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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Feb 22. 2019

보니따, 보니따

바르셀로나 호세 할아버지


Arc de triomf역에서 Barcelona Sants 역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린다. 민트색의 R1, 빨간색의 R3, 오렌지색의 R4가 지나는 곳인데 한 방향에서 여러 개의 열차가 지나는지 복잡하다. 전광판을 봐도 무엇을 타야 할지 모르겠다. 이쪽 방향에서 타는 것이 맞는 걸까. 구글맵은 이곳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산츠역으로 가서 9시 10분 기차를 타고 지로나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위로 올라가서 역무원에게 묻거나 다시 확인하면 확실할 것 같지만 지체하고 싶지가 않다.


그러던 차에 검은 바람막이를 입은 곱슬머리의 검은 남자가 물어보기 적당한 거리로 다가온다. "산츠역으로 가려면 이 곳에서 기다리는 게 맞나요?" 영어를 알아듣기에 적당한 나이대의 젊은 남자여서 영어로 질문한다고 뿌리치고 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제대로 알아들을까, 혹시 이 사람도 여행자여서 잘 모르겠다고 하진 않을까 약간의 긴장을 하며 물었다.


탱글탱글한 곱슬머리의 남자는 의외의 영국 발음으로 이 열차가 맞다고 대답했다. 그때 막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고, 저 열차를 타면 된다고 가리켰다. 그는 확신에 차있었지만, 멀리서 다가오는 열차에 붙어 있는 색깔은 구글맵에서 가리킨 라인의 색이 아니어서 혼란스러웠다. 의아하고 불안해하는 내 표정을 읽은 그는 자기도 산츠역에 간다며 이 열차를 같이 타면 된다고 확신을 주었다.


두 정거장을 지나 산츠역에 도착한 모양이다. 다행히 지하철에 안내 전광판이 있었다. 내릴려는 시늉을 하는 내게 곱슬머리 남자는 내릴 준비를 하면서 이번 역에서 내리면 된다고 잊지 않고 눈짓을 한다.


각자 소지품을 주의하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소매치기가 많아 도난 우려가 있으니 소지품을 조심하라는 걸까. 여행 오기 전에도 특히 관광객이 많은 분주한 도시 바르셀로나에서는 지하철과 버스, 유명 관광지에서 도난을 주의하라는 글과 경험담이 많았다. 가까운 친구 또는 동료, 건너 건너 지인들은 특히 남유럽에서 핸드폰, 지갑, 여권, 심지어 엄마의 친구는 이탈리아에서 캐리어를 통째로 도난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얼마 전에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동료는 캐리어와 가방도 끈으로 연결해서 다녔고 자기 친구는 여권을 잃어버려 마드리드에 있는 한국 대사관을 갔는데 도난당하거나 분실한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나는 유럽에서 1년 살았어도(창고에 주차해 놓은 자전거를 누가 훔쳐간 적은 있지만) 설마 내가 털리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다녔고, 실제로 한 번도 여행 중에 귀중품을 도난당한 적이 없기에 도난을 조심하라는 주변의 우려에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문 인식도 안 되는 아이폰 5를 4년 넘게 쓰다 몇 달 전 새로 산 탐스러운 빨간색 아이폰을 도난당하고 싶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조금 조심해서 핸드폰도 도난당하지 않고, 방비엥에서처럼 현금을 도난당하고 싶지도 않아 좀 신경 쓰기로 했다. 현금을 최소로, 쓸 돈의 1/4 정도만 가져가기로 하고 하나은행에서 해외 사용 시 수수료가 붙지 않는다는 비자 체크카드를 만들어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어디에선가 관광지에서는 사진을 찍어달라거나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글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는 나는 뭐 그렇게까지 해서 범죄를 저지르겠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까지 대비해서 나쁠 것 없었다. 바르셀로나 숙소의 독일인 할아버지의 말대로 길에서 누구도 믿지 말며, 단단히 준비해서 나쁠 것 없고, 일찍 일찍 다녀서 나쁠 것 없다.


구글맵으로 3시 30분 입장으로 예약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는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주로 가우디 투어로 단체 관광객이 많았고, 특히 귀에 하나씩 끼고 마이크를 든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한국인들이 눈에 띄게 많다. 다녀본 어떤 나라 중에도 가장 많은 한국인을 본 도시는 바르셀로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가우디 건축물을 보느라, 사진을 찍느라, 가이드 설명을 듣느라 빠져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쉬워 보였다.


