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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Apr 26. 2019

라오스의 서울대학교를 가다

오랜만에 쓰는 라오스 이야기


라오스에 사는 한인들은 라오스 국립 대학교를 우리나라의 서울대에 비유한다. 현지에서는 동독이라고 불리는 라오스 국립 대학교는 수도 비엔티엔에 있는 국립대이자 종합대학이고 이 나라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학교이기 때문이다(물론 고위층 인맥을 통한 입학비리도 있다).


라오스에서 한 달 동안 체류하는 동안 교육 봉사를 했는데, 내가 가르친 동독 1학년 여학생 퐁(익명을 쓰기로 한다)을 따라 퐁이 다니는 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참고로 라오스에서는 한 음절로 된 이름이 많다. 실제 이름인 경우도 있고, 애칭으로  짧게 줄여 부른다. 가령 꿍, 탱, 엥, 뗌, 엉, 라 등이 있다.



라오스에서 생활하면서 매일 9시 이후, 직장 생활과는 달리 느지막이 일어나곤 했는데, 이날은 퐁과 학교에 가기로 해서 6시쯤 알람을 맞추고 일찍 일어났다. 한동안 정신이 멍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천장은 높고 공간은 넓어 휑하다. 여기는 라오스고 나는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학교를 가야지. 침대에서 나와 커튼을 활짝 열어 눈을 감고 온몸으로 햇빛을 빨아들인 뒤 낮동안 환기가 잘 되라고 창문을 열어 걸어 놓았다. 조금 피곤했지만 햇살은 따뜻하고 아침 공기를 마시니 상쾌하다. 화장실로 가서 간단히 씻고 주방으로 내려갔다. 냉동실에서 빵을 꺼내서 토스트기에 넣는다. 그리고 저번에 태국 마트에서 사다 놓은 태국산 두유 큰 거 한 팩을 꺼내 유리컵에 한 잔 가득 따른다. 고소하고 달다. 라오스의 웬만한 공산품은 태국 수입품이라고 한다.


준비하고 퐁을 기다린다. 7시 10분-15분경 문 밖에서 오토바이 채비를 하는 소리와 문을 두드리는 똑똑 소리가 난다. 내가 더워서 가디건을 손에 들고 있자 이미 바람막이 잠바 같은 것을 입고 있던 퐁은 입어야 된다는 시늉을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춥다는 것이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헬멧을 썼다. 퐁 오토바이 뒤에 몇 번 타본 적이 있기에 조금 익숙하게 올라탔다. 동독까지는 집에서 20분 정도. 아침 공기를 마시며 신나게 달린다. 몇 번 탔더니 무섭지 않다. 아무 근심 걱정이 안 들 정도로 시원한 공기를 가르며 빠르게 달리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사실 오토바이족 사이에서 달리며 맡게 되는 매연과 바람에 나부끼는 흙먼지로 공기가 그리 좋진 않다.


학교에 다다를수록 오토바이를 탄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학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에 오기 때문에 오토바이 주차장도 있다.

학생들이 오토바이를 주차하는 곳


퐁이 오토바이를 주차할 동안 주차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하얗고 키 큰 남학생 한 명이 내게 인사하며 걸어온다. 목소리와 행동이 굉장히 발랄한 남학생이다. 영어도 꽤 자신 있게 한다. 내가 명백하게 이방인처럼 생겨서 나를 알아보고는 자기는 퐁의 같은 반 친구라고 한다. 퐁과 우리 셋은 교실로 향했다.


