 못 하는 신생아 아기는 전파를 타고 순간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준다.


최근 동료 결혼식에 다녀와 잊고 지내던 여러 동료들을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반가워하면서 손을 마주 잡는 동료도, 그냥 데면데면 눈을 안마주치는 그냥 ‘아는’ 사이의 동료도 있다. 요새는 동료가 결혼한다고 청첩장 모임을 가졌다. 아주 오랜만에 분위기 좋은 파스타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또 같이 친한 아기 아빠인 동료와 셋이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너무 반갑고 오랜만의 대화하며 생각 없이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아기 아빠인 동료는 오랜만에 정상적인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좋아했다.


스무 살가량 차이 나는 동료들과 만나는 자리도 불편하지 않고 내가 편하게 얘기해도 편견 없이 받아줘서 좋다. 휴직 중에도 연락 주셔서 밥도 사주시고 안부도 물어봐 주시고 나의 여행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넌 잘할 거다 도전해 봐라, 하고 늘 칭찬 격려해 준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악의가 없고 좋아하며, 상급자-하급자로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걸 안다. 우리는 서로 존댓말을 하면서 예의를 지키고 서로의 인격과 실력과 생각과 미래를 존중한다. 나는 그 사람에게 회사 내에서 얻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내가 평소처럼 친구에게 하듯 편한 말투와 내용으로 대화하는 걸 지켜보는 제삼자인 동료들은 뜨악, 하면서 웅성웅성한다. 와 쟤는 관리자에게 어떻게 저런 말을 하냐, 보통 사람이 아니다, 하는데 나는 일상 대화를 한 것이어서 그렇게 반응하는 그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젊은 직원들은 나이 많은 동료나 관리자가 반말을 하면 민감하게 반응하며 더욱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요구하지만 자기들이 더 일 년 차이도 선후배를 따지고 허용되는 발언의 범위를 따진다. 나이와 직급 상관없이 동료의식으로 대하는 나는 그들의 눈에 위아래 없는 사람이다. 내 눈에 그들은 자기의 윗사람에게 군대문화처럼 섬기며 알아서 긴다. 계산적이게 느껴진다. 또래의 젊은 꼰대들보다 젊은 사람과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하려고 노력하는 늙은 꼰대들이 더 편하고 좋다.


우리는 공무원과 민간 기업의 중간적 성격을 가지기에 업무적으로는 공조직의 상명하복 구조여도 조직 문화는 꽤 수평적이다. 아직까지 나이 어린 직원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남쪽 지방은 더 사투리 쓰며 정감 있는 문화가 남아있어) 관리자는 직원들에게 반존대가 아닌 -시-가 들어간 깍듯한 존댓말을 쓴다. 특히 요즘은 조금만 귀에 거슬리는 말을 관리자나 상급자가 하면 바로 신고한다. 각자가 굵직한 사업을 하나씩 맡아서 수행하기 때문에 업무 난이도 차이는 있지만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내에서 지시하는 일은 없고 각자 일을 한다. 정, 부를 두고 일을 하는 일도 가끔 있으나 요즘 조직문화에서는 지양된다. 정이 부에게 일을 다 시키고 책임도 떠미는 부작용이 많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료들과 만나고 연령이 다양한 모임의 집들이도 다녀오고 단조로운 일상을 약간 벗어나니 재미도 있고 시간도 빨리 간다. 논문을 최종 마무리하고 비행기를 예약하려고 보니 11월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할 때 81만 원이던 표가 94만 원이 되었다. 미리 예약하면 너무 그거에 빠져서 학생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소홀히 할까 싶기도 하고 즉흥적인 일이 끼어들까 싶기도 했다. 간 김에 유럽을 들를까 싶어 알아보니 모로코 가는 비행기는 주로 스페인, 프랑스에 있다. 파리는 매력이 없는 도시여서 끌리지 않았고 마드리드도 심심한 도시라고는 하지만 수도인데 못 가봐서 프라도 미술관을 갈 겸 근교 톨레도도 아름다워 갈 겸 스페인 가는 걸 끊고 거기서 모로코를 가자, 하고 다시 마음먹었다. 에어차이나가 50만 원 대여서 매우 싸고, 스페인에서 모로코를 왕복으로 다녀와도 30만 원 정도여서 괜찮았다. 대신 저가항공은 수화물 추가비용을 내야 하고 수화물 무게도 엄격하게 재서 번거롭긴 하다. 그래서 내가 감당가능한 숙박비 내에서 에어차이나 스케줄에 따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드리드-모로코 도시 비행기 스케줄을 알아봤다. 그거 알아보는 사이에 내가 타려던 베이징 경유 에어차이나는 매진되고, 갑자기 10만 원이 올랐다. 와, 열받는다. 날짜를 조정했더니 40만 원대 상하이 경유 표가 나왔다. 그러면 또 그거에 맞게 모로코행 스케줄을 보다가 그사이에 또 상하이 경유표가 매진됐다. 아, 이거 중국항공사 유령표 아니야? 왜 갑자기 하필 내가 이거 보는 평일 낮시간에 이렇게나 다 동시에 매진된다고? 하는 근거 없는 음모론을 생각했다.


