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함을 다듬으라고요? 왜요?

by 모네

새 부서장이 따로 테이블로 불렀다. 형식은 다른 일로 불러서 잠깐 앉으라고 했지만 느껴지는 공기가 왠지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차분하게 느릿느릿 결국 하고 싶은 얘기를 꺼내셨다.


“나도 오기 전에 여러 소문을 들었는데. 소문을 믿고 사람을 판단하는 편은 아니지만, 평소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가 괜찮아요?” 하고 나에게 묻는 것이다.


“흠..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으신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문을 만들어 퍼뜨리거나 그걸 부장님께 전한 사람이 있을 텐데, 그 사람의 인성과 의도 등을 소문을 전달받는 사람도 자기의 판단력이 있을 텐데 역량과 그릇에 따라 판단을 하지 않을까요?” 하고 왠지 소문의 근원으로 짚이는 사람을 추측하며 대답했다.


“그래도 직장 생활을 하는데, 본인이 직급이 높은 것도 아니고 그 직급에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이 있는데, 그런 이미지가(어떤 이미지라고는 말씀 안 하시지만 부정적 뉘앙스) 본인에게 안 좋게 돌아오면 본인도 안 좋잖아요.”


“저도 사람인데 모함하는 얘기나 악의적으로 퍼뜨리는 사람들 얘기를 전해 들으면 싫고 상처받을 때도 있겠죠. 근데 어쩌겠어요. 저는 변화지향적인 사람이고 비판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인데, 특히 저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생각 드는 게 주로 차장들인데, 생각해 보면 저는 소극행정하고 무능하거나 일을 안 하려 하는 사람, 업무를 떠미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차장이든 고참 과장이든 간에 할 말을 했는데요. 조직이나 국민에 이득이 되는 관점에서. 제가 싸움을 걸려고 시작한 게 아니라 의견을 개진하면 그들은 무시하거나 피드백이 없고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양 감정적으로 행동했어요. 그럼 저도 더 이상 존중하는 감정이 없어져서 이해가 안 간다는 식으로 대처하게 돼요. 근데 그걸 유발한 본인은 돌아보지 않고 메신저만 공격하는 게 이해가 안 가고요. 또 저는 저보다 늦게 입사한 낮은 직급에게는 한 번도 쓴소리나 싫은 소리를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 마음이 든 경험이 없었어요. 오히려 신입분들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너무 고맙다는 피드백을 자주 들어요. “ 하고 대답했다.


부장은 낮은 직급일 때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말해도 안 먹히는 일이 허다한데 괜히 갈등을 일으켜 본인 이미지만 망가지고 상처받으면 손해가 아니냐고, 조직 문화는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으며 어느 정도 통용되는 조직 문화를 따르는 게 본인에게 좋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본인 생각에 부당하고 이해 안 가는 그런 일이 있더라도 한 발자국 떨어져서 호흡을 가다듬고 대해보면 타협이 되지 않겠냐고.


“저도 제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면 제가 비판적 목소리를 낸 그 사람들이 나중에 저의 부장이 될 텐데 잠깐 흐린 눈으로 넘어가고 참고 웃으면서 겉도는 얘기만 하면 저에게 이롭겠죠. 그런데 그렇게 입틀막 하면서 살 수는 없어요. 저는 그릇이 작아서인지 그런 상황에 그냥 넘어가는 게 안 돼요. 그리고 제가 비판하는 내용에 대해 드라이하게 본인이 반박을 하거나 수용을 하거나 하면 되잖아요. 그래야 발전이 있는 거 아니에요? 전 이 회사에 계속 다니는 게 발전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저를 응원해 주는 사람도 의외로 많고요. 그래도 부장님 말씀처럼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말하는 건 연습해 볼게요. “ 하고 천천히 내 생각을 차분하게 말했다. 나를 며칠 겪지 않았지만 부장은 세간의 소문이나 오해가 아닌 자신의 판단으로 어? 그런 애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느낀 것 같았으며, 나에게 충고해 주는 마음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냥 뭐 안타까운 마음에 나를 걱정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할 말을 해야 하는 것에 왜 타협이 안 되는 사람일까. 그냥 스무스하게 사회생활을 못하는 캐릭터일까, 하고 잠깐 우울에 빠졌다. 그리고 나를 안 좋게 말한 그 사람은 누구일까, 짚이는 그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분노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은 어떤 무리가 험담을 잘하는 걸로 악명이 높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 하고 종종 위로하곤 했다.


인간의 본성은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반감들로 이루어져 있는 듯하다. 혐오할 게 없으면 생각과 행동의 원천마저 잃어버릴 것 같다.

우리는 모든 일에 싫증을 내지만 타인을 조롱하는 일에는 그렇지 않다.
- 윌리엄 해즐릿,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새로운 부서장과의 이 일화를 몇몇 동료들에게 말했다. 나를 아껴주고 알아주는 사람들은 나를 탓하기보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나를 봐주고 때로는 조언을, 때로는 응원을 해준다. 조직도 알고 나를 지켜봐 왔으니 내 고민의 맥락을 이해해 줘서 털어놓기에도 좋다. 부서장이 그렇게 말했을 때 어떻게 느꼈냐고 내 감정을 물어봐 주기도 하고, 늘 좋은 평만 받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우울함도 없으면 인생이 재미있겠냐고 위로해 주는 사람도 있다.


- 자꾸 조직 문화에 적응하라는데 그런 조직 문화는 누가 정하는 거예요? 우리 회사는 그렇게 다양성을 추구한다면서 저하나 포용 못하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누구보고 다양성을 추구하래요. 그리고 왜 자꾸 아랫사람에게만 참으라고 하는 거예요. 조직문화는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 아니에요?


하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중 한 동료가 듣더니 요지를 정리하며 결국 뾰족함을 둥글리라는 건데, 그 뾰족함을 강점으로 활용하는 관리자가 있는 반면 뾰족함을 무디게 만들라는 관리자도 있구나, 하였다. 얼마 전에 이와 관련한 인상 깊었던 문장을 보면서 내가 생각났다며 내가 자기 주변에서도 뾰족해서 눈에 띄는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다. 뾰족함으로 주목받고 입에 오르내리지만 그게 인생에 크게 걱정될 정도로 보이지 않고 나도 적당히 즐기며 사는 것도 같다고 그냥 마음 편한 대로 나답게 살라고 말한다. 나도 나다움에서 좋은 점을 발견해 주고 뾰족함을 굳이 다듬지 말고 살아보라고 말해주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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