영어 수업에 참여하기

이게 대학교 교실이라니


그들이 데려온 곳은 대학교 교실이라고 믿기기 어려울 정도로 허름했다. 사회복지학과의 건물이라고 했고, 교실 별로 나뉘어 있다고 했다(중고등학교처럼 같은 과 같은 반 학생끼리 한 교실에서 짜여진 수업을 듣는다). 구호단체의 영상을 보며 상상한 저개발국가의 초등학교 분교 같은 모습이었다. 화장실을 가려면 한참을 걸어 도서관 건물이나 다른 건물을 가야 했다. "사바이디" 하고 인사하며 교실로 들어서자 중고등학생처럼 앳된 얼굴의 새내기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남학생보다는 여학생 비율이 높았다. 10대 때 결혼해서 애도 낳는 일이 흔한 나라라고 들었는데 대학교에 여학생이 많아 신기했다. 흔히 저개발국가의 여성의 교육 수준은 남성에 비해 훨씬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소녀들은 적극적으로 다가와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Where are you from? What's your name? How are you? 등 자기가 배운 영어로 물어본다. 멀리서 다가오지 못하고 앉아있는 소녀들은 눈이 마주치면 수줍게 미소 짓고 내가 자기들 근처에 다가오면 대화할 기회를 엿봐 말을 건다. 정말 아름다워요! 정말 예뻐요! 정말 하얘요! 한 명씩 돌아가면서 나보고 예쁘다고 난리이다. 귀엽게도 말을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You are so beautiful! 을 뱉어낸다. 영어로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는데 기회가 왔으니 반가움은 표현하고 싶고, 하얘서 신기하고, 송중기 오빠가 나오는 드라마 속에 있던 한국 사람을 나의 일상에서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정의 표현인 것 같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우리처럼 하얀 외모를 가진 학생들도 있고, 하얘지고 싶어 하얗게 화장품을 바른 여학생들도 있다. 하얀 것이 예뻐 보이는지 하얀 외모를 추구하는 것 같다.


수업시간이 다가오고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나는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밖으로 나가 퐁이 수업 끝날 때까지 캠퍼스를 구경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가지 말라며 수업을 같이 듣자고 종용한다. 그러면서 선생님께 다가가 허락을 받아 온다. 그렇게 영어 수업을 같이 듣게 되었다.



영어 수업시간, 마침 내가 퐁에게 미리 가르쳐 준 부분을 나간다. 교과서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나온 좋은 교과서를 쓴다. 수업시간이 되어서도 교실이 너무 어둡다. 교실 앞에는 허름한 화이트보드 한 대가 놓여있다. 다행히 선생님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 내가 퐁에게 가르쳐 준 것과 거의 유사하게 가르쳐서 신기했다. 내가 한 단어에 파생해서 동의어와 다른 형태를 알려준 것을 선생님도 똑같이 알려 준다. 모국어가 아닌 선생님들의 영어 교수법은 어딜 가나 비슷한 걸까.


퐁은 영어를 알파벳부터 배운 지 얼마 안 되어서 다른 학생들과 실력 격차가 크다. 가난 때문이다. 한국인 후원자가 없었다면 대학을 합격해도 등록금이 없어 다니지 못할 뻔했다. 등록금은 말도 안 되게 저렴한데도 말이다. 노트 살 돈이 없어 옆 친구에게 노트 한 장을 찢어달라고 해서 필기하고, 학생 식당에서 점심 사 먹을 돈이 없어 한 번도 학교에서 밥을 먹고 온 적이 없다. 학교에 와서 같이 생활해보니 알게 되었다. 퐁과 나는 같이 다녀도 OK, Let's go, Thank you, How are you와 같이 정말 기본적인 영어만 쓸 수 있고, 구글 번역기를 통해 통하는 정도인데 이 곳에 와보니 라오스에서도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영어 교육을 잘 받은 학생들이 많다. 대학생이 된 지금도 영어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


선생님이 질문하자 너도 나도 손을 들고 답하고 싶어 한다. 대답을 하면 선생님이 수행평가처럼 체크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정말 적극적으로 자신감 있게 발표를 한다. 퐁은 사실 지문을 소화할 역량이 안되지만 발표를 하고 싶어 해서 옆에 앉아 답을 알려 주었다. 발표를 하고 정답도 맞으니 기분이 좋아 함박웃음을 지었다. 학생들과 같이 앉아 수업에 임하니 학생이 된 것 마냥 재미있었다. 엄마는 내가 여기에 잘 맞는 것 같다며 선생님으로 갈 수 있는 자리 있는지 알아보라고 한다. 실제로 몇 몇 한국인들이 라오스 대학에서 연봉이 한국에서는 최저 임금 '월급'도 안되는 임금을 받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어두운 환경에서 공부하면 눈이 나빠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옆자리에 앉은 퐁의 친구 발랄한 남학생에게 "교실이 너무 어둡지 않아?" 하고 말하니, 그 친구가 손을 들고 선생님께 라오스어로 말한다. 선생님은 불을 켜주신다.


옆 자리 학생의 라오스어체가 신기해서.

수업이 끝나면 뭘 할까?


라오스 소녀들은 잘 웃고 명랑하다.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공산국가의 주민이지만 외부인에게 거리를 두기는커녕 따스하고, 정치적으로 세뇌당했다는 느낌도 잘 들지 않는다(나라는 외국인을 견제, 감찰하지만).


