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담임을 맡았던 때 이야기를 한가지 더 하려 한다. 업무 분장표를 확인하니 돌봄교실 운영이 내 담당이었다. 막대한 예산을 써야하는 돌봄교실이라 어려울 것임을 예상했지만, 현실은 더 가혹했다. 바로 그해 코로나가 터졌기 때문이다. 3월 첫날부터 개학을 못한 학교는 맞벌이 자녀들을 위해 돌봄교실은 열어야 했다. 그래서 개학도 하기 전에, 아직 전입 온 학교에 소속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는 돌봄교실에 참여할 학생들 명단을 작성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시작해야 했다.
개학이 금방 될 줄 알았지만, 계속 일주일씩 미뤄졌다. 돌봄교실은 일주일마다 새로운 명단을 작성해야 했고, 당장 다음 주 학교가 개학할 지 조차 불투명해서 돌봄교실의 운영 관련 사항은 금요일 퇴근 후에 연락이 왔고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다. 급기야 급식실이 운영되지 않는 상황에서 급식을 제공하라는 공문이 금요일 밤에 도착했다. 급히 주말 동안 도시락 업체를 찾아야 했다. 나는 그 사이 학생들의 알레르기 여부를 조사했다. 급식이 아닌 사설 도시락이므로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들은 따로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안내문도 보냈다.
그러나 한 학부모님이 안내문을 제대로 읽지 않고 알레르기가 있다고 체크한 후 도시락을 요구했다. 어릴 때 알레르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미 알레르기가 있다는 신청서를 받은 터라 지금은 정말 알레르기가 없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알레르기 사고는 학교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문제라 도시락 지급이 어렵다고 말씀드리니, 병원에 가서 알레르기가 없다는 확인서를 받아오면 되겠냐고 하길래 그러시라 했다. 그랬더니 전화기상으로 아버님과 어머님이 알레르기 검사 비용이 얼마나 비싼데 쓸데없이 적어서 이 난리를 피냐며 서로 싸우시는 것이었다. ‘제발 전화 끊고 싸워주시라구요!’ 결국 알레르기가 없다는 학부모님의 확인서를 받고서야 일이 마무리되었다.
여름 방학을 앞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저희 아이가 1-3반 ***입니다. 오늘 돌봄교실 방학 특강 수업이라 도시락을 싸야 하는데 놓고 가서 전화 드렸어요.”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희는 지금 방학이 아닙니다. 그리고 원래 방학때는 급식이 안나오지만 이번에는 도시락 주문하여 지급할 예정이라 도시락 쌀 일도 없구요”
그러자 학부모님이 버럭 화를 내며 “무슨 말씀이세요. 오늘 아침에 방학이라 돌봄교실로 갔는데요.”
당시 나는 교사 연수실에 있었고, 1학년 3반 담임 선생님이 바로 앞에 계셔서 ***을 아냐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했다.
“어머니. 1학년 3반 담임선생님께서 ***이란 학생은 없다고 합니다.”
“선생님. 진짜 너무 하시네요! 학생을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요?”
갑작스런 화에 당황스러웠다. 쏘아붙이는 말투에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어머니, 여기는 보람초등학교입니다. 혹시 다른 학교에 전화하신 건 아닐까요?"
“어머. 거기 보라초등학교 아니예요? 어머, 죄송해요. 호호호. 툭.”
무례한 말투로 쏘아붙이던 학부모님은 본인의 실수를 깨닫고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붉으락푸르락했던 내 뺨에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아무런 준비 없이 일방적으로 폭격을 맞은 기분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정하지 않게 말을 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토록 화가 나게 했을까? 침착하게 물어보면 될 일인데 말이다. 나도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이지만, 자녀의 일이라면 너무 급하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는 학부모들을 볼 때마다 그게 과연 진정한 부모의 역할인지 의문이 든다.
그날은 정말 속상했고 화도 났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화를 쉽게 내는지, 특히 남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는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조금만 더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좋을 텐데 말이다. 다행히 연수실에 있던 동료 선생님들의 위로를 받고 마음을 진정할 수 있었다. 학년 부장님께서는 나보다 더 열을 내시며,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냐"며 화를 내주셨다. 그 모습에 흐르던 눈물이 다시 쏙 들어갔다.
집에 돌아와 동네 맘카페에 오늘 있었던 황당한 일을 쓰고, 제발 화를 쉽게 내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직장과 집이 같은 동네라 당사자가 글을 읽을 수 있어 참았다. 나만 그런건지 교사라는 직업인이 이런 불만을 표출하는 것에 적잖이 부담을 느낀다. 어쨌든, 모두가 쉽게 화내지 말고 차분히 대화를 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