30분 일찍 도착해 외관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4-5명으로 이루어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무리 중 한 사람이 말을 걸었다. 관광객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스페인 사람인지 이민자인지 외관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방긋방긋 웃으며 괜찮다면 자기들 사진 좀 찍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혼자 온 것도 아닌데 자기들끼리 돌아가면서 찍어주면 되지 왜 굳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걸까 의심이 들었다. '괜찮으면 사진 좀 찍어줄 수 있나요?'라고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내밀며 하는 멘트가 왠지 늘 그렇듯 범죄의 포문을 여는, 자동적으로 나오는 말 같게 느껴지기도 했다.


관광지에서 세 명이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뒤 둘러싸며 고맙다고 하이파이브를 해서 정신없게 만든 뒤 가방이나 외투 주머니 속에 있는 것들을 털어갔다는 사실인지 허구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로 어이없게 만들었던 글이 스쳐 지나갔던 게 거절 이유였다. 나는 처음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다가오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내 시선과 편견이 미안했지만 어떠한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 호의를 베푼 뒤 돌아오는 감사의 표현과 선의를 베풀었다는 작은 뿌듯함보다 가방 속에 있는 잃지 않고 싶은 것들을 지키고 싶었던 게 솔직한 마음이다.




바르셀로나 마지막 밤. 6시에 닫는 카탈루냐 미술관을 마지막으로 계획했던 일정이 끝났다. 5시 50분쯤 미술관을 나오니 어느덧 해가 져 하늘이 회색빛이 되어 있었다. 미술관 앞에서 들어가기 전에도 버스킹 중이었는데, 나올 때도 연주가 들렸다. 익히 아는 팝송도 나와 반갑기도 하고 위에서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보고 싶어 버스킹을 마주 보며 계단에 앉아있다 가기로 했다. 어느덧 세 번째 곡이 나오고 하늘은 깜깜해졌다. 도시에는 불빛이 켜졌고, 등지고 있던 카탈루냐 미술관의 화려한 건물도 노오란 조명을 받아 아늑하고 깊어 보였다.


그때 옆에 계속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회색 머리의 할아버지였다. 스페인어로 전경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 같았다. 계속 스페인어로 말을 걸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가 스페인어를 못한다고 하니 할아버지는 보니따는 Beautiful이라고 알려주었다. 아주 간단한 영어 단어만 말할 수 있는 것 같았다. Where are you from? 이라고 묻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에게 꽤 알아듣기 쉬운 한국어 발음으로 예에프으다라고 말했다.


"사람, 예프다, 우아빠. (전경을 가리키며) 보니따."

같은 아름답다는 뜻이어도 사람에게 쓰는 건 우아빠, 경치가 아름답다고 할 때는 보니따라고 한다는 말로 이해했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내 손에 들고 있는 빨간색 핸드폰을 가져갔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아 그냥 동네 할아버지가 산책하러 왔다가 혼자인 동양인 관광객 여자애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친절을 베푸는 걸 거야라는 생각과 이 할아버지가 혹시...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이렇게 타인의 호의를 의심하게 만든 온갖 부정적인 정보가 싫었다. 그래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핸드폰을 넘겼다. 할아버지는 너무도 순수하게 내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셨다. 그런 의심을 찰나라도 했다는 미안함이 들었다. 그래도 내색은 하지 않았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찍어준 사진들


할아버지는 계속 스페인어 문장을 반복하며 내게도 발음을 시켰다. 나는 잘 따라 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잊어버렸나 하고 중간중간 확인 질문도 하였다. 이제 나는 갈 길 가야겠다 하고 자리를 뜨려고 할 때마다 스페인어를 알려주려고 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만나자마자 하는 인사 꼬모 에스타인가, 무이 비엔, 프리오(춥다), 니뇨스(애들), 뻬로스(개), 루나(달), 빠르께 미로(호안 미로 공원), 인깐따도 데꼬네 또르떼인지 하는 것들을 들은대로 따라했고 까먹지 않으려고 적어두었다. 역시 언어는 현지 가서 배워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스페인어를 배울 의지가 없었음에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노출되다니. 재미있고 신기했다.



나는 영어로 말하고 할아버지는 스페인어로 말했다. 얼추 알아듣겠는 단어들을 통해 서로의 말을 이해했다. 이제 7시가 다되어 가니 방에서 짐을 싸고 다시 나와 마지막으로 스페인 거리를 걷다가 정리하고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마치고 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대화를 종료하고 갈 길을 가기 위해 이제 Metro로 가야겠다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뭐라 뭐라 하면서 지하철을 향해 같이 내려가려는 행동을 보였다. 그래 메트로까지 같이 가는 거 어렵지 않지. 할아버지는 내려가는 동안 몬주익 분수 사진을 핸드폰으로 찾아 계속 보여주면서 여기는 6-8월에 와서 분수를 꼭 봐야겠다, 이렇게 추운데 왜 왔냐, 분수가 정말 아름답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리고 내려가는 동안 틈틈이 내게 핸드폰을 가져가 사진도 찍어주었다.


