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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야 Sep 03. 2024

분노 조절 대작전

“민규가 우리반이라구요?” 믿을 수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믿고 싶지 않았다. 

‘왜! 왜! 왜! 그 아이가 우리반에 배정된 걸까?’ 그 아이를 뽑은 내 손을 원망했다. 민규는 5학년 중에서 가장 힘들기로 소문난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는 분노 조절이 잘 안되어 책상도 던지고 의자도 던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직접 만나보고 해결 방법을 찾는 수밖에. 만나보기 전부터 겁을 먹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개학 전날까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기 일쑤였다. 사실 나는 불안도가 아주 높은 사람이다. 걱정을 미리 사서 하는 성격이라 여러명의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예기치 않는 일들이 자주 발생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은 교직 생활이 언제나 버거웠다.    

  

‘만나 보지도 않고 지레 짐작하여 미리 걱정하고, 아이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지. 마음 단단히 먹자’ 그렇게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고 민규와 만났다. 개학하고 얼마 동안은 생각했던 것보다 잠잠했다. 괜히 걱정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얼마 후 일이 슬슬 터지기 시작했다.   

   

“팍!” 갑자기 수학 시간 민규가 일어나서 짝꿍 소희의 책상을 발로 찼다. 소희는 몹시 당황한 표정이었고 민규는 씩씩대고 있었다. 손은 주먹을 쥐고 책상을 발로 더 찰 기세를 보여 깜짝 놀라 그만하라고 민규를 말린 뒤 복도로 데리고 나왔다. 


“민규야, 친구 책상을 왜 발로 찼니?”

“소희가 자꾸 수학책 20쪽을 피라잖아요. 알아서 할 텐데 3번이나 말해서 짜증 났어요.”     

이유가 말이 안 되는 건 맞았다. 민규가 수업 준비가 되어 있지 않자 도움을 주려는 소희에게 3번이나 같은 말을 했다는 이유로 발로 책상을 차다니. 기가 막혔다. ‘이제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민규에게 짜증이 난다고 물리적인 힘을 행사한 것은 잘못된 것임을 알려준 뒤, 친구가 도움을 주려했다는 좋은 의도를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사과를 하도록 했다. 소희의 속상한 마음을 달래준 뒤, 민규에게 필요한 것은 선생님이 챙길 테니 하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며칠 뒤 체육 시간, 민규가 또 잔뜩 화가 나 강당에 있는 의자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감정 기복이 심한 민규는 잘 놀다가도 자신의 기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격하게 표출했다. 이번에는 피구를 하는데 자신이 아웃이 아닌데 아웃이라고 해서 기분이 나빴고, 그래서 자신의 편이 졌다며 반 친구들에게 의자를 던지려고 한 것이다. 당장 달려가서 민규를 잡고 의자를 못 던지게 막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정말 의자에 맞을 것 같아서 겁이 났다. 민규를 진정시키고 절대 그러지 말라고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하지만 유독 승부욕이 발동되는 체육 시간마다 민규는 끊임없이 화를 주체하지 못했고, 급기야 나는 체육 시간이 두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나 선생님 맞니?’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 울고 싶었다.     

 

크게 화도 내보고, 달래도 보고, 부모님과 미리 약속을 해서 민규 보는 앞에서 부모님께 전화해 당장 데리고 가라고 연극을 해보기도 했지만 다 소용이 없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밀려드는 자책감과 무기력감은 어쩔 수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인터넷 정보와 책을 뒤적거리며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다음 날 아침 오자마자, 민규를 불렀다.      


“민규야. 선생님과 이야기 좀 할까? 민규는 어떨 때 화가 나? 화가 나는 상황을 적어보자. 그리고 이럴 때 민규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하나씩 적어보자.”     


다 적은 뒤 모든 것을 다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기에 아침마다 매일 민규와 전날 잘 지켜지지 않는 행동 한 가지만 지키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끝나기 전에 스스로 평가해보기로 했다. 민규는 학교에 오자마자 나와 함께 친구들에게 격하게 화내지 않기, 체육 시간에 의자 던지지 않기, 때리지 않기 등 하루에 한가지 지킬 일을 정했고, 수업이 끝나고 오늘의 약속을 잘 지켰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 친구들은 민규에 대해 이미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사소한 일이라도 민규와의 일을 나에게 이르기 바빴다. 그래서 민규와의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친구들의 도움도 필요했으므로 민규에게 용기를 내서 반 친구들에게 사과를 하고 열심히 노력할테니 기다려달라고 말하도록 권했다.      


“애들아. 그동안 화 많이 내고 교실 분위기 나쁘게 만들어서 미안해. 나 노력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아이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민규가 용기가 있다며 모두들 박수를 쳐줬고, 덕분에 민규의 행동이 고쳐지기까지 두 달여의 시간이 걸렸지만 모두 잘 기다려주었다.   

   

물로 두 달이 지난 이후에도 완벽히 고쳐진 것은 아니였지만 분노를 표출하는 간격이 점점 길어져서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으로 점점 바뀌었다. 무사히 2학기도 마쳤고, 듣기로는 다음 학년에서도 잘 지낸다고 하니 참으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마음을 잘 조절해서 잘 컸으면 하는 마음이다.      


민규로 인해 나는 많이 성장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민규를 위해 고민했던 시간들이 모두 의미있었다는 것도 안다. 다만 성장을 위해 이런 식으로 겪어야 하는 일이라면 성장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 교사이든 선배 교사이든 모든 교사들이 이런 무기력감과 자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런 감정은 다른 학생들을 지도하는데도 큰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음 착했던 우리 반 아이들에게 고마우면서도 그들도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왜 이 힘들었던 상황을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을까. 아마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만한 환경이었던 것도 맞다. 소위 ‘힘들다’ 하는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담임 혼자 몸을 갈아 넣는 시스템이라면 이 아이는 어디서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인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담임 교사 혼자서 오로지 감당해야 한다면 힘든 아이는 정말 피하고 싶은 학생이 된다. 그래서 학교 전체가 아이의 성장을 도와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담임 교사 혼자가 아니라 상담 교사, 관리자, 그리고 학부모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요즘은 학부모님들의 협조를 구하기가 사실 쉽지 않다. 민규처럼 협조를 해주시는 학부모님도 계시지만, 우리 아이만 미워하느냐며 선생님이 잘 지도하셨어야지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무조건적인 협조를 법으로 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면 교사 스스로가 잘 지도하지 못해서 생겼다는 자책감부터 털어야 한다. 정신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앞으로 교사로서 성장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교사 한 명의 힘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함께 노력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와 학교, 교육정책이 한 마음이 되어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는 교사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호간의 지속적인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고 이를 법으로 제정해야 한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학생의 학습과 발전을 위해 손을 맞잡고 노력하면, 교육의 질이 더욱 향상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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