라오스에선 대학생도 교복을 입는다

한인들의 말에 따르면 라오스에는 한국보다 북한이 먼저 들어왔다. 그래서 북한 문화스러운 구석이 많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대학교 내에 같이 모여 공부하는 스터디, 동아리 문화가 없다. 여럿이 모이는 것을 지양하는 공산권 문화 같다는 말도 있다. 젊은 대학생, 청년들이 같이 모여 공부하고 취미도 나누면 시너지 효과가 나고 그렇게 모인 생각들을 바탕으로 국가의 발전에도 도움이  텐데. 내가 계속  학교에 다닌다면 그런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페이스북으로 사진과 영상을 보내준 것을 보면 일회성 음식 축제와 체육대회는 있는  같다. 보통 수업이 끝나면 각자 뿔뿔이 흩어진다고 한다.



학식을 먹어보자


퐁의 친구 노이는 자기들이 카페테리아로 점심을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교실도 이리 허름한데 식당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한 나는 뜻밖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우리 넷은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정말 크고, 음식 종류도 많았다. 많은 학생들로 북적여 활기가 느껴졌다. 원하는 코너에 가서 메뉴를 정하는 것이었다. 루앙프라방에서 추천받아먹은 돼지다리살 덮밥이 맛있었던 기억에 비슷한 것을 주문하였는데 정말 맛있었다. 약간 달큰한 간장소스 같았는데 거부감 느껴지는 향이 나지 않았다. 퐁은 입학하고 처음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이었다. 부모로부터 받는 돈이 없는 퐁에게는 하루에 2-3천 원 쓰기에도 정말 큰돈인 것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 다른 친구는 학원에 가야 한다며 먼저 떠났고, 노이는 과일 주스를 마시며 산책하자고 했다. 시원한 과일 주스 한 모금에 행복했다. 햇살이 뜨겁자 노이는 가지고 다니는 검은 우산(양산인지)을 폈다. 더운 나라라 햇빛이 강해 가지고 다니는 것 같다. 노이는 영어를 잘해서 여러 이야기가 잘 통했고, 나와 퐁 사이에서 적절히 통역을 해주었다. 노이에게 어디 사는지 물으니 학교 근처 기숙사에 산다고 했다. 자기네 고향은 20시간이나 타고 가야 해서 거의 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도 자기네 나라에서 가장 들어오기 힘든 이 대학에 들어와서 너무 기쁘다고 말하는 눈에 자긍심과 자신감으로 빛이 났다. 자신의 꿈과 목표를 설명하는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있었고 확신이 있었다. 라오스의 미래구나.


"우리 학교는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들어오고 싶어 하는데 정말 어려워요. 한 번에 들어오기도 어려워서 다시 시험을 보기도 하고. 저는 한 번에 들어왔어요." 노이는 잔디밭을 따라 걸으며 여러 건물을 소개해주며 나는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느 정도로 들어가기 어려운 학교인지 물었다. 그래 너도 열심히 공부했고 이 나라에서는 머리 좋고 비상한 학생으로 인정받았구나.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들이는 입시 노력의 1/10 정도만 노력해도 너희 학교는 쉽게 들어오겠다고 생각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대강 대답했다. 어 그렇구나 노이는 영혼 없이 끄덕이며 그래서 내가 나온 대학은 한국에서 몇 번째 순위인지, 얼마나 들어가기 힘든지를 꼬치꼬치 물었다. 노이는 라오스 랭킹 1위 대학의 학생이라는 자부심으로 내가 아무리 훨씬 잘 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별 경쟁심이 안 느껴지나 보다.



여길 와야 되네, 교내 문구점



노트와 펜 살 돈이 없어 옆 친구 노트를 찢어서 쓰는 퐁이 안타까워 잠깐 혼자 캠퍼스를 구경하는 시간에 편의점 겸 문구점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라오스 시내에도 이런 곳이 없기에 신세계였다. 비엔티엔 전체에 이렇게 큰 문구점이 있을까 싶다. 문구점이 있어도 펜이 몇 가지 없다는 말에 한국에서 샤프와 펜들을 사 왔는데 이 곳이 더 많았다. 펜과 노트의 종류도 정말 다양했고, 여러 문구류 물품이 다양했다. 한국, 일본에서 온 펜과 샤프도 있어 반가웠다. 처음 보는 Made in India 펜이 있어서 4개 구입했다. 0.7보다는 얇은 느낌의 필기감이 좋은 파란색 볼펜이다. 4개에 10,000낍(1400원 정도)이라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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