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장래희망

by 오후야

꿈의 의미를 검색해 보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세 가지 정의는 이러하다.

잠자는 동안 일어나는 심리적 현상의 연속.
실현시키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허무한 기대, 몽상.

누구나 매일 잠자리에 들지만 첫 번째 꿈은 나이가 들수록 자꾸 희미해진다. 어린 시절엔 밤마다 선명하게 떠올랐던 장면들이 이제는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배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형체가 되어 흩어진다.
두 번째 꿈은 현실의 무게에 눌려 점점 조용해진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도 어쩐지 조금 과한 것 같아 입안에서만 굴리다 삼켜버리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는 사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세 번째 꿈이다.
짧고 잡다한 몽상들...
퇴근하고 돌아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소파에 널브러지던 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살면 어떨까’, ‘로또 1등 당첨되면 좋겠다.’같은 생각들.
퇴근길 신호등 앞에 멈춰 서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저녁 하늘을 바라보면 저기 저 푸른 하늘 아래 다른 길을 걷는 또 다른 내가 있을까 궁금해지는 순간들.
짧고 덧없는 생각들이지만 그런 상상들은 어른의 마음을 은근하게 흔들어 놓는다.
오늘은 그 꿈들 중에서도 우리의 하루를 아슬아슬하게 버티게 하는 두 번째 꿈—희망으로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2006년,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이런 대사가 흘러나온다.

일정한 슬픔 없이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을까.
지금은 잃어버린 꿈, 호기심, 미래에 대한 희망.
언제부터 장래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게 된 걸까.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1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

나는 이 장면을 20대의 어느 저녁에 보았다. 그때의 나는 하루를 마무리한 뒤 자취방의 작은 창문을 열어두고 선풍기 앞에 앉아 캔맥주와 감자칩을 먹던 사람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공기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희망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그 문장을 듣는 순간, 정말로 내일이 기다려졌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실제로 장래희망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나는 40대가 되었고, 연애라는 장래희망은 이미 종착역에 도달했다.
결혼과 현실, 서로를 지키기 위한 크고 작은 싸움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또 다른 종류의 희망들. 그것들은 20대의 설렘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묵직하고 조용한 색을 가진다. 그렇다면 연애가 끝난 어른에게 장래희망은 무엇일까.
직장에서의 하루가 켜켜이 쌓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마다 현관에 적막이 내려앉을 때, 가슴에 무언가 알 수 없는 애림이 서려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내일을 견뎌내야 할까.

사실 나는 20대부터
“무엇을 하며 인생을 살아야 후회하지 않을까”를 가장 오래 붙잡아 왔다.
20대엔 지하철 창가에 앉아 흐릿한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보며 “적성에 맞는 직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만을 되뇌었다.
30대엔 “좋은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인생의 의미라고 믿었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큰 물살을 헤엄쳐 나갔다. 그리고 40대가 된 지금, 모든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한가.
이 길 끝에서 나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가슴 뛰는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 질문들 속에서 오래 묵혀둔 마음의 문이 조심스럽게 삐걱거릴 때 서은국 교수님의 <행복의 기원>이란 책을 만났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becoming(~이 되는 것)‘과 ’being(~으로 사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재벌가 며느리가 되는 것(becoming)과 그 집안 며느리가 되어 하루하루를 사는 것(being)은 아주 다른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지, 이 삶을 구성하는 그 뒤의 많은 시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120쪽)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이다.(122쪽)

나는 따뜻한 커피를 손에 들고 스타벅스의 가죽 소파에 머리를 기대로 연신 천장의 노란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 밖에서 겨울바람이 바스락거리며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었고, 온 세상은 물기 하나 없이 마른 느낌이 들었다. 그 조용한 배경 속에서 문장을 다시 읽었을 때 내 마음속에 아주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돌아보면 나는 늘 becoming에만 모든 힘을 쏟아붓고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누군가의 아내가 되는 것,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 집을 사는 것, 또 다른 성취를 이루는 것. 그 순간들이 지나간 뒤의 끝없이 계속되는 하루—그것이 바로 being이라는 걸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 being의 자리에서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다.
“이것만 이루면 괜찮아질 거야”
“지금은 잠깐 참자”
그렇게 말하며 현재를 늘 뒤로 미루고 살았다. 어른에게 필요한 장래희망은 더 많은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괜찮게 살아내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길 위를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이 마치 어둠 속의 작은 꿈처럼 반짝였다.
나는 그 빛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의 being을 살기 위한
나만의 장래희망을

다시 천천히 적어보고 싶다고

이전 01화새해 다짐은 12월에...