결국 원래 보던 폴란드항공 스케줄로 돌아와 그 94만 원이 되었던 바르샤바 경유로 마라케시 인/아웃 표를 끊었다. 사실 마음은 더 편하다. 폴란드항공에서 스탑오버를 원하는 날짜만큼 제공해 줘서 바르샤바 경유도 며칠 할 수 있고 특히 짐을 마라케시로 바로 부쳐주기 때문에 간단한 배낭 짐만 가지고 시내에 나가기 홀가분하다. 바르샤바에 간 김에 어차피 스탑오버가 8일까지 된다고 하니 주변 도시나 체코의 친구집을 기차 타고 갈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겨울에 유럽은 너무 춥고 해도 짧아서 흥이 안 난다. 저번에 유럽 저가항공 탔다가 지연된 항공 일정 수락 버튼을 안 눌렀다고 40유로를 더 내라고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지연이 되면 지연이 된 거지 뭔 수락버튼을 누른담, 진짜 생각지도 못한데 한두 푼도 아니어서 정색하고 따졌더니 그냥 이번만 봐준다고 한 적이 있다. 괜히 간 김에 여러 도시 가보려고 뽕뽑으려하다가 저가항공 스트레스를 받느니 수화물 연결해 주는 경유 편이 낫다. 특히 열흘 이상 긴 여행은 짐 걱정이 있다.


이번엔 약 보름간 모로코의 대표 도시들을 구경하려고 한다. 짐 무겁게 돌아다니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온 짐을 싣고 오래 기차를 타며 이동하는 건, 근거지를 한 곳에 두고 짜잘짜잘한 근교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모험이다. 버스나 기차로 오래 도시 이동하는 건 예전에 유럽에 살 때 사계절 짐을 무겁게 바리바리 끌고 열 몇시간 허리 뽀개지는 버스를 여러번 타야했던.. 안 좋은 기억 때문이다. 슬리핑 버스도 아니고 좁이서 허리 젖히기도 눈치보이는 그 고문 같은 상황. 온갖 짐을 이고 지고 단기 이민을 다니다 보면 다시는 안해야겠다, 짐은 꼭 필요한 것만 최소화하자는 마음이 든다. 물론 돈이 많으면 고민 거리가 아니다.


이번엔 마라케시, 페스, 쉐프샤우엔, 라바트, 카사블랑카, 에사우이라, 이렇게 여섯 도시를 가려고 한다. 미리 예약하면 숨 막히고 그거에 따라야 한다는 게 싫어서 일단 모로코는 첫 1박만 예약을 했다. 당일에 도착해서 기차 시간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기차가 연착되어 못 타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고, 요즘 아프리칸 컵을 모로코에서 하고 있어서 괜히 환불불가 숙박을 다 예약해 버리면 매 순간 불안할 거다. 예전에는 돈 아낀다고 환불 불가로 떴지만 가성비 숙소들을 미리 예약하고 갔는데, 막상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새로 친구를 사귀어 같이 다른 도시로 여행을 해보기에 이미 몇 십만 원 예약한 걸 날릴 수가 없어서 못한 적이 있다.


