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

by 오후야

함께 근무한 지 불과 한 학기, 4개월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점심 식사 후 연수실에 모여 그날의 고단함을 이야기로 풀었고, 온라인에서 함께 책을 읽는 모임도 가졌다. 언제나 밝고 씩씩했던 그녀는, 건강상의 이유로 2학기에 들어 휴직을 하였다. 그리고 복직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영원한 마침표를 찍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젊고, 너무 고왔던 그녀였기에 그 소식은 현실 세계의 일이 아닌, 멀리서 들려온 희미한 환청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장례식장에 와 있다. 빈소 앞 전광판에 선명하게 뜬 그녀의 이름과 함께 환하게 웃는 영정 사진, 그리고 '○○호실'이라는 장례식장 호실 번호까지. 그 익숙한 이름과 비현실적인 정보의 조합이 도무지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우리는 늘 '나중에'를 기약하지만, 어떤 '나중'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것을 서늘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아무것도 모른 채 손님인 나에게 작은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네던 어린 딸이었다.
아직 엄마의 영원한 부재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낯선 이들에게 정중히 머리 숙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 곁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서 있던 사부님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타인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앞에서 종종 무력해진다. 그저 그들의 슬픔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기도할 뿐, 현실적인 위로조차 건넬 수 없었다.

그날 밤, 새벽 5시에 눈이 뜨였다. 출근 시간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몸은 이미 가장 얕은 잠의 경계에서 깨어나 있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그녀의 웃던 얼굴, 휴직하기 전 인사를 하기 위해 온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떠올린다.

'사는 게 뭘까. 열심히 사는 게 정말 의미가 있나.‘

우리가 밤낮없이 달려왔던 그 모든 노력과 목표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지는 허무함이었다. 그 허무함은 죽음은 멀리 떨어진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이토록 가까운 일상 속에 언제든 침투할 수 있는 우리의 숙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렇게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복잡한 감정은 슬픔과 허무를 넘어서 이별 앞에서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는 무력함, 그럼에도 남겨진 우리는 이 평일을 묵묵히 살아내야 한다는 무거운 숙명이 뒤섞인 미지의 것이었다.

가까이 함께 삶을 공유했던 이의 부재는, 우리에게 삶의 목적을 묻는 가장 서툰 방식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방식이기도 했다.

나는 그저 이 무거운 마음을 탐색하며, 힘겨운 걸음으로 다시 하루의 문을 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