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4
해질녘 구름이 하늘에 낸 길.
구름은 종일 거기 있었다. 저무는 빛이 붉게, 가뭇가뭇하게 물들이고 나서야
그 구름이 길이란 걸 안다.
알고 나서도 선뜻 올라서지 못한다.
길이 훤하면 훤한대로, 어두우면 어두운대로 우두커니 바라만 본다.
행여 길이 아닐까봐. 그러다 해 저물면
사방이 밀물같은 어둠.
밤은 차갑고 허기지다. 나는 한번 떼어보지 못한 발목부터 천천히 먹혀든다.
얼어붙은 발목을 바람 쥐가 갉아먹는다.
서리 앉은 살 부스러기가 허공에 흩어진다. 구름에 닿는다. 북풍에 실려 길을 떠난다.
종종거리던 마음도 게걸스럽게 사라진다.
마음이 없는 육신은 한결 가볍다. 잔해는 잊힌다.
떠난 조각들만 새벽을 맞는다.
오늘의 구름은 듬성듬성하다.
그러나 발이 없으므로 추락하지도 않을것이다.
부스러기는 흩어져도 부스러기다.
다시 아침이 쫓아온다.
두려움 없는 구름이 허공에 흩어진다.
구름도 길도, 더는 나도 없는 겨울 아침이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