카사블랑카에서 인도에서 핸드폰 보다가 오토바이가 인도로 돌진해서 핸드폰 채간 한국인 여행자를 유튜브에서 보고 이번에는 핸드폰을 도둑맞지 않으리, 하고 다이소에서 가방과 연결할 수 있는 스트랩을 샀다. 핸드폰을 도난당할 일을 대비해 작고 가벼운 메모장에 비행 일정과 숙소 이름을 적었다. 혼자서도 사진 찍을 수 있는 가볍고 얇은 천 원짜리 핸드폰 거치대도 샀다. 십여 년 전 여행할 때 쓰던 셀카봉은 너무 무거워서 여행 중에 가지고 다니기 번거로워서 안 쓴 지 오래다. 챗 지피티에게 모로코 날씨에 맞는 여행 복장도 추천받고, 가서 사입을 만한 로컬 감성 옷도 있는지 물어보고, 하루 경비는 10만 원이면 충분할지 이것저것 물어본다. 폴란드 음식이나 디저트도 추천받는다. 바르샤바는 쇼팽이 상징인 도시인데 마드리드에 비해 숙박비와 물가가 싸다. 마드리드에서는 10만 원이면 캡슐 호텔 같은 데서 자야 하는데 그래도 여기는 고풍스러운 단독룸에 화장실도 있는 3성급 호텔에서 잘 수 있다. 회사 다니면서 단기 여행을 할 때 숙박비 십만 원대는 비싸다고 느끼지 않는데 백수일 때 장기로 가려하니 이제 대학생 때처럼 캐리어도 못펴는 도미토리 이층침대 생활은 못하겠어서 손품을 팔게된다. 찾아보니 바르샤바 가면 거의 소규모로 하는 쇼팽 피아노 연주를 듣고 관광 상품화되어 있던데 마침 호텔 건물에서 매일 열리고, 투숙객에게는 할인을 해준다는 정보를 접했다. 호텔에 메일을 보냈더니 연말이라 5시 반, 7시, 8시 반 세 타임으로 공연이 많은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보장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직원은 메일로 꽤 빠르게 소통을 해주었고 시중가보다 만오천 원 정도 저렴하게 공연을 예약했다.


유럽에 가면 고풍스러운 소극장에서 저렴하게 예술 공연을 즐길 수 있는데, 바르샤바에도 소극장들이 많았다. 연극도 있고 뮤지컬, 클래식 공연도 있다. 사진으로 보니 무대와 연기자들의 복장도 이국적이고 재미있어 보여서 연극을 보고 싶은데, 인스타그램을 찾아서 극장에 문의하니 내가 가는 날 영어 자막이 제공되는 날이 없었다. 아쉽지만 폴란드어 공연이라도 볼까 싶은데 그건 엄청난 우선순위는 아니어서 가서 심심하면 현장결제를 하든 해봐야겠다. 극장 하나하나 들어가서 웹사이트를 탐험하는데 재밌는 연말 공연이 많아서 며칠 더 있을걸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미술관도 내가 있는 동안 무료입장인 날이 있어서 메모에 적어두었다. 바르샤바가 관광할 것이 적어서 재미없는 도시고 당일치기 여행을 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서 기차 타고 그단스크를 다녀올까, 하다가 비행으로 몸이 피곤할 걸 생각해서 그냥 바르샤바에서만 있기로 결정했다. 나의 취향에 따라 소소한 hidden gem들을 찾는다면 주어진 시간도 아쉬운 도시가 될 수 있다. 치앙마이가 재미없는 도시라고 하던데 막상 아니었던 것처럼. 여행 가기 전에 도시마다 구글에 hidden gem을 검색하는데 외국 블로거들이 숨겨진 예쁜 카페나 골목, 전시를 알려줄 때가 많아서 지도에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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