메트로에 다다르자 할아버지는 쇼핑몰을 가리키며, 저 안으로 같이 들어가자는 행동을 취했다. 영문을 몰랐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꼭대기로 가보니 전망대가 있었다. 와 야경이 정말 멋있네, 다 보이잖아?


생각해보니 할아버지는 미술관 앞에서부터 쇼핑몰을 가리키며 저기 전망대가 있다, 저기에 올라가면 정말 아름답다고 알려주었고, 내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하자 전망을 보여 주고 싶어 데려온 것이었는데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이었다. 전망대에 올라오니 밤바람이 불어 조금 추웠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하던 보라색 목도리를 내게 건네며 둘러주었다.


할아버지는 전망대를 한바퀴 돌며 저기는 티디다보이고 저쪽은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있다, 저기는 몬주익이라고 가리키며 일일히 알려주었다.

FNAC 쇼핑몰에서
호안미로 공원


"오우, 투모로우 노 코리아, 유 히어 바르셀로나."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 통하는 대화가 몇 개 없었기에 할아버지는 내일 한국에 가지 말고 바르셀로나에 계속 있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면서 계속 우아빠 우아빠, 예으프다 예으프다 어디서 습득했는지 모르겠는 예쁘다를 반복해 말해주었다. 우리는 짧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으며 대화했다. 그래도 통하는 느낌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마지막 날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츄로스와 초코 라테를 먹고 가야 한다며 츄로스 집을 찾았다. 결국 츄로스 집은 못 찾고 카페를 발견했다. 할아버지는 커피 괜찮냐고 물었다.



지하철역 근처,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터키인 이민자 알바생이 있던 약간은 허름한 카페였다. 아쉽게도 초코라떼는 없었고, 할아버지는 에스프레소를 나는 라떼를 주문했다. 커피를 마시며 할아버지는 자켓 속주머니에서 펜을 하나 꺼내 흰색 냅킨에 자기 이름을 썼다. Jose. 할아버지 이름은 호세였다. 그러면서 내 이름은 어떻게 쓰는 거냐고 적어달라고 했다. 내 한글 이름도 적어주면서 호세를 한글로 적었다. 이게 할아버지 이름이에요.라고 말했다. 호세 할아버지는 재밌다는 듯이 손으로 이마를 치며 도저히 읽지도 쓰지도 못할 문자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할아버지는 커피를 계산해주었다. 이제 늦었다며 가야지. 하며 지하철역 안까지 데려다 주었다. 호텔로 가는 지하철역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러고 헤어지려고 하는데 할아버지는 지하철 카드를 찍고 안으로 같이 들어왔고, 심지어 열차도 같이 탔다. 아무리 친절해도 이렇게까지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는데 부담스러웠다. 할아버지는 내가 계속 메트로는 어디냐 어떻게 가야 되냐고 물으니 길을 잘 모르는 애라 생각하고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그 마음이 고마워 번역 앱을 꺼내 할아버지께 드릴 선물이 방에 있는데 숙소 앞에서 잠깐만 기다려줄 수 있냐고 쳤다. 사실 원래 알고 지내던 스페인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작은 선물을 사 왔는데 일정이 어긋나 마지막 날까지 방에 그대로 있었던 차였다. 그 선물을 할아버지에게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드릴 게 무엇이라도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숙소까지 가는 길에 번역 앱을 통해 서로가 하는 일을 물었다. 할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아직 퇴직을 안 한 것으로 보아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닌가 보다. 숙소 앞 횡단보도에 택시 무리가 꽉 차게 주차되어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이지, 아 이게 아까 할아버지가 말했던 택시 파업이구나. 할아버지는 택시가 파업 중이라 길에 택시가 다니지 않는다고 아까부터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기념으로 사진을 찍으니 할아버지도 본인의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러더니 택시 무리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면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내게 한국의 믹스커피와 둥굴레차를 선물 받은 할아버지는 정말 고맙다며 포옹을 한 뒤 헤어졌다. 만나서 반가웠다고, 바르셀로나 정말 좋았다고 오늘 너무 감사하다고 아쉬움의 작별 인사를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깊은 대화를 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관광지 한복판에서 만나, 각자의 언어로 가능한 쉽고 간단하게 표현하며 나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고, 순박한 우정을 나누었다.


하루 종일 가방을 붙잡고 주위를 경계하며 다녀야 할 것 같기만 했던 바르셀로나에는 소매치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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